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정식 출범한 배틀그라운드 e스포츠 리그, 펍지 코리아 리그(PKL)가 지난 7일 PSS 결승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PKL에서 우승은 없었지만 꾸준히 좋은 성적을 냈던 젠지 골드가 포인트 12,080점으로 1위를 차지했고 최근 주춤했지만 리그 초창기 강력한 모습을 보였던 젠지 블랙이 8,820점으로 2위에 오르며 젠지 형제팀이 독일에서 열리는 펍지 글로벌 인비테이셔널(PGI) 2018 출전권을 획득했다.
리그 첫 대회였던 APL 시즌1에서 젠지 블랙이 우승, 골드가 준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젠지 형제팀의 독주가 예상됐지만 이후 대회부터 나머지 팀들도 경기력을 올리며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일부 팀들은 빠르게 팀 전력 재편성에 나설 만큼 다음 행보를 준비하고 있다.
김지수 해설은 배틀그라운드 e스포츠 리그와 함께 e스포츠 인생을 시작했다. 배틀그라운드 그 자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김지수 해설은 APL 파일럿 시즌 처음으로 해설을 시작해 이제 상반기 리그를 마쳤다. 김지수 해설은 자신의 첫 리그 해설동안 벌어진 대회 구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2018 상반기 PKL 리그가 마무리된 후 김지수 해설을 만나 그간의 이야기와 함께 이번 PGI 2018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돌아보면 부족한 게 많았죠. 그래도 같이 중계하는 박상현 캐스터와 김동준 해설, 두 분의 도움으로 해설 초기보다는 나아진 거 같습니다. 처음에는 욕심이 많아서 말을 길게 하다 보니 정작 제가 해야 하는 중요한 이야기가 시청자들에게 전달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다음 시즌을 위해 제가 한 방송들을 다시 보면서 객관적으로 저를 평가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있습니다.
박상현 캐스터, 그리고 김동준 해설과 같은 중계진으로 활동했는데 두 명과 같이 중계하며 느낀 점이 있다면
두 분이 e스포츠 중계의 정점에 있는 분들이라 보고 배울 점이 정말 많아요. 박상현 캐스터에게 지치지 않는 에너지와 유려한 단어 선택과 침착함을 배우고 싶고, 김동준 해설에게 프로 마인드를 많이 배우고 싶었어요. 거의 고행에 가깝게 자신을 채찍질하는 수준으로 자기 일을 준비하는 걸 보니 저는 더 열심히 해야 부족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 듯합니다.
APL 파일럿 시즌과 시즌2에서 야외 결승을 진행했는데, 스튜디오 중계와는 어떤 점이 다르던가요
첫 무대는 작년 지스타에서 진행된 인비테이셔널이었는데, 그때는 엄청 떨어서 제대로 중계도 못 했죠. APL 파일럿 시즌 결승 때는 그나마 옆에 두 분의 분위기에 맞춰갔지만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제대로 못 했어요. 이번에는 제가 경기 전에 한 예측이나 교전 양상에 대해 침착하게 이야기했죠. 그래도 아직 아쉽고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한 번에 두 가지를 하기 힘들더라고요. 어떻게 치킨을 먹으면서 내가 치킨을 어떻게 먹는지 설명을 해야 하니까요. 옆에서는 맛있게 먹는데 말하는 사람이 없으면 이상할 거 같아서 막내인 제가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그래서 경기 해설하듯 치킨을 먹는 방법을 해설했는데 반응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먹방이니까 입으로 설명하는 거 보다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김동준 해설이 진짜로 치킨을 맛있게 잘 먹더라고요. 채팅창에서도 제가 설명하는 걸 들으면 그냥 다들 웃는데, 김동준 해설이 먹는 모습을 보면 너도나도 치킨 시켜야겠다고 하죠. 김동준 해설이 원래 치킨을 좋아하는데, 정말 맛있게 먹으니까 다들 치킨을 같이 먹고 싶어 하는 거 같습니다.
APL 시즌1에서 우승과 준우승을 나란히 차지한 젠지 골드와 블랙이 PGI 2018 한국 대표로 출전하는데, 두 팀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젠지 골드는 압도적인 점수 차가 말해주듯 기복이 없는 팀입니다. '심슨' 심영훈을 구심점으로 잘 뭉치고, 팀원 사이에 신뢰도도 높죠. 젠지 골드는 대회 내에서 위기 상황이 생기면, 특히 중요한 순간에는 심영훈의 오더를 절대적으로 따르죠. 오더 자체의 분석력도 좋은데, 가끔 완벽한 오더가 아니더라도 팀원 사이의 신뢰도가 부족한 부분을 메꿔 결과적으로 포인트 1위라는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젠지 블랙은 파일럿과 시즌1을 연속으로 우승한 팀인데, 그 당시는 팀의 구심점이 확실했고 서로 간의 신뢰도 완벽했죠. 다만 이제 다른 팀들도 경기력이 올라오니 피지컬로 해결하기 힘든 상황이 온데다가, 오더가 계속 바뀌면서 팀이 역량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했어요. 독일에 가기 전에 이 부분을 해결하면 블랙도 좋은 성적을 낼 거로 예상합니다.
젠지 골드가 APL 파일럿에서는 20위였죠. 꼴찌였어요. 하지만 시즌1을 앞두고 랜드마크를 바꾸고, 바뀐 랜드마크에서 자기장에 따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제대로 연습해 좋은 성적을 내기 시작했죠. 아이템이 적으면 적은 대로 풀어나가는 연습을 해 최대한 변수를 줄였어요. 심영훈의 오더도 변수를 줄이는 방향이었고, 거기에 '에스카' 김인재의 경험과 함께 피지컬이 좋은 '로키' 박정영-'킬레이터' 김민기가 따라오면서 꾸준한 결과를 냈습니다.
젠지 골드가 꾸준히 좋은 성적을 냈지만, 대회 준우승이 세 번입니다. 대회 막판 견제가 심해 결국 뒷심이 빠져 아쉬운 모습을 연출했는데, 이에 대한 해결책이 있을까요
랜드마크 위치가 가진 숙명입니다. 성적이 좋은데 동떨어져 있고, 진출입로가 정해져 있어 마음먹고 방해하기 너무 쉽죠. 결국 스크림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데, 결승 마지막 라운드에는 랜드마크를 바꾸는 등의 과감함을 보여야 합니다. 예를 들어 액토즈 스타즈 레드는 미라마 맵에서 비행기의 방향에 따라 랜드마크를 바꾸죠. 젠지 골드도 이런 유연함을 가지고 있어야 중요한 순간 들어오는 매서운 견제를 극복할 거로 봅니다.
젠지 블랙은 리그 초반 엄청난 강력함을 보였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아쉬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오더의 문제라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었는지
리그 초중반 젠지 블랙은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였지만, 이후 계속 견고한 모습이 떨어졌습니다. 미리 파견한 선발대 선수가 잘리거나, 반대로 뒤에 따라오는 후발대가 잘리는 등 의사소통이 부족한 모습을 보였죠. 그래도 워낙 잘했던 선수들이고, 큰 무대에서 우승까지 해본 선수들이니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PGI 2018까지 시간이 넉넉하지 않은 편이니 교전 위주로 연습해 조직력을 끌어올려야 합니다. 이 부분만 잘 해결되면 PGI 2018에서 젠지 블랙이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릴 수 가능성도 높습니다.
APL 시즌2에서 우승한 OGN 엔투스 포스의 경기력이 놀라웠습니다. 다른 게임에서 프로로 생활했던 '케일' 정수용이 들어온 후 엔투스 포스는 정말 잘 싸우는 팀이 됐거든요. 잘 싸우는 팀이 게임을 지배하는 걸 보면 앞으로 엔투스 포스가 기대됩니다. 그리고 액토즈 스타즈 레드 오더인 '스타로드' 이종호의 판단력도 좋습니다. 선택의 순간이 오면 오더가 결정해야 하는데, 이종호는 바른 방향을 잡고 강하게 팀원들을 끌고 나가거든요. 나머지 선수들이 피지컬도 좋아 다음이 기대됩니다. 아쉽게 PGI 2018 문턱에서 탈락한 아프리카 프릭스 아레스 역시 개인 기량과 오더가 좋은 팀인데, 경기력 기복이 큰 게 결국 막판 아쉬움으로 연결됐습니다. 이 부분만 해결되면 아프리카 프릭스 아레스도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팀입니다.
이제 PGI 2018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해외 팀의 전력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더불어 한국 팀은 어느 정도 성적을 낼 수 있을까요
PGI 2018 중계를 위해 계속 해외 경기를 다 챙겨봤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쉬운 대회는 아닐 듯합니다. 특히 유럽 대표 중 한 팀인 팀 리퀴드의 국제대회 성적이 정말 좋고, 경기 내 킬도 많이 올리죠. 특히 차량에 의존하지 않는 경기 스타일로 꾸준히 높은 화력을 유지하고, 경기 후반까지 전력 보존도 잘 해둬 강력한 우승 후보로 떠올랐죠.
그리고 랜드마크도 중요합니다. 젠지 골드는 북미 대표 중 한 팀인 허니 배저 내이션과, 젠지 블랙은 웰컴 투 사우스 지오고와 랜드마크가 겹칩니다. 대회 전 열리는 스크림이 중요하게 작용할 부분입니다. 누군가 하나가 피하지 않는 이상 스크림에서 두 팀이 초반부터 격렬하게 싸울텐데, 실제 대회에서 서로 싸우면 서로 망하는 길이니 결국 본 대회에서는 누군가 새로운 전략을 짜와야 하죠. 그래서 스크림에서 강력한 모습을 보여 상대 팀을 미리 밀어내야 합니다. 독일에 가기 전 미리 준비해 가야 하죠.
그리고 독립국가연합 대표인 나투스 빈체레의 경기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지역 예선에서 압도적인 점수로 1위를 차지했거든요. 아이템이 풍부한 랜드마크 대신 초반 안정적인 곳을 거점 삼아 전력을 보전해, 장기인 강력한 공격력으로 좋은 성적을 낸 팀이기도 합니다. 보통 한 팀을 평가할 때 교전 방식, 상대 기절 후 다음 행동, 그리고 10위권 내 진입 횟수를 보는데 나투스 빈체레는 이 부분 모두 좋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투척 무기도 잘 다루죠. 3인칭에서는 중국 OMG와 4AM이 강력합니다.
그래서 이번 대회에 젠지 골드와 블랙이 3인칭에서는 중상위권, 1인칭에서는 중위권만 가도 충분히 좋은 성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도 한국 팀들이 해외 대회에 나갔지만 성적이 그리 좋지 않았거든요. 최근 대회에서 1인칭을 많이 도입하고, 스크림도 자주 열어 경기력이 오르긴 했지만 아직 경기력이 좋다고 단언할 수 없죠. 그래도 3인칭은 템포가 빠르고 차량을 이용하는 플레이에 능숙한 한국 팀이 중상위권 이상을 노릴 수 있다고 봅니다.
이 부분은 저보다 선수다 코치들이 더 잘겠지만, 피지컬이나 기술에서 아직 한국과 서구권이 차이가 납니다. 특히 유럽 선수들이 뛰어나죠. 이걸 1인칭에서 극복해야 합니다. 차량 없이도 잘 맞추죠. 정말 연습으로만 해결되는 부분입니다.
PGI 2018 이후 하반기 리그를 준비해야 하는데, 먼저 김지수 해설이 나아졌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해설 초기 말을 길게 하는 버릇이 있었는데, 이건 어느 정도 해결했다고 봅니다. 이제는 중계 기본기를 더 탄탄하게 올려야죠. 다른 중계진과 페이스를 같이 맞춰야 하는데, 제가 초반에 흔히 TMI라고 부르는 정보들을 많이 이야기 하다보니 저도 지치고 시청자들도 제 이야기가 잘 안들어온다고 하더라고요. 중계 페이스를 더 유연하게 가져가고, 다른 중계진과 맞추려고 합니다. 그리고 올바른 단어를 적절하게 사용하는 연습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반기 리그에서도 꾸준히 잘하는 팀이 나오려면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할까요
서로 간의 합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서로 잘 맞는 팀이 계속 잘하거든요. 그 예가 젠지 골드입니다. 중계진도 마찬가지에요. 조합이 맞고 신뢰가 있어야 최고의 실력을 낼 수 있는 게임이 배틀그라운드입니다. 초반 실수로 기절 스택이 쌓인다든가, 의미 없는 교전으로 전투력이 낮아지거나 보급 상자 노리다가 죽는 거 없이 신중하게 운영해야 하죠.
어느 팀이 잘하고 중요한지 경기 초반 결정하는 능력입니다. 흔히 포커싱이라고 부르죠. 이 팀이 이길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영역이고, 우승할 가능성이 높은 팀을 중점으로 경기를 해설하거든요. 그리고 그런 팀이 라운드를 가져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좋은 중계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50명이나 60명이 살아있어도 어느 팀이 좋은 성적을 낼지 일찍 알려주는 게 APL 중계진의 자랑입니다. 중계진이 전하지 못하는 부분을 다른 채널로 볼 수 있는 것도 APL의 장점이고요.
경기 초중반 우승 가능성이 높은 팀을 찾기 쉽지 않을 텐데, 어떤 근거로 우승 가능성이 높은 팀을 찾는지 궁금합니다
예를 들어 APL 시즌2 결승에서 콩두 레드도트가 우승한 라운드가 있었는데, 대략 선수가 70명 정도 남았을 때 이 팀이 우승할 확률이 높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배틀그라운드가 운이 많이 적용되는 게임이라고 하지만, 선수들은 그 운을 뛰어넘을 정도로 변수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하거든요. 스크림에서 자기장이 잡히는 방향에 따라 어떻게 대응할 지 연습을 통해 미리 지켜봤다면, 이 팀이 이 상황에서 어떤 성적을 냈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거의 모든 연습 경기를 들어서 관전하고, 분석 자료를 남겨서 정리해두거든요. 그래서 방송 중 같은 자기장이 나오면 어떻게 행동할 지 알려드릴 수 있는 거죠. 그리고 김동준 해설도 경기의 큰 맥을 잘 짚어, 제 데이터와 같이 조합하면 경기가 어떻게 흘러갈 지 해설할 수 있다고 봅니다.
거의 모든 연습을 보고 분석할 정도면, 배틀그라운드에 대한 애정이 엄청난 듯합니다
제 인생을 바꾼 게임이거든요. 배틀그라운드 덕분에 제가 알려질 수 있고, 이 길을 갈 수 있었죠. 그리고 저를 선택한 사람들의 결정이 옳다는 걸 증명하고 싶고요. 잘하고 좋은 해설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그래서 김동준 해설처럼 되고 싶어 노력해봤는데 아무래도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힘들 거 같습니다. 알면 알수록 넘을 수 없는 벽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마음가짐과 몸가짐, 그리고 언행을 조심하면서 오래오래 사랑받고 인정받는 해설이 되고 싶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배틀그라운드 e스포츠 시청자들에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많은 분이 좋아해 주시는 만큼, 저에게 쓴소리를 해주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래도 모두 제가 좋은 해설이 되고, 배틀그라운드 e스포츠가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오래 사랑받을 수 있는 해설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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