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창간 9주년 기획] '보이지 않는 일꾼' e스포츠 작가를 아시나요?

Talon 2017. 6. 29. 09:05

e스포츠 업계엔 다양한 직업들이 있다. 대부분 어떤 일을 하는지 잘 알려져 있지만 'e스포츠 작가'에 대해선 자세히 아는 이들이 드물다.

e스포츠 전문 방송국이 생긴지 17년이나 지났지만 e스포츠 작가라는 직업이 수면 위로 떠오른 적은 없다. 중책을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내는 존재. 당연히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고충들을 겪고 있는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데일리e스포츠는 창간 9주년을 맞아 '직업'에 초점을 맞추면서 e스포츠 작가에 대해 조명해보기로 했다. 간혹 "e스포츠에 작가가 필요해?"라는 질문이 나오곤 하는데, 이 기사가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길 기대해본다.

◆e스포츠 작가가 하는 일은?

e스포츠 작가는 단순히 보면 구성 작가와 크게 다를 것 없어 보이지만 그들이 하는 일은 정말 다양하다. 한 마디로 말해 '멀티 플레이어'인데, 방송과 관련한 대부분의 일을 할 줄 알아야 한다.

프로게이머들과 연락해 대회 및 촬영 일정을 조율해야하고, 경기 예고나 경기 도중 방송에 나갈 자막을 만들어야 한다. 데이터에 바탕을 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각 종목별 전적 관리는 기본적으로 해야 하고, 이를 중계진이 쉽게 전달할 수 있도록 가공하는 일도 한다. 인터뷰어들이 해야 하는 질문을 준비해주는 것도 그들의 몫이다.

현장에서 일손이 모자랄 땐 의자나 소품을 나르는 등 굳은 일도 나서서 돕고, 경력이 오래된 작가들의 경우 급할 땐 PD의 역할을 대신하기도 한다. 프로게이머나 팀 관계자들과도 친분이 두터워야 한다. 방송사와 마찰이 있을 때 중재자 역할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e스포츠 작가는 대회뿐만 아니라 정보 프로그램, 예능 프로그램까지 고루 다루기 때문에 구성 작가와 예능 작가의 역할을 동시에 해내야 한다. MBC 게임이 존재하던 이른바 양대 방송사 시절엔 작가들의 업무가 세분화돼있어 전적 관리, 대본 작성, 선수 관리 등을 각자가 맡아서 했다. 하지만 2010년을 전후로 스타크래프트의 인기가 하락하면서 MBC 게임은 문을 닫았고, 작가의 수가 줄어들면서 남아있는 작가들이 다른 업무들까지 겸하게 됐다. 그 흐름이 현재까지 이어져 작가 한 명이 다양한 업무를 보게 된 것이다.

이쯤 되면 "PD와 다를 게 무어냐"고 질문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스포티비 게임즈에서 스타크래프트2 프로리그, SSL 프리미어 등을 담당한 최국일 작가는 "PD와 출연자 사이에서 커뮤니케이션을 돕는다든가, PD가 생각지 못했던 부분들을 메워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어떨 땐 PD와 싸우기도 하고, 어떨 땐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면서 서로를 보완한다. PD에게 실질적인 제작 권한이 있다면 작가는 상상력을 더해 프로그램의 방향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꼼꼼함과 트렌드 따라잡기는 필수

e스포츠 작가가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소양으로는 꼼꼼함이 꼽힌다. 데이터나 자막이 하나라도 틀릴 경우 방송 사고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중요한 데이터가 틀렸을 경우엔 자신의 실수로 인해 중계진과 방송국 전체가 욕을 먹기도 한다. 때문에 꼼꼼하게 자료를 준비해야 하고, 완성된 자료도 몇 차례씩 검수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트렌드에도 민감해야 한다. 방송이 콘텐츠를 주도하던 예전과 달리 최근엔 인터넷 방송과 커뮤니티 반응들이 콘텐츠와 트렌드를 이끈다. 때문에 이런 것들을 놓치지 않고 따라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작가들은 e스포츠와 관련이 없는 일반 예능과 정보 프로그램도 필수로 챙겨본다. 한 작가는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도 TV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자막은 어떤 식으로 입히고, 어떻게 방송이 흘러가는지 봐야하기 때문"이라면서 "일종의 직업병"이라고 말했다.

시대가 변하면서 방송에서 프로게이머들을 꾸며주는 수식어에도 변화가 생겼다. 작가들이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보다는 시청자들의 아이디어를 최대한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아프리카TV에서 ASL을 맡고 있는 진교준 작가는 "예전에는 '3.3 혁명'이나 '총사령관' 같은 것들을 작가들이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시청자들이 더 전문적이고 더 많은 것을 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봐야 감동이 없다"면서 "트렌드를 따라가기 위해 시청자들의 피드백을 유심히 봐야하고, 선수들의 개인방송도 모두 찾아봐야 한다. 힘들지만 새로운 방식으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재밌다"고 말했다.

◆건강 문제부터 고용 불안까지…고민도 많아

e스포츠 작가들이 느끼는 고충은 여러 가지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과중한 업무량. 방송이 주로 저녁 때 진행되다보니 퇴근 시간이 일정치 않다. 눈을 뜨면 눈 감을 때까지가 업무 시간인 것이다. 여행을 가서도 급한 일이 생기면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마음껏 쉴 수도 없다. 수면이 불규칙하다보니 건강 문제도 우려된다.

게임을 재미로만 즐길 수 없다는 문제도 있다. 자신이 맡은 프로그램의 주제가 되는 게임에 대해 잘 알아야 하니 프로게이머 못지않게 게임을 많이 해봐야 안다. 게임 시스템부터 시작해 아이템 명칭까지 무엇 하나 놓칠 수가 없다. 당연히 개인 여가시간이나 쉴 시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웬만한 열정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본질적인 문제는 고용불안이다. 프리랜서가 대부분인 e스포츠 작가들은 프로그램별로 계약을 한다. 프로그램이 끝나면 수입도 없다. 물론 e스포츠 리그는 끝없이 돌아가고 있고, 작가 한 명이 여러 프로그램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 불안정하다고 볼 수도 없다. 맡은 일이 너무 많아 업무의 질이 떨어질까 일을 줄일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리그가 휴지기에 돌입하는 비시즌에는 어쩔 수 없이 춘궁기를 맞는다.

그나마 경력이 오래된 작가들은 이 때 휴식을 취하기도 하지만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보조 작가들에게 일이 없는 것은 치명적이다. 호기롭게 일을 시작했지만 첫 프로그램이 끝난 뒤 몇 달 동안 일이 들어오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일을 그만 뒀다는 보조 작가들의 사례도 많았다. 일이 힘들어 그만두는 사례도 있지만 대부분은 당장 먹고 사는 문제에 부딪혀 다른 길을 가게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건비를 높이거나 계약을 연 단위로 해야 한다는 의견들도 있다.

보조 작가의 경우 방송사에서 급여를 지원하는 경우도 있지만 메인 작가가 자신의 돈으로 고용하는 경우가 많다. 업무량은 많은데 제작 퀄리티가 떨어지면 안 되기 때문에 작가 자신의 수입이 조금 줄더라도 보조 작가를 채용하는 것이다. 방송 퀄리티는 곧 작가의 경쟁력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장의 처우가 좋지 않아 보조 작가를 구하고 키우는 일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담당한 리그가 반응이 좋아 수년간 롱런할 경우엔 작가가 교체되지 않아 꾸준한 수입을 올리는 운 좋은 경우도 있다. 전적이나 관련 데이터들을 작가가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특히 공식 전적을 찾기 힘든 국산 종목의 경우엔 작가들이 일일이 자료를 수집해야하는데, 작가를 교체하면 이러한 데이터들을 새로 준비해야하기 때문에 작가 교체는 방송사 입장에서도 꺼려지는 일이다.

이처럼 고용불안에 대한 문제가 있지만 쉽게 대체할 수 없는 전문직이기 때문에 e스포츠 작가라는 직업이 가진 전망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다.

◆어떻게 해야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여러모로 어려운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e스포츠 작가를 꿈꾸는 이들은 분명히 있다. 방송사가 직접 채용하는 직종이 아니기에 e스포츠 작가로 데뷔할 수 있는 길은 좁기만 하다. 정기적으로 채용을 하는 것이 아니라 메인 작가가 필요에 따라 채용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언제 보조 작가를 필요로 할지 모르기 때문에 사전에 준비가 돼있어야 한다. 개인 블로그나 SNS, 게임 커뮤니티에 자신만의 분석 글을 올리거나 데이터를 정리하는 등의 활동은 e스포츠 작가가 되는데 있어 큰 도움이 된다.

진교준 작가는 "e스포츠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으면 기회가 올 것이다. 작가들을 비롯해 업계 관계자들 대부분이 커뮤니티를 지켜보고 있으니 능력이 있으면 소문이 난다"며 "다양한 일들을 해야 하지만 차차 배워나가면 된다. 중요한 것은 뭔가 잘하는 것이 한 가지는 꼭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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