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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경민의 클로즈업] 무(無)에서 유(有)로 흐르는 '뇌신' 최우범 감독의 도전기

Talon 2020. 11. 16. 09:40


2014년 최우범 감독은 모든 선수가 빠져나간 팀에 홀로 남았다. 말 그대로 무(無)에서 출발한 최우범 감독은 두 명의 프로와 세 명의 베테랑으로 팀을 구성해 첫 시즌을 출범했다. 당시 결과는 말 그대로 꼴찌였다. 2014년 롤드컵 우승을 가져온 팀이 한 시즌만에 승강전으로 추락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최우범 감독은 승강전에서 살아 돌아온 이후 ‘크라운’ 이민호의 영입으로 숨통을 열었고 이후 2016년 스프링에서 ‘앰비션’ 강찬용과 ‘코어장전’ 조용인 등 다시 리빌딩을 진행했다. 그리고 2016년 서머 ‘룰러’ 박재혁을 영입하며 2017년 우승의 주역들이 완성됐다.

2015년부터 2017년 우승을 달성하기까지 3년이 걸렸다. 선수에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하지만 2016년 롤드컵 결승에서 준우승을 달성한 걸 기억한다면 아무도 이 시간이 길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까지 걸린 시간, 단 2년이었다.

삼성이 젠지로 바뀐 이후에도 젠지와 함께했던 최우범 감독은 2020년 5월 15일 갑작스럽게 젠지를 떠났다. 약 20년 동안 함께했던 팀을 나온 최우범 감독은 다시 ‘도전’을 발표했다. 도전하기 위한 첫 단계로 브리온 블레이드를 택한 것이다. 물론 6년 전 삼성에서 다시 팀을 만들 때와 많은 것이 변했다. 보석을 발굴하기 위한 움직임이 다방면에서 펼쳐지고 있기에 쉽지 않은 일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최우범 감독은 불편함에 개의치 않았다. 이제 긴 여정의 첫 걸음을 내딛을 차례다.

오랜만에 뵙는 것 같습니다. 쉬는 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휴식하면서 팬분들이랑 소통도 주고받았고 운동도 했고요. 집에 아이들이 있어서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데 많은 시간을 쏟았죠.

일단 가장 먼저 묻지 않을 수 없는 일이죠. 오래 몸담았던 젠지(구 삼성)를 나오게 됐어요. 여러모로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일단 당연히 저에게도 어려운 결정이었죠. 팀 이름이 바뀌기도 했지만 시작부터 거의 20년가량 같이 했던 팀이잖아요. 그래도 나오고 나니까 너무 일만 했는지 잘 쉬었다는 생각이 들긴 하더라고요. 

갑작스러운 일이니까 주위에서도 많이 놀라는 반응이었는데, 저를 이어서 주영달 코치가 팀을 잘 이끌어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과감한 판단을 한 것도 있어요. 그래도 갑작스러운 일이라 아직까지도 선수들, 코치진들, 팬분들에게 좀 미안해요.
 


그렇게 어려운 결과가 나오기까지 어떤 마음의 움직임이 있었을까요
너무 쉼 없이 달리다보니 마음도 힘들고 체력적으로도 한계에 부딪혔다는 생각을 했어요. 팀의 수장으로서 그런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요. 더 잘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그 당시에 더 잘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더라고요. 가장 큰 건 몸과 마음이 힘들었던 거죠.

젠지를 나온 것도 충격적이지만 브리온에 입단하게 된 것도 의외였어요. 혹시 브리온을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사실 브리온은 계획에 없던 팀이었어요. 근데 우연찮게 브리온 단장 (박)정석이랑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저의 마음을 흔드는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그래서 고민하다가 당일 밤에 결정하게 됐어요. 처음엔 운전하고 돌아오면서 그래도 LPL 가야지 이런 생각이었고 한국 팀에서도 얘기하고 있던 팀이 있었거든요. 

박정석 단장님이 어떤 이야기를 했기에 마음이 흔들리신 건지 궁금합니다
팀 구성, 선수단을 모두 저에게 일임한다고 하더라고요. 인간적으로 다가온 느낌도 있고요. 사실 같은 스타크래프트 선수 출신이라고 해서 친한 건 아니었거든요. 사적으로 만난 적도 거의 없고 인사만 하는 사이였는데 만나보니 더 끌리는 게 있었어요. 또 빨리 일을 시작하고 싶었던 것도 있었고요. 

같진 않지만 2014년 삼성에서 아무도 없는 팀을 새로 짜야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에요
아무래도 옛날 생각이 나더라고요. 근데 그때보다 지금이 더 힘들어요. 왜냐하면 그때는 아카데미 시스템이 없었거든요. 지금은 솔랭을 보면 전부다 팀이 있어요. 그래서 훨씬 힘들더라고요. 계약이 되어있는 선수들을 강제적으로 데려올 순 없잖아요. 원래 힘들 걸 알고 들어왔는데도 더 힘든 상황인 것 같아요. 아카데미라는 게 벽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말씀처럼 아카데미로 영입이 더 어려워졌는데 그 속에서 자신만의 영입 노하우가 있을까요
예전부터 선수들을 뽑을 때 솔랭을 많이 봤어요. 젠지에 오면서 담당자가 생겼으니 그럴 필요가 없어서 안 봤는데 이젠 직접 봐야 하잖아요. 10월부터 솔랭을 보기 시작했어요. ‘얘 진짜 잘한다’ 하고 보면 다 팀이 있고 팀에서도 잘나가는 선수들이 많아요. 예를 들면 T1의 ‘제우스’ 최우제 연습생 챔프폭이나 플레이를 보면서 당장 프로를 해도 손색없는 친구라고 생각했거든요. 어떻게 보면 부러운거죠. 제가 늦게 시작했으니... 아쉽기도 하고 그렇죠. 

게다가 챌린저스 코리아 승강전이 없어지다보니 2부 선수들의 경기력이 많이 떨어졌어요. 예전엔 승강전만 보고 열심히 했는데 이젠 아무런 동기부여가 없으니까 경기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단순히 ‘챌코에서 잘하는 애들 뽑으면 되는 거 아니야?’ 이런 게 안 돼요. 옛날과는 환경이 많이 다르죠. 무작정 열심히 해. 이거 되게 힘든 거거든요. 

그래도 감독님이기 때문에 오고 싶어 하는 선수들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오고 싶어하는 아마추어 선수들에게 팀 홍보를 하자면 어떤 방식으로 할 수 있을까요
성공하고 싶으면 오라고 얘기하고 싶네요. 또 브리온은 주전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잖아요.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기 때문에 와서 주전 꿰차고 1년 동안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거예요. 주전에 욕심 있는 선수들이라면 충분히 올 수 있을 것 같아요. 엄청난 메리트라고 생각해요. 상위권 팀 서브로 있는 것보다 여기서라도 1년 주전을 뛰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하거든요. 연봉과 인기 같은 건 본인이 잘하면 알아서 따라오거든요.

혹시 선수를 뽑을 땐 어떤 것에 중점을 두시는지 궁금합니다
가장 많이 보는 건 하고자 하는 의지예요. 면담을 많이 하면 보일 때가 있어요. 이 선수 정말 성공하고 싶어 하고, 우승하고 싶어 하는구나. 이런 의지를 보여주는 선수들을 선호하는 편이에요. 열심히 하는 건 기본적으로 깔고 가는 편이고요. 인성도 많이 보게 되고요.

그렇게 뽑은 선수들이 어떻게 성장했으면 좋겠다, 하는 바람도 있을 거 같아요
도전이 있어야 성공도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여기 오면서 제 인생에 마지막 도전이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왔거든요. 여기도 좋은 조건이지만 더 좋은 조건이나 편한 팀으로 갈 수 있었거든요. 그래도 또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 생각했어요. 그리고 선수들이 게임만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물론 평생 같이갈 순 없잖아요. 추후에 다른 팀에서 오퍼가 올 수 있는 선수들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누가 오든 그런 선수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또 직접 모으는 선수단인 만큼 구상하고 있는 모습이 있을 거예요. 혹시 선수단이 완성됐을 때 어떤 모습이길 바라시나요
한 명의 베테랑과 네 명의 신인 이런 팀 구성원을 바라고 있어요. 그런 구조가 선수들이 성장할 수 있는 데 도움이 되거든요. (15년도에 앰비션을 데려간 게 생각나요) 맞는 거 같아요. 제가 기억하기론 그 당시 ‘앰비션’ 강찬용 선수가 들어왔을 때 여론이 좋지 않았어요. 그래도 신인 다섯 명보다는 경험 있는 선수 한 명이 있는 게 팀 운영적으로나 신인 선수들 성장이나 도움이 많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 한 명의 베테랑은 신인들이 봤을 때 우러러 볼 수 있는 커리어와 생활 습관을 갖고 있었으면 좋겠네요. ‘저 형은 정말 대단하구나’ 이런 느낌을 줄 수 있게끔요. (박)재혁이를 처음 데려왔을 때 엘리베이터에서 ‘크라운’ 이민호 선수를 만났는데 “너는 저 형처럼만 하면 성공할 수 있어” 이렇게 말했거든요. 그것처럼요.

저도 선수들과 인터뷰를 진행할 때면 항상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걸 느끼게 돼요. 감독님도 선수에 대한 이상향이 확고하신데, 그럼 코치진에게 갖고 있는 이상향이 있을까요
코치 같은 경우 일거수일투족 선수들과 함께하는 케이스가 좋다고 생각해요. 스크림이 끝났다고 해서 솔랭을 하거나 나가서 볼일을 보는 것보단 선수들 솔랭을 함께 보면서 ‘이건 이렇게 하는 게 어떨까’ 먼저 말 걸어주고 선수와 함께하는 코치진을 좋아해요. 물론 저도 그렇게 했었고요. 앞으로 이런 코치진을 더 찾게 될 거 같아요. 왜냐하면 앞으로 어린 선수들이 들어오게 되면 이 선수들이 게임 외에 어떤 걸 조언 받겠어요. 코치이자 형으로서 인생 상담도 하고, 그런 그림이 나오길 바라요.

또 코치로 따지면 선수와 감독의 중간다리 역할이고 감독 같은 경우는 선수단과 회사의 중간 지점을 연결하는 역할이잖아요. 중간을 잘 이어야죠. 감독은 선수단 편도 아니고 회사 편도 아니에요. 회사에선 촬영이나 광고 등 이것저것 요구하는 것이 있고, 선수들은 연습을 바라고. 이런 부분에서 마찰이 없게 잘 조율하는 게 역할이죠. 선수들이 촬영도 많이 하다보니 힘들어하는 선수들이 있을 거란 말이에요.

사실 그 부분이 요즘 가장 화제되는 키워드가 아닐까 생각해요
정말 솔직하게 말하자면 감독들은 연습만 하고 싶을 거예요. 저도 예전에 그랬어요. 그런데 지금은 어느 정도 협조를 해주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뭐든 과하지 않은 선에서 조율하는 게 중요하죠. 예를 들면 대회 전날 촬영을 시킬 수 없는 것처럼요. 또 촬영을 하더라도 대가를 준다든지 동기부여를 해서 즐겁게 촬영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거죠. 회사와 선수단이 윈윈할 수 있는 결과가 나오도록요.

사실 LPL부터 LCK까지 감독님에게 러브콜을 보낸 팀이 적진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감독님과 함께하고 싶어 했던 팀은 어떤 면을 보고 러브콜을 보낸 걸까요
올곧다는 느낌이 좀 있나봐요. 또 선수들에게 비밀 없이 투명하게 운영하거든요. 저는 선수들도 회사가 돌아가는 상황은 알아야하지 않나 싶어서 많이 공유해요. 또 2014년에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봤잖아요. 관계자나 해외에서 좋게 평가하는 이유 중 하나가 아무것도 없었던 팀을 잡고 우승까지 만든 상황을 경험했으니까. 그게 크지 않나 싶습니다.

인터뷰에 자연스럽게 삼성 이야기가 녹아든 것 같아요. 최근 ‘코어장전’ 조용인 선수가 결혼을 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죠
(강)찬용이도 결혼을 했지만 (조)용인이도 결혼을 했죠. 좀 신기했어요. 나도 나이를 먹고 있구나 이런 생각도 들고. 같이 있을 땐 정말 어리게만 봤는데 이제 어리기만 한 건 아니구나 싶더라고요.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인터뷰 마무리는 2021년 LCK를 위한 각오로 하겠습니다
브리온에 오면서 놀라셨을 거 같은데 한 번 더 e스포츠에서 도전을 해 보고 싶었던 찰나 최적의 환경이라고 생각해 이 팀에 오게 됐어요. 해외는 당장 가지 않아도 다음에라도 갈 수 있으니까요.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어떤 선수가 들어올지 모르겠지만 같이 웃고 같이 슬퍼하는 팬분들이 계셨으면 좋겠어요. 2021년 시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겠지만 재밌는 경기 보여드릴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저보다는 팀에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감사합니다.

 

- 출처 : 포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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