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오브레전드

[박상진의 e스토리] '크라운' 이민호, 최고를 향한 끝없는 도전

Talon 2017. 12. 28. 08:47


12월 1일. 올해 마지막 달 첫 날이 되자 오버워치 리그 서울 다이너스티 팀을 운영하는 KSV e스포츠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 게임단인 삼성 갤럭시를 인수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오버워치 APEX에서 최고의 활약을 보인 루나틱 하이, 그리고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전통의 강자인 MVP 블랙을 인수한 KSV였기에 롤챔스에 참가하는 팀 중 하나를 인수할 것이라는 소문은 있었지만, 그게 삼성 갤럭시가 될 줄은 예상하기 어려웠다. 

2013년 MVP 블루와 화이트(당시 오존)를 인수해 창단한 삼성 갤럭시는 2014년 한국에서 열린 롤드컵에서 우승하며 최고의 팀으로 올랐다. 그러나 우승 멤버를 모두 놓친 삼성은 더이상 재기가 쉽지 않을 것 처럼 보였다. 그러나 두 해만에 롤드컵 결승에 올라 준우승을 차지한 삼성은 기어코 올해 소환사의 컵을 들어올렸다. 

이러한 삼성의 중심에는 '크라운' 이민호가 있었다. 삼성이 다시 일어나기까지 항상 미드에서 활약한 이민호는 몇 번의 좌절을 딛고 일어나 팀과 함께 성장했고, 결국 팀의 두 번째 우승을 이끌어냈다. 한국에서 브라질로, 그리고 다시 한국에 돌아와 0대 19의 압도적 불리함 속에서도 팀을 롤드컵으로 이끌었고, 준우승의 아쉬움을 털고 결국 롤드컵 우승을 차지한 이민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이제 내년 시즌이 한 달도 남지 않았는데,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요즘에는 편하게 연습하고 쉬고 있습니다. 휴식과 연습을 동시에 하는 그런 거죠. 

올해 롤드컵에서 드디어 우승을 차지했는데 시간이 조금 흐른 지금의 소감은 어떤지. 

롤드컵에서 우승하고 나서 크게 느낀 것도 새로운 것도 없어요. 우승하고 나서 혼자 생각하는 많이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팀은 우승했지만 저는 패배자라는 생각이 들어라고요. 나머지 넷은 잘 했는데 저만 못했다는 느낌. 물론 팀 내부의 평가와 밖에서 평가가 다르긴 하지만, 계속 슬럼프에 잘 못했는데 팀에 좋아 우승했다는 이야기를 들어 슬픈 생각까지 들었어요. 그래도 지금은 딱히 신경 안쓰고 있어요. 

그래도 이번 롤드컵에서 '페이커' 이상혁이나 '비비디' 곽보성, 그리고 중국 최고의 미드 선수들을 만나 결국 우승했는데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본인이 없었다면 롤드컵 본선이나 결승까지 갈 수도 없었을 수도 있죠. 

경기에서 이기긴 했는데, 내용에서는 상대한테 밀리는 모습도 보였어요. 제가 원하는 우승은 이게 아닌데, 원하지 않는 스토리로 우승하게 되어 마음에 차지 않았거든요. 워낙 제가 욕심이 많긴 하지만, 누구나 욕심이 있다면 자기가 활약해서 우승하고 싶다고 생각해요. 팀원 모두가 잘해서 우승하는 거도 좋지만요. 그리고 제가 없었다면 더 잘됐을 수도 있고, 아예 롤드컵에 가지 못했을 수도 있고 모를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시즌 후반부가 조금 아쉽긴 해도 삼성이 롤드컵 우승을 차지하는 과정에서 본인의 역할은 결코 작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요, 2015년 팀에 들어오기 전에 브라질에서도 선수 생활을 했었죠. 삼성에 입단하기 전까지 과정은 어떻게 되나요. 

당시 활동하던 팀에서 롤챔스 예선에 떨어지고 나서 할 게 없었어요. 그 와중에 외국에 나가서 선수 생활을 해보면 새로운 걸 얻을 수 있지 거라는 생각에 브라질에 갔어요. 색다른 경험이었고 재미있는 시간이었는데 제 실력은 크게 늘지 않았어요. 그래도 갈 수 있으면 다시 가보고 싶은 리그입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왔는데 일단 어디든 돌아가고 싶어서 입단한 팀이 삼성이었습니다. 미드 라이너가 둘이나 있었지만, 어디든 가면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어요. 첫 시즌에 좋은 성적은 못 거뒀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았던 결과였습니다. 
 

팬들이 이민호 선수에게 관심을 갖게 된 사건이 2015년 시즌 후 솔로 랭크 1위를 기록했던 일인데, 당시에는 어떤 마음가짐이었는지. 

정말 지금은 어떻게 했는지도 기억이 안 날 만큼 열심히 했어요. 그렇게 하다가 10위권 내에 들어가니까 욕심이 생겼고, 그래서 더 열심히 했습니다. 당시에는 제가 열심히 한다는 생각이 없었어요. 그냥 당연한 거고, 하고 싶은 게 있다면 계속 하는 걸 당연히 생각했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열심히 연습했던 시간이네요. 다시 하라면 못할 거 같습니다. 

16년 시즌을 앞두고 '큐베' 이성진과 '레이스' 권지민을 제외한 선수들이 바뀌었는데, 스프링 시즌까지는 큰 성적을 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서머 시즌에는 롤드컵 준우승이라는 기록까지 냈는데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요. 

멤버도 계속 바뀌었고 포지션을 바꾼 선수도 있었죠. 어떤 변화든 같은 거 같아요. 도전하기는 무섭지만, 막상 해보면 어떻게든 좋게 됐거든요. 앞을 막고 있는 벽을 하나씩 넘다보니 롤드컵 결승까지 갔던 거 같아요. 마지막 벽을 넘지 못해서 아쉽긴 하지만요. 

당시 롤드컵 진출전 최종전에서 kt를 꺾고 무대에서 눈물 흘리던 모습이 기억나는데, 그때 기분이 어땠나요? 0대 19로 상대 전적도 엄청나게 밀리던 상황에서 중요한 경기를 맞아 승리해 기분이 더 좋았을 거 같습니다. 

그 시즌에 진출전 상대였던 kt에게 단 한 번도 못 이겼어요. 화가 날 정도였죠. 그래서 kt를 상대로 한 플레이오프에서 정말 열심히 준비했는데, 거기서 또 진거에요. 이후 다시 만난 경기가 롤드컵 진출전이었는데 이번에는 이악물고 준비해서 결국은 이겼어요. 롤드컵 우승, 준우승보다 더 좋았고 기억나는 날이 그날입니다. 
 


15년과 16년에 정말 열심히 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스스로 얼마를 해야 열심히 했다고 말할 수 있는 건가요. 

제가 스스로 열심히 했다라는 만족감보다 주위에서 열심히 했다라고 하는 평가가 더 의미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요즘에는 열심히 하기 힘들더라고요. 슬슬 주위 친구들은 군대에서 전역하는데 저는 아직 군대 문제도 남아있고 하다보니 생각도 많아지더라고요. 정말 목표가 있었고 하나하나 넘으려고 했기에 열심히 할 수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1년 정도만에 롤드컵 준우승까지 차지했는데, 첫 롤드컵 소감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예상보다 잘했지만 아쉬웠던 대회였습니다. 

말 그대로 처음이죠. 다시는 얻을 수 없는 첫사랑이나 첫키스 같은 그런 느낌. 처음이 중요하고 다시는 가질 수 없는 경험이니까요. 올해 다시 갔는데 작년 롤드컵 같은 느낌이 이번에는 안 들더라고요. 우승과 준우승의 차이가 정말 크다는 걸 느꼈고, 이번에도 이기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다들 열심히 한 대회였는데 우승은 열심히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거요. 그래도 귀국하고 나서 또 열심히 했죠. 그거 밖에 없었으니까. 

올해도 롤챔스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였는데 결승에는 오르지 못했죠. 그리고 시즌 후반부터 슬럼프도 겹쳤는데 정말 힘들었던 시기 같습니다. 그래도 그 와중에 팀원들은 본인에게 신뢰를 계속 보냈죠. 

정말 뭘 해도 안되는 시기였어요. 그러다보니 심리적으로 굉장히 흔들렸고 그게 서머 시즌 내내 이어진 거 같습니다. 흔들린다고 해서 그만두거나 할 생각은 없었지만, 정말 노력하고 어떻게든 극복하려고 했는데 안되는 건 안되더라고요. 정말 슬픈 생각까지 들었어요. 힘든 순간에도 팀원들이 이야기를 할 자리가 있으면 저를 믿는다고 말하더라고요. 정말 고맙고 감사했죠. 믿어주는 거 자체가 고맙고 보답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번 롤드컵에서 만난 미드 라이너가 하나같이 다 쟁쟁한 선수였죠. 중국의 샤오후나 시예, 한국의 페이커나 비디디 모두 잘하는 상대였는데 스코어만 본다면 모두 상대를 거의 압도했거든요. 본인이 정말 못했다면 롤드컵에서 팀이 우승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짧은 롤드컵 기간에 심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연습부터 잘 안됐고, 그 이후에 침울한 상태에서 왜 안될까 하는 생각에 붙들려 있다가 RNG와 1주차 경기에서 정말 아무것도 못하고 졌죠. 그리고는 말 그대로 정신이 나갔어요. 2주차 경기가 시작하기 직전까지 정신이 나가있었어요. 그 상황에서 주영달 코치님하고 계속 상담했는데 힘들어도 일단 대회장에 가서 경기석에 앉아보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2주차 첫 날 경기를 준비하는데 이 대회가 올해 마지막 대회니까 이왕 온 김에 끝까지 가보기로 했어요. 잘되면 좋고 안돼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 경기 중에는 다른 생각 말고 내가 할 일만 하면서 게임을 즐기기로 하니까 경기력이 나아지더라고요. 연습때도 스크림을 하지만 솔로 랭크는 무리하기 하지 않고 힘들면 호텔 가서 쉬고 생각하고 잠자고. 대회라는 걸 떠나서 이왕 이렇게 하는 거 재미있게 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경기했어요. 
 

너무 승패에 묶여있던 나머지 본인에게 부담을 지운 거 같은데, 그 부담을 떨쳐내니까 경기력이 회복된 거 아닐까요. 

프로게이머니까 당연히 이기고 지는 건 중요하죠.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중요한 건 이기는 거니까요. 그 다음이 잘하고 못하는 거로 생각합니다. 그래도 재미있고 편하게 하니까 잘 되더라고요. 편하게 생각하자고 한 결심이 흔들릴까봐 결승에 가겠다, 혹은 우리가 우승하겠다 하는 생각은 아예 안했어요. 결과를 떠나서 눈 앞의 경기를 재미있게 하기로 마음 먹었거든요. 심지어 결승을 앞두고도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결승 미디어데이 현장에서도 크게 생각이 없었죠. 그냥 빨리 자고 싶다, 빨리 호텔로 가서 쉬고 싶다, 연습 끝나고 자고 싶고 대회 끝내고 쉬고싶는생각 뿐이었어요. 

16강에서 샤오후, 8강에서 비디디, 4강에서 시예, 결승에서 페이커를 만났는데 어느 선수가 제일 까다로웠는지. 

누가 제일 잘했다라는 생각은 안 들어요. 다들 하나같이 상대하기 까다로운 선수들이었거든요. 샤오후는 라인전도 잘 하면서 다른 라인을 잘 도와줬고, 비디디는 상대 라이너를 그야말로 박살냈죠. 시예도 잘하는 선수인데, 경기 당일 컨디션이 조금 좋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페이커는 팀이 불리한 상황에서도 계속 역전의 실마리를 만드려고 하는 정말 훌륭한 플레이 메이커였고요.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소원대로 결승전도 3대 0 승리로 끝냈는데, 우승하니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소환사의 컵을 들어올리는 순간의 기분도 궁금합니다. 

결승도 재미있게 하자, 그리고 불리해도 재미있게 즐기자라는 생각으로 했는데 3대 0으로 이겼죠. 이기니까 더 재미있더라고요. 그리고 다들 좋아하는 모습도, 감독님이 거의 울 거 같은 표정으로 부스에 뛰어오시는 모습도 사실 재미있었어요. 저도 좋았고요. 그리고 세레모니 전 인사를 하러 상대 부스를 갔는데 페이커가 머리를 파묻고 있더라고요. 정말 기계같이 느껴졌던 선수인데 그런 모습을 보니 페이커도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리고 소환사의 컵을 들어올리는 순간 정말 아무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다라고요. 팀원들, 그리고 감독님 코치님과 그 자리를 즐기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롤드컵을 우승하고 상금도 받았는데, 상금은 어떻게 쓸 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롤 프로게이머의 꿈인 롤드컵 우승을 차지한 후의 새로운 목표가 있다면 어떤 걸까요. 

선수 생활 목표가 돈이 아니라 어떻게 할지 생각은 안해봤는데, 사고 싶은거 있으면 사고 나머지는 재테크를 해서 불려야 할 거 같아요. 작년부터 사고 싶은 게 생기면 참기보다는 사는 편으로 바뀌었거든요. 그리고 제 다음 목표는 지금과 똑같아요. 롤드컵 우승. 하지만 이번 롤드컵에서 제가 주목받지 못했으니, 다음 롤드컵에서는 제가 제몫을 해서 우승하고 인정받고 싶어요. 스타크래프트를 보며 꿈을 키웠고, 프로게이머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니까요. 예전에도 몇 번 말했지만 이제동 선수가 우승하던 그 순간처럼 모두가 바라보는 자리에 올랐으면 합니다. 

제가 내년 시즌에도 팀에 남은 이유죠. 우리 팀은 정말 잘하고 열심히 하거든요. 이런 팀에 남아서 노력하고 그 결과로 모두가 인정해주는 선수가 되어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게 제 목표입니다. 다만 너무 목표에 얽메이지는 않을 생각이에요. 내년도 열심히 하고 힘들 거 같으면 거기서 그만두고, 가능하겠다 싶으면 계속 목표를 향해 달려야죠. 

미드 라이너로서 최고가 된다는 것은 결국 페이커와 비교가 된다는 건데, 잘하든 못하든 계속 비교된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일단 페이커는 대단한 선수에요. 리그 오브 레전드 최고의 선수니까요. 처음에는 신경을 쓸 틈이 없었죠. 저는 정말 밑바닥에서 시작했으니까요. 누가 어떻게 말하든 신경도 안썼어요. 그리다가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니 비교를 시작했는데, 그때는 고마웠죠. 이제 내가 그 수준까지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나중에 롤챔스에서 활동하다 보니 비교당하는 게 스트레스가 됐어요. 나는 정말 해도해도 아무도 인정을 안해주고, 비교하고 욕만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었거든요. 심리적으로도 흔들렸고요. 페이커는 하는데 왜 나는 못하냐며 스스로 자책하는 시간도 많았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신경을 쓰지 않았어요. 어쩔 수 없는 일이었거든요. 제가 프로게이머인 이상 비교당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어느 프로스포츠에서나 있는 일이니까요. 

인터뷰를 마치면서 팬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제 목표가 정말 이루기 힘든 거라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인정해주는 선수, 누군가에게 꿈이 되는 선수. 그런 선수가 되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더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절 믿고 응원해주시면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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