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할 선수는 차붐 차범근 선수입니다!
차범근 선수는 전 축구 선수이자 축구 지도자, 해설가, 평론가입니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했을 당시에는 흔히 차붐으로 불리기도 하였으며 국제 축구 역사 & 통계 연맹이 선정한 ‘20세기 아시아의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2010년 FIFA 월드컵과 2012년 하계 올림픽에서 SBS의 해설위원을 맡았습니다. 가족은 부인 오은미, 딸 차하나, 아들 차두리 선수, 차세찌가 있습니다.
종교는 개신교이죠.
경기도 화성군 안룡면 송산리 출생으로 화산초등학교, 경신중학교, 경신고등학교, 고려대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할 당시 독일 사람들이 차범근의 로마자 표기를 부르기 어려워 차붐이라는 애칭으로 불렀습니다. 빠른 공간침투와 공중전에 강한 면 때문에 갈색 폭격기라는 별명이 붙기도 하였습니다.
1976년 10월 공군에 입대해 군복무를 마치고 1978년 12월에 독일 분데스리가 SV 다름슈타트 98로 이적하였지만, 병역 관련 문제로 계약이 파기되었습니다. 병역 관련 문제를 해결한 1979년 7월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에 스카웃 됩니다. 스카웃 후에는 곧바로 1980년 팀을 UEFA컵 챔피언 자리에 올려놓았고, 이듬해인 1981년 에는 팀이 DFB-포칼 우승컵을 드는데 공헌하였습니다. 1983년 7월에는 바이어 04 레버쿠젠으로 이적하여 1988년에 다시 한번 UEFA컵에서 우승하였습니다. 이 우승으로 차범근 선수는 각기 다른 두 팀에서 UEFA컵 우승을 차지한 9번째 선수가 되었습니다.
1989년 현역에서 은퇴한 차범근 선수는 많은 기록을 남겼는데, 리그 경기에서 98골을 득점하는 기록을 남겨 기존의 네덜란드의 빌리 립펜스의 기록을 경신하고 리그 외국인 선수 최다골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 기록은 99년 스위스의 스테판 샤퓌자가 106골로 경신했습니다. 1989년 차범근 선수의 308경기는 1977년 덴마크 Ole Björnmose가 수립한 323경기 이에 두 번째로 많은 출장기록 했지만 이후 세르게이 바바레즈가 경신했습니다. 차범근 선수가 1985-86시즌에 기록한 17골은 지금까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아시아 출신 선수 중 한 시즌 동안 가장 많은 골을 넣은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독일 분데스리가 10시즌 동안 단 한장의 옐로카드만을 받았을 정도로 투철한 페어플레이 정신을 드러내기도 하였습니다.
1971년 청소년 대표로 발탁된 이후 1년 후인 1972년에 당시 최연소의 나이로 국가 대표팀에 발탁되어 5월 7일 이라크와의 AFC 아시안컵 경기에서 데뷔하였습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도 참가하였습니다.
국가대표로 발탁된 이후 대통령배 국제 축구 대회 말레이시아 전에서 1-4로 뒤지고 있을 때 7분 동안 해트트릭을 기록해 동점을 만든 것은 유명하며 특히 일본과의 정기전을 치를 때마다 눈부시게 활약하였습니다. 1986년 6월 10일, 이탈리아와의 월드컵 경기가 자신의 마지막 A매치가 되었습니다. 국가 대표로 121경기에 출전하여 55골을 넣었는데 A매치 55골은 대한민국 선수 중 최다골 기록이죠. 또한 한국에서 최초로 센추리 클럽에 가입했습니다.
1991년부터 K-리그의 현대 호랑이의 감독을 맡아 그 해 K-리그 준우승을 이끌었고 1994년에는 팀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리고 1997년 초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는데 당시 대표팀의 상황은 어수선했습니다. 불과 한달 전인 1996년 12월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린 1996년 AFC 아시안컵 축구 대회에서 이란에 2-6의 참패를 당해 8강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어 박종환 감독이 경질되었고, 선수단의 사기 역시 떨어져 있었습니다. 차범근 감독은 이러한 상황을 정리하고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본선 진출에 대비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차범근 감독은 자신이 경험한 독일 분데스리가 시절을 토대로 독일식 축구 시스템을 도입하였고, 그 결과 서서히 좋은 성적을 거두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순간인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한국은 일본,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아랍에미리트와 같은 조였는데 무엇보다도 숙적 일본과 같은 조에 속한 것이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였습니다. 게다가 아랍에미리트와 우즈베키스탄 역시 결코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니었습니다.
우선 서울 잠실에서 열린 카자흐스탄과의 1차전에서는 예상대로 3-0의 완승을 거뒀으나 우즈베키스탄과의 2차전에서는 동점골을 허용하며 후반 종료 3분 전까지 1-1로 무기력한 경기를 했습니다. 다행히 후반 42분 이상윤 선수가 터뜨린 천금같은 결승골로 2-1 승리를 거둬 2연승을 기록한 한국은 본선 진출에 있어 최대 고비인 일본과의 원정 경기를 9월 28일에 치르게 되었습니다. 반드시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겠다는 일본에 맞서 한국은 상당히 고전했고, 결국 후반 20분 고정운 선수의 패스미스로 선제골을 허용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가모 슈 감독은 선제골을 지키기 위해 로페스 와그너를 빼고 수비수 아키타 유타카를 넣는 수비전술을 펼쳤고, 이를 눈치챈 차범근 감독은 수비수 홍명보 에게까지 공격에 적극 가세할 것을 지시하여 공격전술로 맞불을 놓았다. 이 전술이 적중하여 마침내 후반 40분과 43분 잇따라 골을 기록해 2-1로 역전승을 거둬 한국은 3연승으로 B조에서 단독 선두를 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0월 4일에는 조2위 UAE와 잠실에서 대결을 펼쳤는데, 전반전에 하석주 선수의 선제골로 경기가 쉽게 풀리는 듯했으나 UAE의 적극적인 공격에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그러나 후반에 유상철 선수의 페널티킥과 이상윤 선수의 헤딩골로 3-0의 승리를 거둬 4연승을 기록한 후 중앙 아시아 원정 2연전에 돌입하였습니다. 카자흐스탄과의 원정 경기에서는 무기력한 경기끝에 1-1 무승부를 기록하여 연승 가도에 제동이 걸렸지만 여전히 1위를 유지하였고, 우즈베키스탄과의 원정 경기에서 예상 외의 활발한 움직임으로 5-1의 대승을 거둬 조 1위를 사실상 확정지었습니다. 이후 일본과 UAE의 예상 밖 무승부로 한국은 프랑스 월드컵 본선 직행 티켓을 잡는 데 성공하여 2002년 월드컵 자동진출까지 합쳐 5회 연속 월드컵 진출이라는 위업을 달성하였습니다.
비록 11월 1일 잠실에서 열린 일본과의 홈경기에서는 수세에 몰린 일본의 필사적인 움직임으로 인해 0-2 패배를 기록하였지만, 불과 1년 전만 해도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본선 진출조차 불투명했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경우의 수 자체를 논할 필요가 없는 조1위 본선 직행으로 이끈 차범근 감독은 국민적인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UAE와의 마지막 경기에서도 3-1의 완승을 거둬 한국 대표팀의 저력을 과시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프랑스에서 개최된 프랑스 월드컵 본선에서 멕시코에게 1-3 역전패를 당하고 이후 네덜란드에게 0-5로 참패를 당하는 등 참담한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결국 대한축구협회는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물어 이례적으로 차범근 감독을 대회 도중에 경질시켜 김평석 코치를 감독 대행으로 임명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이 기록은 우루과이에서 개최한 1930년 FIFA 월드컵 이래로 월드컵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였으며 월드컵 또는 축구가 아니더라 해도 모든 스포츠를 통틀어 대회, 또는 경기 도중 감독이 경질된 유일한 사례가 되었습니다. 보통 팀이 부진하면 그 책임을 물어 경기 또는 대회가 끝난 이후이거나 팀의 탈락이 확정된 이후 더 이상 치를 경기가 남아있지 않게 될 때에 감독을 경질하는 법이지만 차범근 감독의 경우만 유일하게 아직 경기를 남겨놓은 상태에서 경질된 것이죠. 결국 대한민국은 사실상 감독 대행 체제로 벨기에와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를 치렀으며 이 경기는 1-1로 무승부를 거두었습니다.
해임 이후 차범근 감독은 1999년까지 중국 슈퍼리그 선전 핑안의 감독을 맡았는데 이 과정에서 K-리그에 승부 조작이 있다는 발언을 해서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1998년 8월 12일, 대한축구협회는 이 일로 그에게 5년간 국내 지도자 자격정지 처분을 내렸습니다.
차범근 감독은 이로 인해 한동안 ‘차범근 축구교실’을 운영하는 데에만 전념하며 은둔 생활을 하다가 2003년 말에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감독을 맡게 되어 다시 축구계에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듬해 2004년에는 K-리그에서 팀의 우승을 이끌었고, 2005년에는 컵대회 우승을 차지하였습니다.
2008년, 자신의 K-리그 통산 두 번째 우승과 컵대회 통산 2번째 우승을 차지하여 더블을 이룩하였습니다.
시즌 후 겨울 이적시장에서 마토, 이정수 선수, 조원희 선수 등 주축 선수들이 이적했지만 이 공백을 제대로 메우지 못한 상태에서 2009 시즌에 임해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10위에 머물렀습니다.
이후 강민수 선수, 조원희 선수, 염기훈 선수 등을 영입해 전력을 보강하여 시즌을 준비하였으나 2010 시즌 초반에도 부진한 모습을 이어가자 팬들 사이에서 퇴진 운동이 일어나기도 하였습니다. 2010년 4월 24일 강원 FC와의 경기에서 패하며 5연패를 기록한 뒤 인터뷰에서 퇴진할 수도 있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2010 ACL 16강전에서 승리하며 팀을 8강에 올려놓기도 하였으나 5월 20일에 기자회견을 열고 6월 6일 부로 수원 삼성 감독에서 사임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6월 6일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포스코컵 2010 경기가 끝난 후 공식적으로 감독직에서 물러났습니다.
패널티킥 실축 경험에 따른 공포감으로 실제 경기 중에 페널티킥 기회가 와도 자신이 찬 적이 거의 없었지만 대표팀 A매치 통산 121경기 55골, 독일 분데스리가 통산 308경기 98골을 넣었을 정도로 천부적인 득점 능력을 자랑하였습니다.
큰 키에 덩치도 좋은 편인데다 경마장으로 보내도 좋을 정도라는 우스갯소리가 돌 정도로 번개처럼 빠르게 돌진하며 드리블하는 스타일로 상대 수비에게 큰 부담을 주었습니다. 신체 조건이 좋고 거친 몸싸움을 하는 선수들이 많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도 그의 공격이 통했을 정도이죠.
중앙보다는 사이드에서 돌파하는 윙 역할을 많이 해서 골을 넣을 수 있는 찬스를 많이 만들어 골 기록만큼이나 많은 어시스트를 기록하였습니다. 윙을 활용한 한국 대표팀의 공격 방식은 차범근 선수 이후 한국 대표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 변병주 선수, 서정원 선수 등으로 이어졌을 정도이죠.
언제나 정확한 슈팅을 하였고, 골대를 크게 빗나가거나 어이없이 높이 뜨는 슛은 거의 쏘지 않았습니다. 그는 묵직한 느낌을 주면서도 강하고 빠른 슈팅을 하였습니다. 그의 슈팅 자세는 축구 교본과도 같은 것이어서 당시 스포츠 잡지나 어린이들이 즐겨보는 잡지에 그의 슈팅 순간 모습이 연속 사진으로 실리기도 했습니다.
볼 간수에 능해 안정된 플레이를 펼쳐 상대 선수에게 좀처럼 공을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청소년 대표시절 헤딩 경합을 하다 코뼈를 크게 다친 이후 한동안 헤딩 슛은 많이 하지 않았으나 독일 분데스리가 데뷔 골을 헤딩으로 장식할 만큼 이후에는 헤딩 슛에도 일가견을 보였습니다.
그는 대한민국 최초로 센추리 클럽에 가입한 거 외에도 세계에서 최연소로 센추리 클럽에 가입하였습니다.
차범근 선수의 아들 차두리 선수 또한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로 2002년 한일 월드컵,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 출전한 것 외에도 K리그 클래식에서 활동하였고 현재는 FC 서울 에서 뛰고 있습니다.
1998년에 받은 자격정지 처분 기간 중인 2001년 초에 문화방송의 축구 해설 위원으로 발탁되어 해설가로 데뷔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2002년 월드컵 때에는 문화방송의 주요 경기 해설을 맡으며 문화방송의 시청률 1위에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2006년에도 역시 문화방송에서 독일 월드컵 경기 해설을 그의 아들 차두리 선수와 같이 맡았으며 이 때도 문화방송은 시청률 1위를 기록하였습니다.
2002 한일 월드컵 기간 중 서귀포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16강 독일 VS 파라과이의 경기를 해설하였는데, 경기 내용을 보고 '지금까지의 경기 중 가장 나쁘다. 준비도 안 된 상태다.' 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당시 루디 푈러 독일 감독은 '차범근이 현역 시절 아스피린을 너무 많이 먹었다.'며 되받아쳤습니다. 이 둘의 설전이 독일 전역에 전해지자 여론은 루디 푈러가 아닌 차범근 해설의 말이 맞다고 하였습니다. 둘은 독일이 미국전을 앞 둔 울산문수축구경기장에서 만나 화해함으로써 끝이 났습니다.
2005년 6월, 서울 월드컵 경기장 내에 있는 월드컵 기념관에 마련된 축구 명예의 전당에 선수 부문 헌액자로 선정되었습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는 SBS의 단독중계로 인해 그동안 해설로 있었던 MBC를 떠나 SBS로 옮겨 활동했고 8강전인 독일 vs 아르헨티나 전에서도 아들 차두리 선수와 함께 중계 방송을 했습니다.
다음은 차범근 선수의 선수 시절을 묘사한 독일의 작가 에크하르트 헨샤인의 시이죠.
“ “Hymne auf Bum Kun Cha”
Schön ist, Mutter Natur, deiner Erfindung Pracht,
Die den großen Gedanken vermochte, den Knaben zu träumen,
zu denken – und dann auch zu Bilden mit den schnellen, beseelten, jauchzenden
Füßen des Jünglings: Flink, flitzend,
Flirrend und flackernd – nicht lange fackelnd,
Doch feuernd und feiernd; den fühlenden Herzen Frankfurts zur Freude.
Bum Kun Cha! Freund aus dem Osten! Fremdling bist
Du nicht länger – nicht bitt’res Los ist Exil
Dir! Heimat, die zweite, du fandst sie.
”
차범근 선수는 축구 게임인 피파온라인2와, 피파 11,피파 12에서 전설의 선수로 등장했습니다.
차범근 선수가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에서 활약할 당시 그의 백업선수가 다름아닌 요아힘 뢰프였습니다.
1976년 ~ 1978년 공군 축구단
1978년 ~ 1979년 SV 다름슈타트
1979년 ~ 1983년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1983년 ~ 1989년 바이어 04 레버쿠젠
1972년 AFC 아시안컵 대표
1986년 FIFA 월드컵 대표
1991년 ~ 1994년 현대 호랑이 감독
1997년 ~ 1998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1998년 ~ 1999년 선전 핑안 감독
2004년 ~ 2010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 감독
2002년 5월 ~ 6월 : 2002 FIFA 한일 월드컵 문화방송 축구 해설위원
2006년 6월 ~ 7월 : 2006 FIFA 독일 월드컵 문화방송 축구 해설위원
2010년 6월 ~ 7월 : 2010 FIFA 남아공 월드컵 SBS 축구 해설위원
2011년 1월 : 2011 AFC 카타르 아시안컵 SBS 축구 해설위원
2012년 7월 ~ 8월 : 2012 하계 올림픽 SBS 축구 해설위원
1978년 해태음료 팝오랜지
1979년 남양유업 남양요구르트
1982년 대우전자 대우VTR
1986년 한국베링거인겔하임 멕살겔
1986년 한국베링거인겔하임 복합 아루펜트
1991년 매일유업 바이오거트
1992년 CJ제일제당 울리불리
1996년 매일유업 매일우유
1996년 매일유업 1등급우유
1997년 한독약품 훼스탈
1997년 매일유업 비피더스요구르트
1998년 삼성전자 명품플러스원
1998년 삼성전자 삼성센스
2002년 - 2009년 SK텔링크 국제전화 00700
2006년 SK텔레콤
2012년 대웅제약 우루사
1970년 대통령 금배 고교축구대회 득점왕 수상
1970년 MBC 고교축구대회 최우수선수 수상
1972년 한국일보 선정 백상체육대상 올해의 신인상
1994년 한국프로축구 감독상 수상
1996년 제19회 색동회상 수상
1997년 AFC 선정 올해의 아시아 최우수 감독
2004년 K-리그 감독상 수상
2008년 K-리그 감독상 수상
2008년 윈저어워즈 한국 축구 대상 감독상 수상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UEFA컵 우승 1회 (1979-80 시즌)
DFB-포칼 우승 1회 (1980-81 시즌)
바이어 04 레버쿠젠
UEFA컵 우승 1회 (1987-88 시즌)
1972년 AFC 아시안컵 준우승
현대 호랑이
K-리그 준우승 1회 (1991년)
아디다스 컵 준우승 1회 (1993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
K-리그 우승 2회 (2004년, 2008년)
K-리그 준우승 1회 (2006년)
FA컵 우승 1회 (2009년)
FA컵 준우승 1회 (2006년)
삼성 하우젠 컵 우승 2회 (2005년, 2008년)
슈퍼컵 우승 1회 (2005년)
A3 챔피언스컵 우승 1회 (2005년)
팬퍼시픽 챔피언십 우승 1회 (2009년)
이상 차범근 선수에 대한 소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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