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KBL 남자프로농구 부산 KT 소닉붐

Talon 2013. 5. 20. 10:26

오늘 소개할 팀은 부산 KT 소닉붐입니다!


부산 KT 소닉붐은 프로 농구단입니다. 1997년 광주 나산 플라망스로 시작되어 2003년에 KTF가 인수하였다가, 2009년에 KTF가 KT와 합병됨에 따라 현재의 팀 이름으로 변경하였습니다. 홈 구장은 사직실내체육관이며, 10개 구단 중에서 팀 이름이 가장 많이 바뀐 팀이고 연고지도 광주와 여수를 거쳐 부산에 정착했습니다.


1997 ~ 1999 :  광주 나산 플라망스

1999 ~ 2000 :  광주 골드뱅크 클리커스

2000 ~ 2001 :  여수 골드뱅크 클리커스

2001 ~ 2003 :  여수 코리아텐더 푸르미

2001 ~ 2003 :  부산 코리아텐더 맥스텐

2003 ~ 2009 :  부산 KTF 매직윙스

2009 ~ 현재 :  부산 KT 소닉붐


1997년 프로 출범을 하면서 광주광역시로 자리잡고 홈 경기장은 화정동의 염주종합체육관을 썼습니다. 하지만 9,000명의 관중이 보기에는 너무 넓은 데다가 시설 면에서도 턱없이 부족해 많은 관중을 동원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1998년 3월 5일 안양 SBS전에서는 239명이 왔었습니다. 그럼에도 정규 리그 5위로 6강에 진출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 시즌부터 5시즌 연속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였지만, 이 5시즌 동안 한 번도 꼴찌를 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후 1998~1999 시즌부터는 명칭만 광주였고 군산월명체육관을 홈 경기장으로 썼습니다. 1999년 나산의 부도로 골드뱅크에 매각되어 골드뱅크 클리커스라는 팀명으로 사용하다가 2000년 전라남도 여수시로 홈 경기장을 옮겼고, 2001년 코리아텐더 푸르미로 팀명을 변경하였습니다. 2002~2003 시즌에는 여러 가지 악조건이 따라 붙었습니다. 우선, 자금난이 큰 불편함이었습니다. 2001~2002 시즌까지 감독이었던 진효준 감독이 팀을 이끌었지만 성적 부진으로 사퇴하였고, 외국인 선수에서도 국내에서 이미 실력이 검증되었던 에릭 이버츠와 안드레 페리로 팀을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KBL에서 빌린 자금 8억원을 겨우 갚았지만, 팀 운영 자금이 부족했습니다. 결국 전형수 선수를 모비스로 트레이드했고, 김정인 선수와 현금 2억 5천만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코치 없이 이상윤 감독대행의 지휘 하에서 시즌을 이끌었고, 숙소가 없어 33평짜리 아파트 2채를 숙소로 썼습니다. 이 당시, 한 쪽 화장실이 다 차면 다른 한 쪽 화장실로 가서 써야 했고, 전용 연습 경기장과 웨이트 트레이닝을 할 시설조차 없어서 고등학교 체육관 및 동네 헬스장에 가서 채워야 했습니다. 정규리그에서도 1·2라운드에 잘 나가다가 3·4라운드에서 하향세를 그리더니 5라운드에서 6연승을 달리며 28승 26패로 정규리그 4위를 차지, 6강에선 서장훈 선수가 있는 삼성을 꺾고 4강에 갔지만, 4강에서 1위 대구 동양 오리온스의 김승현-마르커스 힉스 조합을 못 이겨 결승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시즌 후 시민 구단으로 재탄생하려고 했지만, 여수시의 반대로 무산되었습니다. 급기야 해체설까지 나돌기도 했으나, 여수 시민들은 더 나은 곳에서 하려면 여수에서 떠나기를 기원했습니다. 때마침 2001년에 기아자동차 농구단의 제적사가 현대모비스로 변경되어 울산 모비스 피버스의 창단과 동시에 부산광역시에서 울산광역시로 연고지 이전을 하게 되자 2003년에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부산광역시로 옮겨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이상윤 감독대행은 2003년 시즌 후 서울 SK 나이츠의 감독으로 선임되어 팀을 떠났고, 2003-2004 시즌 전 상무 농구단 감독이었던 추일승 감독이 부임하였습니다. 2003~2004 시즌 초반에는 부산 코리아텐더 맥스텐이라는 팀 명칭을 썼다가 2004년 1월 18일 KTF에 인수되면서 부산 KTF 매직윙스로 창단되었습니다.


2004년 1월 18일 코리아텐더라는 이름을 벗고 KTF라는 이름을 썼습니다. 첫 시즌엔 정규리그 8위로 마감하였습니다.


이 시즌엔 유난히 용병 농사가 잘 되었던 부산 KTF, 애런 맥기와 게이브 미나케의 활약으로 KTF 창단 첫 6강에 진출했지만, 미나케의 부상으로 서울 삼성에 2:0으로 패해서 탈락했습니다.


KTF는 세대교체가 많았습니다. 이 시즌엔 세대교체의 시점이 되었습니다. 현주엽 선수가 FA로 창원 LG 세이커스로 떠나고 원주 TG삼보 엑써스에서 신기성이 FA로 이적하였습니다. 또한 송영진 선수를 현주엽 선수의 보상선수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시즌 중, 서울 SK 나이츠에서 황진원 선수, 조상현 선수를 영입하고 김기만 선수, 정락영 선수, 방성윤 선수를 SK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마크 셀리어스의 대체 용병으로 201cm의 키와 150kg 몸무게의 나이젤 딕슨을 영입하여 팀은 급격히 상승하였습니다. 하지만 시즌 막판에 딕슨이 무릎 부상으로 퇴출되었고, 팀은 6강에 갔지만, 전주 KCC 이지스에게 2:0으로 졌습니다.


2006~2007 시즌엔 부산금정체육관에서 사직실내체육관으로 홈 구장을 이전했습니다. 그리고 숙소도 부산으로 이전하였습니다. 거기다 조상현 선수가 창원 LG로 이적하고, 필립 리치를 영입했습니다. 창원 LG와 2위 다툼을 벌이다 3위로 밀려났지만, 3년 연속 6강에 진출했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KTF 창단 첫 플레이오프 승리, 첫 4강 진출, 그리고 첫 결승 진출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습니다. 비록 이 시즌에서 울산 모비스 피버스에게 우승을 넘겼지만, 쉽게 끝낼줄 알았던 결승은 7차전까지 갔었습니다. 시즌 개막 전, 꼴찌 후보로 손꼽힌 KTF는 이 시즌이 최고의 시즌이 되었습니다.


2007년 안양 KT&G에서 양희승 선수를 얻고 황진원 선수, 옥범준 선수를 KT&G로 보냈습니다. 거기다 조동현 선수, 최민규 선수, 진경석 선수가 제대, 박세원 선수, 김영환 선수, 박상오 선수, 허효진 선수 등을 영입하여 우승후보로 손꼽혔지만, 선수들의 줄부상으로 8위로 떨어졌습니다. 2008~2009 시즌에도 역시 부상 고질병으로 인해 팀 사상 처음으로 꼴찌라는 달갑지 않는 성적을 냈습니다.


추일승 감독이 2009년을 끝으로 계약이 만료되어 물러났습니다. 그리고 원주 동부 프로미에서 계약이 만료된 전창진 감독을 영입하여 취임하게 되고, 상무에서 조성민 선수와 김도수 선수가 제대했습니다. 거기다 팀 이름도 모기업인 KTF와 KT의 합병으로 인해, 부산 KT 소닉붐으로 이름을 바꿔 창단하게 되었습니다. 40승 14패를 기록하고도 선두 울산 모비스 피버스에 득실차에 밀려 정규 리그 준우승을 했습니다. 나산의 프로 진출 이후 여러 팀명으로 바뀐 끝에 창단 첫 정규 리그에서 준우승하며 정규 리그 최고 시즌이 되었습니다. 스타가 없는 KT에서 작년 시즌 꼴찌에서 정규 리그 준우승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 전주 KCC 이지스에게 1승 3패로 4강에서 떨어지고, 2위 팀의 플레이오프 징크스를 깨지 못하였습니다.


FA 풀린 신기성 선수가 KT와 재계약하길 원했지만, 전창진 감독은 세대교체를 위해 계약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신기성 선수는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로 이적을 하고, 대신 같은 FA 풀린 원주 동부 프로미와 서울 SK 나이츠에서 표명일 선수와 박성운 선수를 영입하였습니다. 그리고 2009~2010 시즌 외국인 선수상을 수상한 제스퍼 존슨의 재계약도 수락되었습니다. 현재 10개 구단 중 평균 신장이 가장 작은 상태에서 2m가 넘는 선수는 찰스 로드 한명 뿐이고 에이스 제스퍼 존슨 마저 2011년 2월 27일 부상으로 전치 8주 판정을 받으며 시즌아웃되었지만, 장신 군단의 전자랜드와 KCC, 동부, 삼성과 선두권 경쟁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1위를 지켰습니다.


2011년 3월 13일 일요일에 있었던 원주 동부와의 경기에서 87-67로 이겼는데, 이 때 2위 전자랜드는 모비스한테 75-72로 패했습니다. 이 동시에 전자랜드는 7연승에 좌절했고, 부산 KT는 전신이었던 광주 나산 플라망즈 창단 이래, 처음으로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이었고, 부산 연고지로 하는 프로스포츠단 중 14년만에 우승팀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2011년 3월 20일 모비스와 경기에서 80대 65로 이기면서, 41승 13패로 한국 프로농구에서 신기록 달성했습니다.


그리고 박상오 선수는 정규리그 MVP와 베스트5를 수상하였고, 전창진 감독은 2년 연속 감독상을 수상하였으며, 조성민 선수 또한 베스트5를 수상하였습니다.


비록 플레이오프에서는 원주 동부 프로미에게 1승 3패로 패배하면서 챔피언결정전 진출에는 실패하였지만, KT 팬들은 아이패드로 섹션 카드를 만드는 등, 관중들의 열기가 한창 더 올랐으며, 농구계의 새로운 응원문화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지난 시즌과 마찬가지로 선수의 변화가 거의 없습니다. 다만 시즌 막바지에 김영환 선수가 상무에서 전역하고, 부상에서 돌아온 김도수 선수도 재활훈련을 한 뒤에 정상적인 컨디션을 되찾았습니다. 그리고 지난 시즌 뛰었던 찰스 로드가 재계약을 맺었습니다.


2012-2013 시즌


김승기

 손규완


5.  박성운

3.  김현중

10.  조성민

0.  김명진

9.  조동현


23.  송영진

31.  오용준

11.  김도수

15.  민성주


31.  장재석


이상 부산 KT 소닉붐에 대한 소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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