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야구해설 정민철

Talon 2018. 3. 31. 10:54

오늘 소개할 분은 바로~

정민철 해설입니다~!


충청남도 대전시 출생으로 1992년 대전고를 졸업하고 고졸 지명으로 한화 이글스의 전신인 빙그레 이글스에 입단하였습니다. 입단 초기 등번호는 '55'번이었고, 150대 초반의 빠른 직구와 각도 큰 커브로 선발 투수진의 한 축을 담당하였으며, 데뷔 첫해 14승, 이듬해 13승을 거두는 등 뛰어난 활약을 보였습니다. 일본 프로 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 이적 후 일본에서 특별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귀국하였습니다.

 2005년 등번호를 '23'번으로 바꿨습니다. 2009년 9월 10일, 한화 이글스는 그의 등번호 '23'번을 영구 결번 처리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2009년 9월 12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5회 클리닝 타임에 그의 은퇴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은퇴식에서 그는 팬들의 사랑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고, 코치로서의 포부를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1992년부터 1999년까지 8년 연속 10승 이상, 2점대 평균자책점, 109승 62패 평균 투구이닝 188이닝 등으로 기록을 남겼습니다. 또한 1990년대 전체에서 보았을 때, 선발투수 중 평균자책점, 완투, 완봉승 1위를 했으며, 그가 데뷔한 1992년도부터 1999년까지 다승, 탈삼진, 이닝, 방어율, WHIP, 완투, 완봉승 모두 정민철 선수가 1위를 기록했습니다. 이러한 기록에서 나타나듯이 그는 90년대 최고의 선발투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선동열은 자신의 후계자로 그를 지목하였으며, 이종범은 본인이 경험한 최고의 공으로 그의 직구를 꼽았습니다. 그리고 박경완은 자신이 받아 본 공들 중에서 최고는 그의 직구였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아마추어 시절

대전광역시 출신으로 대전신흥초등학교와 충남중학교를 거쳐 대전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됩니다. 중학교 시절 대전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1년 유급한 경력이 있습니다.


한국 프로야구 시절

빙그레 이글스 & 한화 이글스 시절

1992년 ~ 1999년

1992년 고졸 우선 지명으로 빙그레 이글스에 입단했는데 그 해 쌍방울 레이더스에게만 3완봉승을 기록하여 순수 신인 단일 시즌 특정 팀 최다 완봉승 타이 기록을 거두었습니다. 입단 첫 해 14승을 시작으로 1999년까지 8년 연속 10승 이상, 평균자책점 2.80, 평균 투구이닝 188이닝 등으로 1990년대를 대표하는 선발 투수로 활약하였습니다. 1997년에는 포수 강인권의 패스트볼로 퍼펙트 게임을 아깝게 놓치며 '무사사구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1999년에는 한화 이글스의 첫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에 공헌했습니다. 하지만 혹사로 인해 1998년부터 구위가 현저히 저하됐고, 팔꿈치 통증이 나타나 훗날 그의 선수생활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일본 프로야구 시절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2000년 일본 프로 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하여 2시즌을 보냈습니다. 국내에서는 리그 최고 수준의 에이스였지만 일본 리그에서는 현지 적응 실패와 리그격차로 인해 뚜렷한 성과를 올리지 못했습니다. 일본 리그에서 그는 2시즌 동안 3승 2패의 초라한 성적을 거두었고, 부진했던 주요한 원인으로는 급격한 구위 저하, 팔꿈치 통증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안타까운 결과에는 여러 논란이 있는데


실제로 정민철의 요미우리 입단 후 첫 등판은 야쿠르트를 상대로 7이닝 1실점 승으로 호투하였으나 경기 직후 2군 통보를 받고, 다시 올라온 1군 경기에서 요코하마를 상대로 9이닝 무실점으로 완봉승 하였으나 이후로도 등판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그 후 국내 복귀 20완봉 달성 인터뷰에서 "요미우리의 시스템이 참 이상했다."라고 회고한 바 있습니다.


한국 프로야구 복귀

한화 이글스 복귀

친정 팀으로 돌아와 2002년 시즌부터 다시 KBO 리그에 참가하지만, 전과 같지 않은 구위로 난조를 겪었습니다. 특히 2004년에는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그동안 괴롭혀 왔었던 팔꿈치 통증으로 인해 수술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재기를 다짐하면서 2005년에 재기에 가능성을 보였고, 2006년부터 기교파 투수로 재기에 성공하여 팀의 선발 주축으로 활약했습니다. 2007년 12승 5패 평균자책점 2.90으로 완벽하게 재기했습니다. 그러나 2008년 노쇠화로 인해 다시 부진하였습니다. 2009년, 한화 이글스에서 플레잉 코치로 활동하다가 현역 은퇴를 선언했으며, 9월 12일 은퇴식과 영구 결번식을 거행하였습니다. 손가락 길이가 일반인보다 한 마디 정도 긴 특징이 있으며, 훤칠한 미남형으로 많은 여성팬들을 몰고 다녔습니다.


한화 이글스에서 코치로 활동하다가, 2015년부터 MBC 스포츠+의 야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평균자책점 1위: 1994년

탈삼진 1위: 1994년, 1997년

승률 1위: 1993년

-그의 플레이 스타일은 전성기 때는 150을 넘나드는 포심을 기본으로 각 큰 슬로우 커브, 싱커 등을 던졌습니다.


1995년 제2회 한일슈퍼게임 대표 3차전 선발투수 등판 7이닝 2실점 6탈삼진 선발승

아시아퍼시픽게임 대표

한화 이글스

1995년 올스타전 대표

1996년 200이닝-200탈삼진 달성

1999년 제3회 한일슈퍼게임 대표 3차전 선발투수 등판 3이닝 1실점 5탈삼진

올스타전 대표

8년 연속 두자리 승수

한화 이글스 한국시리즈 첫 우승

1992년~1999년 통산 평균자책점 2.80 109승 62패 1503이닝 1189탈삼진 59완투 19완봉

2000년~2001년 10월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 선수

2003년 한화 이글스

2007년 올스타전 서군 대표

역대 2번째 20완봉 달성

2009년 9월 12일 은퇴식 거행 등번호 23번 영구결번

2010년 한화 이글스 1군 투수코치

2014년 11월 6일 MBC 스포츠+ 해설위원


이상 정민철 해설에 대한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반응형

'소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야구코치 윤요섭  (0) 2018.04.03
프로 e스포츠 단체 프나틱  (0) 2018.04.03
가수 블랙핑크  (0) 2018.03.31
가수 더 원  (0) 2018.03.30
야구선수 김주찬  (0) 2018.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