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할 선수는 바로~
애드황 황재균 선수입니다~!
2000년에 사당초등학교를 졸업하고, 2003년에 이수중학교를 졸업하여 경기고등학교로 진학하였습니다. 어머니 설민경은 국가대표 테니스 선수 출신으로 사당초등학교 6학년 때 부모의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야구공을 잡았다고 합니다. 경기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곽연수 당시 경기고등학교 감독의 지도 아래 야구에 재능을 꽃피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2005년 전국 대회인 대통령배 고교야구 대회에서 크게 부진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경기고등학교 시절 프로 야구단들로부터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현대 유니콘스 시절
2006년
200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현대 유니콘스 2차 3순위로 유격수로 지명되어 계약금 6천만원에 입단하였습니다. 입단 첫 해에는 1군에 올라오지 못했고, 2군에서만 활동하였습니다.
2007년
2007년 시즌 초반에 2군에서 뛰던 중 4월 21일 사직 롯데전을 통해 1군에 데뷔하면서 기회를 잡기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주로 대주자나 대수비 등 백업 요원으로 뛰다가 시즌 막바지에 주전 유격수로 기용되면서 활약하였는데, 1군 입성 때 첫 해 성적은 0.300 타율에 2홈런, 12타점을 기록함으로써 기대되는 유망주로 자리잡기 시작하였습니다.
넥센 히어로즈 시절
2008년
현대 유니콘스가 해체되면서 현대 선수단을 인계하고 새로 창단한 우리 히어로즈에서 그는 2008년 시즌에 주전 유격수로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5월 초까지만 해도 그는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지만, 6월 중순 무렵부터 체력적으로 한계가 오면서 공-수 양면에 갖가지 여러 부진한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 무렵에 입단 동기이자 동갑내기 내야수인 강정호에게 유격수 자리를 넘기고 3루수로 전업하게 됩니다.
2009년
2008년 시즌이 끝난 이후, 같은 소속 팀이자 고참 선수인 3루수 정성훈이 FA를 선언하여 LG 트윈스로 이적하자 이에 따른 공백으로 3루에 완전히 정착하였습니다. 2009년 시즌 초반부터 그는 3루수로 꾸준히 기용되면서 풀 타임 주전 선수로 활약하였습니다. 이 해에 그는 133게임 시즌 전 경기 출장을 소화하며 0.284 타율에 18개 홈런과 30개 도루를 기록하면서 팀의 주축 선수로 거듭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해에 그는 생애 처음으로 감독 추천을 통해 올스타전에 뛰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그는 호타준족형 선수로 향후 넥센 히어로즈에서 같은 소속 팀이자 동갑내기 유격수 강정호와 더불어 가장 큰 기대를 받는 선수였습니다. 이현승, 이택근과 장원삼의 트레이드 파동 때에도 강윤구와 강정호와 더불어 넥센 히어로즈에서 트레이드 불가라고 말했을 정도로 괜찮은 실력을 갖춘 선수로 평가받아 왔었으나 팀이 4강 싸움이 한창일 때 20-20을 하려 했으나 익숙치 않은 거포 스윙과 초구병으로 4강과 20-20을 둘 다 놓쳤습니다.
롯데 자이언츠 시절
트레이드 파동
넥센 히어로즈에서 2010년 시즌 초부터 컨디션 난조와 손목 부상 여파로 부진한 모습을 보여 주다가, 7월 20일 롯데 자이언츠의 내야수 김민성, 투수 김수화를 상대로 롯데에 트레이드되었습니다. 롯데 자이언츠가 황재균 선수를 영입하게 된 주 원인은 당시 3루수는 이대호가 맡고 있었습니다. 3루수 특성상 체력이 많이 소모되기 때문에 부담을 줄여주고자 1루수로 포지션 변경을 시도하고 있었는데 3루수에 적합한 선수들을 못 찾았습니다. 그때 마침 넥센 히어로즈에서 유망주 황재균 선수가 트레이드 카드로 나와서 적극적으로 영입에 추진했었습니다. 이미 넥센 구단 측은 2009년 시즌에 팀의 주전으로 활약하였던 장원삼, 이현승, 이택근, 마일영 등을 각각 2010 시즌 시작을 앞두고 삼성, 두산, LG, 한화에 현금 트레이드 내지는 선수 + 현금 트레이드한 전력이 있었는데, KBO에서는 이와 같은 트레이드를 선수 팔기로 보아, 2010년 말까지 현금 트레이드는 하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게다가 넥센 구단의 이장석 대표는 공공연히 "팀의 유망주인 그와 강윤구, 강정호는 팔지 않겠다." 고 말한 바 있었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트레이드는 석연치 않은 면이 있었고, 넥센 측과 롯데 측은 정당한 전력 보강용 트레이드이기 때문에 문제되지 않는 트레이드라고 주장하였으나, 뒷돈이 오고 갔을 것이라는 의혹은 쉽게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의 트레이드 건은 넥센의 팬들은 물론 넥센의 감독인 김시진 감독조차도 배제된 채 속전속결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또한 7월 24일의 올스타전을 앞두고 이루어진 이 트레이드는 다른 문제를 낳게 되었는데, 그는 올스타전에서 서군 3루수로 이미 선발되었는데, 동군에 속하는 롯데로 이적하게 될 경우 어느 팀의 유니폼을 입어야 하는지가 문제된 것입니다. 이는 대한민국은 물론 일본 올스타전에서도 전례가 없었던 초유의 사건이었습니다. 2010 시즌 후 고원준이 롯데 자이언츠로 트레이드되면서, 2011년 트레이드 마감일에 있었던 박병호의 트레이드 영입 이전까지 넥센 히어로즈는 트레이드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이에 KBO 측은 트레이드가 공식 발표된 7월 20일 이후 이틀이 지나도록 트레이드를 승인하지 않다가, 7월 22일 롯데와 넥센 측에 트레이드에 현금이 오고 가지 않았다는 내용 증명 문서를 접수하고, 넥센 히어로즈로부터는 더이상 2010 시즌에 선수 트레이드를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는 조건으로 트레이드를 승인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올스타전 출전 문제에 대해서는 동군으로 출전하되, 선수 2명이 부족하게 된 서군은 감독 추천 선수를 2명 더 쓸 수 있도록 유권 해석하여 해결하였습니다. 이에 올스타전 서군 감독인 조범현 감독은 내야수 김선빈과 오지환을 추가로 지명하여 선수 트레이드와 올스타전 출전 문제는 일단락되었습니다. 트레이드가 승인됨에 따라 트레이드 대상 선수들은 당일 1군 경기에 뛸 수 있게 되었고 그와 김민성은 트레이드 승인이 떨어지자마자 당일에 각각 롯데와 넥센의 당일 선발 라인업에 들어 경기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2010년
2010년 7월 22일 트레이드가 승인된 당일, 그는 한화전에서 2번 타자로 선발 출장하였습니다. 수비 위치는 3루수로 결정되었고, 그 전까지 롯데 자이언츠에서 3루를 보던 이대호는 1루수로, 김민성이 보던 유격수 자리는 문규현이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루와 외야를 번갈아 보던 김주찬은 외야수를 맡아 경기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이적 후 첫 경기에서는 4타수 1안타 1득점을 기록하였습니다. 이후 타격면에서는 손목 부상의 여파로 그리 좋은 모습을 보여 주지는 못하였지만, 수비면에서는 유격수와 3루수를 번갈아 보면서 이대호의 수비 부담을 줄임과 동시에 박기혁의 부상과 정보명의 부진으로 공백이 생긴 롯데 내야진의 수비를 안정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넥센 히어로즈 선수이던 시절 서군 올스타로 선정되었으나, 올스타전 직전에 롯데로 이적함에 따라 올스타전에서는 동군 올스타 선수 엔트리에 들게 되었습니다. 7월 24일 올스타전에는 도중에 교체 출전하였는데, 9회말 8:8 동점 상황에서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팀 동료였던 넥센 히어로즈의 투수 손승락을 상대로 끝내기 안타를 터트려, 동군의 9:8 승리에 기여하였습니다. 그 끝내기 안타에 힘입어 올스타전 선구회상을 수상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해 부상 등으로 조금 부진한 모습을 보여 1군 80경기 출장에 그쳤고, 강정호에게 밀려 아시안 게임 대표팀에 선발되지 못했습니다.
2011년
시즌 초기에는 양승호 감독의 전력 구상에 따라 유격수 포지션으로 출장하였으나 문규현이 유격수로 자리잡게 되어 원래 위치인 3루수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특히, 주자 만루시 타석에서 상당히 강한 모습을 보였는데 그해 만루 홈런만 2개를 기록했으며 만루시 타율이 5할을 넘어가는 모습을 보여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즌에서 많은 실책을 범하는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포스트시즌에서는 철벽 수비를 보여주면서 5차전 때 실책을 제외하고는 4차전 까지단 한 번도 실책을 보여주지 않으며 '수비 황제'라는 별명까지 얻게되었습니다. 특히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느린 땅볼타구를 맨손으로 잡아 1루에 정확히 던져 주자를 아웃시키는 모습을 두 번이나 보여주는 등 27개의 아웃카운트 중 무려 9개의 아웃카운트를 혼자 잡아내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현재 quiet riot의 come on feel the noise를 롯데 황재균~ 롯~데 황재균 워 워 워 로 개사한 응원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2012년
2012년 시작부터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는데, 특히 수비에서 허슬 플레이를 보이면서 좋은 활약을 보였습니다. 시즌 중에는 4번타자로 잠깐 나서서 활약을 보였지만, 주로 하위타순에 나섰습니다. 2012 올스타전에서는 4회에 2:2 상황에서 역전 2타점 적시타를 쳤고 결승타가 되면서 생애 최초로 미스터 올스타에 뽑였습니다. 그 이후 후반기에도 롯데의 주전 3루수로 출전하고 있습니다.
2014년
2014년 팀에서 활약을 펼치며 인천 아시안 게임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에 발탁, 국가대표팀에 데뷔하게 됐습니다. 9월 28일 결승전인 대만전에서 8회초 강정호의 몸에 맞는 공으로 대한민국이 역전하여 4-3으로 앞선 상황에서 출장해 쐐기 2타점 적시타를 날렸습니다. 이 결승점으로 대한민국의 6-3 역전승을 합작하며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고, 자신 역시 병역 혜택을 보았습니다. 또한, 1982년 아시안 게임 테니스 금메달리스트인 어머니 설민경 씨와 자신은 대한민국 최초로 모자 아시안 게임 출전과 함께 모자 금메달리스트에 등극했습니다. 또한 사직구장 3번째 장외 홈런을 치며 힘을 과시하는 등 호타 준족의 선수상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2015년
장타력 향상을 위해 비시즌 기간동안 벌크업에 심혈을 기울이며 100kg까지 몸을 불렸습니다. 그 효과로 2015시즌 장타력이 대폭 향상되어 전반기에만 22개의 홈런을 치며 시즌 최종 성적 0.290의 타율에 26홈런을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습니다. 2015년 KBO 올스타전 홈런레이스에서도 유력한 우승 후보였던 에릭 테임즈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였습니다. 2015년 프리미어 12 에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으로 발탁되어 우승을 차지하였습니다. 2015년 11월 30일 MLB 사무국에 포스팅을 요청하였으나 응찰구단이 없어 실패하였습니다.
2016년
2016 시즌 이후 등번호가 13번에서 10번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시즌 중 주로 4번 타자를 맡았습니다. 롯데 자이언츠 역사상 짐 아두치 다음으로 2번째 20-20 클럽에 가입하면서 롯데 자이언츠 토종선수 최초로 20-20 기록을 달성하며 최고의 타고 투저를 기록하였으며, 2016 시즌 후 FA 자격을 얻었습니다. FA 협상에서 국내 잔류와 해외 진출을 놓고 고심하다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하면서 롯데 자이언츠와 결별하게되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시절
FA를 신청한 이후 롯데 자이언츠와 결별하게 되고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1년 총액 310만 달러에 스플릿 계약을 했습니다.
몇 달 동안 메이저리그 콜업소식이 없던 황재균 선수는 6월28일 드디어 메이저리그에 콜업됐습니다.
황재균 선수의 메이저리그 데뷔 경기인 6월 28일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홈경기에서 메이저리그 첫안타를 홈런으로 기록하였습니다. 그 홈런은 팀에게 역전 승을 가져다주는 결승홈런이기도 하였습니다.
7월 1일 경기에서는 첫 2루타를 기록하였습니다.
그 후 황재균 선수는 3루수와 1루수를 오가며 경기에 나섰지만 부진에 빠져 결국 2017년 7월 23일 다시 마이너리그에 강등되었습니다.
그의 타석이 지나간 후 이닝이 종료되거나 전후로 투수교체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 '애드황', '광고균'이라고 불립니다.
서울사당초등학교
이수중학교
경기고등학교
이상 황재균 선수에 대한 소개를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