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할 선수는 바로~
김정수 선수입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인 1979년 봉황대기 고교야구 2경기 연속 완봉승을 기록한 것이 故 김동엽 해태 타이거즈 창단감독의 눈에 띄어 1982년 고교 졸업과 함께 해태 입단을 원했지만 아버지의 권유 때문에 연세대로 진학했으며 대학을 졸업한 1986년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하였습니다.
정통파가 아닌 쓰리쿼터에 가까운 스타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 당시로선 보기 드문 좌완 강속구 투수였지만, 그에 반비례하여 나쁜 제구력을 가져 볼넷과 몸에 맞는 공을 많이 내주었습니다. 그러나 '강철심장'을 가진 담력 센 투수로서의 특징이 KBO 한국시리즈에서는 큰 빛을 발하였습니다.
1986년 한국시리즈 1차전 당시, 우승의 주역이 될 거라고 많은 이들이 믿어 의심치 않았던 선동열이 투런 및 밀어내기로 9이닝 동안 3실점씩이나 하며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강판된 후 계투로 올라와 2이닝 4삼진 2볼넷 1안타로 틀어막고 승리 투수가 되었습니다. 그다음 3차전에서도 기존의 해태 에이스 이상윤이 1이닝을 못 넘기고 난타당하는 등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 등판하여 5이닝 2실점으로 틀어막고 구원승, 5차전에는 선발로 등판하여 당시 상대 팀 삼성 라이온즈의 에이스였던 김시진과의 맞대결에서 5이닝 2실점으로 판정승을 거두었습니다. 그 해 팀의 한국시리즈 4승 중 혼자 3승을 기록하면서 신인 최초로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하였습니다. 이후에도 한국시리즈에서 맹활약을 펼쳐 한국시리즈 최다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한국시리즈에서는 거의 저승사자급으로 펄펄 날아다녔지만 정규 시즌에서는 그렇게 두드러지게 잘하던 선수가 아니었습니다. 그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나쁜 제구력 덕이었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김정수 선수가 가을의 사나이가 된 가장 큰 원인은 부상 때문입니다. 데뷔 초창기에는 매년 시즌 중에 부상을 당한 덕분에 정규시즌 중에는 크게 활약을 하지 못하다가 가을쯤 되면 부상이 완치가 되고 비로소 제 컨디션을 찾는 패턴을 반복하다보니 정규시즌의 성적에 비해서 한국시리즈의 성적이 특출 나게 좋아 보이는 효과를 가져왔고 이 때문에 여름까지는 안 보이다가 가을만 되면 돌아와서 맹활약하는 가을까치의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타격 기계"로 유명한 장효조 선수에게 꽤 강한 편이었습니다.
1991년에는 정규시즌 중 빈볼을 던져 퇴장당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사건은 7월 14일 대구 원정경기에서 삼성이 좌투수용 오더와 우투수용 오더를 준비해 놓고 배대웅 코치가 해태 선발투수로 선동열이 등판한다는 사실을 슬쩍 확인한 후 우투수용 오더를 제출하려다 해태 김봉연 코치에게 들켜 난리가 났는데 해태 측에서 경기를 못 하겠다고 항의하는 걸 삼성 측에서 좌투수용 오더를 대신 제출하는 것으로 겨우 무마해서 경기는 진행되었는데 이 경기에서 선동열이 난타당해 1:7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구원등판 후 류중일과 이만수에게 연속 빈볼을 던져 퇴장, 이후 10경기 출장정지와 제재금 50만원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1996년에는 선동열이 일본에 진출하면서 공석이 된 마무리 자리를 맡았는데 쓰리쿼터에서 더욱 팔 각도를 내린 것이 주효하여 호성적을 기록했습니다.
2000년 SK 와이번스에 입단하였습니다.
2001년 한화 이글스에 입단하였습니다.
2003년 SK 와이번스에 복귀하였습니다.
2012년에 KIA 타이거즈에서 전력 분석원으로 활동하다가 재활군 투수코치로 보직을 변경했습니다.
광주남초등학교 - 전남중학교 - 전남고등학교→ 목포상업고등학교 (전학) → 광주진흥고등학교(전학) - 연세대학교
이상으로 김정수 선수에 대한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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