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야구코치 장원진

Talon 2018. 5. 18. 09:42

오늘 소개할 분은 바로~

장원진 코치님입니다~!


KBO 리그에서 드물었던 스위치 히터였습니다.


OB 베어스 & 두산 베어스 시절

1992년 2차 4순위 지명을 받아 OB 베어스에 입단했으며, 백업으로 출전하다가 1996년 국방부의 '방위병 출장 금지' 조치에 걸려 1년 동안 선수 생활을 하지 못하고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였습니다. 잔여 기간 복무를 마친 1997년 시즌 중반에 복귀했고, 1999년 외인 선수 케세레스의 방출로 다른 선수들의 수비 이동이 생기자 외야수에 공백을 메우기 위해 외야수로 출전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2000년에는 최다 안타인 170안타를 기록해 팀을 포스트 시즌으로 이끄는 데 공헌했습니다. 이후 나이가 들면서 타율이 떨어졌고, 2007년에는 대타로만 23경기에 출장해 1할대 타율을 기록했습니다. 그 해 통산 1,500번째로 출장한 1군 경기가 마지막이 되었습니다. 2008년 시즌에는 선수로는 등록되어 있었으나 경기에 출장하지 않고 코치 수업을 받았으며, 시즌이 끝난 후에 공식 은퇴했습니다.


은퇴 후 일본 프로 야구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군에서 코치 연수를 받고 귀국하였고 두산 베어스에서 2009년 9월 20일 은퇴식을 열었습니다.


인천신흥초등학교

상인천중학교

인천고등학교

인하대학교


베어스의 소리없는 강자


1992년 OB 베어스에서 데뷔, 삼성 라이온즈의 김한수와 함께 소리없는 강자로 자리잡았으며, 1995년 우승과 2001년 우승에 기여했습니다. 2000년에는 170안타를 때려내 최다안타 타이틀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스위치 히터로서는 박종호와 함께 가장 성공한 케이스입니다. 2000년도 타격왕과 연속출루 기록을 세운 박종호가 일시적인 임팩트는 강했지만, 장원진 선수 역시 그해 170안타로 최다안타왕을 수상했으며, 커리어 전체를 보면 장원진 선수가 더 기복없는 안정감을 보였습니다. LG시절에는 스위치히터로 완성도가 떨어져 사실상 우타자에 가까웠던 박종호에 비해, 처음부터 스위치히터로 양 타석에서 모두 안정적으로 꾸준한 기록을 보였던 점에서 국내 타자 중 사실상 가장 뛰어난 스위치 히터라 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커다란 덩치에도 장타력 대신 정확한 컨택 능력을 과시하며 주로 2번 타순을 맡았습니다. 젊었을 때는 좌익수, 나이를 먹어서는 1루수를 맡았습니다. 양 포지션 모두 화려하지는 않지만 준수한 수비 능력을 자랑했습니다. 2000년 현대와의 한국시리즈에서 홈런성 타구를 잡아내는 호수비를 보여주며 7차전까지 시리즈를 끌고 가는 데 크게 공헌했습니다. 대학 동기였던 구한성의 칼럼에 따르면 권명철의 패키지로 인하대학교에 입학했지만, 노력 하나만은 끝내줘서 마침내 권명철보다 더 성공한 야구 선수가 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대학교 2학년에서야 시작한 좌타자 연습이라 더욱 대단했다고. 하지만 원래 장원진 선수는 왼손잡이였습니다. 야구를 시작했을 시기에는 왼손잡이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좋지 않았던 때라 야구를 오른손으로 시작했다고 합니다. 본인은 자신이 원래 왼손잡이라 그런지 좌타 적응이 조금은 빨랐던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한창 20대 시절에도 노장 선배인 당시 LG의 정삼흠에게 데드볼을 맞자 마운드까지 올라와 노려보고 큰소리칠 정도로 다혈질을 자랑했습니다. 역시 장승질 이외에도 빈볼이라고 판단하면 선배 투수라고 해도 강하게 대응하기도 했습니다.


투수와 끈질긴 승부를 펼치다가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텍사스성 안타로 상대 배터리를 허탈하게 만드는 플레이가 전매특허였습니다. 모 팬은 이런 플레이를 두고 '방망이 깎는 장샘'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동기들이 몸집은 그렇게 크면서 비겁한 타격... 좀 그만하고 풀 스윙 좀 하라고 하자 '먹고 살려면 이렇게라도 해야지'라고 응수했다고.


방위 복무 선수들의 출전금지 조치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그는 방위병 제도가 폐지되자 1996년에 공익근무요원으로 전환하여 잔여 기간 동안 복무했으며, 1997년 시즌 중 소집 해제되어 팀에 복귀했습니다.


2006년부터 노쇠화가 찾아오며 사실상 주전에서 밀리기 시작했고, 2008 시즌에는 선수로 등록됐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코치 역할을 하였고 시즌 후 정식 은퇴하였습니다. 2009년 일본프로야구 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코치 연수를 받았고 그해 막판 귀국하여 은퇴식을 치루었습니다.


은퇴 이후 두산 베어스 전력분석원으로 재직하다 2011시즌부터 수비코치를 맡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5월 들어 팀이 침체기에 빠지자 코치진 개편으로 인해 1군 타격코치를 맡게 되었습니다.


2016년까지 1군 타격코치를 맡다가 2017년부터 2군 타격코치를 맡게 됬습니다.


덕아웃에서 열정적으로 응원하기로 유명했습니다. 상대팀 덕아웃까지 고함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타 팀 코칭스태프에서는 싫어하기도 했다고. 홍성흔과 나란히 앉아 있으면 덕아웃이 정신이 없었다고 합니다...


안경현과 대립해 팀 내 파벌을 형성했다는 루머도 있습니다.


별명은 "장샘"이었지만, 그의 불같은 성격 탓에 타 팀 팬들으로부터는 장승질…이라고 불렸습니다.


이상 장원진 코치에 대한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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