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할 선수는 바로~
원쓰리 장원삼 선수입니다~!
본인의 이름을 영어로 한 원쓰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배우자는 모릅니다.
경상남도 창원 출신으로 사파초등학교와 신월중학교를 거쳐 마산상업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됩니다. 마산상업고등학교 3학년 때 현대 유니콘스의 2차 11순위 지명을 받았으나, 경성대학교 체육학과에 진학했습니다. 경성대학교 체육학과 3학년 때인 2004년 제 2회 세계 대학 야구 선수권 대회를 통하여 처음으로 국제 대회에 출전했고, 캐나다전에 선발로 등판하여 승리 투수가 됐습니다. 당시 대한민국 팀은 3승 2패로 4강에 올랐지만 일본에 패해 3위를 기록했습니다. 경성대학교 체육학과 시절에 이지영과 배터리를 이루기도 했습니다. 경성대학교 재학 시절 김기표와 입학 동기생입니다. 입단 당시 좌원삼, 우기표로 불릴만했습니다.
경성대학교 체육학과 졸업 후 2006년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하여 변화구 무브먼트와 제구력을 주 무기로 12승 10패 2점대 평균자책점이라는 준수한 성적을 올렸으나, 그 해 18승 6패 1세이브를 거두어 정규 시즌 MVP를 수상한 '괴물' 신인 좌완 투수인 한화의 류현진에게 밀려 신인왕 수상에 실패했습니다. 데뷔 첫 해 도하 아시안 게임에 참가했으나, 동메달에 그쳤습니다. 2007년 시즌 초반에는 빼어난 성적을 기록했으나 여름부터 갑작스런 난조와 부진을 보이면서 2년차 징크스를 겪었지만, 시즌 9승 10패 평균자책 3.63으로 팀 내 좌완 투수 중 가장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2008년 3월 10일 자금난으로 현대 유니콘스가 해체되고 선수단을 승계하여 새로 창단한 넥센 히어로즈에서 주축 선발 투수로 성장하여 2008년 12승 8패, 2점대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습니다. 2008년 삼성 라이온즈와의 트레이드 파동 등과 맞물려 정규 시즌에서 후유증을 겪으면서 시즌 초반부터 심한 슬럼프와 부진을 겪었습니다. 이후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하고 2군으로 내려가서 시즌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좌완 선발 투수가 부족하였던 삼성 라이온즈와 스폰서 문제로 운영난을 겪었던 히어로즈 양 구단의 사정과 맞물려 2008년 11월 14일 현금 30억 원에 좌완 불펜 투수 박성훈을 상대로 넥센 히어로즈에서 삼성 라이온즈로 전격 현금 트레이드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6개 구단은 "'넥센의 5년 간 현금 트레이드 및 구단 매각 금지'에 대해 합의가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현금 트레이드한 것은 구단 간 신의를 저버린 처사"라며 KBO에 트레이드 승인을 그 달 내 열릴 예정인 이사회까지 보류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11월 15일 하일성 사무총장 주재로 KBO의 이사회가 열려 이 트레이드에 대해 대책을 논의하였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하였고, 11월 17일 당시 신상우 총재가 참석한 상태에서 트레이드 승인을 결론짓기로 하였으나, 역시 결론을 내리지 못하였습니다. 11월 19일 다시 이사회가 열려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진행되었지만 결정을 11월 20일로 다시 미뤘고, 11월 20일에도 또 다시 결정이 미뤄졌습니다. 11월 21일까지 결정이 총 5차례 미뤄진 끝에, 최종적으로 신상우 총재는 그의 트레이드 승인 불가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 일은 KBO 리그 27년 역사상 최초로 구단 간 트레이드 승인이 거부된 사례입니다. 이 사건 이후 신상우 총재는 사퇴하였습니다. 그러나 2009년 시즌이 끝나고 투수 이현승과 외야수 이택근의 트레이드설이 들리면서 삼성 라이온즈에서 다시 영입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2009년 12월 30일 넥센 히어로즈가 KBO에 구단 가입금을 완납하여 정식 구단 자격을 얻게 되자, 넥센 히어로즈는 그를 삼성 라이온즈로 보내고, 삼성에서 현금 20억원을 포함하여 좌완 투수 박성훈과 우완 투수 김상수를 받아 오는 현금 트레이드를 단행하였습니다. 이 트레이드는 넥센 히어로즈 가입금 납부 문제 해결과 맞물리면서 정식 승인되었습니다.
2010년
2009년 다승 1위 윤성환이 부상으로 난조를 보이며 무너지는 등 우여곡절이 많은 2010년 삼성 라이온즈 선발진에서 제 역할을 했고 전 구단 상대 승리 투수가 되었습니다. 삼성 라이온즈 이적 후 후반기에 10승에 달성하는 등 윤성환의 공백을 완벽히 막아 주었습니다. 하지만 롯데 자이언츠의 강민호와 넥센 히어로즈의 더그 클라크, KIA 타이거즈의 김상현 이렇게 3명에게 만루 홈런을 허용하는 아쉬운 모습을 보여 주기도 했습니다. 2010년 10월 19일 대구에서 열린 2010년 한국시리즈 4차전을 통하여 데뷔 첫 한국시리즈에 선발 등판했으나, SK의 스윕을 막지 못하고 준우승에 그쳤으며, 3회까지 호투하다가 4회 초에 급격히 무너져 3이닝 3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었습니다.
2011년
KIA의 외야수 이용규와 더불어 그도 홀수 연도 징크스 를 갖고 있다는 특징이 있으며, 2011년에는 시즌 초 어깨가 좋지 않아 안지만이 그가 복귀하기 전까지 잠시 선발을 맡기도 했습니다.
어깨 통증으로 2011년에는 1군에 늦게 합류하여 느리게 페이스를 찾은 관계로 8승 8패 4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지만 2011년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삼진쇼를 보여 주며 설욕의 발판을 만들었고, 데뷔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했습니다.
2011년 아시아 시리즈에서는 선발로 2승을 기록하며, 삼성 라이온즈 최초의 아시아 시리즈 우승을 이끌며 MVP에 선정, 첫 개인 타이틀을 따 냈습니다.
2012년
시즌 초반은 좋지 않았습니다. 특히 4월 17일 잠실 두산전에서 1이닝 8실점으로 최악의 피칭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류중일 감독은 임시 불펜을 맡겼습니다. 불펜에서 2경기 1승 1홀드, 평균자책점 0.00으로 재신임을 보인 그는 다시 선발로 돌아와 매우 뛰어난 활약을 보였습니다. 최종 승수는 17승이었습니다. 결국 당시 최고의 시즌을 보내며 활약했던 넥센 브랜던 나이트에게 1승 차이로 생애 첫 다승왕을 수상하였습니다. 한국시리즈에서는 2경기에서 2승, 평균자책점 0.69로 활약하며 시즌 종료 후에는 브랜던 나이트를 제치고 생애 첫 투수 골든글러브도 수상하였습니다. 하지만 골든글러브 수상에 대해서는 브랜던 나이트보다 평균차책점, 이닝 등에서 밀려 논란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시즌 초반 최악의 부진을 딛고 일어선 대단한 해였습니다.
2013년
2013년 8월 25일 사직 롯데전에서 10승을 거두어 홀수 해 처음으로 두 자릿수 승을 거두었지만, 평균자책점이 4점대로 높은 편이었습니다.
2013년 한국시리즈에서 선발로 호투했고, 2013 시즌 후 FA 자격을 얻어 4년 간 60억 원의 조건으로 삼성 라이온즈에 잔류했습니다.
2014년
타고투저가 극심화된 시즌이었습니다. 시즌 최종성적은 24경기 11승 5패, 4점대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습니다. 타고투저임을 감안하면 평균자책점은 준수해 보이지만 다른 지표들을 보면 좋지 않았습니다. 선발로만 24경기 등판해 129 1/3이닝을 소화했는데 이는 경기당 약 5 1/3이닝 밖에 투구하지 못하였습니다. 탈삼진 갯수도 63개로 9이닝당 4.4개로 적었습니다. 피안타율도 3할에 가깝고, 피홈런 16개를 맞았습니다. 타고투저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예전만한 구위를 가지지 못하였고 구속도 많이 줄었습니다. 전년도에 145km까지도 쉽게 던졌던 직구 구속이 133~138km로 머무르는 등 좋지 못했지만 노련한 피칭으로 실점을 최소화하였습니다.
2015년
홀수해 징크스가 있는게 맞다고 해도 될 정도로 성적이 좋지 않았습니다. 시즌 최종 성적은 10승 9패, 평균자책점 5.80. 시즌 중반 너무 부진하자 류중일 감독에게 강한 질책을 듣기도 하였습니다. 첫 경기 출발은 좋았습니다. 첫 등판이었던 4월 7일 대구 롯데전에서 6 1/3이닝 1실점으로 개인 통산 100승을 달성하였고, 좌완투수로서는 2번째 기록입니다. 하지만 이후 경기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며 2군행을 요청하였고 말소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2군행 이후는 나름 괜찮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후반기 기록은 12경기에서 5승 2패, 평균자책점 4.15였습니다. 놀라운 것은 평균자책점에 비해 0.256의 낮은 피안타율이었습니다. 하지만 시즌 최종 피홈런 갯수는 29개로 피홈런 공동 1위라는 불명예에 올랐습니다. 마지막 등판이었던 10월 5일 광주 KIA전에서 6이닝 4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며 시즌 10승과 KBO 역대 5명 선발 10승 투수 배출이라는 진기록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FA 대박 투수로서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 시즌이었습니다.
2016년
6월 26일 kt전까지는 선발투수로 뛰었으나 최악의 부진과 더불어 부상까지 겹치며 2군으로 강등되었습니다. 이 후 8월 4일 SK전부터는 불펜투수로서 뛰며 선발로 뛰었을 때보단 나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데뷔 이후 가장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고 시즌을 마쳤습니다.
2017년
스프링캠프와 연습경기를 종합하여 5선발로 낙점되었으나 상당히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며 제 역할을 못하고 있습니다.
베이징 올림픽에 참가한 그는 8월 20일 네덜란드와의 예선 리그 마지막 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8이닝 동안 7K를 잡아 내며 콜드 완봉승을 거두었습니다. 그는 대표팀이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함에 따라 병역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활약하였고,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류중일 감독과 함께 참가했습니다.
사파초등학교
신월중학교
마산상업고등학교
경성대학교 체육학과
2006년 아시안 게임
2008년 하계 올림픽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08년 4월 23일 광주 KIA전 무사사구 완봉승, 최단 시간 경기
2015년 4월 7일 대구시민운동장 롯데 자이언츠전 개인통산 100승
다승왕 : 1회
골든 글러브 : 1회
아시아 시리즈 MVP : 1회
일구회 최고투수상 : 1회
조아제약 최고투수상 : 1회
스포츠토토 최고투수상 : 1회
이상 장원삼 선수에 대한 소개를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