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할 분은 바로~
고재욱 감독님입니다~!
충렬초등학교에서 축구를 처음 시작해 통영중학교-중동고등학교-고려대학교를 거쳐 1970년대 5년간의 국가대표선수를 지냈습니다. 당시 부지런한 몸놀림과 재치 있는 플레이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중동고등학교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내며 청소년 대표로 선발, 필리핀과 일본에서 거행된 아시아 청소년 축구대회에 출전했으며 71년 국가대표팀 상비군에 선발된 이후 73년 월드컵 예선전 오스트레일리아와의 경기에서 동점골까지 뽑아내며 분전했으나 결국 예선에 머문 아쉬움을 간직하고 있으며 75년 연습도중 무릎인대가 크게 손상되는 부상으로 대표팀에서 떠나 국민은행 축구단에서 1년간 더 선수생활을 한 뒤 원치 않는 은퇴를 하게 되었습니다.
은퇴 후 모교인 중동고등학교가 전통의 빛을 잃어가던 1978년 팀을 맡아 중고연맹전 우승, 대통령배 준우승 등 고교 탑클래스로 끌어올리며 능력을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1984년부터 럭키금성 황소 코치로 재임하다 1988년 감독대행직을 수행하다 1989년 정식감독으로 취임하였고, 이듬해인 1990년 럭키금성 황소를 우승으로 이끌어 생애 처음 K리그 우승의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그 후 1995년 성적부진으로 해임된 차범근 감독의 뒤를 이어 1995년 울산 현대 호랑이의 감독이 되었고 황선홍 감독의 포항처럼 용병 없이 팀을 운영했는데, 심지어 골키퍼를 제외하면 선수 포지션이나 포메이션도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공격수로 보이던 선수가 수비를 하고, 수비수로 보이던 선수가 어느 틈엔지 최전방에서 헤딩 다툼을 하는 상황이 왕왕 벌어졌던 것. 중구난방처럼 보이지만 고재욱 감독의 울산은 성적은 좋았습니다! 겉보기엔 무질서한 동네 축구에 가깝지만, 실상은 동네 축구의 탈을 쓴 토털 사커. 이 전술은 유상철이라는 역대급 멀티 플레이어가 축으로 활동했기에 가능했습니다. 여기에 어느 순간이든지 골을 찾아 먹는 골잡이 김현석의 활약도 한몫 했습니다. 이듬해 1996년 K리그에서 구단 사상 최초의 K리그 우승을 달성하여 다시 한번 지도력을 인정받았으나 2000년 시즌 도중 성적부진 때문에 해임됐으며 그 이후 프로축구계에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선수 시절 스피드와 스태미너가 좋은 선수였으며, 주로 미드필더에서 링커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차남 고현호도 아버지의 뒤를 따라 중동고, 고려대를 졸업했습니다. 고려대 재학 당시 차두리와 동기였으며 선수생활을 일찍 마치고 중동고 감독으로 부임했습니다.
이상으로 고재욱 감독님에 대한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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