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이런 감독은 처음…이정효의 거침없는 하이킥!

Talon 2025. 5. 19. 01:40

광주 FC 돌풍 이끌며 무명에서 명장 반열에 올라
열정 지나친 나머지 잦은 기행으로 논란 부르기도

 

2025년 한국 축구에서 손흥민·김민재·이강인 못지않은 주요 키워드는 이정효 광주 FC 감독이다. 한국 프로축구 K리그에서 빅클럽이라 할 수 없는 시민구단을 이끌고 있음에도, 지난 4년 동안 착실히 레벨업에 성공하며 파급력을 높였다. 이제 그의 행동과 말 한마디 한마디는 축구 팬덤을 넘어 대한민국 사회의 비상한 관심을 모을 정도다.

 

이정효 감독의 밸류가 급상승한 것은 2024~25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엘리트(ACLE) 16강전이었다. '일본의 아마존'으로 불리는 라쿠텐그룹의 막대한 지원을 받는 비셀 고베를 상대로 원정 치른 1차전에서 0대 2로 졌다. 하지만 홈에서 치른 2차전에서 완벽한 전술에 힘입어 3대 0으로 승리하며 극적인 뒤집기에 성공했다.

 

K리그 팀 중 유일하게 ACLE 8강에 오른 건 울산HD, 포항스틸러스 같은 기업구단이 아닌 시민구단 광주였다. 게다가 광주는 겨울 동안 정호연·이희균·허율 등 핵심 선수가 대거 빠져나가 스쿼드가 한층 약해진 터였다. 그런데 동아시아에서 가장 막대한 자금을 쓰는 비셀 고베를 무너트렸다는 사실에 이정효 감독의 지도력이 또 한번 큰 주목을 받은 것이다.

한국 축구의 희망? 과도한 언행의 이슈메이커?

그동안 광주는 1부와 2부 리그를 오르내리며 승격과 강등을 반복하는 전형적인 엘리베이터 팀이었다. 2012년 승강제 도입 이후 강등만 세 차례 기록했고, 다섯 시즌을 2부에서 보냈다. 2022년 이정효 감독 부임 이후 새로운 시대를 맞았다. 광주는 프로 무대에서 수석코치 경험만 있던 이정효를 감독으로 전격 선임했다. 첫해 K리그2 우승으로 1년 만에 1부 승격에 성공한 이정효 감독의 광주는 무서운 기세로 그라운드를 휘저었다. 

 

2023년 팀 최고 성적인 K리그1 3위를 기록하며 ACLE 출전권을 땄다. 2024년 K리그1에서는 9위였지만, ACLE 조별리그에서 일본의 강자 요코하마 F.마리노스를 7대 3으로 대파하며 승승장구했다. 스쿼드의 격차가 한층 크게 다가오는 아시아 무대에서도 통하는 이정효 감독의 트렌디한 전술과 전략은 연일 화제였다.

이정효 감독의 대표적인 이미지는 전술가다. 한국 축구계에서 지도자가 전술 담론으로 몇 시간을 말할 수 있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이 감독은 확실한 자기 철학과 방법론을 갖고 있다. 경기 준비 과정에서 가장 몰두하는 것도 이정효식 축구 방향성의 핵심인 '경기를 주도하고, 골을 더 넣어, 승리하는' 방법과 그에 맞는 효율적인 훈련 프로그램을 짜는 데 있다. 이 감독이 분석 코치를 대동하고 광주 시내 단골 카페에서 심야에 '열공'하는 모습을 목격하는 건 어렵지 않다.

 

선수 수준에 비해 월등한 축구를 할 수 있는 비결은 정교한 포지션 플레이에 있다. 21세기 최고의 명장인 펩 과르디올라 맨체스터 시티 감독이 본격화한 이 개념을 이 감독은 팀 조직력의 기반으로 삼았다.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축구 지능이 높은 선수를 통해 특정 공간에서의 수적 우위 상황을 만들며 공수 양면에서 유리한 국면을 만드는 게 이 감독의 축구다. 골키퍼를 빌드업과 수비에 가장 적극적으로 가담하게 하는 팀도 광주다.

 

서사적인 부분에서도 매력이 크다. 광주라는 팀을 맡은 이후 줄곧 강조한 키워드는 '성장'이었다. 선수들의 성장을 통해 팀도 성장하고, 그것이 곧 감독인 자신의 성장도 증명한다는 것. 실제로 광주는 다른 팀에서 인정받지 못하거나, 잠재력을 터트리지 못하던 선수를 데려와 가치를 높여 놨다. 잉글랜드 챔피언십(2부)의 스완지시티로 간 엄지성, 북미 메이저리그사커의 미네소타 유나이티드로 이적한 정호연이 대표적이다. 이순민(대전), 이희균, 허율(이상 울산)도 국내 유수 팀으로 이적했다. 골키퍼 김경민은 국가대표에 선발됐고, 아사니와 박태준은 아시아 전체의 주목을 받았다.

 

국가대표 커리어 없이 은퇴하고 이후 대학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해 차곡차곡 단계를 밟아 성장한 무명의 감독이 돈 없는 시민구단에서 최신 코드의 전술을 구사하며 성과를 낸다는 것은 대중의 눈길을 끌 수밖에 없었다. 반대급부로 벌어진 논란도 적지 않다.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일군 성과에 대한 자부심이 지나치다 보니 상대팀, 혹은 상대 감독에게 날 선 반응을 보인 것이다.

2023년 3월 FC서울의 수세적인 축구에 막혀 패한 뒤 "저런 축구에 져서 분하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같은 해 9월에는 전북을 상대로 우세한 경기를 하고도 결정력 한 방에 패하자 상대팀 감독인 단 페트레스쿠의 연봉을 기자회견에서 물어 모두를 놀라게 했다. 광주보다 월등한 스쿼드와 예산을 가진 팀들이 그 위상에 걸맞은 축구를 하지 못한다는 직설화법이었지만, 상대에 대한 기본 존중이 없는 패장의 변명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체급 달라진 이정효, 이젠 브랜드 관리 필요할 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뒤로도 이정효 감독은 매년 두세 차례의 기행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지난해에는 선수에 대한 평가를 놓고 기자회견에서 기자와 설전을 벌였다. 올해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강호 알힐랄과의 ACLE 8강전을 앞두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알힐랄을) X바르거나, X발리거나 둘 중 하나라 생각한다"는 파격적인 발언을 했다. 속 시원하다는 반응도 있지만, 공식 석상에서 감독이 보여야 할 품위는 아니라는 의견도 팽팽했다. 결국 그런 발언이 트리거가 돼 알힐랄전에서 패한 뒤 상대팀 감독인 조르제 제수스가 악수를 거부하는 사건도 벌어졌다.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가장 큰 이슈가 발생했다. 김천 상무와의 경기에서 전반전이 끝난 뒤 화가 난 채 그라운드 안으로 달려든 이 감독은 광주 미드필더인 오후성을 밀치며 화를 냈다. 경기 후 인터뷰와 해명을 통해 그 장면은 사전에 지시한 전술적 움직임을 소화하지 못한 데 대한 반응으로 확인됐지만 모두의 시선이 쏠린 순간, 감독이 선수를 과도하게 질책한 것은 관계적 우월성을 이용한 폭력이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이 감독의 돌발 행동과 발언이 점점 선을 넘는 빈도가 높아지면서 이것이 향후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오후성을 질타한 장면은 선수의 성장을 위한 훈육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다 보니, 대중 스포츠의 감독답지 못한 장면을 연출했다. 이 감독도 이 사건 이후에는 "제 행동이 과했고, 잘못한 것 같다. 앞으로 그런 행동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선수단 앞에서 오후성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이번 사태를 두고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은 냉정과 열정의 구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 감독은 최근 3년여의 활동으로 단숨에 한국 축구의 새로운 희망으로 자리 잡았다. 그의 급부상은 다른 지도자들에게도 큰 자극이 됐고, 선수 시절 활약이라는 배경 없이 묵묵히 지도자의 길을 걷는 후배들에게 귀감이 됐다. 가까운 미래에는 국내외의 빅클럽, 그리고 대표팀 사령탑을 맡을 수 있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럴수록 경기 외적으로 좌충우돌하는 모습은 지양하고, 안정감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이정효 감독이 지닌 창의적이고 진보적인 전술, 그것을 완성하는 훈련 시스템, 선수들과의 깊은 유대 관계 등 좋은 강점은 유지하되,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담긴 언행을 통해 더 훌륭한 브랜드로 키워 나가야 한다. 이제는 스스로가 본보기가 돼야 하는 입장임을 받아들이고, 그에 맞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이정효 감독은 한국 축구를 넘어 대한민국 스포츠에서 유례없는 명장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 출처 : 시사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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