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前 축구감독 故홍덕영

Talon 2021. 5. 5. 18:00

오늘 소개할 분은 바로

故홍덕영 감독님입니다.

 

그는 한국 축구 선수로서 첫 해외 원정, 첫 올림픽, 첫 FIFA 월드컵에 출전했던 한국 축구의 1세대입니다. 함흥고등보통학교와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했으며 1948년 런던 올림픽과 1954년 FIFA 월드컵에 출전했던 골키퍼였고, 국가대표 은퇴 뒤에는 국제심판과 고려대 축구부 감독, 서울은행 감독,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을 역임했고, 2002년 FIFA 월드컵 조직위원회 위원이었습니다.

1948년 축구 국가대표팀은 런던 올림픽을 시작으로 첫 국제경기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당시 홍덕영 선수도 골키퍼으로 참가했었습니다. 당시 첫 경기의 상대는 멕시코였습니다. 그 당시 멕시코를 5 : 3으로 승리를 거두고, 8강에 진출했습니다. 하지만 8강 상대는 바로 유럽의 전통 강호 스웨덴이었고, 졸전 끝에 결국 0 : 12라는 패배를 당했습니다. 이 날의 패배는 한국 축구 역사상 최대점수차 패배로 남겨지게 되었습니다.

 

축구 국가대표팀은 한국 전쟁이 종식된 뒤인 1954년 FIFA 월드컵예선에서 일본을 상대로 각각 5 : 1로 승리, 2 : 2로 비겨 1승 1무로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한국 축구 역사상 첫 월드컵 본선이었습니다. 하지만 헝가리와 터키에게 각각 9 : 0, 7 : 0이라는 엄청난 점수로 패배하여 돌아왔습니다. 특히 헝가리전에서 홍덕영 선수는 푸슈카시의 강력한 슈팅으로 인하여 공포에 질리기도 했습니다. 홍덕영 선수는 이 대회에서 2경기 16골을 실점한 선수였습니다.

그 뒤 선수생활을 접고, 1957년부터 1967년까지 국제심판으로 활동했고, 1959년부터 1962년까지 모교인 고려대, 1969년부터 1976년까지 서울은행 감독을 맡아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냈습니다. 국가대표 감독을 역임했고, 1974년에는 국제축구연맹에서 주는 심판특별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대한축구협회 이사를 거쳐 1985~1986년 2년 동안은 축구협회 부회장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그 뒤 한일월드컵 조직위원회 위원을 지냈습니다. 그는 대한민국 축구 역사의 시작을 알렸던 축구인 중 하나였으며, 20세기 한국축구의 거목 7인 중 하나입니다.

그는 2005년 故김용식, 거스 히딩크 감독 등 여섯 명과 함께 대한축구협회가 선정한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말년에 그는 당뇨 합병증으로 시력을 잃은데다 발가락 절단 수술을 받는 등 힘겨운 투병생활을 했습니다.

보성전문학교
1948년 런던 올림픽 대표
1954년 스위스 월드컵 대표
국제 심판
고려대 축구부 감독
서울은행 감독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002년 한일 월드컵 조직위원회 위원

FIFA 국제축구연맹 심판특별상
축구 명예의 전당 선수부문 헌액

 

이상 故홍덕영 감독님에 대한 소개 마치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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