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 홍명보

Talon 2019. 2. 14. 09:49

오늘 소개할 분은 바로~

흥부 홍명보 이사님입니다~!


2016년 시즌부터 중국 슈퍼리그의 항저우 뤼청 감독이었는데 2017년 5월 25일에 성적 부진과 팀 내부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아 사임하였습니다. 한국 선수들 중에서 유일하게 FIFA 100에 선정되었습니다.


서울광장초등학교 졸업

광희중학교 졸업

동북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체육교육학 학사

고려대학교대학원 체육교육학 석사

고려대학교대학원 체육교육학 박사


포항 스틸러스의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스타입니다.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상무에 입대하여 군 복무를 마친 후 1992년 유공 코끼리의 지명을 받았으나 지명권 트레이드로 포항제철 아톰즈에 입단했습니다. 1992년 포항의 K리그 우승에 크게 공헌하여 신인 선수로는 최초로 MVP를 수상했습니다. 1997년 5월 24일 J리그 클럽 벨마레 히라츠카로 이적 조인식을 가졌으며 1999년 가시와 레이솔로 이적하여 그 해 J리그 컵 우승에 공헌하였습니다. 2002년 친정 팀 포항 스틸러스로 잠시 복귀했다가 2003년 미국 메이저 리그 사커 팀 로스앤젤레스 갤럭시로 이적하였습니다.


2004년 10월 8일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선수로서 공식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1990년 2월 4일 노르웨이와의 친선 경기에서 데뷔하여, 1990년 FIFA 월드컵부터 2002년 FIFA 월드컵까지 4번의 월드컵에 참가하여 2골을 넣었습니다. 월드컵 4회 참가는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입니다. 1994년 FIFA 월드컵에서 예선 1차전 스페인전 추격골과 동점골의 어시스트, 3차전 독일과의 경기에서 중거리 슛으로 골을 넣었습니다. 2002년 FIFA 월드컵에서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을 맡아 아시아 최초로 월드컵 4강을 이룩한 뒤,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로 브론즈 볼을 수상했습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축구 국가대표팀에 와일드카드 선수로 선정되었으나 대회 개막 직전 부상으로 강철로 교체되었습니다.


딕 아드보카트가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되었을 때 코치로 발탁되었습니다. 당시 대한축구협회에서 인증하는 코치 라이센스를 취득하기 전이어서 무자격, 특혜 논란이 일었습니다. 2006년 FIFA 월드컵이 끝난 뒤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물러나고 핌 페르베이크이 새 감독이 되자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수석코치로 발탁되었습니다. 2007년 AFC 아시안컵 3·4위전인 일본전 때에는 심판 판정에 불만을 표시하다가 핌 페르베이크 감독, 코사 골키퍼 코치와 함께 퇴장당하는 사건을 일으켰습니다. 그 뒤에 핌 페르베이크 감독이 사퇴한 이후에도 축구 국가대표팀에 남아 있었다. 한때 올림픽 대표팀 감독 유력 후보로 떠올랐으나 올림픽 대표팀 감독이 되지 않고, 박성화 감독 취임 이후 올림픽 대표팀의 코치로 합류하였습니다.


2009년 2월 19일 조동현 감독의 후임으로 U-20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습니다. 그리고 2009년 FIFA U-20 월드컵에서 18년 만에 8강에 진출하여 좋은 경기를 펼쳤습니다. 그리고 이후 올림픽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하여 2012년 하계 올림픽 동메달에 기여하였습니다.



2012년 하계 올림픽이 끝난 후 2012년 연말까지 휴식기를 가지고, 2013년 1월부터 거스 히딩크가 감독을 맡고 있는 러시아의 프로 축구 팀 안지 마하치칼라에서 6개월 동안 어시스턴트 코치로 활약했습니다.

 이후 2013년 6월 24일 계약이 만료된 최강희의 후임으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서 가진 첫 경기인 2013년 동아시안컵 오스트레일리아전에서 0:0으로 비겼으나, 경기가 끝난 뒤 오스트레일리아의 홀거 오지크 감독은 한국이 무척 강한 팀이 될 것이라는 언급을 했습니다. 그러나 동아시아컵에서 1승도 올리지 못한 채 최종전에서 일본에 패했습니다.


2014년 FIFA 월드컵을 앞두고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으나 1무 2패에 그치며 조 최하위로 16강에서 탈락했습니다. 홍명보 감독은 대표팀 구성 과정에서 경기력을 차지하고 친분을 따려 선수를 선발했다는 '의리 논란'에 휘말렸습니다. 홍명보 감독은 포르투알레그리에서 열렸던 알제리와의 2차전에서 전반 38분 동안 세 골을 얻어맞고 벨기에와의 3차전에서 수적 우위를 누렸음에도 후반에 골을 허용해 패하는 등 경기 내적으로는 전술 구사력도 부족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홍명보 감독의 계약 기간은 2015년 1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열리는 2015년 AFC 아시안컵 대회까지로 대한축구협회의 재신임을 받아 계속 지휘봉을 잡을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여론의 악화로 2014년 7월 10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 2층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홍명보 감독은 전격 사퇴를 발표하면서 "국민들께 죄송하다. 월드컵 16강 진출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면서 "앞으로도 좀 더 발전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하였습니다.



사퇴한 후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건너갔으며, 이후에는 축구 장학재단의 이사장 일에만 전념했습니다. 그 후 축구 국가대표팀은 그의 후임으로 신태용이 2014년 8월 18일부터 2014년 9월 5일까지 감독대행직을 수행하였고 정식 감독으로 울리 슈틸리케를 선임하였습니다.


최근에는 일본 J리그 명문 팀인 알비렉스 니가타로부터 관심을 받았으며 구단 측에서도 감독으로 영입할 의지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중국 슈퍼리그의 항저우 뤼청도 홍명보 감독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2015년 12월 17일, 중국리그 항저우 뤼청에서 홍명보 감독을 영입한다고 공식발표했습니다.


2016년 10월 30일 항저우 뤼청은 중국 슈퍼리그에서 강등당하였습니다. 2017년 5월 항저우 감독직을 사퇴하면서 그의 중국 진출은 실패로 끝나버렸습니다.


홍명보 감독은 은퇴 당시 기자회견에서 행정가의 길을 걷겠다고 이야기했었고, 2005년 김주성 등과 함께 대한축구협회 이사에 선임되었습니다. 그 뒤, 각급 대표팀의 코치와 감독을 차례로 맡아서 행정가의 길을 접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아직 행정가의 꿈은 계속 열어놓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1990년 FIFA 월드컵 국가대표

1991년 하계 유니버시아드 국가대표

1990년 아시안 게임 축구 국가대표

1994년 FIFA 월드컵 국가대표

1994년 아시안 게임 축구 국가대표

1996년 AFC 아시안컵 국가대표

1998년 FIFA 월드컵 국가대표

2000년 CONCACAF 골드컵 국가대표

2000년 AFC 아시안컵 국가대표

2001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국가대표

2002년 FIFA 월드컵 국가대표


홍명보 이사가 사비를 털어 만든 홍명보장학재단에서는 2003년을 시작으로, 매년 크리스마스를 전후하여 희귀병을 앓는 어린이들과 소년소녀 가장들을 돕기 위한 자선 경기를 펼치고 있습니다. 재단 이사장인 홍명보 이사를 비롯해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올스타와 연예인들이 모여 자선 경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2008년 4월 17일 홍명보장학재단은 독일 스포츠 브랜드 푸마와 2010년까지 3년간 스폰서십 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2008년 크리스마스에는 축구 선수들과 연예인들이 소아암어린이와 소년소녀 가장을 돕기 위한 홍명보 자선축구 경기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2008년 자선 경기시엔 1만 5천여 관중들이 캐롤 송을 함께 불러 많은 사람들이 캐롤송 함께부르기 기네스 기록에 도전하기도 하였습니다. 세계 기네스 기록에는 아쉽게 미치지 못하였지만 한국 기록의 새 기록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1994년 롯데칠성 게토레이

1995년 하이트진로

2002년 KT

2002년 신세계 신세계상품권

2003년 SC제일은행

2006년 삼성생명

2011년 동서식품 오레오

2013년 기아자동차 K9 / 동화약품 후시딘

2014년 삼성전자 커브드 UHD TV


선수

포항 스틸러스

K리그 : 우승 - 1992, 준우승 - 1995

아디다스 컵 : 우승 - 1993, 준우승 - 1996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 우승 - 1996-97

아시안 슈퍼컵 : 준우승 - 1997


가시와 레이솔

J리그 컵 : 우승 - 1999


대한민국

아시안 게임 축구 : 동메달 - 1990

하계 유니버시아드 : 금메달 - 1991

AFC 아시안컵 : 3위 - 2000

FIFA 월드컵 : 4위 - 2002


감독

대한민국 U-23

아시안 게임 축구 : 동메달 - 2010

올림픽 축구 : 동메달 - 2012


개인

K리그 : MVP - 1992, 베스트 11 - 1992, 1994~1996, 2002

FIFA 100 : 2004

AFC 아시안컵 베스트 팀 : 2000

FIFA 월드컵 : 브론즈볼, 올스타 팀 - 2002

1994년 백상체육대상 대상 수상, 세계 올스타 선정

1995년 AFC 선정 아시아 최고 수비수, 세계 올스타 선정

1996년 K리그 인기상 수상

1997년 세계 올스타 선정

1999년 세계 올스타 선정

2000년 저축의 날 대통령 표창

2001년 J리그 올스타 선정

2002년 월드컵 브론즈볼 수상, 로이터 통신 선정 월드컵 베스트 11, 체육훈장 맹호장, 자황컵 체육대상 남자 최우수상 수상

2017년 청소년·가정의달 국민포장


동료들 사이에서 마음이 너무 좋다고 해서 '흥부'라는 별명이 생겼습니다. 또는, 그의 플레이 스타일과 국가대표팀에서의 활약으로 인하여 '영원한 리베로'로 불리기도 합니다.

2004년 11월 19일 독일과의 친선경기에서 객원 해설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하였습니다.

2005년 홍명보 이사는 일본의 이하라 마사미와 함께 한일 축구 친선대사에 선정되었습니다.

2008년에는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추진하는 ‘K-리그 안전캠페인’ 홍보영상에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2002년 FIFA 월드컵 8강전 스페인과의 승부차기에서 마지막 5번째 키커로 나서 4강 진출을 알리는 깔끔한 골과 함께 드러낸 홍명보 선수의 보기드문 환한 미소를 기억하고 있는 이가 많습니다. 하지만 홍명보 감독은 당시 상황에서 본인의 킥이 실축할 시의 막대한 두려움에 떨고 있었고 이를 슛과 함께 떨쳐냈기 때문에 진심으로 '살았다. 다행이다.'라는 의미의 미소가 나왔다고 합니다.

2014년 AFC’s Hall of Fame 10인의 명단에 선발되었습니다. AFC 명예의 전당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축구스타 레전드 10인을 선발하였으며, 홍명보를 선발한 배경에 대해서는 2004년 FIFA 100인 선정, 아시아 최초의 월드컵 4강, 브론즈볼 시상 등 2002 월드컵의 활약상을 언급하였고, A매치 136경기로 한국에서 가장 많은 A매치를 뛰었다고 밝혔습니다.


이상 홍명보 이사에 대한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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