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오브레전드

[박상진의 e스토리] 매드라이프-비디디, 7살 터울의 정겨운 동행

Talon 2017. 10. 2. 16:41

팀 게임인 리그 오브 레전드는 멤버 간의 호흡이 중요한 게임이다. 그리고 종목 특성상 합숙을 통해 경기력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방법을 선택하기에 팀원 간의 관계는 친형제만큼 끈끈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매드라이프' 홍민기와 '비디디' 곽보성은 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 팬이라면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하다. 홍민기는 리그 오브 레전드 초창기를 대표하는 서포터고, 곽보성은 이번 롤챔스 서머 스플릿을 우승하며 가능성을 드디어 폭발시킨 미드 라이너다.

이들은 과거 CJ 엔투스에서 한솥밥을 먹었고, 2016년 시즌 같이 경기에 출전했다. 그해 시즌이 끝난 후 홍민기는 미국 팀에 입단했고 곽보성은 롱주 게이밍에 합류하며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둘은 여전히 계속 남다른 관계를 보여줬다.

이번 서머 스플릿이 만난 후 홍민기와 곽보성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과연 그 둘은 어떻게 남다른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었을까.

서머 스플릿이 끝나고 시간이 좀 지났는데, 다들 어떻게 지내고 있었나

'비디디' 곽보성(이하 곽보성): 대회가 끝난 후 휴가를 가서 머리를 식히고 다시 롤드컵을 위한 연습을 진행 중이다.
'매드라이프' 홍민기(이하 홍민기): 미국은 승강전 일정이 빨라 시즌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이후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일본 여행에서 많은 일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홍민기: 지금 와서 생각하면 재미있는 여행이었다. 하지만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나리타 공항에 내리자마자 내 캐리어가 바뀌어 있었고, 호텔에 도착해서야 면세품을 두고 온 걸 알았다. 그리고 여행 도중 백화점에 들렀는데 거기서 핸드폰을 잃어버렸다. 그걸 알고는 너무 우울해서 호텔에서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도 다음날 호텔 직원의 도움으로 핸드폰을 찾아서 나머지 일정을 즐겁게 마치고 돌아왔다. 
 

여행 도중 곽보성의 우승 소식을 들었을 거 같다

홍민기: 하필 핸드폰을 잃어버린 날이 보성이의 결승 경기날이었다. 그래서 핸드폰을 찾고 나서야 우승 소식을 알 수 있었고, 조금 김빠진 우승 축하 인사를 전해 줄 수 있었다.
곽보성: 전혀 김빠지지 않았다. 축하 메시지를 보고 정말 기분이 좋았다.
홍민기: 서머 스플릿부터 선발로 출전했는데, 당시 롱주의 탑과 정글이 바뀌며 순탄치 않은 시즌이 될 거라 예상했다. 그런데 1위를 찍는 걸 보고 보성이가 우승할 기회가 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결승전 날 꼭 실황으로 경기를 보려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정말 아쉬웠다. 경기는 못 봤지만 보성이가 우승했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CJ 엔투스 시절 서로 상대를 처음 봤을 때 어떤 인상을 받았나

홍민기: 아마 중학생 때 처음 봤을 거 같다. 그때 '고스트' 장용준을 뺀 나머지 당시 CJ 2팀 팀원들과 본 기억이 난다. 처음 본 게 한 하드웨어 업체에서 진행한 아마추어 대회에서 보성이가 결승에 올라 형제 팀인 블레이즈에서 멘토를 해 주는 상황이었다. 블레이즈와 보성이네 아마추어 팀이 연습을 했는데, 갑자기 옆방에서 비명소리가 들리더라. 알고 보니 보성이가 (강)찬용이에게 솔로 킬을 따냈고, 그래서 시끌벅적해졌다. 그 연습 내내 (이)호종이가 찬용이한테 미드가 뭐하냐고 하는 이야기가 계속 들리더라. 지금 생각해봐도 그때 호종이가 정말 신나했던 거 같다.
곽보성: 처음 연습실에 왔을 때, '전투 회의실'이라고 불리는 방에서 다들 앉아 있었다. 티비에서만 보는 사람들이 앉아있어서 신기했고, 민기형을 보고는 '와 매라다' 하는 생각만 들었다.

나이 차이도 나고 경력 차이도 좀 날 텐데, 서로 어떻게 친해졌는지

곽보성: 나나 민기형이나 둘 다 낯가리는 편이었다. 이후 팀에서 연습실을 옮긴 후 자주 마주치게 됐는데, 민기형이 나를 보는 눈빛이 이상했다. 
홍민기: 아니 뭐가 이상했는데. 
곽보성: 그때부터 뭔가 느낌이 와서 조금씩 친해졌다. 
홍민기: 일단, 나는 추파를 던진 적이 없다. 2팀 선수들을 봤을 때 용준이한테 가장 위험한 느낌이 들었다. 용준이가 먼저 다른 사람들에게 '형들 형들'하면서 친해졌고, 그러면서 보성이도 같이 친해졌는데 애가 좀 유난히 이상하더라. 그래도 같은 팀 동생이라 친하게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자기가 먼저 마음대로 부부라고 하더라. 매번 나보고 바람피우지 말라고 하는데, 나는 부부라고 생각하지 않고 일방적인 애정 공세에 부담스럽다. 
 

곽보성의 나이 때문에 16년에 와서야 둘이 같이 경기에 나설 수 있었다. 경기에 나서기 이전 곽보성의 실력은 어땠는지

홍민기: 열정도 있고 피지컬도 있어서 경험만 쌓으면 되는 상황이었다. 스크림을 하면 전체적인 경기력에서는 격차가 났지만, 보성이가 스플릿 챔피언을 하면 우리 팀에서는 누군가 막으러 가야 할 정도였다. 그렇게 신경이 쓰인다는 거 자체가 상대방 입장에서 인정을 한다는 거다. 팀 게임만 잘하면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곽보성: 내전을 하면 확실히 운영에서 차이가 났다. 민기형 쪽은 플레이 하나하나가 정교했고, 그런 점을 배우고 싶었다. 15년도에 2팀 선수들과 같이 경기에 나서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한 게 아쉽다.

15년 시즌이 끝나고 대다수 CJ 팀원들이 팀을 떠난 가운데에서도 홍민기는 2팀 선수들과 경기하고 싶어서 팀에 잔류했다고 들었다

홍민기: 2팀 선수들이 열심히 준비했는데, 베테랑 없이 경기하면 힘들 거 같았다. 그리고 연습도 같이 해왔고 첫 시즌을 이끌어주고 싶다는 생각에 한 시즌 더 CJ에 남았다. 
곽보성: 민기형 인터뷰가 올라오면 다 챙겨보는데, 나와 용준이때문에 팀에 남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극받아 정말 열심히 했다. 그 힘든 시기에... 
홍민기: 그거 다 미화된거야. 
 

그래도 홍민기가 팀에 남은 거 보니 곽보성의 구애에 응답 한 거 같은데. 그리고 그때부터 SNS에 곽보성이 홍민기 부인이라는 별명을 붙인 거 같다

홍민기: 그런 건 아니고 공과 사는 철저히 해야 하는 거다. 사적으로는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자꾸 홍민기 부인이라고 하는데 내 머릿속에는 이걸 어떻게 해야 신고가 될까, 명예훼손 같은 거로 어떻게 안 되나 하는 생각뿐이었다. 옆에서 보면 정말 재미있는데 왜 하필 그 대상이 나인가 하는 생각이었다.

16년 시즌 서로 같이 한 팀에서 경기에 나온 소감은 어땠나

곽보성: 첫 경기는 정말 긴장했다. 아무 생각도 안났고, 잘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경기만 했다. 한국 리그 오브 레전드 초창기 신이라고 불렸던 민기형하고 같은 팀으로 연습할 때부터 좋았고, 경기 내에서는 긴장하느라 잘 느끼지 못했지만 한 시즌을 지나니 좋았던 시간으로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그 시즌에서 부족한 걸 많이 느껴서 솔랭 연습을 열심히 하는 계기가 됐다.
홍민기: 이 삐약삐약 병아리들이 잘 크고 있구나 하는 마음이었다. 성장하는 걸 보면서 참 잘하는 선수라는 생각도 들었고, 성적이 아쉬웠지만 선수들의 성장이라는 점에서 앞에서 이끌어 준 나도 뿌듯함을 느꼈다.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아쉬웠지만 한 시즌을 완주해서 다행으로 생각했다.

시즌이 끝나고 CJ를 나와 서로 다른 팀에 입단했는데, 많이 아쉬웠을 거 같다

홍민기: 잘할 수 있는 선수들과 더 해보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었다. 작별하게 되어서 아쉬웠고, 다른 팀에서 다들 잘 할 거라 생각에 응원하며 헤어졌다. 
곽보성: 나도 민기형과 더 오래 같이 경기하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어 아쉬웠다. 다들 자기의 길에서 잘 되길 바랐고, 팀 마지막 날에 같이 오락실에 가서 놀은 후 헤어지는데 정말 아쉬웠다. 
 

각자 서로 새로운 팀에 합류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들던지

홍민기: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롱주의 전체 라인업이 나오자 잘되겠다 싶었는데 스프링에는 보성이가 안 나오더라. 왜 안 나오지 했는데, 서머부터 출전하기 시작했다. 쉽지 않은 분위기였을 텐데 실력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 게 대단하다고 생각됐다.
곽보성: 민기형이 북미에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쉬웠다. 멀리 가면 자주 못 보니까...  그래도 새로운 무대에서 도전하는 게 정말 멋졌다.

스프링 스플릿이 끝나고 만났을 때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고

홍민기: CJ 시절 동생들과 함께 방탈출 카페에 갔다. 공포 컨셉이라 소리도 엄청 지르면서 나왔는데 너무 크게 소리를 지른 거 같아서 카운터에 물어보니 카메라로 다 보고 있었다고 하더라. 정말 민망해서 빨리 나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홍민기 선수 사인 부탁드릴게요" 라고 이야기를 들었고, 그 순간 생각이 멈춰서 빨리 사인 해주고 나와버렸다. 나인 줄 다 알면서 그걸 보고 있었다니... 
곽보성: 옆에서 봤는데 역시 민기형은 유명하다는 걸 확인하는 자리였다. 그리고 나는 못 알아봐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서머 스플릿도 끝나고 다시 만났는데, 오랜만에 서로 다시 만난 기분은

홍민기: 맨날 보던 느낌이다. 세달 좀 넘게 못 보고 이번에 만났는데, 마치 어제 본 거 같이 익숙한 느낌이다.
곽보성: 나도 같은 느낌이다. 근데 염색한 걸 보니 일본에서 좀 놀다 온 거 같은 느낌이 든다.

이제 곽보성은 롤드컵을 앞두고 있는데, 혹시 롤드컵에서 우승하면 홍민기를 위한 세레모니 같은 걸 할 생각이 있는지

곽보성: 물론 당연히 준비할 거다.
홍민기: 대체 뭘 하려고...
곽보성: 사실 이번 결승에서 우승하고 전 CJ 감독 코치님, 그리고 팀원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우는 바람에 말할 기회가 없었다. 롤드컵에서 꼭 우승해서 다시 이야기를 하고 싶다.
홍민기: 나중에 우승 후 장면을 봤는데 우는 모습을 보니 나도 마음 한구석이 뭉클하더라. 그 느낌도 알고 같이 생활하면서 힘들었던 걸 아니까 나한테도 힘이 되었다.

혹시 곽보성은 홍민기가 좋나 '고릴라' 강범현이 좋나

곽보성: 아... 그거를 근데. 
홍민기: 잘 말해라. 
곽보성: (2분간 고민) 
홍민기: 그냥 질러. 
곽보성: 사랑과 우정은. 
홍민기: 무슨 소리야. 
곽보성: 서로 다른 거니까. 
홍민기: 누가 사랑인데. 
 

최근에 둘이 같이 유기견 단체에 기부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떻게 하게 됐나

곽보성: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는 곳이 있었다. 그리고 민기형이 강아지를 좋아하는 걸 알아서 혹시 어떨까 싶어서 물어봤는데, 민기형도 관심이 있다고 해서 같이 기부를 하게 됐다.
홍민기: 일본에 있는데 갑자기 보성이한테 메시지가 오더라. "밍형밍형" 하길래 왜부르냐고 하니까 "저 우승한 기념으로 기부하고 싶은데 같이 하실래융? 부부동반으로 어때융?"이라고 하더라. 같이 기부하면 사람들도 관심을 가져줄 거 같았고, 보성이가 대견한 생각을 한 거 같아서 같이 기부를 하게 됐다.

앞으로 서로 어떤 선수가 되었으면 하는지

곽보성: 민기형은 정말 롤 초창기부터 꾸준하게 활동한 최고의 선수였는데, 한 시즌밖에 경기할 시간이 없어 정말 아쉬웠다. 지금은 북미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여전히 나에게 최고의 선수니까 앞으로도 좋은 결과가 있으면 좋겠다.
홍민기: 보성이가 자기의 우상인 '페이커' 이상혁이 있는 SK텔레콤 T1과 겨뤄서 좋은 결과를 내서 대견하다. 지금 세계 최고의 미드는 이상혁이지만, 보성이도 열심히 노력해 미래에는 세계 최고의 미드로 인정받았으면 좋겠다.

인터뷰를 마치며 팬들에게 한 마디 부탁한다

곽보성: 이번에 우승해서 정말 팬분들이 자기 일처럼 좋아해 주셨다. 그 모습을 보고 롤드컵에서도 꼭 좋은 성적을 내도록 할 테니 많이 사랑해주시고 우리 부부도 응원해주시면 좋겠다. 그리고 모두들 명절 잘 보내셨으면 좋겠다. 
홍민기: 제발... 올해 미국에서 첫 시즌을 보냈고, 앞으로 확정된 건 없지만 결정되는 일이 있다면 빠르게 알려드리겠다. 그리고 내년에도 좋은 선수가 되도록 노력하겠다. 일교차가 심한데 다들 건강 조심하시고, 행복한 추석 보내시길 바란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