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야구코치 이영우

Talon 2018. 12. 4. 09:06

오늘 소개할 분은 바로~

이영우 코치님입니다~!


그는 리드오프로 기용되는 선수들 중 1회 선두 타자 홈런이 통산 17개로 KIA의 이종범 다음으로 많을 정도로 장타력을 겸비한 타자였으나, 병역비리 사건 이후 급격하게 하락한 선수였습니다.



한화 이글스 시절

서울 출신으로, 선린상업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하고 2차 2순위 지명을 받아 한화 이글스에 입단하였습니다. 입단 초기 1루수로 출장하였으나, 1999년 외국인 선수인 로마이어의 입단으로 좌익수로 수비 위치를 변경하였습니다. 1999년 1번 타자 겸 좌익수로 출전하면서 3할대 타율, 13홈런 49타점을 기록하며 팀의 첫 우승에 기여하였습니다. 2002년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팀에 선출되어 금메달 획득에 기여하였으나, 2004년 9월에 발생한 병역비리 사건에 연루되면서 공익근무요원으로 병역 의무를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대전광역시 중구청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병역 의무를 이행하였고, 소집 해제 후 2007년에 복귀하였습니다. 그러나 복귀 첫 해에 홈런을 기록하지 못하는 등 예전의 감각보다 떨어졌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입대하기 전 2005년에 체육 훈장 기린장을 받았습니다. 출장 횟수도 갈수록 감소하다가 2010년에는 어깨 부상까지 겹쳐 2군을 전전했고, 2010년 9월 18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은퇴식을 갖고 현역에서 은퇴하였습니다.


은퇴 후 선린상고 시절 감독이었던 박순영 감독의 부름을 받아 대전고등학교의 타격 인스트럭터를 역임했고, 2011년 시즌 후 친정 팀의 타격코치로 복귀했습니다. 김민재 코치의 주루판단 미스로 인해 주루코치였던 최만호 코치가 작전코치로 이동하게되어 타격코치에서 주루코치로 이동했습니다. 이후에는 육성군에서 타격코치를 맡았으나, 2015 시즌 후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아 팀을 떠났습니다. 이후 kt 위즈의 2군 타격코치로 영입됐습니다.


서울남정초등학교

선린중학교

선린인터넷고등학교

건국대학교 체육교육학과


1994년 아시안 게임 은메달

2002년 아시안 게임 금메달


일세를 풍미한 공격형 톱타자임에도 주목을 덜 받은 편입니다. 그 까닭은 "비인기 지방구단 소속"인 데다가 "하필이면 50홈런이 빵빵 터지던 시대의 중거리형 타자"에 "하필이면 전성기가 프로야구 암흑기"라는 비인기 3종신기를 갖췄기 때문.


소집 해제되어 복귀한 후에는 한국프로야구가 인기를 끌어모으고 있었으나 팀도 막장, 본인도 막장인 탓에 WBC 이후 유입된 팬들에겐 낯선 아저씨가 되었습니다...


통산 1,275안타로 크보 역대 37위. 순위권이라 하기 민망한 순위이지만 공익 복무로 끌려가기 직전까지 보였던 안타 생산 능력만 놓고 보면 1,700안타도 가능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 통산 홈런과 도루를 보면 135홈런, 112도루인데, 공익복무를 끌려가기 직전까지 보였던 홈런과 도루능력을 놓고 보면 150홈런과 150도루도 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타석에서 삼진을 당하건 안타를 치건 잘 웃는 편이에요. 타석에서 여유를 찾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이래 왔다고. 타자판 김광현. 이 때문에 농민미소 혹은 농약미소란 별명도 있습니다.


은퇴 직전에도 언론이 무관심한 편이었습니다. 은퇴를 발표한 9월 14일 이후 9월 18일 은퇴식까지 인터뷰 기사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기자들이 구단홍보자료만으로 대충 때웠습니다. 결국 은퇴일에 일문일답 형식의 인터뷰 하나 달랑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 날 후배들은 11:1로 깨지며 선배가 가는 마지막 길에 거하게 똥칠을 하게 됩니다.


이영우 선수가 은퇴하면서 한화 이글스에서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현장에서 맛 본 선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현역으로 뛰고 있는 이상열도 팀에 없습니다.


결국 일세를 풍미할 수 있었던 리드오프 장타자가 젊은날의 과오로 씁쓸하게 끝난 케이스가 됐습니다. 소리없이 강했던 김한수처럼 될 수 있었지만 서용빈과 같은 엔딩입니다.


사람좋은 외모와 달리 꽤 성격이 있는 스타일이었습니다. 농구계의 국보급 센터를 배출시킨 일등공신입니다. 중학교 야구부 시절 후배들을 매섭게 갈구곤 했는데 이영우 코치의 1년 후배였던 서장훈이 이를 견디다 못해 전학을 가고 농구를 시작한 것. 이영우 코치의 똥군기가 아니었더라면 서장훈은 농구선수가 아닌 야구선수로 기억됐을지도...


응원가가 매우 슬픈 분위기입니다...


이상 이영우 코치에 대한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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