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 II

[박상진의 e스토리] 우승자가 된 GSL 해설가, 전태양

Talon 2020. 6. 9. 13:01


2020년 GSL 시즌 1에서 전태양이 우승했다. 해외대회에서는 우승했지만 스타리그에서 GSL로 이어지는 RTS 장르 국내 대회에서는 데뷔 후 4568일 만의 일이다. 10년이 넘는 시간 만에 첫 국내 개인리그 우승도 의미가 있지만, 전태양은 자신이 해설로 나서는 대회에서 우승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내가 전태양을 처음 봤을 때만 하더라도 표정에서 자신감이 없다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해설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전태양은 능글능글한 사람으로 바뀌었고, 결승 이틀 후 만난 전태양은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자신감 넘치는 표정이었다. 우승이 사람을 이렇게 바꿔놓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코로나19로 결승전 현장 인터뷰가 불가능했기에 늦게나마 전태양과 만나 우승과 함께 선수와 해설을 겸업하고 1년이 지난 소감을 들어보았다. 전태양은 그 어느 때보다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우승도 했으니 자기소개가 바뀔 거 같습니다. 소개부터 부탁드려요
2020 GSL 시즌1 우승자이자 아프리카 프릭스 소속 스타크래프트2 선수 전태양입니다.

GSL 해설도 하고 있죠
그렇습니다.

이제 우승했으니 해설은 크게 중요하지 않아서 소개에서 뺐나요
해설가 자리도 소중하죠. 다만 국내 개인리그 첫 우승이라 포커스를 선수에 맞췄습니다.
 


데뷔 후 4568일 만에 국내 개인리그 우승인데, 소감은 어떤가요
상금이 1억이 넘는 해외 대회에서 연달아 우승했던 적도 있지만, 국내에서는 처음이네요. 제 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우승해서 좋습니다.

해설 시작 전까지만 해도 자신감 없는 모습을 볼 때가 많았는데, 해설 시작하고 나서는 사람이 능글능글해졌네요
해설을 시작하면서 게임 읽는 능력도 올라갔는데, 박상현 캐스터와 황영재 해설과 함께 방송하면서 성격도 외향적으로 바뀌었어요. 지금은 복무 중인 박진영 해설의 도움도 많이 받았죠.

우승 후에 방송 무대 인터뷰에서 소감을 정말 남의 우승 이야기하듯 덤덤하게 말한 것도 놀라웠어요
그런가요? 저는 너무 오랜만에 우승해서 얼떨떨했어요. 그날 밤이 되어서야 실감이 됐죠. 트로피 키스 세레모니를 더 화려하게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게 너무 아쉬웠습니다.

그럼 우승 한 번 더하면 되겠네요
그게 최고의 플랜이죠.
 


말은 이렇게 편하게 하면서도 실제로 우승은 진짜 하고 싶었죠. 결승 전 개인 방송에서 승부 예측을 했을 때 본인의 0대 4 패배를 말했을 정도로요
GSL 준우승을 했기에 꼭 우승해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요즘 우승해서 트로피 모으는 욕심이 생겼거든요. 그리고 데스노트는 제가 우승하겠다는 사심만 담아 한 게 아니라, 시청자들이 재미있게 봐주셨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반응이 좋아서 행복하네요.

그래도 명색이 해설인데 예상이 틀리면 민망하지 않나요. 꽤 많이 틀린 거로 아는데
꽤 많이 틀린 건 아니고, 틀린 게 조금 더 많은 정도죠. 다만 제가 박령우나 조성주와 이신형 등 우승한 선수들이 승리한다고 하면 바로 다 떨어지더라고요. 제가 아직 오프라인 무대에서 변수를 제대로 못 읽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자신의 실력이 다 나오는 온라인 대회였으면 제 이야기가 다 맞았겠죠.

GSL 결승이 온라인으로 진행되면 김도욱이 우승했겠네요
그렇죠. 근데 도욱이가 긴장을 너무 했어요. 기본기가 정말 좋은 친구라 제가 질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도 본인 결승을 앞두고 한 예측에서 1대 4를 말한 건 해설로서 양심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요
경기 중에 같이 물도 마시며 이야기를 했는데 도욱이가 너무 긴장되어 컨트롤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반대로 자신감이 붙었죠. 실제로 도욱이가 온라인에서 저한테 전적이 앞서요. 그날이 안 풀린 날인 거죠.
 


바로 상대 심리상태 분석까지 가능하다니, 해설이라서 가능했던 거죠
해설자를 하다 보니까 상대 선수들의 약점이 조금씩 보이더라고요. 해설에 시간을 쓰는 만큼 연습 시간이 줄긴 하지만 무대 경기에서는 피지컬보다 스마트함과 노련함이 더 중요하고, 해설을 시작한 이후로 저 부분을 더 배웠어요. 그게 이번 결승에서 제대로 나타났죠.

해설자 자리가 거의 치트키 수준인데, 이러다가 해설-선수 겸업이 금지될 수도 있겠네요
그렇게 되면 정말 아쉬울 거 같습니다. 요즘 해설하는 매 순간이 행복해서 둘 중 하나를 그만둬야 한다면 슬플 거 같아요.

본인이 우승하면서 이원표 해설도 이번 시즌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어 좋아했을 거 같습니다
원표형도 고맙다고 하고, 저도 고맙다고 했죠. 나중에 이원표 카페 사장님이 운영하는 대전 투썸플레이스에 놀러 오면 제대로 커피와 디저트를 대접한다고 하니 기대하고 있어요. 경기가 있는 날마다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와서 중계하거든요.
 


경기 이야기를 좀 해보죠. 4대 0이 나왔지만 내용은 일방적이지 않았어요. 특히 1세트는 불리한 상황을 뒤집었습니다
제가 전투 순양함과 메카닉 빌드를 준비했는데, 도욱이가 유리한 상황이었지만 처음 상대하는 빌드라 그런지 시간이 지날수록 대처에 문제가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경기가 뒤집어졌어요.

당시 중계진이 불리하다고 애매하게 빌드를 틀었으면 졌을 텐데, 밀고 나가서 이겼다고 했죠
해설을 하면서 노하우가 생겼어요. 이게 불리한 상황인지, 그리고 이 상황을 벗어나려면 뭘 해야 하는지 같은 판단이 좋았죠. 타이밍도 잘 잡았어요.

2세트에서는 서로 전진 건물을 하려다 만났죠. 당황스럽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했을 텐데
서로 연습에서는 겪지 못한 상황이었어요. 누가 덜 당황하느냐의 문제였는데, 이번에는 제 결승 경험들이 도움을 준 거 같아요. 저는 유연하게 대처했는데 도욱이는 당황했더라고요.

거기서 본인은 사신 확장을, 김도욱은 2병영 3사신을 선택했죠. 평소 2병영 3사신이 안 좋다고 했고, 그걸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2병영 3사신이 사신 확장 상대로 나쁜 이유는 단 한 번의 타이밍을 무조건 잡아야 하거든요. 상대 앞마당 확장을 취소시켜야 하는데, 그날 도욱이가 그 타이밍을 놓쳤어요. 이후는 제가 무조건 유리했죠. 평소에 해설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판단을 내린 거 같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해설 겸업은 정말 사기인 거 같은데요. 3세트는 김도욱의 날카로운 밤까마귀 견제를 받았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모르는 빌드를 상대했죠. 참신하더라고요. 근데 도욱이의 밤까마귀의 자동 포탑 위치 선정이 나빴어요. 사령부나 건설 로봇 위주로 목표를 잡았다면 제가 추격할 힘을 잃었을 텐데 부속 건물을 부수더라고요. 그 순간 제게 기회가 생겼고, 모르는 상태에서 피해를 입은 것 중에서는 나쁘지 않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4세트에서 또 서로 전진 병영을 하려다 건설 로봇이 서로 만났죠. 하루에 두 번 이러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상대 건설 로봇을 확인하자마자 제가 유리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스코어에서 밀리는 도욱이가 자신이 생각한 걸 못하게 됐고, 아마 더 당황했을 거라고 판단했죠. 그래서 공격적 플레이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김도욱이 불리한 상황에서도 위협적인 견제 플레이를 연달아 성공시켰어요. 중계진 사이에서는 본인이 방심하는 단점이 나왔다고 하는데, 당시에는 어땠나요
방심 맞아요. 유리하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그동안 놓친 트로피들이 눈앞에 아른거리더라고요. 그 순간 집중이 풀리며 위기가 찾아왔어요. 제 장점은 긴 경력을 바탕으로 한 긴장 없는 플레이인데, 이게 어느 순간 이후부터는 방심으로 이어지더라고요. 알면서도 잘 안 고쳐지는 단점입니다.

우승 후 인터뷰에서 이제 해설로도 제대로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어서 기쁘다는 부분이었습니다
해설 전업이면 모르겠는데 저는 선수 겸업이니만큼 성적도 잘 내야죠. 저보다 잘하는 선수들의 플레이를 평가하면 자신감도 사라지는데, 이제 스스로 부끄러울 게 없죠. 해설을 시작하면서부터 꼭 성적을 잘 내야겠다고 다짐했는데, 그걸 이뤄내서 좋습니다.
 


4568일만의 우승 인데, 주위에서 축하도 엄청났을 거 같아요
마침 아프리카 프릭스에 입단하고 첫 경기에서 승리하고 우승까지 차지해서 서수길 대표님이 정말 축하해 주셨어요. 항상 우승하라고 했는데 매번 못해서 죄송했거든요. 입단하자마자 증명을 해서 정말 기뻤습니다. 그리고 부모님도 제 국내 개인대회 첫 우승을 축하해주셨죠. 경기를 하는 저보다 보는 부모님이 더 긴장하시거든요. 특히 이번에는 실시간으로 경기를 보셔서 우승이 더 실감 난다고 하시더라고요. 하지만 현장에 못 오셔서 정말 아쉬워하셨어요. 팬들, 특히 제 팬들은 10년이 넘게 응원해주신 분들도 있는데 그분들도 축하해주시면서 현장에 못 오신 걸 안타까워하시더라고요.

주변 선수들도 많이 축하해줬죠
일단 프릭스 선수들이 축하해줬고, 예전 kt 시절 류원 코치와 대엽이 형이 축하한다고 해주더라고요. 나머지 선수들은 각자 생업에 바쁘거나, 이미 제가 상금을 벌 만큼 벌었고 해외대회 우승도 해서 굳이 이거 또 축하해야 하나 싶었을 거 같습니다. 선수들 사이에서는 제가 이미 '할 만큼 한' 사람으로 분류되는 거 같아요. 그리고 기억나는 게 박령우한테 우승 축하 문자가 왔더라고요. 조지명식에서 령우한테 당한게 많아서 다음 시즌 조지명식에서 한 번 령우를 다크의 조에 보내야겠다고 고민하던 순간에 귀신같이 문자가 온 거예요. 그래서 일단 고민을 좀 해보려 합니다. 박상현 캐스터나 황영재 해설, 이원표 해설과 진영이 형도 축하한다고 해줬죠.

이번 시즌 1은 해설로도, 선수로도, 그리고 개인방송 콘텐츠로도 성공한 시기 같네요. 특히 데스노트로 경쟁자들을 싹 탈락시킨 효과가 큰 듯 합니다
정말 제 모든 게 잘 풀리는 시기에요. 2017년에도 한 번 이랬는데, 그때는 그 시기가 좋은 시기인지를 몰랐죠. 이제는 꽃이 피고 봄인 줄 알았으니 더 열심히 살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데스노트에 대해서 설명을 좀 더 해주세요. 특히 우승 경력이 있는 선수들이 이번 시즌 영 기운을 못 썼죠
제가 예측을 반대로 해서 다 떨어진 거 같아요. 다들 저보다 잘하는 선수고, 모두가 인정하는 선수인데 다 탈락하고 한 수 아래라고 생각하던 제가 우승했거든요. 데스노트의 영향이 있던지, 아니면 제가 해설을 하면서 쌓인 노하우가 빛을 본 거 같아요.

해설을 잘못 만나서 다 떨어졌다는 이야기인가요
정말 이유를 못 찾겠어요. 지금 잘한다는 선수가 이신형-조성주-박령우 셋인데 다 탈락했어요. 한 명이라도 좋은 성적을 냈으면 뭐라도 분석을 하겠는데 이번 시즌 이변이라고 할 정도로 다 떨어져서 그 이유에 대해서 저도 고민 중입니다. 예측이 틀렸나 아니면 내가 잘했나 이런.

그 외에도 이번 시즌 테란이 득세했죠
지형지물을 이용해야 하는 테란 맵이 많았어요. 그래서 테란들이 잘했죠. 제 장점 중 하나가 전략적 요소를 잘 이용하는 부분인데, 그 부분을 잘 활용한 거 같습니다. 시즌2는 맵 구성이 힘싸움 위주로 바뀌는데, 이러면 주성욱-조성호 같은 힘 좋은 프로토스들이 올라올 거 같아요. 저그는 너프가 예정되어 있어서 다음 시즌도 쉽지 않을 듯합니다. 그래도 저그 중에서는 힘싸움에 강한 어윤수가, 테란에서는 이신형이 좋은 성적을 낼 거 같습니다.

벌써 시즌2 데스노트에 들어가는 건가요
그럴 리가요. 제 주관적인 평가입니다. 잘하는 선수들이니까요. 잘하는 선수들이라 빨리 떨어지면 선수로서 전태양에게는 좋은 일이죠. 이런 생각을 할 정도로 잘하는 선수들이 위의 네 명입니다.

그렇다면 시즌1 우승자 전태양은 다음 시즌 어떤 성적을 낼 거 같나요
정말 형편없을 거 같습니다. 전태양이라는 선수가 힘싸움보다는 전략적 색채가 강하고, 이번 맵에서는 그런 전략적 요소를 보일 여지가 적어요. 이건 정말 제 진심입니다. 시즌1 전태양의 모습은 나오기 힘들 거 같아요.

정말 너무하네요
...
 


우승자에게 매번 하는 질문이지만 이번에 첫 개인 리그 우승을 차지했으니, 상금은 어디에 쓸 생각인가요
부모님한테 용돈을 좀 드리려고 합니다. 아버지 생신도 얼마 안남아서 더 잘 챙겨 드리려고요. 그리고 연습을 도와준 '스페셜' 후안과 타임, 이신형, 이재선 네 선수에게도 한턱 내야죠. 특히 후안은 제가 우승하면 개인 방송에 출연해준다고 했는데 가기 정말 귀찮네요. 매번 저보고 뭐 해달라고한 게 많은데 그때마다 귀찮아서 우승하면 해준다고 한 게 많은데 우승하는 바람에 큰일이 됐습니다.

후안 이야기가 나온 김에 결승전 사전 영상에서 김도욱이 본인을 '보급형 후안'이라고 평가 한 거 아나요
보급형 후안이요? 그건 도욱이 진심이 아닐 거예요. 저도 결승 사전 인터뷰에서 도욱이한테 도발성으로 강하게 이야기했거든요. 사람에 대한 진심이라기보다는 결승전을 앞두고 있으니 기세 싸움에서 밀리지 않게. 도욱이도 진심은 아닌 거 같은데 정말 심하네요. 아무리 그래도 제가 후안하고 비교당하다니 자존심이 상합니다.

아무리 상황이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나를 후안하고 비교하냐 이런 거죠
저와 후안을 비교하자면 속도가 중요한 테란 동족전에서 혼자 탄 스포츠카와 다섯 명이 탄 채로 에어컨을 풀로 켠 경차를 비교하는 거죠. 저를 그렇게 비교하다니 기분이 상하네요.

후안하고 오래된 친구인 거로 아는데 이렇게 말한 거 후안이 알면 어쩌려고 하나요
후안은 외국인이라 일단 이 인터뷰를 못 볼 거예요. 그리고 본다고 해도 스스로 공감할걸요? 제가 후안 도와준 게 얼마인데요. 매번 리플레이 보내 달라고 하면 다 보내주고, 빌드 짜달라고 하면 다 짜주고. 8게임단 시절부터 알고 친하게 지냈고, 그때 도움을 많이 줘서 제 그런 부분을 후안이 좋아하는 거 같아요. 아무래도 타지 생활을 혼자 하니 외로운 부분도 있을 거고요. 저한테 많이 의지하는 친구죠.

오늘 인터뷰에서 개인 방송 이야기를 굉장히 자주 여러 번 언급했는데, 소개할 시간을 안 주면 저도 데스노트에 이름이 오를 거 같네요
아직 방송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습니다. 스타크래프트2에 대한 내용을 많이 다루려 할 거예요. 특히 스타2가 대회는 많은데 선수들 개인 방송이 적어서, 평소에 선수들이 뭘하고 지내는 지 같은 이야기와 함께 GSL 예상도 많이 하려 합니다. 하하하...

인터뷰를 마치며 우승자로서 팬들에게 한 마디 전해주세요
정말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여러분이 보내주신 응원 하나하나가 소중했고, 이제서야 보답한 거 같아 정말 기쁩니다. 앞으로 선수-해설 모두 나태해지지 않고 열심히 해서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