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전팔기 그리핀, 아직 롤드컵이 남았다
딱 한 걸음이 모자랐다. 그리핀이 이번에도 우승 트로피 앞에서 좌절했다.
지난 8월 31일 열린 ‘2019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LCK) 서머’ 결승전에서 그리핀은 SKT T1에게 패배하며 또 다시 우승을 코앞에서 놓쳤다. 이번이 세 번째 도전인 만큼 그들에게 LCK 우승은 절실했다.
그리핀은 지난 시즌과 마찬가지로 정규 리그 1위로 결승전 티켓을 따냈다. 특히 그리핀은 뒷심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뒤집고 2라운드 마지막까지 좋은 경기력을 유지했다.
하지만 ‘큰 경기에 약하다’는 꼬리표는 결국 떼어 내지 못했다. 일부 팬들 사이에서는 만년 2위에만 그치는 ‘콩라인의 저주’를 받은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돌고 있다. 스프링 결승과는 다르게 SKT를 상대로 1세트를 따낸 것은 위안이었다.
자연스레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쉽(롤드컵) 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피어올랐다. 그리핀은 SKT와 함께 롤드컵 진출을 확정 지은 상태다. 리프트 라이벌즈에서도 중국팀에게 패하며 큰 무대에서의 약점을 드러낸 바 있기 때문에 그리핀의 롤드컵 무대는 기대보단 우려가 앞서는 상황이다.
그리핀이 우려를 씻고 롤드컵에서 활약하기 위해선 몇 가지 개선해야 될 부분이 있다.
그리핀의 강점은 선수 개개인의 뛰어난 기량에 있다. 라인전에서부터 상대를 압도하며 최대한 이득을 챙긴 후 중반부터 물 흐르듯이 승리를 가져간다. 이 과정 속 핵심 선수는 ‘쵸비’ 정지훈과 ‘타잔’ 이승용이다.
하지만 이 둘의 경기력이 꼬이면 무기력하게 패하는 모습을 빈번히 보인다. 실제로 결승전에서 SKT가 타잔의 동선을 묶어버리자 그리핀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도란' 최현준, '바이퍼' 박도현, '리헨즈' 손시우가 조금 더 능동적인 플레이를 펼칠 필요가 있다.
임기응변 능력도 더욱 가다듬어야 한다.
결승전 1세트에서 SKT가 '아칼리'와 '레넥톤'을 선택하자 그리핀은 당연히 레넥톤이 탑으로 올 것이라 예상했다. 그래서 비교적 레넥톤과 상대하기 쉬운 모데카이저를 탑으로, 사일러스를 미드로 기용했다. 하지만 밴픽 마지막 순간 SKT는 아칼리를 탑으로, 레넥톤을 미드로 보내는 전략을 택해 상성 간의 불리함을 없앴다.
이에 그리핀도 라인 스왑을 했다면 대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경험이 적은 '도란' 최현준을 미드로 기용하기에는 위험이 부담이 너무 컸다. 그리핀은 SKT의 전략을 눈뜨고 당할 수밖에 없었다.
국제 무대에 나가면 이러한 변수는 더욱 많다. 실제로 지난 리프트 라이벌즈에서 그리핀이 맞붙었던 펀플러스 피닉스가 ‘판테온’을 미드로 기용하자 그리핀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유럽 리그의 강자 G2는 ‘가렌-유미’와 같은 LCK에서 상상도 하지 못할 픽들을 망설임 없이 꺼내온다.
그리핀이 롤드컵에서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의 대처 능력을 한 단계 더 끌어 올려야 한다.
선수들의 심리적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LCK 결승전에서 공개된 동영상 클립 ‘우승해보살’에서 쵸비와 타잔은 결승전만 가면 이겨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말도 많아지고 울렁증이 생긴다고 고백했다.
김대호 감독은 이런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콜이 없는 한타’, 더 나아가 ‘콜이 없는 경기’를 지향한다고 말했지만 이는 대안일 뿐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해주지 못한다.
특히 이번 결승전마저 패하면서 선수들이 받은 정신적 데미지는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1-3이라는 일방적인 스코어 역시 그리핀 선수들의 자존심에 적잖은 상처를 냈을 터다.
때문에 롤드컵 무대 역시 설렘 보단 부담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크다. 이번 롤드컵은 해외에서 치러진다. 그리핀으로선 첫 원정 경기를 뛰는 셈이다. 성적에 대한 압박감에 낯선 환경이 주는 긴장감이 그리핀을 옭아맬 수 있다.
코칭 스태프와의 많은 대화 뿐만 아니라 전문가의 심리 상담을 통해 분위기를 다 잡을 필요가 있다.
LCK에 등장한 지 2년이 채 넘지 않았지만 그리핀은 3차례나 준우승을 거뒀다. 누군가는 이를 실패라 규정할 수 있겠지만 개의치 않아도 된다. 칠전팔기.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째 일어난다는 의미다. 그리핀의 전성기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롤드컵이라는 최고의 무대에서 못 다 이룬 꿈을 이뤄낼 수 있을지, 그리핀의 가을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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