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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의 e스토리] Legends Never Die, '앰비션' 강찬용의 시간

Talon 2018. 1. 5. 13:32

2017년 마지막 인터뷰를 준비하며 과연 누가 주인공으로 어울릴지 고민했다. 그만큼 올해는 다양한 종목에서 많은 선수가 좋은 모습으로 활약했기 때문이다. 롤드컵이 열린 중국, 블리즈컨이 열린 애너하임에서도 많은 한국 선수가 승전보를 올리며 자신이 최고임을 알렸다.

그 중 내가 선택한 선수는 '앰비션' 강찬용이었다. 'Legends never die'라는 올해 롤드컵 슬로건의 주인공, 롤챔스 초대 우승 이후 5년간 꾸준한 모습을 보이며 롤드컵 우승을 차지한 강찬용은 그야말로 전설이 되었다. 하지만 말이 5년이지, e스포츠 선수로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많은 선수가 데뷔하고, 활약하고, 은퇴하는 순간에도 그가 묵묵히 선수 생활을 이어갔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더구나 이번 우승은 작년 준우승에 이어 연달아 기록한 결과다. 얼마 전까지 유행했던 'Getting over it', 일명 항아리 게임을 하다 목표지점 바로 앞에서 실수하는 바람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다시 도전할 마음이 쉽게 들지 않는다. 프로 게이머라면 누구나 꾸던 꿈을 눈앞에서 놓친 후 다시 일어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SK텔레콤 T1을 상대로 결승전에서 완벽한 모습을 보이며 우승을 차지한 강찬용을 만난 건 롤드컵이 끝난 후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후였다. 삼성 갤럭시가 아닌 KSV e스포츠 소속으로 내년 시즌을 준비 중인 강찬용을 만나서 가장 먼저 물어본 이야기는 늦은 우승 소감이었다. 4강까지는 중국 현지에서 대회를 취재했지만, 다른 일정으로 결승을 지켜보지 못해 항상 궁금하던 차였다.

"크게 바뀐 건 없어요. 하지만 주위 반응은 작년과 다르더라고요. 이번 롤드컵을 우승하고 나서 주변에서 저를 소개할 때 롤드컵 우승팀 정글러라고 하더라고요. 작년에는 그런 이야기를 못 들었거든요. 그것보다 프로게이머로 가장 이뤄야 하는 걸 이제서야 이뤄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대답을 듣자 뭔가 앰비션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의 변화보다 자신의 꿈을 이뤄 마음이 편하다는 대답. '기쁘다'가 아니라 '마음이 편하다'라는 표현을 쓴 게 궁금했다. 그리고 그의 대답을 듣자 왜 마음이 편해졌다는 표현을 사용했는지 이해했다.

"작년 롤드컵에서 준우승하고, 이어서 올해도 잘할 거라는 생각을 안 했습니다. 오히려 이번 롤드컵은 더 어렵고 힘든 길이 될 거라고 예상했죠. 그리고 제 생각대로였어요. 매 순간 여유보다는 종이 한 장 차이로 다음 단계로 계속 올라갔죠. 그래도 저와 팀원들이 그런 힘든 순간마다 계속 성장했어요. 롤드컵에 진출하는 과정에서도, 그룹 스테이지에서도, 이후 토너먼트에서도 계속 성장을 했고 그 결과가 결승전에서 나왔거든요. 올해 초와 롤드컵 우승할 때 우리 팀은 완전 다른 팀이 됐습니다."

그의 말대로 작년 준우승과는 달리 올해는 롤챔스 참가 팀의 전력이 상향 평준화되어가는 상황에서 자신의 성적을 낙관할 수 없던 상황에서 우승을 차지해 더욱 값진 순간이었다. 우승으로 시작한 첫 롤챔스부터 따져도 5년 반 만에 그가 목표를 이루기까지 많은 선수가 나타났고, 반짝였고, 그리고 사라지는 동안에도 강찬용은 계속 리그에 남아 있었다. 다시 최고에 오르기까지 강찬용은 어떻게 긴 시간동안 계속 기량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이 질문에 그는 자신의 남다른 집중력과 포기하지 않는 마음 덕분이라고 말했다.

"시간 낭비하는 걸 싫어해요. 어렸을 때부터 할 일이 생기면 정해진 시간 내에 최대한 집중해서 다 하는 성격이었어요. 어떤 방식으로 해야 같은 시간에 남들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까, 더 효율이 좋을까 고민하고 생각했죠. 제가 남들보다 부족하고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 더 열심히 연습에 집중했어요. 그리고 긴 시간 동안 슬럼프가 오지 않을 수 없지만 오히려 저는 슬럼프를 극복하면 더 좋은 실력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포기하고 싶은 적은 정말 많았어요. 그런데 거기서 포기하면 어떻게 될까 생각했죠. 다른 걸 하면 정말 후회될 거 같아서 계속 슬럼프를 극복해나갔죠. 그러고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니 그 순간을 넘길 때마다 성장해 있더라고요." 
 

누구나 겪는 슬럼프를 오히려 성장의 기회로 삼아 극복한 강찬용. 5년동 안 정말 많은 슬럼프를 겪었던 그에게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물어보았을 때 전 소속팀인 CJ 엔투스, 그리고 현 소속팀에서 있었던 일을 말했다. CJ에서 미래가 불투명했던 순간과 올해 스프링이 그에게는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라고. 

특히 올해 스프링 스플릿에서 경기에 나가지 못해 자신감을 잃으며 긴 슬럼프를 겪었다고 전했다.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고, 주변 반응이나 시선에 위축되면서 자신감을 잃었던 강찬용이지만 여전히 그는 많이 연습하고 많이 생각하며 위기를 극복했다. 메타가 바뀌면서 그의 슬럼프 탈출 속도는 박차를 가했지만, 메타가 바뀌지 않았더라도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을 정도로 연습했다고 말했다.

그에게 있어서 또 한 번의 슬럼프는 CJ 시절. 지금 힘든 건 버틸 수 있는데 앞으로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는 상황이었다고 말한 강찬용은 선수로 자신이 활약할 수 있는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다급함까지 생겼다. 극복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생각에 슬럼프에 빠졌다는 것이다.

슬럼프만큼이나 강찬용에게 선수 인생의 분기점은 삼성 이적이다. 2011년 이후 팀명이 바뀌긴 했지만 강찬용은 계속 같은 팀이라고 할 수 있는 곳에서 활약했다. 그러나 2015년 CJ 계약 종료와 함께 삼성 이적이 발표되며 강찬용은 새로운 선수 생활을 맞이했다. 어찌 보면 의외의 일이었던 삼성 이적을 강찬용은 어떤 마음으로 준비했을지 궁금했고, 드디어 그에게 직접 답을 들을 수 있었다. 
 

"힘들었어요." 힘들었다니, 강찬용이 힘들 정도였다면 어떤 일이었을까. 그에게는 CJ라는 이름이 큰 부담이었다.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지 못한다는 주위의 시선이 따갑고 부담감도 느꼈어요. 그 부담이 경기력까지 흔들 정도였으니까. 변화가 두려웠지만 불투명한 미래가 더 견디기 힘들었어요. 그래서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 아래 이적을 준비했죠."

자신을 위해 과감한 변화를 시도한 강찬용. 그러나 자신도 앞날을 확신할 수 없었다. 그가 원하는 팀에도 못 가고, 그를 원하는 팀도 없을 거라는 비관적인 생각. 하지만 당시 계속 팀 리빌딩 중이던 삼성 갤럭시가 강찬용 영입 의사를 밝혔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팀이 있다는 것, 그리고 여기서는 게임 외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강찬용은 이적을 결심했다.

2014년 롤드컵 우승 멤버를 모두 내보내고 2015년 한 해 팀을 리빌딩 중인 삼성은 시즌이 끝나고 정글과 원거리 딜러를 보강하던 중이었다. 팀의 중심이 될 선수를 찾던 삼성은 중 경험이 풍부한 강찬용을 놓칠 리가 없었다. 강찬용 역시 2015년 한 해 상대했던 삼성에 대해 약팀이었지만 실력은 있었고, 다들 솔로 랭크 점수가 높은 만큼 기량은 충분한 만큼 잘하면 성적을 낼 수 있는 팀이라고 평가했다.

"저는 제가 생각한 플레이를 못 하면 제대로 경기가 풀리지 않는 스타일이거든요. 그만큼 다른 선수들이 따라와야 하는데 이걸 맞춰주는 게 다들 쉽지 않았을 거에요. 지금 생각해보면 다들 저 때문에 고생했을 거 같아요. 그리고 팀이 성장하기 위해서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야 한다고 생각해서 모두 해볼 수 있을 때까지 해보면서 다들 성장했죠. 지더라도 끝까지 하는 거. 그리고 운영의 부담이 저한테만 있던 건 아니에요. (권)지민이가 선수 경력이 있다 보니 프로다운 콜을 해주더라고요. 그게 저한테 큰 힘이 됐죠." 
 

그의 말대로 2016년 한 해 삼성은 성장에 성장을 거듭했다. 스프링 시즌에서는 아프리카 프릭스에 밀려 포스트 시즌을 놓쳤지만, 서머 시즌에는 포스트 시즌에 올랐다. 그러나 그해 내내 삼성의 발목을 잡았던 kt 롤스터에 또다시 패배하며 롤챔스 결승, 그리고 롤드컵으로 가는 길이 막혔다. 롤드컵에 가기 위해 삼성에게 남은 마지막 길은 지역 선발전뿐이었다. 그리고 삼성은 선발전 끝에 0대 19라는 압도적으로 불리한 세트 스코어를 넘어 롤드컵에 진출했다. 그리고 무심할 거만 같았던 강찬용도 승리 후 무대에서 눈물을 보였다. 삼성의 롤드컵 진출보다도 그가 눈물을 보였다는 게 더 놀라울 정도였다.
"저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어요. 정말 바닥에서 시작해서 롤드컵까지 진출한 거라 저도 모르게 감상적으로 된 순간이었습니다. 천적이던 팀을 풀세트 접전 끝에 가장 중요한 순간에 이겼으니까 감격할 만하다고 생각해요. 져도 잃을 게 없다는 생각으로 준비했죠. 후회 없을 정도로 열심히 준비해서 우리가 준비한 걸 다 보여주고 지더라도 아쉬워하지 말자고 했죠. kt도 쉽지 않았던 상황이었을 거에요. 눈앞의 롤드컵을 결승 5세트에서 놓치고 선발전까지 왔으니까요. 오히려 마지막 5세트까지 간 게 저희한테 도움이 됐다고 봅니다." 
 

천신만고 끝에 진출한 첫 롤드컵에서 강찬용은 결승까지 올랐다. 상대는 2연속 우승을 노리는 SK텔레콤 T1. 0대 2 상황까지 밀리던 삼성은 2대 2까지 추격했지만 아쉽게 마지막 세트를 놓치며 우승을 내줬다. 대단하다면 대단한 성적이지만 아쉽다면 아쉬운 대회였다. 강찬용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원래 결승에 갈만한 팀은 아니지만, 대진운도 좋았고 다들 결승까지 가면서 실력도 늘고 호흡도 맞았다. 결승 1세트를 해보니 할만하다는 생각이었지만 뭔가 하나가 부족해 놓친 우승이었다고.

다음 해인 2017년 강찬용은 다시 롤드컵 우승 기회를 맞았다. 롤챔스 내내 최상의 경기력을 보이지는 못했지만, 중요한 순간 다시 살아나며 베테랑의 가치를 보인 것. 인터뷰 처음에 말했던 것처럼 리그 전체가 상향 평준화된 상황에서 압도적 전력을 가진 것도 아니었고, 리그 중반 상위권에 올랐지만 순위를 유지하기 위해 오버 페이스 한 결과 두 번의 포스트시즌 모두 아쉬움으로 마쳤다. 그러나 아프리카 프릭스와 만난 롤드컵 지역 선발전 2차전에서 0대 2로 뒤지던 상황에서 삼성은 강찬용을 출전시키고 이후 여섯 세트를 내리 따내며 kt까지 격파하고 2년 연속 롤드컵에 올랐다.

"팀은 포스트 시즌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였지만 제 실력에는 자신이 있었어요. 아프리카와 경기도 2세트까지 경기를 지켜봤는데 쉽게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었죠. 우리 팀 스스로 게임을 그르치고 있었고, 제가 나가서 결국 역전해냈죠. 그다음 상대인 kt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크게 흔들리는 중이렀고요. 하늘이 도왔다고 할 수밖에 없던 상황이긴 했어요."
 

롤드컵 진출을 확정지은 무대에서 눈물을 보였던 작년보다는 한결 여유 있던 모습의 강찬용이었지만, 롤드컵 역시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중국 RNG, 유럽 G2, 터키 페네르바체와 한 조에 속한 것. 2016년보다 더욱 쉽지 않은 조편성에서 RNG에게만 2패를 내주고 2위로 8강에 올랐다. RNG와 첫 경기에서 패배는 실수였지만, 리턴 매치에서의 패배는 실력 차이라고 느낀 후 대회 중 연습에 더 매진했다고. 그 결과가 롱주전 3대 0 승리였다. 

"롱주가 6전 전승으로 8강에 오르긴 했는데, 제가 보기에는 경기력이 완벽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결과가 결과인 만큼 방심할 거로 막연히 예상하긴 했어요. 그리고 우리 팀 경기력도 8강부터 오르기 시작했죠. 자신감도 붙어서 결승에 갈 수 있을 거로 생각했고요. 그리고 상대는 SK텔레콤 T1이 될 거 같았어요. 16강 이후로도 RNG와 연습을 몇 번 했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결승 상대가 RNG가 됐으면 했습니다. SK텔레콤의 경기력이 흔들려 보이는 상황에서 상대했다가 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거든요."

한중전 구도의 4강에서 승리를 거둔 팀은 삼성과 SK텔레콤. 강찬용의 예상대로 중국의 심장인 베이징에서 열린 롤드컵 결승은 한국팀의 대결로 성사됐다. 결승 흥행이 힘들 거라던 예상을 뒤집고 꽉 채운 베이징 국립 경기장의 관중 가운데 벌어진 경기에서 삼성은 3대 0으로 SK텔레콤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일방적인 결과였지만 강찬용은 절대 안심하지 않았다고.

"결과는 3대 0으로 나왔지만 한 판이라도 내준다면 승리를 낙관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보는 입장에서 3대 0이라는 스코어가 어떻게 보면 허무할 수 있겠지만 2대 0 상황에서도 절대 방심하지 않았어요. 상대가 상대니까. 우승해서 기쁘긴 했지만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지지 않아서." 
 

롤드컵 우승 후 강찬용은 팀 잔류를 선택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삼성이 KSV e스포츠에 인수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팀 이름은 바뀌었지만 그는 동료들과 다시 한번 최고를 준비 중인 것이다. 선수로서 꿈은 이루었지만 선수 생활은 끝난 건 아니기에 계속 최고의 자리에 있는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목표라는 강찬용. 그의 꾸준함과 성실함이 여전히 팬들에게 사랑받고 가정을 이루게 된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롤드컵 슬로건이 공개됐을 당시만 하더라도 강찬용이 그 주인공이 될 거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대회가 끝난 후 강찬용은 롤드컵의 주인공이 되었다. 초대 롤챔스 우승부터 롤드컵 우승까지, 그가 보낸 시간 중 빛나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하지만 강찬용은 노력과 꾸준함으로 우승을 차지하며 그의 선수 생활 전체를 빛나게 했다. 우리 앞에 사라지지 않는 전설. 올 한 해를 대표하는 선수로 강찬용을 선택하기에 부족함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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