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할 분은 바로~
캐넌 히터 김재현 코치입니다~!
빠르고 강력한 스윙을 바탕으로 한 타격으로 캐넌 히터 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LG 트윈스 시절
성동초등학교, 신일중학교, 신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계약금 9,100만 원의 조건으로 1994년 LG 트윈스에 입단하였습니다. 입단 첫 해 개막전에서 홈런을 기록하였습니다. 신인으로는 처음으로 홈런과 도루를 20개씩 성공하면서 20-20 클럽에 가입하여 서용빈, 유지현과 함께 팀을 1994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이후에도 LG 트윈스의 주전 외야수로 꾸준히 활약했습니다.
그러던 중 2002년 7월 8일 그의 왼쪽 고관절에 '고관절 무혈성 괴사증'이라는 일종의 희귀병이 발병했습니다. 이 병은 고관절이 썩어 들어가는 병입니다. 그 이후부터 그는 지명타자로만 뛸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팀의 간판 선수로 화끈한 타격을 보여 주어 그 해 개인 통산 1,000안타를 기록했고, 투혼을 발휘하여 부상에도 2002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포함되어 대구에서 열린 마지막 경기였던 6차전 때 권용관의 대타로 출장하여 안타를 기록해 타점을 올리게 됩니다. 2루타성 타구였으나 부상으로 인해 절뚝거리며 겨우 1루를 밟고 교체되는 모습에 LG 팬뿐만 아니라 야구 팬 모두가 박수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의 투혼에도 불구하고, LG 트윈스는 9회 말 이승엽과 마해영의 백투백 홈런을 맞아 준우승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이 해의 한국시리즈는 명승부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투혼을 보여 주었지만 한국시리즈를 마치고 오른쪽 고관절에도 괴사증이 발견되어 그는 경희대학교 의료원에 입원, 12월 13일 수술대에 올랐습니다. 이 수술은 양쪽 무릎 부분을 거의 떼었다가 다시 붙일 정도로 선수 생명을 건 대수술이었습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LG 트윈스에서는 2004년 시즌이 끝나고 FA로 풀리게 되는 그에게 "병으로 인한 모든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는 내용의 각서를 그가 수술을 마치고 재활 중이었던 2003년 초에 요구했습니다. 결국 그는 이 각서를 받아들이고 2003 시즌 연봉 계약을 하였으며, 재활을 마치고 2003년 7월 29일 KIA전을 통해 4타수 3안타를 기록하여 화려한 복귀를 알렸습니다. 이후 이듬해 그는 수술을 집도한 담당 박사로부터 수비 훈련을 해도 좋다는 정상 진단을 받았고, 의사의 소견을 바탕으로 2004년 1월 15일 구단에 각서를 파기할 것을 요구했으나 LG 구단에서는 수용을 거절했습니다. 이상훈이 그 무렵 SK 와이번스에 트레이드된 지 얼마 후의 일이라 시즌 초부터 LG는 굉장히 시끄러웠으며, 이에 선수협에서도 공정한 계약이 아니라고 반발 하였으나 구단에서는 부상 재발의 우려를 이유로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김재현 선수는 이에 연봉 삭감 및 트레이드도 불사하겠다고 했으나 각서와는 별개로 삭감된 연봉에 재계약했습니다. 하지만 2004년 시즌 중반에는 이 사건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스스로 2군행을 자처하기도 했습니다. 이 각서 파동 사건이 원만하게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는 FA를 선언하고 10년 간 몸담았던 LG 트윈스와 4년 22억 원의 조건으로 우선 협상을 하였으나 FA 계약 2번째 시즌에 규정 타석과 타율 0.280을 넘지 못할 경우 다시 협상한다는 조건으로 인해 이견을 보였습니다. 결국 그는 이 조건에 실망하여 등돌린 후, 2004년 11월 21일 SK 와이번스와 4년 간 계약금 8억원 등 총액 20억 7,000만 원의 조건으로 FA 계약을 맺고 이적하게 되었습니다.
SK 와이번스 시절
2005년 SK 와이번스로 이적한 그는 팀의 고참으로서 솔선수범한 모습과 중심 타선으로 활약하게 됩니다. 그로 인해 그 해 골든 글러브 시상식에서 최다 득표로 지명타자 부문을 수상하였습니다. 2007년 시즌에는 자신의 야구선수 생활 처음으로 가장 낮은 성적을 기록했으나, 2007년 한국시리즈에서 MVP에 등극하는 등 SK 와이번스의 창단 첫 우승을 이끌어내는 데 일등 공신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후 SK 와이번스의 간판 타자로 자리잡게 됩니다. 그리고 2009년 한국시리즈 미디어데이 기자 회견에서, 2010 시즌 이후 은퇴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의 선수 생활 마지막 해가 된 2010년에, 그는 팀의 주장으로 선임되었습니다.
2009년 9월 8일 광주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상대 투수 곽정철로부터 고의 4구를 얻어내며 개인 통산 1,000 사사구를 기록하였습니다. 개인 통산 1,000 사사구는 양준혁과 박경완에 이은 역대 세 번째 기록입니다. 다음 타석에서는 상대 투수 오준형으로부터 만루 홈런을 뽑아 내었는데, 이 만루 홈런으로 개인 통산 1,600 안타와 2,500 루타 기록을 동시에 세웠습니다.
2010년 8월 29일 사직에서 진행된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상대 투수 김수완으로부터 200홈런을 쳐내며 프로야구 사상 15번째 200홈런을 달성했습니다.
그리고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SK 와이번스의 우승으로 자신의 한국시리즈 4번째 우승을 이뤄 내면서 프로 무대 데뷔 년도 우승/은퇴 년도 우승이라는 사상 첫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후 미국 MLB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싱글 A 팀인 그레이트 레이크스 룬즈에서 코치연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2011년 6월 25일, 문학야구장에서 열린 LG 대 SK 와이번스의 경기에서 공식 은퇴식을 하려고 했으나, 장마와 태풍으로 무산되어 2011년 10월 1일 SK 와이번스의 2011 시즌 마지막 홈 경기인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공식 은퇴식을 치렀습니다.
은퇴 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산하 마이너 리그팀과 일본 프로 야구 팀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코치 연수를 받았습니다. 2013년부터 SBS 스포츠의 야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게 됩니다.
2014년 11월 11일 한화 이글스의 타격코치로 선임되어 지도자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나, 2016년 10월 17일 코치직에서 사임했습니다.
2016년 12월 6일 SPOTV의 새로운 야구 해설위원으로 영입되면서 2년만에 해설자로 복귀하게 됩니다.
2010년 한국시리즈 1차전 MVP
2008년 한국시리즈 2차전 MVP
2007년 한국시리즈 - MVP
2005년 골든 글러브 지명타자 부문 수상
2005년 한국 프로 야구 최다 출루율상
2004년 스포츠서울 올해의 상 재기상 수상
2003년 1천 경기 출장
1998년 준플레이오프 MVP / 골든 글러브 외야수부문 수상
1994년 골든 글러브 외야수부문 수상
1995년 7월 10일과 2003년 6월 17일에 각각 술을 마시고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5%를 초과한 상태에서 운전을 하여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를 받았습니다. 1995년 7월 10일에는 중앙선을 침범해 마주 오던 차와 충돌했고, 2003년 6월 17일에는 음주 측정을 세 차례 거부한 바 있습니다.
이상 김재현 코치에 대한 소개를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