'ACLE 8강 진출 성공' 광주 FC 이정효 감독이 한국축구에 던지는 시사점
광주FC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엘리트(ACLE)에서 K리그 팀으로 유일하게 기적적인 8강 진출에 성공하면서 '이정효 매직'이 다시 축구 팬들에게 주목받고 있다.
이정효 감독이 지휘하는 광주는 지난 12일 광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4~2025 ACLE 16강전에서 비셀 고베(일본)를 3-0으로 꺾고 8강에 진출했다. 앞서 지난 5일 치른 16강 1차전 원정 경기에서 0-2로 패하며 탈락 위기에 몰렸던 광주는, 2차전 홈경기에서 극적인 뒤집기에 성공하며 역사를 새로 썼다. 아시아 클럽 대항전에서 8강 진출은 광주 구단 역사상 최초이자, K리그 시도민 구단을 모두 통틀어 첫번째 기록이다.
이러한 광주 돌풍의 중심에선 역시 이정효 감독의 존재를 빼놓을 수 없다. 2022년부터 광주의 지휘봉을 잡은 그는 불과 3년 사이에 1부 승격, 사상 첫 K리그1 3위, ACLE 진출 등 구단의 역사와 기록들을 연이어 갈아치우며 최근 K리그에서 가장 뜨거운 감독 중 한 명으로 부상했다.
'비운의 선수'에서 '미래의 감독'으로
이 감독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축구 팬들에게 그리 유명한 인물은 아니었다. K리그에서 주전급으로 200경기 이상 출전했고, 한 팀의 원클럽맨으로 활약했을 만큼 완전한 무명 선수도 아니었지만, 특출한 개인수상 경력이나 국가대표 발탁 기록이 전무해 소위 이야기하는 '스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부산 아이파크(전신 부산 대우 포함)에서 측면 수비수와 미드필더로 통산 11시즌간 222경기에 출전했고, 13골 9도움을 기록했다. 2004년에는 FA컵(현 코리아컵) 우승을 경험했고, 2008년을 끝으로 부산에서 선수생활을 마무리했다.

2015년부터는 프로 무대로 진출해 전남 드래곤즈, 광주FC, 성남 FC 등에서 코치를 역임해 경험을 쌓았다. 이미 코치 시절부터 전술과 지도력을 인정받았고, 선수단 내에서는 오히려 감독보다도 더 많은 지지와 인망을 얻었다는 평가가 나올 만큼, 준비된 '미래의 감독감'으로 꼽혀왔다.
2021년 12월, 2인자로 착실하게 경력을 쌓아오던 그에게 마침내 첫 프로 감독 데뷔의 기회가 찾아온다. 제의가 온 곳은 코치로 몸담았던 광주였다. 당시 광주는 2부 리그로 막 강등당해 충격에 빠져있던 상태였다. 코치에서 감독으로 5년 만에 광주로 돌아온 이정효 감독에게는 '홀로서기'의 가능성을 증명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였다.
시민구단인 광주는 2011년 K리그가 승강제를 도입하기 전에 창단한 마지막 구단으로, 창단과 동시에 1부리그에1부 리그에 참가하는 행운을 누렸다. 하지만 이 감독이 부임하기 전까지만 해도 광주가 남긴 족적은 초라했다. 1부 리그에서 최고 성적은 6위에 불과했고, 2부 강등만 무려 세 번이나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당시 내우외환에 빠져있던 광주가 초보감독 체제에서 언제 1부 리그에 다시 복귀할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많았다.
'정효볼'의 빛과 그림자
하지만 이 감독이 부임과 동시에 광주를 환골탈태시키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감독 데뷔 첫해 만에 K리그2에서 압도적인 성적으로 우승을 차지하며 광주를 당당히 1부 리그로 복귀시키는데 성공했다.
특히 이 감독은 수비 중심의 실리축구가 대세를 이루던 K리그에서 보기 힘들던 빠르고 체계적인 '포지셔닝 플레이'를 광주에 정착시키며 전술가로서의 면모를 처음으로 드러냈다. 2부리그에서도 수준 높고 독창적인 공격축구가 얼마든지 가능함을 보여주며 축구 팬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고, '정효볼'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2023 시즌에는 한층 수준 높은 K리그1 무대를 누비게 됐지만, 정효볼의 철학과 경기운영 방식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이 감독의 변화무쌍하고 공격적인 전술은 1부 리그에서도 통했다. 광주는 2023 시즌 K리그 1에서 강호 전북을 제치고 울산-포항에 뒤이어 3위를 차지해 구단 역사상 최고 성적을 갈아치웠다. 더불어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엘리트 출전권까지 따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었다. 시민구단인 광주는 다른 팀에 비해 선수단의 규모나 구단 인프라가 부족할 수 밖에 없었다. 광주는 프로구단이라는 정체성이 무색하게 전용 훈련장도 없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이정효 축구의 핵심이었던 이순민·허율처럼 광주에서의 활약으로 몸값이 높아지며 다른 클럽으로 떠나는 사례도 반복됐다.
또한 그가 스타 감독으로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솔직하고 파격적인 언행을 둘러싸고 여러 차례 구설수에 휘말렸다. 팀이 이기고 있어도 선수들이 자신이 계획한 축구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면 불호령을 내리는 장면이 화제가 됐다. 상대 팀을 겨낭해 "저런 축구를 하는 팀에게 졌다는 게 분하다", "상대 감독 연봉이 궁금하다"는 등 수위 높은 도발성 발언을 일삼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공식 기자회견에서 불성실한 답변으로 태업 논란을 일으키며 기자들과도 충돌하기도 했다. 심지어 자신이 몸담고 있는 광주 구단에 인프라 개선과 투자 등을 요구하며 공개적으로 수차례나 직격탄을 날렸다. 상호 예의범절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축구계 문화에서 누군가는 이 감독의 언행을 두고 '해야 할 말을 했다'라며 환영하는가 하면, 누군가는 '무례하고 불손하다'며 비판하는 등 반응이 극명하게 엇갈렸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광주는 2024시즌에는 9위로 예년보다 부진한 성적에 그쳤다. 지난해 시즌 후 이 감독을 둘러싸고 빅클럽인 전북 현대 차기 감독 부임설이 유력하게 거론되기도 했으나 결국 광주에 잔류했다.

광주는 1차전을 패하고도 2차전에서 3-0이라는 놀라운 스코어를 낸 듯, 고베를 전술적으로 완벽하게 압도했다. 요시다 고베 감독도 인정했듯이 철저한 라인 컨트롤로 고베의 장점인 빌드업을 저지하고, 공격에서는 뒷공간을 노리는 전환 플레이로 고베의 전방 프레싱을 무력화시켰다. 사전에 철저히 준비한 맞춤형 전술의 결과였다.
하나의 고정된 패턴에 의존하지 않고, 상황과 상대에 따라 적절하게 변화하는 정효볼의 전술적 유연성이 빛을 발한 장면이었다. K리그에서 현재 6위에 불과한 광주가, 아시아에서도 강호로 꼽히는 우승후보 고베를 이 정도로 제압한 것은, 대회 최대의 이변으로 꼽힌다. 이 감독의 축구가 이제 K리그를 넘어서 국제무대에서도 주목할 만한 위상에 올랐다는 것을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이러한 이정효 감독의 비상은 한국축구에 여러모로 의미 있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 첫번째는 비주류 지도자의 '자수성가형 성장 서사'다.
인맥과 학연, 엘리트주의가 강한 한국 축구계에서는 지도자 역시 '2002 한일월드컵 세대' 출신처럼 이른바 국가대표나 스타플레이어들 출신들이 더 많은 기회와 특혜를 누리는 경우가 많다. 상대적으로 이름값이 떨어지는 축구인들은 지도자로서도 제대로 된 기회 한번 잡기 어렵다.
이 감독은 이러한 축구계의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을 오로지 본인의 노력과 실력으로 깨고 올라온 인물이다. 10여 년간 대학과 지방 중소 프로팀의 코치를 거치며 경험을 쌓았고, 첫 감독의 기회를 잡은 광주에서는 시민구단의 열악한 한계를 극복하고 구단의 역사를 다시 썼다. 이 감독의 성공으로 인해, 무명과 비주류 출신 지도자들에게는 본받을 만한 희망의 롤모델이 생겼다.
두번째는 언더독 중소클럽을 이끄는 감독으로서 '전술과 리더십'에 대한 담론이다. 이 감독은 현재 한국 축구에서 김기동 FC서울 감독, 김학범 제주 유나이티드 감독 등과 더불어 몇 안 되는 전술가형 감독으로 꼽힌다. 이중에서도 이 감독은 약속된 포지셔닝 플레이와 공간활용을 극대화하며 국내파 감독 중 현대축구의 트렌드를 가장 적극적으로 따라가고 있는 지도자로 평가받는다.
이 감독의 축구를 통해 객관적 전력차가 나더라도 감독만의 차별화된 전술과 전략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면서, 자극을 받은 감독들도 덩달아 다양한 전술과 파훼법을 개발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팬들도 눈높이가 더욱 높아지면서 단순히 결과만이 아니라 경기 내용과 감독의 전술을 더 주목하는 시대가 됐다.
현대축구에서 화려한 스타 선수들이나 부자 구단의 든든한 자본력 없이도, 오로지 감독의 전술과 조직력, 확고한 축구철학을 바탕으로 성공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에 가깝다. 더구나 이 감독은 언더독 구단인 광주에서, 눈앞의 성적만이 아니라 젊은 선수들의 성장과 육성, 이적 같은 중장기적이고 현실적인 요소들도 고려해야 한다. 알렉스 퍼거슨(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나 디에고 시메오네(아틀레티코 마드리드)처럼 구단의 방향성을 주도하는 매니저형 감독이 돼야만 하는 이유다.

- 출처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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