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할 팀은 두산 베어스입니다!
두산 베어스는 서울특별시를 연고지로 하는 프로 야구팀입니다. 한국야구위원회 소속이며, 송파구 잠실동에 있는 잠실야구장을 LG 트윈스와 공동 홈 구장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1982년 1월 15일 대전을 연고로 'OB 베어스'라는 팀명으로 대한민국 최초의 프로 야구팀으로 창단되었습니다.초대 단장은 박영민, 초대 감독은 김영덕 감독이었고 창단 첫 해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1985년부터 연고지를 서울특별시로 이전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중하위권을 기록하다가, 1994년 김인식 감독이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1995년, 2001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OB 맥주가 벨기에의 주류 기업인 인터브루에 매각되면서 1999년 1월 5일에 두산 베어스로 팀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2004년부터 김경문 감독이 감독을 맡고 있었는데 2011년 6월 13일 자진사퇴하면서 김광수 감독 체제로 2011시즌을 치뤘습니다. 그 후 2012시즌 전 불펜코치를 맡고 있던 김진욱 코치를 새로운 감독으로 선임하였습니다.
OB 베어스의 첫 경기는 MBC 청룡과의 경기로 박철순 선수의 4안타 2실점 완투승으로 승리했다. 이후 4월 중순부터 분위기가 반전되어 5월 2일 홈경기에서는 10승 5패로 단독 선두에 나섰습니다. 이후 9연승 등으로 시즌 4경기를 남겨두고 28승 8패로 전기리그 우승을 확정지었습니다. 후기리그에서도 좋은 페이스를 유지했으나 9월 29일 대구 삼성 전에서 박철순 선수의 11 2/3이닝 2실점 완투패로 종합 우승에는 실패했습니다. 그 경기에서, 또한 24승을 거뒀던 박철순 선수가 '요부 추간판 헤르니아'의 디스크 증상으로 한국시리즈 출전이 불투명해졌습니다.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15회 3-3 무승부로 승부를 결정짓지 못한 두 팀은, 다음 날, OB 선발 계형철 선수가 2회 6점을 내주는 등의 투구로 대패를 당했습니다. 그리고 3차전, 박철순 선수는 국소마취제을 맞으면서 3.1이닝 던지며 OB가 5-3으로 승리했습니다. 이후 4, 5차천에서 내리 이긴 OB는 6차전에 박철순 선수와 이선희 선수의 선발 맞대결에서 8회까지 3-3 균형이 이어졌지만, 김유동 선수가 9회 만루홈런을 쳐내면서 MVP에 선정되어 4승 1무 1패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1983년 시즌에는 박종훈 선수, 한대화 선수, 장호연 선수, 정선두 선수만을 신인으로 확보했고, 박철순 선수, 선우대영 선수, 강철원 선수 등의 주력 투수와 구천서 선수 등의 야수진도 부상을 당하면서, 결국 전기리그 6위, 후기리그 5위를 기록 순위가 5위로 하락했습니다. 그해 10월 14일, 김영덕 감독이 팀 부진의 책임을 지고 사임했습니다.
1984년, 새 감독으로 투수 코치였던 김성근 감독이 취임했고, 코치진도 보강되었습니다. 선수도 재일교포 최일언 선수, 홍신차 선수 등을 비롯해 신인 윤석환 선수, 김진욱 선수, 김광림 선수 등을 확보했습니다. 그리고 계형철 선수가 14승, 박상열 12승, 장호연 선수가 평균자책점 1위의 성적을 거두었고, 야수진에서도 부상 공백이 메워지며 9연승으로 치고 나갔습니다. 그러나 이후 6연패에 빠지며 삼성에게 전기리그를 내주었고, 후기리그에서도 초반에는 선두로 질주했지만, 8월 15일 부터 선두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마지막 두 경기에서 OB는 해태와, 롯데는 삼성과 맞붙었는데, 삼성은 롯데에게 일부러 패하면서 OB는 후기리그도 2위에 머물렀습니다.
1985년, OB는 연고지를 대전에서 서울 동대문 야구장으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그해, 전기리그는 2위를 기록했으나 후기리그는 5위로 마무리했습니다. 1986년, OB는 다시 구장을 잠실 야구장으로 옮기고, 전 연고지에는 빙그레 이글스가 창단되었습니다. 그해, 플레이오프 진출권이 달린 롯데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김형석 선수의 동점 홈런과 이후 안타로 4-3으로 승리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됩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 삼성에게 2승 3패로 패하게 됩니다. 1987년, 전기리그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되지만 해태에 2승 3패로 탈락하게 됩니다. 1988년, 개막전에서 장호연 선수는 무탈삼진 노히트 노런을 달성하게 됩니다. 이후 전기리그 3위, 후기리그 5위를 기록하게 됩니다. 시즌 후에 두산 그룹은 우승을 못한 김성근 감독과 재계약을 하지 않으려 했고, 김성근 감독도 사임하여 신용균 코치, 최주억 코치, 박상열 투수가 태평양으로 이적하게 됩니다.
1989년, 제3대 이광환 감독이 취임했습니다. 그는 선수들 개개인에 개성과 책임감을 믿고 맡기는 '자율 야구'의 기치를 들었으나, 오히려 10연패, 11연패를 기록하고 그 해 6월 19일 시즌 중 교체 되었습니다. 제4대 감독으로는 타격 인스트럭터였던 이재우 감독이였습니다. 그는 1990년 대행 기용되어 1991년 정식으로 감독에 취임했습니다. 하지만 그 해 9월 9일 시즌 중에 교체되었습니다.
제5대 감독은 최초의 선수 출신 감독으로 윤동균 감독이 내정되었고, 그는 남은 경기를 5할의 승률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였습니다. 1992년, 본격적인 첫 시즌에 그는 김민호 선수, 장원진 선수, 안경현 선수 등의 신예들을 대거 발탁하여 5위까지 순위를 끌어올렸습니다. 1993년에는 초반에는 5위에 머무르다가 9월부터 연승을 시작해 마지막 경기에서 LG에게 승리하며 3위로 6년만에 팀을 포스트 시즌 진출로 이끕니다. 그러나 준플레이오프에서는 오히려 LG에게 1승 2패로 탈락하게 됩니다.
1994년, 선발진은 김상진 선수, 권명철 선수, 강병규 선수 등의 젊은 투수로 구성되었고 불펜에는 마무리 김경원 선수, 노장 박철순 선수 등이 있었습니다. 타선에서도 김형석 선수, 김상호 선수의 중심 타선과 김민호 선수를 중심으로 한 수비진이 있었습니다. 개막전은 잠실 쌍방울 전이었으나 대통령이 시구를 하고 관전하는 것을 의식한 탓인지 선발 자원 4명을 투입하고도 패배하게 됩니다. 그리고 5월 중순 부터는 6,7위에 머물렀고 7위를 굳히는 형세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부진의 이유는 장호연 선수가 2승, 쌍방울에서 트레이드 해 데려온 강길룡 선수가 1승만을 기록한 것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9월 4일, 군산 쌍방울 전에서 1-2로 패배하자 윤동균 감독은 '몽둥이를 들겠다'고 했고 선수들은 이를 거부하자 윤동균 감독이 '맞기 싫은 선수들은 다 짐싸서 서울로 올라가라'라고 하였고 17명의 선수들은 이탈해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선수들 중 최고참인 박철순 선수는 '윤 감독과 같이 옷을 벗겠다'라고 사태를 무마시키려 했습니다. 결국 9월 14일, 윤동균 감독은 사태의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났고, 박철순 선수, 김상호 선수, 김형석 선수, 장호연 선수, 강영수 선수 등의 다섯 고참 선수들은 계약을 해지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팀 전력의 핵심이었기 때문에 부진했던 강영수 선수 만을 태평양으로 트레이드 하는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리고 남은 시즌은 최주억 코치가 감독직을 대행했습니다.
1995년, 제6대 감독인 김인식이 취임했습니다. 선수단 이탈 사건을 겪었으나 예상과 달리 연습생 출신의 김상진 선수가 3경기 연속 완봉승을 포함해 17승을 올렸고, 이어 권명철 선수가 15승, 그리고 신인 이용호 선수, 진필중 선수는 김경원 선수의 빈자리를 메워주었습니다. 타선에서는 1번 타자이자 유격수인 연습생 출신 김민호 선수, 고졸 신인 심정수 선수는 21홈런으로 분발했습니다. 시즌 구도는 서울 라이벌인 LG와 OB의 선두 다툼으로 흘러갔는데, LG가 8월 중순에 6경기차로 간격을 벌렸습니다. 그러나, 이후 LG가 연패를 하자 OB는 6연승, 4연승을 거두고 9월 10일에는 처음으로 선두를 탈환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27경기에서 OB는 20승 7패를 기록하면서 LG에 반 경기차로 정규 시즌에서 우승하게 됩니다. 롯데와의 한국시리즈에서는 7차전에 롯데에게 4-1로 승리하며 사상 두번째 우승을 거머쥐었습니다.
1996년에는 최하위, 1997년에는 5위를 기록했습니다. 1998년, 이 해에는 10년 이상 중심 타선을 지켜오던 김상호 선수, 김형석 선수가 빠지게 됩니다. 그 때문에 8월 말까지 꼴지를 기록했으나 외국인 타자 타이론 우즈, 김동주 선수, 심정수 선수의 활약에 힘입은 시즌 막판 연승으로 1경기차 4위에 오릅니다. 그러나 준플레이오프에서는 LG에 2연패로 탈락하게 됩니다.
1999년 1월 5일, 구단 명칭을 현재의 '두산 베어스'로 바꿉니다. 이 해 우즈의 활약과 3할 20홈런의 김동주 선수, 3할3푼5리의 타율에 31홈런을 친 심정수 선수의 활약으로 드림리그 1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만 한화에 4연패로 탈락하게 됩니다. 2000년, 우동수 트리오는 99홈런 308타점을 기록했으나 현대의 91승에 밀려 드림리그 성적은 2위였습니다. 플레이오프에서 LG에게 4승 2패로 승리하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고, 한국시리즈에서는 1~3차전을 통틀어 3점 밖에 내지 못했으나 4~6차전을 모두 쓸어 담게 됩니다. 하지만 7차전에서 톰 퀸란에게 연타석 홈런을 맞고 패배하게 됩니다.
2001년, 심정수 선수는 선수협 사태로 심재학 선수와 트레이드 되었으나 심재학 선수는 그해 3할4푼4리에 24홈런 88타점을 기록해 심정수 선수의 빈틈을 메웁니다. 두산은 상당한 자금력의 삼성, 현대에 밀려 3위를 기록했지만 준플레이오프에서 한화를 2연승으로 일축한 뒤 플레이오프에서도 현대를 1패 후 3연승으로 가볍게 제치고, 한국시리즈를 삼성과 맞붙게 됩니다.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은 갈베스의 구위에 밀려 1차전을 4-7로 패하게 됩니다. 그러나 다음 날 경기가 우천 취소가 되자, 활기를 다소 되찾은 두산은 장원진 선수의 3점홈런으로 9-5로 2차전을 승리하게 됩니다. 잠실 3차전은 난타전이었으나 11-9로 승리하게 됩니다. 그리고 4차전, 두산은 우즈의 2점홈런으로 선취점을 얻었지만 2회초 삼성에게 타자 일순을 허용하여 8점을 내줍니다. 하지만 3회말, 두산은 김동주 선수의 만루 홈런, 안경현 선수의 백투백 홈런등으로 12점을 뽑아내고, 결국 18-11로 승리하게 됩니다. 이날 경기는 역대 한국시리즈 한 경기 최다 점수, 최다 안타, 최다 점수차 역전 경기였습니다. 하지만 4차전에서는 심기일전한 삼성에게 10점차로 대패하게 됩니다. 그리고 6차전, 1회초 삼성은 2점을 선취했으나 우즈의 150m 홈런으로 3-2로 역전시켰고, 다시 삼성이 3점을 냈지만 두산은 다시 동점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8회말에 심재학 선수의 얕은 좌익수 플라이에 정수근 선수가 홈으로 들어오며 6-5로 역전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진필중 선수가 마지막 타자 마해영 선수를 삼진으로 잡아내며 세번째 우승을 달성하게 됩니다. 한국시리즈 MVP는 시리즈에서만 7홈런을 기록한 우즈가 차지하게 됩니다.
이후 FA, 트레이드로 팀 전력이 나빠지면서 2002년에는 5위, 2003년에는 7위를 기록했으며 2003년 시즌이 끝난 후 김인식 감독은 감독직에서 물러납니다.
2003년 말, 두산은 원래 일본에서 코치 연수를 받던 선동열 감독을 감독으로 영입하려고 했습니다. 그 때문에 김인식 감독이 스스로 감독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러나 영입에 실패하면서 그 대안으로 김경문을 감독으로 영입했습니다.
2004년, 두산은 정규시즌 3위로 준플레이오프에 진출, 기아에 2연승하고 플레이오프에서 삼성에게 1승 3패로 탈락하게 됩니다. 2005년에는 정규시즌 2위를 기록해 플레이오프에서 한화에 3연승하여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지만 삼성에게 내리 4연패를 당하며 준우승에 머뭅니다. 그 해에는 이천 구장을 준공해 열었습니다. 2006년에는 WBC에 출전했던 김동주 선수의 부상으로 5위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신고선수 출신의 이종욱 선수를 발굴해냈습니다.
2007년, 두산은 22승을 거둔 다니엘 리오스와 12승을 거둔 맷 랜들의 원투펀치로 정규시즌 2위로 한화와의 플레이오프를 3연승으로 가볍게 이기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으나 SK 와이번스에게 2연승 뒤 4연패로 준우승에 머뭅니다. 다음 해, 두산은 일본으로 리오스를 떠나 보내고 선발진에 약점을 드러냈고 정규 시즌 2위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으나 1승 뒤 4연패로 2년 연속 준우승에 머뭅니다. 2009년, 지난 2년과 달리 기아가 1위를 차지하고 SK가 2위, 두산은 3위를 차지했습니다. 두산은 준플레이오프에서 롯데를 1패 뒤 3연승으로 이기고 플레이오프에서 SK에게 좌완 7승 금민철 선수와 4승 후안 세데뇨가 2연승을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3차전 10회초, 1사 2루에서 박재상 선수의 타구를 우익수 정수빈 선수가 조명탑 때문에 시야가 가려져 놓쳤고, 이를 틈타 분위기 반전에 성공한 SK가 2연패 뒤 3연승을 하면서 두산은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했습니다. 2010년, 두산은 켈빈 히메네스와 김선우 선수의 원투펀치와 토종 타자 20홈런 5명으로 정규시즌 3위를 기록했고, 준플레이오프에서 롯데를 2패뒤 3연승으로 이기고, 플레이오프에서 삼성과 맞붙었습니다. 1차전에서 박한이 선수의 역전 홈런으로 패했으나 2차전에서 임태훈 선수가 경기를 마무리하면서 1승 1패로 가져갔습니다. 3차전, 양팀은 역전과 재역전을 반복했으나 결국 임재철 선수의 동점타와 손시헌 선수의 끝내기 안타로 승리했습니다. 4차전은 타격전으로 삼성이 승리했습니다. 5차전에서 박석민 선수의 끝내기 안타로 두산은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했습니다.
2011년, 김경문 감독이 계약 마지막해 성적 부진을 이유로 시즌 도중 자진사퇴하였습니다. 8시즌 통산 960경기 512승 16무 432패를 기록한 김경문 감독대신에 김광수 감독대행 이끄는 두산은 4강 진출에 실패하고 5위로 2011 시즌을 마감하였습니다.
2011 시즌 이후 김진욱 불펜 코치를 새로운 감독으로 선임하였습니다. 또한 세이부 라이온스에서 우승경력이 있는 이토 쓰토무를 수석코치로 선임하고 넥센2군에서 투수코치로 있던 정명원 코치도 투수코치로 선임하는 등 코치진을 개편하였습니다. 2012년에도 최주환 선수, 최재훈 선수, 변진수 선수, 허경민 선수 등 많은신인들의 등장으로 제2의 화수분야구를 시작했고 니퍼트, 노경은 선수,이용찬 선수,김선우 선수,김승회 선수로 이어지는 선발투수는 국내최고라는 평가를 받을정도로 성장했습니다. 특히 노경은 선수와 이용찬 선수의 활약이 돋보였는데 생애 첫 완봉,10승 등 맹활약을 펼쳐가며 두산을 든든하게 지켜줬습니다. 홍상삼 선수는 불펜에서 안정된 피칭으로 힘을 보탰습니다. 반면 타격에 있어서는 이종욱 선수, 김현수 선수, 김동주 선수, 최준석 선수 등 주전선수들의 대거 부진과 부상 이탈로 최악의 한 해를 보냈습니다. 롯데 자이언츠가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 함에 따라 김진욱 감독은 첫시즌을 3위로 마무리지었습니다.
1982년
황태환
1983년
신경식
박종훈
1984년
양세종
1985년
박종훈
1986 ~ 1994년
수상 실패
1995년
이명수
김민호
김상호
김형석
1996 ~ 1998년
수상 실패
1999년
정수근
2000년
김동주
우즈
2001년
홍성흔
안경현
정수근
심재학
2002년
수상 실패
2003년
안경현
김동주
2004년
홍성흔
2005년
안경현
손시헌
2006년
수상 실패
2007년
리오스
고영민
김동주
이종욱
2008년
김동주
김현수
이종욱
2009년
손시헌
김현수
2010년
최준석
김현수
이종욱
2011 ~ 2012년
수상 실패
1982년 박철순 24승 4패
2004년 레스 17승 18패
2007년 리오스 22승 5패
1982년 박철순 224 2/3 - 46 - 1.84
1984년 장호연 102 1/3 - 18 - 1.58
2004년 박명환 158 2/3 - 44 - 2.50
2007년 리오스 234 2/3 - 54 - 2.07
2004년 박명환 162K
2007년 리오스 147K
1983년 황태환 06구원승 14세이브 20SP
1984년 윤석환 10구원승 25세이브 35SP
1988년 윤석환 13구원승 14세이브 27SP
1999년 진필중 16구원승 36세이브 52SP
2000년 진필중 05구원승 42세이브 47SP
1983년 황태환 14세이브
1984년 윤석환 25세이브
2000년 진필중 42세이브
2001년 진필중 23세이브
2005년 정재훈 34세이브
2009년 이용찬 26세이브
2003년 김동주 401타수 137안타 타율 0.342
2008년 김현수 470타수 168안타 타율 0.357
1995년 김상호 25홈런
1998년 우즈 42홈런
1983년 박종훈 117안타
1993년 김형석 147안타
2000년 장원진 170안타
2004년 홍성흔 165안타
2008년 김현수 168안타
2009년 김현수 172안타
2007년 김동주 0.457
2008년 김현수 0.454
1995년 김상호 101타점
1998년 우즈 103타점
2001년 우즈 113타점
2007년 고영민 89득점
2008년 이종욱 98득점
1998년 정수근 44도루 13실패
1999년 정수근 57도루 13실패
2000년 정수근 47도루 7실패
2001년 정수근 52도루 11실패
2006년 이종욱 51도루 7실패
2011년 오재원 46도루 18실패
정규 시즌
1982년 박철순
1995년 김상호
1998년 우즈
2007년 리오스
신인왕
1983년 박종훈
1984년 윤석환
1999년 홍성흔
2007년 임태훈
2009년 이용찬
2010년 양의지
한국시리즈
1982년 김유동 - OB 베어스
1995년 김민호
2001년 우즈
미스터 올스타
1983년 신경식
2001년 우즈
2006년 홍성흔
두산 베어스의 영구 결번은 54번, 21번이며, 특히 54번은 성적 비관으로 인해 자살한 김영신 선수의 배번으로, OB 베어스 측에서 애도하는 의미에서 영결식을 치르고, 대한민국 프로 야구 최초로 영구 결번했다. 또한 21번은 박철순 선수의 번호로 2002년 4월 5일 시즌 개막전 경기 전 영구 결번식을 통해서 영구 결번되었습니다.
OB 베어스 시절 흰색 기본바탕에, 짙은 남색과, 빨간색으로 구성된 유니폼을 착용하였습니다. 프로 원년 전기리그에서는 가슴 양쪽에 OB가 새겨져있는 버튼형 유니폼을 착용하였다가, 후기리그에서는 가슴전체에 OB BEARS라는 로고가 새겨진 유니폼을 착용하였습니다. 그 후 1983 시즌 부터 1998시즌까지 16년동안, 원년 후기리그 유니폼 디자인에, 단추형 유니폼에서 V넥 형태의 셔츠 형 유니폼으로 변경되어 착용하였습니다. 그 후 OB 베어스에서 두산 베어스로 팀명이 바뀌어 구단 BI도 변경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흰색 기본바탕에, 짙은 남색, 노랑색의 유니폼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이 유니폼의 특징은 새로운 구단 BI의 상징인 반달곰 로고를 가슴 부분에 새겨 넣었은 것이죠. 1999 시즌 부터 2001 시즌까지 가슴 전체에 반달곰 로고가 들어가있는 셔츠형 유니폼을 착용하였다가, 2002 시즌 부터 2009년 시즌까지는 반달곰 로고를 가슴 오른쪽에 새겨 넣은 단추형 유니폼을 착용하였습니다. 그 후 2010 시즌이 시작되기 전인 2010년 1월 4일에 두산베어스는 구단 엠블럼과 유니폼을 기존의 짙은 남색 및 노랑색에서 짙은 남색과 빨강색이 어우러진 새로운 팀 엠블렘 및 유니폼을 제작 발표하였습니다. 유니폼을 발표 한 후 바뀐 유니폼에 대하여 불만과 논란이 있었습니다.
2012시즌 현재 두산 베어스는 흰색에 BEARS 로고가 새겨진 버튼형 홈 유니폼과, 짙은 남색 바탕에 가슴 오른쪽에 구단 엠블럼이 새겨진 버튼형 원정 유니폼, 그리고 기존 OB 베어스 유니폼에서 OB를 뺀 셔츠형 올드 유니폼, 그리고 빨간색이 아닌 황금색으로 구성되고 BEARS가 흘림체로 적혀진 버튼형 스페셜 유니폼을 경기에 착용하고 있습니다.
두산 베어스의 마스코트는 철웅이입니다. 두산 베어스의 상징 동물인 곰을 로봇 캐릭터로 형상화 하였습니다. 이는 강인함과 미래 지향적인 이미지를 강조하는 것이고, 두산 그룹의 도전과 혁신정신을 표현 한 것이죠.
타자마다 응원하는 방법이 서로 다르며, 두산 주자가 1루, 혹은 2루에 있을 때 상대 투수가 견제를 하면 팬들은 일제히 "에이~~"를 외치면서 야유를 합니다. 2010년 시즌 후반부터는 아이유의 노래 잔소리의 한 대목인 "그만하자 그만하자~"를 틀면서 야유를 합니다. 포스트시즌 때 7회초와 9회초 사이에서는 봄여름가을겨울의 노래 Bravo, My Life!에 맞춰 응원단장이 관중들에게 불꽃 응원을 이끌기도 합니다.
두산 베어스에는 여러가지 응원가 및 구호가 있고, 이 중 제일 많이 사용되는 응원 구호가 "짝짝, 짝짝짝, 짝짝짝짝, 두산!"이죠. 게임 분위기가 유리해지면 "빰~ 빰~ 두산! 빰~ 빰~ 두산! 라~라~라~라~라~라~라~라~ 베~~어스~~ 두산!"를 반복해서 부르기도 합니다. 득점시에는 Sugarhill Gang의 Apache 음악에 맞춰서 함성을 지르기도 합니다.
2009년 시즌 후반부터는 롯데 자이언츠를 상대로 한 응원이 등장하였습니다. 이는 두산의 투수들이 롯데의 주자에게 견제구를 던진 후 롯데 응원석에서 "마!"를 외치면 두산 응원석에서는 "왜!"를 외치며 맞받아칩니다. 2010년 시즌부터 롯데 자이언츠가 이에 대한 맞대응으로 miss A의 'Good Girl Bad Girl' 한 대목인 'Shut up boy, so shut up boy, so shut up, shut up"을 외치면 다시 두산 응원석에서 하늘의 '웃기네'의 한대목인 "웃기네, 웃기는 소리 하네"를 틀며 맞받아칩니다.
8회말에는 박수없이 두산을 외치는 두산의 고유응원이 있습니다. 이는 원래 응원구호인 "짝짝, 짝짝짝, 짝짝짝짝, 두산!"에서 짝짝에 무음으로 나오고 응원단장의 호루라기소리만 작게 나오고 두산만 크게 외칩니다.
이상 두산 베어스에 대한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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