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오브레전드

[이한빛의 티타임] 고인규 해설, LoL과 걸어온 2년 속 도전과 노력을 말하다

Talon 2018. 9. 27. 08:48
스포티비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LoL) 챔피언스 코리아(이하 롤챔스) 해설을 맡은 고인규는 2017 롤챔스 스프링부터 분석 데스크로 합류해 LoL과 인연을 맺었다. 스타크래프트2 및 타 종목 해설을 다년간 하며 다져진 기본기와 귀에 쏙쏙 박히는 깔끔한 목소리톤, 그리고 전직 프로게이머 출신이라는 부분 때문에 많은 LoL 팬들은 고인규에 대한 기대와 관심을 가졌다.

"분석 데스크를 진행하는 데 내용이 부실하다"는 비판 여론이 있었지만 고인규는 노력에 노력을 거듭한 끝에 2017 롤챔스 서머 결승전을 기점으로 해설로 포지션을 옮겼다. 그는 2018 롤챔스 스프링 포스트시즌에선 밴픽 구도를 정확하게 예상하는 등 데이터를 기반으로 해설을 진행하며 개선된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올해 치러진 아시안게임에선 사우디아라비아 등 타 지역 선수들의 솔로 랭크 영상까지 확인할 정도로 준비성 또한 뛰어났다. 그런 그의 열정과 노력에 팬들 역시 호의적으로 변해갔고, 2018 LoL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중계진 합류로 가치를 인정받았다.

LoL과 함께 한 고인규의 2년은 어땠을까. 시즌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가 방송과 휴식을 병행하며 다가올 롤드컵 중계 준비 중인 고인규를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나눴다.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로 활동했고 은퇴 후에 스타크래프트2 해설을 맡았다. 어떻게 스포티비 LoL 중계에 합류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처음엔 김하늘 PD가 같이 해보자고 권했는데 절대 안 한다고 했다. 많은 선배들이 많이 고사하셨다고 하더라. 그만큼 LoL이란 게임이 진입장벽도 높고 기존 중계진의 틀을 넘어설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정받기 어려울 것 같았다. 김하늘 PD가 배려를 해줬음에도 한사코 거절했는데 성승헌 캐스터가 분석 데스크부터 시작해서 실력을 만들어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의해주시는 등 신경을 많이 써주셨다. 감사한 일이니 수락했지만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LoL은 스타크래프트와 무척 다른 게임이다. 익숙하지 않은 게임의 분석 데스크로 들어가기 위해선 이해도를 갖추는 것이 필수였을 텐데 어떤 준비 과정을 거쳤나
나는 해설하는 종목에 올인하고 다른 게임에 손을 대지 않는다. 스타크래프트 중계 때도 LoL은 보긴 했지만 해보진 않았다. 분석 데스크 제의 후에 처음으로 LoL을 해봤는데 입문자가 접하기엔 굉장히 어려운 게임이다. 쌓여있는 역사가 길어서 챔피언이나 용어가 어려웠다. 우선 알아야 하니 많이 해보자고 했다. 당시에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는 것을 중점으로 잡았다. 말도 안 되게 많이 했다. 작년엔 눈 뜨면 게임을 켜고 6시간 이하로 자고 경기들을 챙겨봤다. 랭크 게임을 3500게임 이상 했다. 

그 정도로 많은 게임을 했다니 놀랍다. 조금 조심스러운 질문이지만 배치 고사 후에 어느 티어를 배정받았고, 지금은 어느 티어에 있나
분석데스크 들어가기 전에 배치 받았을 때 브론즈 1이었다. 그래도 프로게이머 출신이니 더 끌어올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포지션, 챔피언 상관없이 '난 무조건 잘할 수 있다'는 마인드로 계속했는데 브론즈 5까지 떨어지더라. 솔랭할 때 "내 잘못이 아니야. 너희가 못하는 거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나. 그렇게 브론즈 5까지 떨어지고 나니 장기적으로 가면 티어도 밝혀질 테니 해설을 그만둔다고 말할까는 고민도 들었다. 생각만큼 게임이 풀리질 않으니 어떻게 하면 티어가 오를지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결국 난 결국 RTS만 잘하는 사람라는 것을 인정하고 패치별 OP 챔피언들 위주로 해봤다. 그렇게 하니까 티어가 조금씩 오르긴 하더라. 브론즈5에서 골드까지 가는 것이 말도 안 되게 어려웠다. 골드에서 플래티넘을 가는 것은 2주도 걸리지 않았다. 그때 효율적으로 티어를 올리는 방법을 깨달았다.

해설을 하면서 방송을 자주 못 했던 것은 당시 낮은 티어와 그에 대한 비판 때문에 그런 것인가
원래부터 방송을 하고 싶었지만 워낙 비판을 많이 받고 있으니 하지 못했다. 비판을 받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내 티어를 궁금해했고 당시 내 티어가 플래티넘이었다. 난리가 날까 봐 방송을 켜지 못했다.

브론즈 5부터 올라왔단 이야기를 인터뷰에 실어도 되는건가
제발 해달라. 지금 다이아 4에 있다. 사람들이 "롤 해보긴 해봤냐"라든지 "한 판도 안 해본 티가 난다"라고 말할 때마다 너무 속상했다. 목숨 걸고 열심히 하고 있는데. 이번 시즌도 게임을 보는 것 위주로 하고 있다 보니 랭크 게임수가 줄긴 했지만 그래도 1500경기 이상이다.

처음엔 내가 LoL 선수 출신이 아니니 플래티넘까지만 찍어도 괜찮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커뮤니티에 고인규 마스터설이 돌더라. 해당 게시글을 보니 "고인규는 마스터지만 게임을 잘 볼 줄 모를 뿐이다"라고 써있었다. 마스터가 게임을 못 본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방송을 하고 싶어서 다이아를 목표로 잡고 열심히 했다. 

다시 해설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분석 데스크로 LoL 해설 관련 일을 처음 시작했다.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나
2주차에 접어들고 SK텔레콤이 이겨서 인터뷰를 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SK텔레콤의 파급력에 대해 들어보긴 했어도 체감할 해보지 못했다. 그때 '페이커' 이상혁이 인터뷰를 했는데 '헬리오스' 신동진이 "(이상혁이) 고인규를 닮았다"라고 말했다. 내가 그날 실시간 검색어 2위까지 올랐다. 하지만 이 말은 스타2 팬들에겐 재밌게 다가갈 수 있지만 LoL 팬들이 좋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음을 몰랐다. 그날 "제대로 된 질문도 안 하면서 그런 말이나 하고 있냐"는 피드백을 받았다. 그때 제일 큰 충격을 받았다. 첫 주차에선 목소리 좋고 스포티비가 부족했던 부분을 채워주는 사람이란 말을 들으며 희망차게 시작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는데 또 다른 비판을 듣지 않기 위해서는 결국 마음을 가다듬고 인터뷰 수준을 끌어올릴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당시엔 끝내 극복하지 못했다. 원래 난 이현경 아나운서가 리드할 때 받쳐주는 보조 MC의 역할이었다. 그만큼 게임 이해도가 깊지 못했고 선수 출신이 있으니 나는 받쳐주는 역할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여론이 좋지 않아 주눅들게 됐다. 
우여곡절 끝에 해설로 합류하게 됐다. 사실 분석 데스크 시절의 경험이 있어서 해설로 포지션을 옮겼을 때도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을 법한데 
처음부터 오프라인 중계를 하고 싶지 않았다. 온라인 중계를 조금씩 하면서 감을 익히고자 했다. 그런데 2018 스프링 개막 1주일 전부터 갑자기 온라인 중계가 없어진다고 하더라. 그때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기존에 함께 중계하던 이기민 캐스터, 신동진 해설, '빛돌' 하광석 해설도 함께 하지 못하게 됐다. 그 사람들 자리에 내가 갑자기 들어가게 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었다.

분석 데스크와 해설은 분명히 해내야 할 역할이 다른 영역이다. 해설로 들어가면서 참고하기 위해 눈여겨본 해설이 있었다면
선수 출신이 아닌 김동준 해설과 하광석 해설이었다. 선수 출신과 아닌 사람이 경기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은 설득력부터 다르다. 물론 김동준 해설과 하광석 해설은 경험이 많고 영향력이 커서 예측과 분석이 가능하지만 나는 그만한 경험이 없다. 그래서 데이터 위주로 가려고 가닥을 잡았다. 김동준 해설은 게임도 잘 보시지만 데이터 활용이 훌륭해 롤모델로 삼으려고 노력했다. 

아이템 이름을 헷갈리거나 스킬을 잘못 설명하는 등 여러 실수가 나왔다. 실시간으로 경기를 보면서 오프라인으로 중계까지 해야 한다는 긴장감에서 나온 것이었는지
그냥 실력 부족이었다. 데이터는 방대한데 머리에 쌓여있는 것이 없었다. 그동안 경기를 본 사람들과 중계해온 분들은 몇 년의 내공이 있다. 나는 아직 미숙해서 실수를 안 할 수가 없었다. '강퀴' 강승현도 선수 출신으로서 경기를 보고 분석을 해야 하는데 내가 옆에서 삽질을 하니 케어해주고 싶어도 시야가 좁아져 녹록치 않았다. 여러모로 호흡이 안 맞을 수밖에 없었다. 난 승현이를 믿고 있지만 내가 오히려 민폐를 끼친 부분도 있어서 굉장히 미안하다. 서머에 함께 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스프링은 게임을 많이 하긴 했지만 하는 것과 보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게임을 한 것은 LoL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높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보는 것엔 익숙하지 않았다. 당시 성승헌 캐스터가 게임수를 줄이고 많이 봐야 한다고 피드백 해주셨다. 그때부턴 방향을 바꾸기 위해 팀에 요청해서 스크림을 관전하거나 대충 보던 타 지역 대회도 집중해서 봤다. 또한 OGN에서 중계할 때 글로벌 중계로 보고 혼자 생각하고 정리한 다음, VOD를 보면서 내 생각과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기도 했다. 

그래도 2018 스프링을 거치며 점차 나아지고 있단 평을 들었다. 발성 자체야 워낙 좋은 편이지 않은가
틀린 말을 잘 들리는 목소리로 당당하게 해서 더 욕을 먹었다.

말 나온 김에 지금껏 한 실수 중에 가장 민망한 것을 꼽아보자면
너무 많다. 입 밖으로 내보낼 때는 모르다가 1~2초 후에 망했다고 깨달을 때가 있다. 최근엔 '투신' 박종익의 라칸이 봉인 풀린 주문서 강타로 진입해서 오브젝트를 먹었는데 누가 먹었는지 몰라서 정정했던 때가 있다. 또 한번은 포식자 룬을 든 자르반 4세가 눈앞에 있는데 포식자가 아닐 수도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 적이 있다. 분명 늑대가 그려져 있는데 감전 룬이라고 말을 해버린 것이다. 이 밖에도 내가 저지른 실수들이 머릿속에 박혀있다. 나는 내 방송을 늘 모니터링 하는데 스프링엔 내 자신이 부끄러워 모니터링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런 중계를 들으셔야 했던 시청자분들께 죄송한 마음이었다. 왜 하차하지 않았냐고 물어볼 수 있겠지만 흔치 않은 기회인 만큼 어떻게든 극복하고 싶었다.

해설 초기에 비판을 받은 또 다른 부분은 SK텔레콤에게 늘 좋은 이야기만 해준다는 것에서 비롯된 'SK텔레콤 편파'였다
SK텔레콤 경기를 처음 해설했을 때 내가 SK텔레콤에 몇 년 있었는지를 자랑스럽게 말한 적이 있었다. 내 딴엔 SK텔레콤 편파라고 생각을 안 하고 그저 e스포츠에 얼마나 오래 있었나를 어필하고 싶었다. 친정팀이긴 하지만 SK텔레콤 선수단에서 나를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팬들에게 "안 궁금하다", "SK텔레콤 편파다"라는 피드백을 받았다. 팬덤이 강한 팀에 대해 좋을 이야기를 SK텔레콤 출신인 내가 말하니 편파라고 받아들였을지도 모르겠다. 내 해설을 모니터링을 해주는 아내에게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쪽으로 치우치게 들리는 부분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때부터 신경을 쓰기 시작하니 비판은 어느 순간 잦아들었다.

꾸준한 노력 덕인지 서머에선 괜찮은 해설이란 평가를 받았다. 이번 서머의 해설만 놓고 자평을 해보자면
스프링 때 밑바닥을 찍었다. 팬들이 나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져서 스프링 대비 좋은 평가를 받았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노력했으니 조금이나마 나아질 수밖에 없다. 전체적인 해설로만 놓고 보면 지금도 형편없지만 예전에 비하면 발전한 것 같아 뿌듯하다.

서머에 들어 해설이 교체됐다 
중계진이 자주 바뀌는 것은 다른 종목 해설할 때도 흔히 있던 일이라 그러려니 할 수도 있지만 강승현과 더 해보고 싶었다. 내가 빚진 것이 너무 많았다. 노력했으니 서머 땐 합이 잘 맞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이제 롤챔스 쪽으로 이야기를 해보자. 이번 서머는 간략하게 평가해보자면 
LoL은 게임사가 관심을 많이 갖고 패치를 자주해서 연습을 열심히 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만든 부분을 좋아한다. 보는 분들 입장에선 좋았던 것 같다. 향로 메타를 한 번 겪으면서 지루한 게임 위주로 나왔지만 서머 전 패치를 통해 게임 템포가 전반적으로 빨라졌다. 그런 와중에 그리핀이 치고 올라올 줄 몰랐다. 챌린저스에서 몇 연승을 했다는 것과 롤챔스에서 먹히느냐는 별개의 문제 아닌가. 그런 편견을 깼다는 점에서 놀랐고 대단한 팀이라고 생각한다. 

네 팀이 13승 5패에 승자승 규칙 및 승점으로 1~4위가 갈릴 정도로 박빙이었다. 이 정도로 치열할 것이라 예상했나
나는 그리핀이 1라운드에서 단독 1위에 서는 것을 보고 2라운드에서 그 기세를 이어갈 줄 알았다. 2라운드에 접어드니 많은 것이 달라지긴 하더라. 전반적으로 원톱을 찾아보기 어려웠던 시즌이었다. 물리고 물리는 상성 관계가 있어서 한마디로 정리하기 어렵다. 

서머 전엔 어떤 팀이 잘할 거라 예상했나? 그리고 그것이 서머에서 어느 정도 들어맞았는지
킹존이 잘할 것이라 생각했다. 스프링 때 경기력을 이어갈 거라 생각했는데 MSI의 여파도 무시하기 어렵다. 스케쥴이 빡빡하다 보니 팀적으로 배려해준다고 해도 그 정도론 피로도를 해소하지 못했던 것 같다. 선수들도 팬들이 관심을 많이 가져주니 그만큼 성적이 안 나왔을 때 커뮤니티를 멀리해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 자괴감도 많이 들고 힘들었을 것 같다. 그런 것들이 겹쳐 독주로 이어지지 못했던 것 같다. 

몇몇 롤챔스 참가팀에 대한 개별 평가를 부탁한다
SK텔레콤은 코치진과 선수단이 지쳐있단 느낌이다. 항상 최고가 되기 위해서 꾸준히 노력하려고 하지만 밑에 있는 팀은 SK텔레콤을 잡기 위해 더 많은 투자와 노력을 한다.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경기력에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하지만 늘 정상에만 있을 수는 없다. 떨어지는 시기가 올 수 있지만 어떻게 이겨내느냐에 따라 사람들이 기존에 기억하던 SK텔레콤으로 돌아오느냐 혹은 더 어려운 시기를 보내느냐로 갈릴 것 같다. 앞으로가 더 중요할 것이다. 

kt는 많은 기대를 가지고 있던 팀이다. 탑클래스 선수들이 많이 있다 보니 하나로 뭉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점차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kt의 모습이 되어가는 것 같다. 이렇게 되어야 했던 팀인데 다소 늦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서머 결승전이 펼쳐지기 전 진행된 아시안게임에서 '클템' 이현우와 호흡을 맞췄다 
연락이 오기 전까진 당연히 안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마음 정리를 하고 있는데 이틀 전에 갑작스레 연락이 왔다. 김하늘 PD의 연락을 받고 누구와 같이하나 물어보니 이현우 해설이라고 하더라. 그 전엔 다른 종목 중계할 때 같이 밥 먹을 기회가 있어서 밥 먹은 것이 전부였다. 당시에 정말 예의 바르고 쾌활하고 재밌는 사람이란 생각을 갖고 있었다. LoL에선 '전클동(전용준-이현우-김동준)'이 독보적이다 보니 내가 호흡을 맞춰보면 어떤 그림이 나올까 라는 생각을 했다. 좋은 기회지만 한편으론 걱정이 됐다. 이현우 해설이 먼저 연락을 줘서 중계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성승헌 캐스터도 베테랑이니 난 이번 중계에서 버스를 탔다.

리허설이 없었지만 호흡이 굉장히 좋았다.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고 했는데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 조율했나
나는 메인이 아닌 서브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나는 경기를 보는 눈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다른 부분을 보완해주면서 서포트 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현우 해설과 성승헌 캐스터는 이번 아시안게임 중계에서 분위기에 따라 치고 나가는 모습이었다. 내가 다른 사람들처럼 오버할 필요 없이 간간히 한 번씩 애드립만 하면 조합적으로 괜찮겠다 생각했는데 잘 맞아떨어졌다. 거기다가 이현우 해설이 내가 부족한 부분을 잘 메꿔줬다. 이번 중계를 통해 내가 해야 할 역할이 뭔지 깨달았다. 

첫 공중파 방송에서 장기간 퍼즈가 발생했다. 이런 퍼즈가 처음이었는지 눈에 띄게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마지막엔 이현우 해설과 성승헌 캐스터에게 한 수 배워야겠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퍼즈가 나오면 매우 긴장하게 된다. 스포티비가 퍼즈로 고생했을 때 난 해설이나 분석이 아니었기 때문에 막연하게 힘들었을 거라 생각만 했는데 직접 느껴보니 눈앞에 캄캄해지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다른 종목에선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사람들이 웃어줬는데 LoL을 보는 분들은 나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니 사릴 수 밖에 없더라. 성승헌 캐스터도 애드립도 가능하면 안 치고 깔끔하게 하려고 한다. OGN은 능수능란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나도 그렇게 하고 싶은데 시청자 입장에선 받아들일 준비도 안 됐을 테고 나도 그 정도로 할 자신이 없었다. 아시안게임에서의 퍼즈는 옆에 대단하신 분들이 계시다 보니 정말 수월하게 풀어나갈 수 있었다. 멘탈도 많이 안 나갔다. 

다 끝내고 나서 반려견에게 영상편지 보내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LoL 팬들이 보기엔 저런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편한 모습이었는데
그런 것도 다른 종목 할 때는 아무렇지 않게 했던 행동들이다. LoL을 중계하면서 근 2년 만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처음으로 해봤다. 편한 말을 LoL 중계하면서 해본 적이 없다. 항상 신중하게 말을 고르고 절제하며 말했다. 2년 동안 농담을 거의 안 했던 것 같다. 그나마 했던 말들도 따가운 눈초리를 받았다.

아시안게임 2일차에선 긴장이 풀렸는지 각종 드립이 터져 나왔다
내가 원했던 중계 분위기가 그런 분위기였다. 스타크래프트2 '공허의 유채꽃'이 핫했을 때도 채민준 캐스터와 유대현 해설이 날 갈굴 때 옆에서 한마디 하는 역할이었다. 아시안게임 이틀째가 딱 그런 느낌이었다. '그때 참 재밌었는데'라는 생각과 함께 처음으로 환하게 웃었다. 이전엔 항상 자책하고 괴로워하느라 웃을 수가 없었고 여유가 없어서 다른 해설진과 아이컨택도 못 했다. 2년 만에 처음으로 즐기며 해설을 하고 고개를 돌릴 여유도 생겼다. 그런 느낌은 정말 오랜만이어서 하면서도 편하고 재밌었다.

아시안게임 후 이현우-성승헌-고인규, 일명 '문문자(문과-문과-자퇴)' 조합을 보고 싶다고 하는 반응도 있었다
나도 더 해보고 싶다. 아시안게임은 국가대항 경기여서 한국을 응원하며 중계할 수 있었다. 이 조합으로 롤챔스를 중계한다면 다른 방향으로 가야 하며 지켜야 할 선이 있겠지만 한층 더 여유롭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현우가 순발력이 정말 좋아서 깜짝 놀랐다. 해설 경력이 나와 비슷한데 아무리 홈그라운드라도 표현력이나 센스가 뛰어나다.

앞으로 LoL 해설을 계속한다면 어떤 해설로 기억되고 싶은가
이번에 해설을 하면서 많이 배웠고 나를 돌아볼 수 있게 됐다. 준비하는 방법이나 다른 종목을 할 때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깨달았다. 오히려 팬들이 냉철한 시선으로 봐주는 부분이 있다 보니 말할 때 나오는 안 좋은 습관들도 알게 됐다. 앞으로 해설 인생을 더 하게 됐을 때 성장하게 될 계기가 됐다.

추석 인사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부탁한다 
그동안 해설 들으시면서 고막 테러를 많이 당하셨을 것 같다. 정말 반성하고 있다. 더 열심히 노력했지만 부족했던 부분은 죄송하다. 앞으로 기회가 있으면 조금씩 더 발전하는 모습 보여드릴테니 따뜻하게 맞이해주셨으면 좋겠다. 추석 때 푹 쉬시고 4년 만에 국내에서 열리는 롤드컵에 많이 관심 가져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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