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오브레전드

[박상진의 e스토리] '블랭크' 강선구가 써내려간 성장 드라마

Talon 2017. 3. 1. 00:47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가장 성공적인 커리어를 가진 팀이라면 SK텔레콤 T1을 꼽을 수 있다. 가장 많이 롤챔스에서 우승하고, 가장 많이 롤드컵에서 우승한 팀이 SK텔레콤이다. 올해 역시 강력한 전력으로 우승을 향해 달리고 있다.

이런 SK텔레콤에도 아쉬움과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그 순간마다 선수들은 좋지 않은 이야기를 등에 업고 경기에 나서야 했다. '블랭크' 강선구 역시 팀에 합류한 이후 예상보다 이른 시기에 롤챔스 경기에 나섰고, 팀의 부진과 함께 많은 비난을 들어야 했다.

그러나 강선구가 정글에서 경기하는 동안 SK텔레콤은 작년 롤챔스 스프링과 IEM, MSI에 이어 롤드컵까지 우승을 차지했다.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강선구는 경기력도, 심리도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많은 비난을 들으며 움츠러들지 않고 앞으로 나가는 건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과연 강선구는 작년 한 해 어떤 생각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IEM 기간 롤챔스가 짧은 휴식기를 가진 동안 강선구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리그 오브 레전드는 어떻기 시작했는가. 그리고 정글 포지션을 선택한 이유는.

다들 그렇듯 게임은 처음부터 좋아했다. 리그 오브 레전드는 프로게이머를 하겠다는 생각 없이 재미로만 즐겼다. 그 전에는 다들 하던 서든 어택이나 카트 라이더, 메이플 스토리 같은 게임을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티어가 낮았는데, 게임을 꾸준히 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티어가 점점 올라갔다. 그러다 보니 욕심이 생기더라. 다른 게임은 거의 그만두다시피 하고 리그 오브 레전드에만 집중했고, 결국 챌린저에 올라갈 수 있었다. 리그 오브 레전드에만 집중한 지 1년 정도 시간이 지난 후였다.

원래 정글러가 아니라 원거리 딜러 그레이브즈나 미드 블라디미르를 자주 했다. 그러다 정글 마오카이나 '클템' 이현우 해설이 선수 당시 하던 아무무를 해보니 재미도 있었고 성적도 잘 나왔다. 챌린저에 가기 전에도 리그 경기는 자주 봤는데, 지금은 우리 팀 코치님인 '빠른별' 정민성 코치님의 플레이를 좋아했다. 게임 내에서 자신감도 느껴지고 악동 같은 이미지도 좋았다.
 

SK텔레콤에 들어가기 전 중국 팀에 활동했던 거로 알고 있다.

2013년 연말에 리그 오브 레전드에 접속했는데, 김정균 코치님이 친구 신청을 했다. 당시 소환사 명도 '김정균'이라 바로 알아볼 수 있었고, 내가 아는 그 김정균 코치님이 맞겠지 하는 생각에 친구로 등록했다. SK텔레콤이 롤드컵을 우승한 직후라 코치님에게 친구 신청을 받은 거만 해도 엄청나게 떨렸다.

결국 김정균 코치님 소개로 SK텔레콤에서 테스트를 받을 수 있었다. 그 자리에는 '후니' 허승훈이나 '레인오버' 김의진, '러시' 이윤재와 함께 '스카웃' 이예찬도 있었다. 테스트는 봤는데, 그래도 당시에는 해외에서 생활해보고 싶다는 마음에 무작정 중국으로 나갔다.

생활도 한국 팀보다 자유로운 편이고, 음식도 잘 맞는 편이었다. 하지만 에어컨이 없어서 여름에 정말 힘들었다. 성적도 생각만큼 나오지 않아서 아쉬웠고, 결국에는 다시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국에 가서 김정균 코치님에게 연습생으로 받아주면 정말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열정도 넘치고 자신감도 넘치던 시기였다. SK텔레콤도 우승하고 난 시기라 나도 많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생각보다 빠르게 롤챔스 경기에 나서게 됐는데 부담은 없었나. 그리고 이후 계속 경기에 선발로 나서게 됐는데.

나도 예상보다 빠르게 경기에 출전하게 됐다. 물론 언젠가 경기에 나설 거로 생각하고 연습과 준비는 부족하지 않게 하고 있었다. (이)예찬이와 같이 교체 출전했는데, 정말 엄청나게 긴장되고 위축됐다. 그 자리가 무거운 자리니까 못하면 어떻게 되나 하는 두려움이었다.

그래도 프로게이머인 이상 경기는 무조건 출전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나도 알 수 없는 부담감과 압박감이 심했다. 그래도 팀에서 심리치료도 진행해줘서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심리 치료를 담당했던 소장님도 예전 다른 스포츠 선수 출신이신데, 경기 전에는 어떻게 하고, 사람들의 비난과 비판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그래서 롤챔스 1라운드가 끝나고 열린 IEM 월드 챔피언십에서 우승할 수 있었다. SK텔레콤은 많은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지만, 내 우승은 처음이라 그날 하루만큼은 정말 기뻤다. 티비에서나 보던 일이 내게 일어났으니까. IEM 우승 후 한국에 돌아와 롤챔스 2라운드에서 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며 순위가 올라가 포스트시즌을 거쳐 결승에 진출할 수 있었고, 결승에서 ROX를 잡고 첫 시즌에 우승까지 차지했다. 

결승전 경기는 계속 접전이라 힘들었다. 그만큼 우승을 차지했을 때 기뻤다. 내가 흔들려도 형들이 잘 버텨줘서 위기에서 벗어 날 수 있었고, 나도 기댈 수 있었다. IEM 우승 후에는 마음도 편해지고 부스 안에서 긴장도 덜해졌다. 자신감이 붙는 거 같았다.
 

롤챔스 결승 이후 벌어진 MSI 그룹 토너먼트에서 다시 힘든 모습을 보였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커뮤니티의 반응도 좋지 못했다.

경기를 잘하다가도 문득 '이러다 또 못 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때마다 흔들렸다. 내 성격도 감정 기복이 심한 편이라 기분이 좋을 때와 나쁠 때의 차이가 심했다. 경기가 잘 안 되니까 정말 우울했는데, 밖으로 티를 낼 수는 없었다. 

그래도 연습 경기에서 다시 경기력을 되찾았고, 그러면서 다시 자신감이 붙었다. 남들이 뭐라 하든지 신경 안 쓰고, 커뮤니티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오든 내 할 일만 하자고 편하게 마음먹었다. 처음에 내 경기에 대한 반응을 커뮤니티에서 봤을 때 숨이 막힐 정도였고, 나중에는 너무 우울해서 나 스스로가 감당이 안 될 정도였다. 쉬운 과정은 아니었지만, 내가 잘하는 게 정답이었다.

그래도 MSI 결선 토너먼트에서는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이며 우승을 차지했지만, 롤챔스 서머에 후반에 다시 무너져내렸다. 감독님과 코치님들이 잘할 수 있다고 응원도 해주셨고, 심리치료도 계속 병행했다. 하지만 경기에서 불리한 상황이 되면 시야가 좁아지고 머릿속이 백지처럼 비었다. 뭘 해야 할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심리적으로 흔들릴 시기에 솔로 랭크에서 잘못한 일도 생겼다. 왜그리 내가 여유없이 행동했는지 모르겠다. 나쁜 일이 계속 이어지니까 프로게이머가 나에게 맞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게 맞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팀에 필요한 존재인지에 대해서도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래도 팬들의 응원으로 버틸 수 있었다. 누가 뭐래도 나는 나니까 흔들리지 말고 열심히 잘하라고 이야기해주신 분들 덕분에 롤드컵 전에는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다행히 결승 결과도 우리에게 좋게 나와서 진출전을 거치지 않고 롤드컵에 진출할 수 있었다. 서머 결승 마지막 세트 바론 스틸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함성을 질렀다. 그리고 그때 내 모든 게 바뀐 거 같다. 
 

어쨌든, 데뷔 첫해 롤드컵까지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롤드컵 진출 이후 자신의 모든 게 바뀌었다고 말했는데, 어떤 점이 달라졌는가.

롤챔스 서머까지 커뮤니티 반응에 정말 이리저리 휘둘렸다. 그러나 롤드컵 출전이 확정되고 나서는 남들의 시선보다 내 할 거만 잘하자고 생각했다. 나에 대해 나쁜 글을 쓰는 사람들도 우리 팀 팬이 있을 것이고, 내가 잘하면 칭찬으로 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오랜 시간 계속 생각했고, 내가 잘하면 사람들이 바뀔 테니 경기만 생각하기로 했다.

자크로 플레이한 롤드컵 8강 경기도 운도 좋았고, 자신감 있게 플레이한 게 도움이 됐다. 자크가 좋은 픽은 아니었지만, 당시 올라프를 상대로 자크가 교전에서 좋아서 선택했던 거 같다. 그리고 상대 정글이 정글 늑대를 하나를 안 먹고 오는 바람에 내가 레벨에서 앞섰고, 이후 바위게 앞 전투가 잘 풀리며 자신감이 돌아왔다. 아쉬운 건 4강과 결승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는 거다. 그래도 (배)성웅이 형이 잘 해줘서 이길 수 있었다.

작년 '벵기' 배성웅과 같이 팀의 정글로 활약했는데, 본인이 생각한 배성웅은 어떤 사람인가.

성웅이 형은 듬직한 면도 있고, 내가 편히 기댈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성격도 좋아서 같이 지내기 정말 편했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형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요즘에도 많이 연락한다. 올 시즌 롱주와 경기가 끝나고 나오니 성웅이 형이 메시지를 보냈다. 잘했다고. 그리고 나도 성웅이 형의 경기를 자주 보면서 계속 연락하고 지낸다.

이렇게 좋은 성웅이 형이 팀을 떠난다는 이야기를 듣고 슬펐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지금도 그립다. 그래도 이미 지난 이야기고, 중국에서도 잘하고 있으니까 서로 최선을 다하고 나중에 한국에 오면 같이 밥을 먹기로 약속했다.
 

배성웅과는 다르게 SK텔레콤에서 한 시즌을 더 하기로 결정했다.

작년에 내가 잘한 경기보다 못한 경기가 많았다. 그래서 다른 곳에 가는 거보다 팀에 남아서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작년을 잊고 새로 잘 준비해서 제대로 된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팀에 무조건 남기로 결정했다.

성웅이 형이 나간 자리에 (한)왕호가 들어왔다. 누가 오든 상관없었다. 왕호도 잘하지만 그거와 상관없이 내가 잘하면 되는 거니까. 그리고 (이)예찬이처럼 왕호하고도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겨울에 휴가를 많이 받았지만, 리그 오브 레전드가 제일 재미있어서 별달리 다른 게임을 하지는 않았다. 잘 안풀리면 잠시 다른 게임을 하면서 편한 마음으로 지냈다. 게임을 하면서 마음을 다스리는 연습을 많이 했다.

작년에는 부담도 많았고 압박도 많았다. 하지만 올해는 마음이 편하다. 작년 경기를 돌려보면, 대체 왜 저 때는 저렇게 성급한 플레이를 했는지 후회되더라. 마음 편하게 했으면 되는데. 올해는 사람이 바뀐 거 같다.

'잼구'라는 별명도 처음에 들었을 때는 정말 싫었다. 잼구라는 단어를 볼때마다 내가 조롱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잼구 말고도 이상한 별명이 많았다. 나는 왜 이리 별명이 많을까 하는 원망아닌 원망도 스스로에게 했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 바뀌었다.

롤드컵 시기에 팀원들도 편하게 잼구라고 부르고, 나도 별 의미 없이 편하게 부르는 거로 받아들였다. 잼구라는 별명 덕분에 재미있고 편한 이미지가 된 거 같아서 좋다. 덕분에 개인 방송에서도 편하고 즐거운 분위기를 보일 수 있어서 좋다. 방송을 끄면 더 즐겁게 게임한다.
 

커뮤니티의 부정적인 반응을 마음 편하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을 거 같다. 그리고 그동안 지켜봐준 팬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그런 반응을 보고 나서 처음에는 내 모든 플레이에 자신감이 없었다. 내가 이런 플레이를 하는데 이게 문제가 돼서 또 안 좋은 이야기가 나오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주저했고, 다시 나쁜 플레이를 하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주위에서 계속 자신감을 넣어주고, 팬들이 응원해줘서 이제 주위 반응에 흔들리지 않는 수준까지 된 거 같다. 

욕이 보여도 그냥 웃어넘기고, 이제 자극받아서 더 열심히 하자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잘한 날 커뮤니티를 보면 재미있더라. 작년 서머에는 글을 보다가 버티지를 못할 거 같아서 아예 안봤었다.

심리적-경기력에서 기복이 심한 게 내 문제였다고 생각하고, 올해는 기복 없이 잘하는 선수가 되는 게 목표다. 예전에는 생각 없이 게임하는 일이 많았지만, 요즘은 생각을 많이 한다. 선수 간의 피지컬에는 큰 차이가 없으니 생각이나 심리가 중요한 거 같고, 이 부분을 계속 염두에 두다 보니 실력도 올라가더라.

그래서 잘하든 못하든 언제나 응원해주시는 팬들에게 감사드린다. 그리고 악플이든 선플이든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들에게도 감사드리고, 기회가 된다면 좋은 경기력으로 승리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다. 그래서 올해도 계속 강한 SK텔레콤을 만들어 우승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다. 많이 응원해주시고, 경기장에도 개인 방송에도 많이 찾아와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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