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축구인 정국진

Talon 2025. 1. 3. 21:20

오늘 소개할 분은 바로

정국진 님입니다.

 

포지션은 공격수였습니다.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활약하며 첫 A 매치 경기에서 정남식과 함께 골을 넣었습니다. 정국진 선수는 1917년 1월 2일 체육선수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1948년 하계 올림픽에 출전하여 1라운드 16강전 멕시코전에서 63분, 66분 멀티골을 기록해 8강에 진출했습니다. 이는 대표팀 사상 첫 공인 A매치 멀티골 기록입니다.

멕시코를 5:3으로 꺾고 A매치 메이저대회 첫 승리와 첫 2라운드 진출에 성공했습니다. 당시 올림픽 축구에 출전하던 선수들은 준프로 선수로 대우받던 선수들이었으며 이후에 상당한 고평가를 받는 선수들도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선수가 금메달을 차지한 스웨덴의 군나르 노르달이었습니다. 이후 한동안 제2차 세계 대전으로 개최가 미뤄졌다가 1950년부터 월드컵이 다시 시작되면서 FIFA 월드컵과 올림픽의 격차가 커지면서 올림픽 축구는 유럽과 남미팀들에게 메이저 대회로 평가받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8강에서 스웨덴에게 0:12로 대패하고 8위의 성적으로 대회를 마감했습니다.

1950년 이후로 한동안 정국진 선수는 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했지만 대표팀은 1954년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습니다. 그리고 정국진 선수는 월드컵 개막 한 달여를 앞두고 개최된 아시안 게임 대표팀에 다시 소집되어 참가했습니다.

정국진 선수는 당시 12강 조별리그 D조 1차전 홍콩과의 경기에서 골을 기록해서 3:3 무승부를 만들었으나 이후 경기에서는 득점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대회 은메달을 거뒀습니다.

1954년 FIFA 월드컵에 참가했습니다. 그는 당시 경기를 할 때 안경을 쓰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그의 포지션은 공격수였고, 양발을 쓸 줄 알아 왼쪽 윙으로 뛰기도 했습니다. 스위스 월드컵에서 대표팀 2차전이었던 튀르키예 전에 아웃사이드 레프트 포워드로 출전했습니다. 그러나 지쳐있던 대표팀은 골을 넣지 못했고 팀은 0:7이라는 스코어로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3번 축구 국가대표팀을 감독했는데, 1960년 하계 올림픽 예선, 1964년 하계 올림픽과 1968년 AFC 아시안컵 예선 대표팀을 맡았습니다. 1976년 2월 10일 별세하였으며 그는 죽기 전 잠시동안 대한축구협회의 부회장으로 있었습니다. 그는 정인자와 결혼했고, 미국으로 이민가 4명의 자녀와 8명의 손자와 손녀를 얻었습니다. 그들은 미국 뉴욕의 트리스테이트 에어리어에 살고 있습니다.

 

이상으로 정국진 님에 대한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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