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테란의 황제' 임요환은 어떤 인물이었나

Talon 2013. 9. 26. 17:42

e스포츠의 영원한 아이콘 임요환, 그의 발자취


모든 분야에는 최고가 있기 마련이고, e스포츠 역시 그렇다. 현재 최고의 프로게이머가 누구인지 묻는다면 의견이 분분할 수 있겠으나, 역사상 최고의 프로게이머를 꼽으라면 누가 감히 임요환을 제칠 수 있을까.

임요환에 의해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탄생했고, 게임은 e스포츠라는 새로운 문화로 거듭날 수 있었다.'테란의 황제' 임요환은 e스포츠 역사에 있어 그야말로 입지전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최초'와 '최고'라는 수식어가 붙은 숱한 기록을 만들어 낸 '프로게이머' 임요환은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면서 선수가 아닌 지도자로서 우리 곁에 남았었지만 단 한 번도 그 자신의 입으로 선수의 꿈을 접었다고 얘기한 적은 없었다.

비록 그가 e스포츠를 떠난 지금,우리는 프로게이머 임요환의 은퇴를 사실상 받아 들여야 할 때가 왔지만, e스포츠팬들에게 있어서 영원히 '황제'라는 칭호를 들어 마땅한 그의 지난 발자취를 되짚어 봤다.

▶ '슬레이어즈 박서', 테란을 선택하다

임요환의 정확한 데뷔 시기는 파악되지 않았지만 스타크래프트가 발매된 1999년부터 활동한 것은 맞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친구 집에 공부하러 갔다가 우연히 스타크래프트에 빠진 임요환은 1999년 가을 IS 팀 소속으로 SBS 멀티게임 챔피언십에서 우승,'슬레이어즈박서'라는 아이디를 알리기 시작했다.

당시에만 해도 저그-프로토스-테란 세 종족 중 약체로 평가 받던 테란을 선택한 그는 느린 속도로 거의 쓰이지 않던 테란의 유닛 드롭십을 적극 활용하면서 두각을 드러냈다. 때문에 임요환의 경기는 다른 그 어떤 선수보다 드라마틱한 재미가 있었고, 보는 맛이 있었다. 드롭십 사용 뿐만 아니라 마린으로 러커 다수를 잡는 그 때 당시 신기(神技)에 가까웠던 마이크로 콘트롤과 고스트 및 뉴클리어의 전략적 사용 등 테란이라는 종족의 특성을 극한까지 끌어 올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디펜시브 매트릭스를 걸고 러커밭을 누비며 저그를 압도하는 임요환의 모습은 해외 팬들 사이에서도 큰 화제가 됐고,어떤 이들은 그에게 게이머가 아닌 아티스트라는 칭호를 사용할 정도였으니 임요환의 플레이가 얼마나 센세이셔널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임요환이 보여준 테란의 각종 전략과 전술은 이후 테란 프로게이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전성기가 지난 후에도 자신만의 독특한 빌드와 전략으로 팬들을 열광시킨 임요환은 '명경기 제조기'로서의 명성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 승리 뒤에 숨은 노력, '나만큼 미쳐봐'

"나만큼 미쳐봐"

임요환이 사실은 지독할 정도의 노력파였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바다. 어느 한 분야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일에 미쳐야 한다는 말처럼 임요환은'게임에 미친' 사람이었다. 그가 선택한 것은 게임이었지만 다른 무엇을 했어도 성공했을 법한 성실함과 끈기, 열정은 임요환의 무기였고, 여기에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승부욕이 더해져 불세출의 프로게이머가 탄생한 셈이다.'나만큼 미쳐봐'는 프로게이머로서는 유일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펴낸 임요환의 자서전 제목이기도 하다.

임요환의 화려한 콘트롤과 기발한 전략 뒤에는 남몰래 흘린 땀방울이 있었다.주변 관계자들은 하나 같이 임요환의 끈기와 집요함, 열정에 놀라워했고, 훗날 대스타가 되고 난 이후에도 임요환은 가장 먼저 연습을 시작해 가장 늦게까지 연습하는 노력형 게이머의 모습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점들 때문에 임요환은 역전승의 대가이기도 했다. 이제는 전설이 된 마이큐브 스타리그 16강 경기에서의 도진광과 벌인 혈투는 임요환이 가진 끈기와 승부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패러독스에서 펼쳐진 테란 대 프로토스 경기에서 임요환은 누가 봐도 패색이 짙어진 상황에서 GG를 선언하지 않고 드롭십과 골리앗으로 상대 캐리어와 셔틀을 모두 잡아내며 희대의 대역전승을 거둔다. 이를 지켜본 팬들은 2003년 8월 15일에 있었던 이 경기를 '815대첩'이라고 칭했고,해당 경기의 VOD는 150만이 훌쩍 넘는 조회수를 기록할 정도로 화제가 됐다.

▶ '테란의 황제'라는 최고의 칭호를 얻다

데뷔 후 각종 대회에서 입상하며 상승세를 탄 임요환은 재능과 노력이 더해져 숱한 우승 트로피와 함께 화려한 역사를 써내려갔다. '2001년 한빛소프트배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장진남을 상대로 3:0 완승을 거두며 우승한 임요환은 바로 다음 대회인 '2001 코카콜라배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훗날 라이벌 사이가 된 홍진호를 꺾고 우승,스타리그 2회 연속 우승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운다.

비록 그 다음 '스카이배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가림토' 김동수에게 패하며 3연속 우승 달성에는 실패했지만, WCG에서도 2번이나 금메달을 따는 등 임요환의 활약은 테란의 황제라는 칭호를 받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는 내내 후배들의 귀감이 되는 성실함과 노력이 있었기에 임요환에게 황제라는 별명은 세월이 흘러도 퇴색되지 않는 타이틀이 되었다.

▶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3연벙'과 감동의 S01 스타리그

한편 라이벌인 홍진호와는 각각 테란과 저그를 대표하는 선수들로서 무수히 맞붙었으나 결과는 언제나 임요환의 승리였다. 특히 2004년 EVER 스타리그 4강전에서 임요환은 홍진호를 상대로 극초반 전략인 벙커링을 3번 연속으로 성공시키며 엄청난 핫이슈가 되었다.

수많은 게임팬들이 숨죽이며 지켜봤던 테란의 황제와 폭풍저그의 맞대결, 그것도 다전제가 사상 초유의 단기전으로 허무하게 끝나면서 일부 팬들은 임요환의 전략과 스타일을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임요환은 결승전에서 자신의 제자인 '괴물' 최연성을 만나 풀세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패하며 우승에 실패했다.결승전에서 쓰라린 패배를 맛본 임요환은 눈물을 보였고, 이 경기 역시 회자되며 e스포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임요환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스타리그 경기가 있으니 바로 S01 스타리그다. 당시 4강에는 오영종과 박지호라는 프로토스 2명이 올라온 상태였고,임요환의 상대는 물량에 특화된 박지호였다. 4강전에서 임요환은 초반 2세트를 연달아 내주며 위기에 놓였으나 불굴의 의지로 '패패승승승'을 만들어 결승전에 극적으로 진출한다. 하지만 떠오르는 신성 '사신' 오영종에게 결국 패하며 온게임넷 스타리그 3회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골든 마우스를 획득하는데도 실패했고,프로토스는 가을에 우승한다는 가을의 전설에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 e스포츠를 넘어선 이 시대의 스타로 탄생하다

뛰어난 실력과 출중한 외모, 시대가 만들어낸 스타 임요환의 인기는 상상 초월이었다. 게임도 잘하고 외모도 출중해 e스포츠 업계 밖에서도 큰 관심을 받게 된 것. 게임을 전혀 모르는 시장통의 아주머니들도 임요환은 안다고 했을 정도였으니다양한 장르의 TV 프로그램은 물론 영화나 드라마까지 출연하기에 이른다.

또 여러 개의 CF 광고까지 찍으면서 임요환은 온 국민의 스타로 등극한다. 50만명이 넘는 회원수를 자랑한 임요환의 팬카페는 가수나 연기자들이 따라오지 못할 인기 스타임을 보여준 사례였다.

▶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e스포츠병으로 군복무

천하의 임요환이라도 대한민국 국민인 이상 국방의 의무를 피할 순 없었다. 그러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던가. 임요환이 열심히 일군 e스포츠라는 텃밭은 무럭무럭 성장해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는데 성공했고, 대한민국에서는 군 홍보 및 사기진작을 위한 세계 최초의 군 프로게임단'공군 에이스'가 창설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결국 군대에서도 게임을 할 수 있게 된 임요환은 대전에 위치한 공군본부 공군 중앙 전산소에 자대배치를 받아 공군 에이스의 일원으로 프로게이머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다.

한편 임요환의 입대는 마치 인기 연예인이 군대에 가는 것처럼 수많은 팬과 취재진이 몰려 장사진을 이뤘으며, 공교롭게도 임요환이 전역 후 공군 에이스는 명맥을 유지하지 못하고 2012년 해체되었다.

▶ 끝나지 않은 도전, 30대 프로게이머로서의 활약

2008년 12월, 공군을 제대한 임요환은 곧바로 SK텔레콤 T1에 복귀했고 만 29세의 나이에도 현역으로 활동하며 30대 프로게이머의 목표를 이루겠다고 팬들과 약속했다.

하지만 후배들의 기량을 따라가기 힘든 상태에서 고민하던 그는 2010년 9월, 스타크래프트2 프로게이머로 전향을 선언했다. 새로운 도전에 나선 임요환은 자신의 장점을 십분 살리는 플레이로 스타2에서도 팬들을 즐겁게 만들었고 이슈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당시 임요환의 주요 경기들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큰 화제가 됐으며 엄청난 VOD 조회수를 기록해 임요환의 네임 밸류를 실감케 했다.

이러한 임요환에게 인텔이 3억원 상당의 스폰서십을 맺으면서 그는 '슬레이어즈'라는 스타2팀을 만들었다. 플레잉감독으로 활동하던 임요환은 어깨 부상으로 2012년 잠정적으로 선수 생활을 접었고, 이후 지도자로서의 경험을 쌓던 중 결국 2012년 8월에 자신의 친정팀인SK텔레콤 T1으로 복귀해 본격적인 코치 수업을 받았다.

▶ 감독으로서의 보직 변경, 아쉬운 은퇴로 이어지다

2012년 10월에 SK텔레콤 T1의 수석코치로 임명된 임요환은 2013년 4월, 감독으로 정식 취임해 본격적인 사령탑 역할을 맡게 된다.

하지만 프로리그가 스타2로 완전히 전환된 이후 전통의 명가 SK텔레콤 T1은 적응기가 필요했고, 임요환 감독은 팬들의 기대에 부응한 성적을 내지 못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비난에 시달려 스트레스를 받았던 임요환은 인터뷰를 통해 선수 시절보다 훨씬 마음 고생이 심했다고 밝힌 바 있으며, 결국 2013년 9월 26일 건강상의 이유로 감독직을 사임했다. 향후 일정은 아직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사실상 은퇴의 길을 걷게 될 것으로 보인다.


-출처 : 포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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