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야구감독 김경기

Talon 2020. 4. 6. 09:39

오늘 소개할 분은 바로~

미스터 인천 김경기 감독님입니다~!

 

유독 인천에서 인기가 많아 '미스터 인천'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습니다. 현역 시절 선수단 내에서 불리던 별명은 몸집이 크다는 이유로 '고릴라'였습니다.

인천에서 태어났으며, 인천석천초등학교, 상인천중학교, 인천고등학교까지 인천에서만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특히 인천고등학교 재학 시절이었던 1985년에는 전국 대회에서 타율 0.457, 46타수 21안타의 성적을 올려 이영민 타격상을 수상했습니다. 1986년 인천고등학교 졸업 후 고려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했고, 서울 올림픽 야구 종목의 국가대표 선수로 선발되기도 했습니다.

태평양 돌핀스 시절
1990년 연고 팀 태평양 돌핀스에 1차 2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하여 1루수와 중심 타자로 활약하였습니다. 그의 등번호는 원래 37번이었으나, 1993년부터 그의 등번호는 00번을 달게 됨으로써 이 때부터 등번호 00번은 곧 그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또한, 그는 당시 홈 구장이던 숭의야구장에서 특히나 강한 모습과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 홈 팬들로부터 열화를 받아 '미스터 인천'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매년 0.270~0.290타율 사이에 20홈런을 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그는 당시 타선이 약했던 태평양 돌핀스의 중심 타선의 핵심이었습니다. 특히 1994년에는 윤덕규-김경기-김동기로 이어지는 클린업 트리오 주축 역할로 23홈런을 기록하여 활약하였습니다.

현대 유니콘스 시절
1995년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한 현대 유니콘스에서도 1996년 당시 타선이 약한 가운데에서 4번 타자로 20홈런을 기록하였고, 중심타자 1루수로 선수 생활을 활약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음 해 1997년에 6개 홈런에 36타점, 2할대의 타율을 기록하며 부진하였습니다. 1998년에는 3루수와 1루수 포지션을 전전하면서 박재홍-스캇 쿨바-그로 이어지는 클린업 트리오 타선의 주축 역할을 하여 18개 홈런에 2할대 타율을 기록하면서 건재함을 보여 주었고, 1998년 한국시리즈에서 현대 유니콘스 창단 3년 만의 첫 우승이자 역대 인천 연고 팀 사상 첫 한국시리즈 우승의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1999년에는 2할대 타율에 6개 홈런을 기록했으나 시즌 중 부상을 당해 전력에서 이탈하였습니다. 2000년에도 그는 꾸준히 2할대 타율을 기록하며 팀의 고참으로서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시즌 중 선수단 내 선수협 문제로 외야수 전준호와의 갈등이 있었고, 전준호는 이 문제로 시즌 초반에 결장을 하였습니다. 인천 팬들이 그를 돌려달라고 해서 SK 와이번스로 간 것으로 알고있지만 사실 그는 자신 스스로 소속 팀 현대 유니콘스에 트레이드 요청을 하여 그 해 7월 현금 2억 5,000만원에 트레이드되었고, 새로운 인천 연고 팀 SK 와이번스로 이적했습니다.

SK 와이번스 시절
2000년 시즌 중, SK 와이번스에 현금 트레이드로 입단하여 이적했을 때 홈 팬들로부터 열화와 갈채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이후 입지가 좁아져 갔고 2001년 시즌 종료 후, 현역 은퇴를 선언하면서 2002년 문학야구장에서 은퇴식을 했습니다.

2002년부터 2015년까지 SK 와이번스에서 타격코치, 주루코치, 수석코치 등 코치 활동을 하다가, 2016년에 SK 와이번스 2군 감독으로 승격되었습니다. 2017년부터 SPOTV의 야구 해설위원으로 활동중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인천 연고 팀 삼미 슈퍼스타즈, 청보 핀토스의 전 감독이자 '인천 야구의 대부'로 불리는 김진영입니다. KBO 소속 심판으로 활동 중인 김풍기는 그의 사촌 형이죠. 프로 데뷔 당시에는 배번으로 37번을 달았으나, 1993년부터 마음을 비운다는 뜻으로 등번호 '00'번을 달아 그 이후부터 00번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국내 프로 스포츠 사상 00번을 등번호로 달았던 선수는 김경기 선수가 처음입니다. 그는 항상 안타를 칠 때나 홈런을 칠 때 십자 성호를 긋는 세리머니를 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십자 성호 세레모니는 평소 그가 다니던 인천의 한 천주교 성당의 신부가 제안했다고 합니다. 그를 비롯한 그의 가족들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며, 그의 부인이 매 경기가 열리는 날마다 새벽 기도를 하면서 그의 선전을 기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여동생이 염경엽과 결혼하여 매제사이입니다.

인천석천초등학교 -상인천중학교 -인천고등학교 -고려대학교 법학과 86학번

 

이상 김경기 감독님에 대한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반응형

'소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前 야구 감독 故김동엽  (0) 2020.04.07
스트리머 김재원  (0) 2020.04.07
LOL 프로게이머 김규석  (0) 2020.04.05
실업 축구단 목포시청 축구단  (0) 2020.04.04
프로게이머 문우찬  (0) 2020.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