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오브레전드

[창간 특집] 롤챔스 박지선 통역, 그녀가 말하는 e스포츠의 추억과 열정

Talon 2018. 4. 23. 16:21
리그오브레전드(LoL) 챔피언스 코리아(롤챔스) 해외 팬들을 위해 '파파스미시' 크리스토퍼 스미스를 포함한 해외 해설자들이 영어로 경기를 생생하게 중계해주고 있다. 하지만 한국어로 진행되는 인터뷰엔 한국어와 영어를 동시에 구사하고, 센스까지 갖춘 사람을 필요로 한다. 스포티비 박지선 통역의 역할이기도 하다. 

2017 롤챔스 서머 스플릿을 시작으로 e스포츠 통역의 길을 걷게 된 박지선은 자신의 영역을 통역에만 국한하지 않고 확장해나갔다. 작년 LoL 월드 챔피언십을 통해 처음 시청자에게 다가갔고, 올스타전에서 '박지선 씨리즈'라는 자신의 이름을 건 첫 컨텐츠에 참여했다. 한발 더 나아가 이번 스프링에는 선수들과 영어로 질의응답을 하는 '10문 10답', 그리고 해외 팬들의 경기 반응을 생방송으로 전달하는 '박지선의 해적방송'의 진행을 맡았다.

귀여운 외모로 포털 실시간 검색어에도 오른 그녀는 밝은 웃음 뒤로 통역이라는 직업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자신을 더욱 담금질하고 있었다. e스포츠가 좋아 앞으로도 이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는 박지선. 포모스 창간 11주년을 기념하며 그녀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인터뷰에 앞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스포티비 롤챔스에서 통역을 맡은 박지선이라고 한다.

-통역으로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고 있는데 기분이 어떤지
▶좀 위축된다. 처음엔 방송에 거의 노출이 되지 않아서 실감이 안 났다. 이젠 카메라 앞에 서는 일이 많아지다 보니 책임감과 실수하면 안 된단 부담감이 커진다. 그만큼 내 역량이 따라주지 않는 것 같아 시무룩해지면서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엔 방송 노출이 많지 않았다. 지금과는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 알려달라
▶처음 시작했을 때는 동시통역에 대한 감이 없었고, 상당히 어렵다고 느꼈다. 일을 계속하면서 나도 방송에 노출되고 이젠 내 이름을 건 코너도 있다. 나에게도 부끄럽지 않고, 제작하는 분들에게도 누가 되지 않게 해야 하는데 아직은 그런 단계에 다다르지 못한 것 같다. 통역 스킬을 늘리기 위해 따로 공부한다. 이젠 조금만 검색해도 내가 나오는 만큼 책임감이 생겼다.

-포털 실시간 검색어에도 오르곤 했다. 당시 기분이 어땠나
▶롤챔스를 오래 보신 분들은 롤챔스에 나오는 출연진이 누군지 알지 않나. 나는 신인이다보니 "누구지?"하는 마음에 검색해보셨던 것 같다. 롤챔스를 보는 사람들도 많고, 시청자들의 인터넷 접근성도 좋아 검색 내역이 누적돼서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간 듯하다. 그걸 보고 겁이 많이 났다. 똑바로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더라. 사람들이 내가 통역인 것을 알고 관심을 두고 지켜보는데, 제대로 하지 못하면 문제가 되지 않겠나. 내가 하는 일이 체감됐다.

-통역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어릴 땐 '통역을 해야지'란 생각은 없었다. 친구들이 순차 통역이나 번역을 부탁하면 해주는 것이 보통이었다. 프로리그 통역이 필요한 상황에서 한국e스포츠협회(KeSPA) 대학생 기자단의 인연을 통해 나한테까지 연락이 왔다. 너무 하고 싶어서 미국에서 한국까지 왔고, 그다음 날 바로 경기가 열리는 상해로 넘어갔다. 순차 통역이었지만, 스타크래프트2 용어가 익숙하지 않아 한 번 실수했다. 긴장한 것 빼곤 나머지는 괜찮아서 좋은 경험이라 여겼다. 그걸 보신 스2 PD님이 롤챔스 통역을 뽑으니 지원해보라고 하셔서 지원하게 됐다. 막상 동시통역을 해보니 너무 힘들었다. 심적으로 힘든 것보단 그냥 동시통역 자체가 정말 어려웠다. 쉽게 볼 일이 아님을 느꼈다. 

-KeSPA 대학생 기자단을 언급했는데, 원래부터 e스포츠를 좋아했나 
▶엄청 좋아한다. 어렸을 때부터 게임을 많이 했다. 친척들이 모이면 콘솔 게임을 하고, 사촌 오빠 추천으로 온라인 게임도 접했다. LoL도 2014년 즈음에 접했는데 정말 재밌더라. 당시에 카타리나와 아리, 피즈를 좋아해서 동영상을 찾아보면 롤챔스 하이라이트 영상이 있었다. 보다 보니 재밌어서 경기도 찾아보니 롤챔스도 보게 됐다. 2015 롤챔스 프리시즌 때부터 본격적으로 몰입했고, 표를 사서 직접 관람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대학생 기자단을 알게 돼 지원하는 등 꾸준히 e스포츠 관련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통역으로 일하기 시작했을 땐 얼굴을 비추는 일이 없었다. 본인이 요구한 것인지 
▶당시엔 업무가 통역과 해외 해설진과의 커뮤니케이션 정도였다. PD님이 새로운 사람이 갑자기 등장하면 시청자들이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다고 하셨다. 나도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더라. 시청자의 관점에서 못 보던 사람이 나오면 불편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일을 하다가 자연스럽게 나올 일이 있으면 나올 거라 여겼다.

-통역 외 활동을 시작한 것이 2017 LoL 올스타전의 '박지선 씨리즈'였다. 당시 기분을 알려달라
▶제의를 받았을 때 기뻤다. 국제전에 내가 직접 갈 수 있어 행운이었다. 내가 전문 방송인이 아니다 보니 발음이나 인터뷰 진행 능력이 모자라서 걱정됐지만, 우선 가서 열심히 해보자고 생각했다.

-선수들과 직접 인터뷰를 해보니 어땠나
▶혹시 낯선 사람이라 거부감을 느끼면 어쩌나 싶었다. 선수들이 모두 외향적이진 않아 인터뷰를 잘 풀어나갈 수 있을지도 걱정이었다. 다행히 올스타전이 축제 성격의 이벤트여서인지 다들 긴장하지 않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잘해줬다. 

-한국 선수 인터뷰 외에 기억나는 인터뷰가 있었다면
▶'비역슨' 소렌 비에르그와 인터뷰할 땐 내가 못할까봐 엄청 긴장했다. 나는 '내가 하는 말을 못 알아들으면 어쩌나'라고 생각하는 등 불필요한 걱정을 사서 하는 스타일인데, 편한 분위기 속에서 인터뷰에 응해줬다. 방송 진행을 도와주신 라이엇 게임즈 스태프분들과 스포티비 스태프분들도 잘해주셨다. 국가대항전이었다면 분위기도 경직돼 있었을 것이다. 다행히 웃으며 즐기는 올스타전이어서 긴장을 풀 수 있었다. 

-'페이커' 이상혁과 '프레이' 김종인하고 인터뷰를 해보니 어땠는지
▶'프레이' 김종인이 재밌게 잘 해주신다. 첫 인터뷰가 한국 올스타 대표팀과의 인터뷰였다. 아마추어 같은 사람이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도 그렇고, 다섯 선수가 서로 서먹할 수도 있어서 걱정됐다. 김종인이 먼저 재밌게 이야기를 꺼내더라. 크고 강인한 이미지였는데, 막상 인터뷰를 시작하니 유쾌하게 대답해주셨다. 10문 10답 때도 영어가 무섭다고 하시더니 굉장히 재밌게 촬영에 임했다.

'페이커' 이상혁도 마찬가지였다. 인터뷰 질문 자체도 가벼운 것들이 많았다. 한 번은 백스테이지 근처 복도에서 마주쳐서 인사하려고 했는데, 다른 해외 팬이 이상혁을 보고 사진을 찍자고 하길래 내가 찍어줬다. 나도 인생의 모든 용기를 끌어내서 사진 하나만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안 된다고 하더니 웃으며 "장난이에요"라고 말한 후에 사진을 찍어줬다. 내가 선수들을 너무 어렵게 생각했나 싶을 정도로 다들 유쾌했다.

-이번 롤챔스부터 '박지선의 해적방송'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카메라 앞에 나서게 됐다. 김수현 아나운서 합류 전후로 컨셉도 달라졌다. 이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자면 
▶'박지선의 해적방송'은 경기 중간에 해외 반응을 전하는 코너가 있으면 재밌겠단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생방송인 데다가 완벽하게 짜여진 대본이 없어서 무서웠다. 너무 긴장을 해서 시선도 제대로 못 맞췄다. 이걸 한 시즌동안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김)수현 언니랑 같이 진행하게 돼서 좋았다. 내가 말이 꼬여도 잘 받아주신다. 이번 결승에서도 선수들을 초대해서 진행하니 호흡이 맞출 시간이 없었는데도 부드럽게 진행해주셔서 안심했다. 수현 언니가 없었으면 편성이 사라질 뻔했다. (웃음) 
-가끔 김수현 아나운서가 팀을 소개할 때 뒤에서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한복을 입고 온 날이 처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수현 언니가 팀 소개를 할 때 소고를 쳐보라고 하셨다. 수현 언니가 그 순간엔 주인공인데, 뒤에서 뭔가를 하면 시선이 갈 것 같아 걱정됐다. 그러면 안 될 것 같았고, 사람들도 이상하게 보면 어쩌나 싶었다. 다행히 반응이 좋았다. 오히려 수현 언니도 옆에 있으면 긴장이 풀려서 좋다고 하셨다. 그 후로 아이디어나 타이밍이 맞을 때 한두 번 더 했다.

-'10문 10답'을 진행하면서 단순 질의응답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웃고 즐기는 모습이 나왔다
▶입사할 때 지원서에 10문 10답 같은 컨텐츠 제작에 기여하겠다고 썼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하게 됐는데 정말 재밌었다. 나는 고정된 멘트를 잘 못 하고, 선수들도 초면이라 분위기가 썰렁해질까봐 걱정을 했다. 다행인 건 내가 웃음이 많고 웃음을 참는 것도 잘 못 한다. 사소한 부분에서도 터진다. 선수들이 서로 주고받고 하는 상황 자체가 웃겨서 많이 웃다 보니 분위기가 풀렸다. 나하고도 주고받는 상황이 나오는 것이 자연스럽고 좋았다. 

-'10문 10답'에서 가장 기억나는 선수는
▶하나만 꼽기 힘들다. '상윤' 권상윤도 재밌었고, '투신' 박종익도 기억에 남는다. 김종인도 날 한 번 혼내주려 했다. '쿠로' 이서행은 당시엔 몰랐는데 영상이 올라와서 보니 재밌었다. 역대 출연자 중에 가장 많은 한국어를 쓴 것 같다. 굳이 꼽자면 내가 뿅망치에 맞을 뻔한 에피소드들이다. 

-성승헌 캐스터의 인터뷰 진행 스타일에 위트와 센스가 녹아있다. 동시 통역자 입장에선 힘들 것 같은데
▶프로 방송인이셔서 인터뷰를 하실 때 구성이 있다. 문장에 핵심이 담겨있어서 초입만 들어도 어떤 질문을 하시려는지 알 수 있다. 질문지도 사전에 볼 수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다. 경기 후 인터뷰가 '성캐쇼'라고 불릴 만큼 인기가 많은데, 재미를 잘 살릴 수 있는 사람이 하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항상 든다.

-공부를 따로 한다고 했는데 학과가 언어 쪽이 아닌 듯하다. 영어를 잘 하게 된 비결은
▶언론정보 전공이다. 이모가 미국에서 사신다. 5살 때부터 중학생 전까지 여름방학 때 엄마와 함께 이모 댁에 갔다. 나랑 언니랑 지내면서 서머 스쿨에 다녔다. 거기서 생존하려고 하다 보니 영어를 배웠다. 친구들을 사귀고 소풍도 다니며 회화도 자연스럽게 습득했다. 이젠 영어를 해도 한국어 억양이 섞여 있어서 '차라리 1년이라도 쭉 있을걸' 하는 아쉬움이 든다. 지금 와서 되돌릴 수도 없고, 또한 통역은 영어 외에 전문 기술이 필요한 분야라 따로 공부를 하고 있다. 

-롤챔스가 젊은 층에서 인기가 많은 콘텐츠니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
▶같은 전공에 한 분이 있었다. 조별과제를 할 일이 있었는데 "혹시 그분인가요?"라고 물어보더라. 거기다가 "그분 맞아요"라고 하기 어색해서 닮은꼴이라고 하며 넘겼다. (웃음)

-다니는 대학교에서 영상을 찍어서 올린 것을 보면 알려진 것 같은데
▶학교 홍보부에 우리 과 학생들이 많다. 온라인 홍보팀 진행하는 정기 인터뷰를 해보자고 하셨다. 홍보부 쪽에서 보고 다른 기획 콘텐츠를 만들면 좋겠다고 해서 나왔다.

-'초브라'처럼 통역으로 시작했다가 e스포츠의 다른 영역으로 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미래 계획은 무엇인가
▶나는 진로에 대한 비전이 뚜렷하지 않았다. 비전과 계획이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나는 e스포츠에 관심이 생겼고, 운좋게 이쪽에서 경력을 쌓고 있다. 좋아하는 분야에서 경력을 쌓게 돼 좋다. 실무 경험도 생겼으니 계속 e스포츠에 종사하고 싶다. e스포츠 내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으로 목표는 설정하지 않았지만, 계속 참여하고 싶단 생각을 한다.

-성승헌 캐스터가 칭찬을 많이 하면서 아껴주는데
▶너무 좋다. 같이 일하시는 분들도 경력 있는 전문가임에도 거리감 없이 편하게 대해주셔서 감사하다. 덕택에 적응을 잘 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실수를 많이 했지만, 참을성 있게 봐주셔서 감사하다. 서머 스플릿에 돌아오게 된다면 시즌 전까지 더 공부하고 준비해 e스포츠 종사자로서 부끄럽지 않은 사람으로 발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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