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05.
일흔을 앞둔 배우 이덕화(67)는 최근 KBS와 손잡고 유튜브에 ‘덕화티비’ 채널을 열었다. 이덕화가 직접 촬영하는 ‘덕화티비’는 그의 여러 면모를 대중에게 전한다. 축구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본인이 쓰는 가발 정보를 알려주는 식이다. KBS는 이덕화가 ‘덕화티비’를 통해 1인 크리에이터에 도전하는 모습을 촬영ㆍ편집해 동명 예능프로그램으로 지난달 26일부터 방영하고 있다. 요즘 미디어업계 대세로 자리잡은 유튜브의 위상을 새삼 보여주는 사례다.
이덕화는 기존 방송사를 등에 업고 유튜브에 진출했다지만, 유튜브 채널을 직접 개설하고 수많은 유튜버들과 무한 경쟁하는 연예인이 적지 않다. 높은 인지도가 유리하게 작용할 듯하지만 아무리 스타라도 유튜브 시장 뚫기는 험난하다. 인기의 최소 기준인 구독자 10만명을 넘긴 연예인은 50명이 채 안 된다. 기존 ‘방송 계급장’은 유튜브에서는 별 소용이 없다. 제 아무리 유명 연예인이라도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자마자 ‘장군’ 대우를 받기는 어렵다.
연예인의 유튜브 진출은 지난해 부쩍 늘었다. 유튜브가 2017년 11월부터 1년간 구독자 수가 가장 많이 증가한 10개 채널을 집계한 결과 두 곳을 제외한 8개 모두 연예인이 주도하는 채널이었다. 최근 급부상한 연예인 채널로는 지난해 5월 개설된 ‘와썹맨’이 대표적이다. 그룹 god의 멤버 박준형이 서울 곳곳의 명소를 돌아본다는 단순한 내용이 네티즌 사이 입소문을 타면서 구독자 176만명이 넘는 유튜브 파워 채널로 성장했다. ‘와썹맨’은 종합편성채널(종편) JTBC의 디지털 채널 스튜디오 룰루랄라가 제작하고 있다.
아예 혼자서 활동하는 연예인도 있다. 직접 아이디어를 내서 촬영한 영상에 편집과 자막을 덧붙인다. 아이돌그룹 에프엑스의 멤버 엠버는 2017년 10월 ‘내 가슴 어디에 있지(WHERE IS MY CHEST)’라는 제목의 악플 읽기 영상을 자신의 채널 ‘Amber Liu’에 올려 512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남자 같다”는 비아냥에 대한 앰버 나름의 반격이 네티즌의 호감을 샀다. ‘Amber Liu’는 구독자가 115만명에 달한다. 여성에 대한 성차별적 편견을 재치 있게 꼬집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아이돌그룹 에이핑크의 멤버 윤보미와 배우 신세경도 최근 뜨고 있는 연예인 유튜버다. 윤보미는 ‘뽐뽐뽐’에 다이어트를 하거나 화장하는 평소의 모습을, 신세경은 ‘sjkuksee’에 요리하고 산책하는 소박한 면모를 각각 영상에 담아 보여준다. ‘뽐뽐뽐’은 구독자가 63만명, ‘sjkuksee’는 58만명이다. 두 채널 모두 지난해 개설됐다. 윤보미가 동료 멤버들과 함께 촬영한 떡볶이 ‘먹방(음식 먹는 방송)’ 조회수는 228만건에 달하기도 했다. 윤보미는 한국일보와 서면 인터뷰에서 “여러 콘텐츠로 팬들과 소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시작하게 됐다. 나만의 개성을 살려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게 유튜브의 가장 큰 매력”이라며 “처음에 비해 기획과 촬영은 능숙해졌지만, 아직도 카메라와 조명 설치는 어렵다”고 밝혔다.
개그맨 이수근은 유명 연예인이면서도 호응을 얻지 못한 경우다. 2016년 12월 동료 개그맨들과 함께 유튜브 채널 ‘핸동대장’을 개설해 1년 넘게 운영했지만, 조회수 5만건을 넘는 동영상은 하나도 없었다. 미디어그룹 CJ ENM 산하 멀티채널네트워크(MCN)인 다이아TV가 제작 지원까지 했으나, 기존 방송 문법을 답습해 네티즌 공략에 실패했다. 이후 이수근은 ‘이수근 채널’로 채널 명을 바꾸고 당구와 풋살 영상을 중점적으로 올려 유튜브에 안착했다. 현재 구독자는 35만명이다. 이수근은 ‘핸동대장’에 올린 영상에서 “개인의 능력만 믿고 준비 없이 촬영하는 경향이 있다”며 “유튜브는 다른 세계”라고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방송 활동만으로도 바쁠 연예인들이 유튜브 채널 개설에 나서는 이유는 뭘까. 팬들과 직접 소통하고 자신을 알릴 목적도 있지만 무시할 수 없는 돈벌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당장 출연료를 받을 수는 없어도 금맥을 캔다는 심정으로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는 경향이 강하다. ‘커버 가수’(다른 가수의 노래만 전문으로 부르는 가수)로 유명한 제이플라는 유튜브에서 잭팟을 터트린 대표적인 경우다. 제이플라의 채널 ‘JFLAMusic’의 구독자 수는 1,100만명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분석 사이트 소셜블레이드에 따르면 제이플라는 유튜브와의 광고 수익 배분만으로 1년에 최대 250만달러(약 28억원)를 버는 것으로 추산된다. 간접광고(PPL) 등을 감안하면 실제 수입 규모는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유튜브는 구독자 1,000명 이상에, 채널 시청 시간이 최근 12개월 간 합계 4,000시간 이상인 곳만 광고를 달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한다. 다이아TV는 지난해 10만명 이상 구독자를 보유한 363개 채널의 광고 수익을 분석한 결과 월평균 수익이 300만원이었다고 4일 밝혔다. 이는 협찬 광고 등을 제외한 것이기에 실제 수익은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제일기획이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디지털매체 광고비 총계는 4조3,935억원으로 방송매체를 처음으로 추월했다.
방송사가 연예인과 함께 유튜브에 뛰어드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다. 디지털 미디어 시장이 확대되면서, 방송에 치중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위기감이 방송사에 팽배해 있다. 하지만 기존 TV를 외면할 수 없다는 점이 방송사의 고민거리다. 방송과 유튜브의 문법이 다른 상황에서, 두 소비자를 동시에 사로잡을 수 있는 묘안을 찾아내야 한다. ‘덕화티비’의 심하원 PD는 “가장 많이 고민한 부분은 ‘덕화티비’ 유튜브 영상을 TV로 가져왔을 때 시청자가 볼 것인지에 대한 여부였다”며 “TV에선 주 타깃인 5060세대에 맞게 유튜브 문법을 걷어내, 쉽고 편하게 볼 수 있도록 의도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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