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할 선수는 바로
故김상진 선수입니다.
광주진흥고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진학이 유력했지만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1996년 고졸 우선지명을 받아 계약금 1억 원, 연봉 2,000만 원에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하여 곧바로 프로로 선회했습니다. 이후 1997년 한국시리즈에선 5차전에 선발 투수로 출전하여, 9이닝 동안 2안타 1실점하며 해태 타이거즈의 한국시리즈 9번째 우승과 함께 한국시리즈 최연소 완투승의 기록도 세웠습니다. 그 활약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 뒤 활약이 기대되는 투수였지만, 1998년 시즌이 끝난 후 위암 판정을 받고 건강이 악화되어 1999년 6월 10일, 위암 말기로 사망하였습니다.
1998년 9월 19일에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OB 베어스와의 2회말 투구 중 목 통증 호소하며 자진 강판하였습니다. 10월 8일 광주 시내에서 친구들과 저녁 식사 도중 머리 뒤쪽의 통증을 호소한 뒤 기절, 전남대학교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이어서 16일에 경추 3번 종양 제거 수술을 하였습니다. 23일에 전남대학교 병원에서 위암 4기 진단받았습니다. 26일에 중앙대학교 부속 용산병원 입원, 재검 결과 전남대학교 병원과 동일 진단을 받았습니다. 30일에 방사선 치료 위해 서울 중앙병원 입원. 통원치료받으며 4주 간격으로 항암제 투여받았습니다.
1999년 3월 6일에 각혈 발생, 서울중앙병원 입원. 암세포로 인한 천공이 원인이었습니다. 8일에 천공 부분 봉합수술 받았습니다. 6월 2일에 병세 악화, 강남성모병원에 입원. 산소호흡기에 의존하였습니다. 10일 오후 3시 55분 강남성모병원에서 위암으로 사망하였습니다.
김상진 선수는 요절한 탓에 선수 생활은 짧은 기간이었지만, 선동열에 비교되는 실력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해태 타이거즈의 포수였던 장채근은 제구력은 선동열보다 뛰어났다고 평가하였습니다.
KIA 타이거즈에서는 김상진 선수를 기리기 위해 김상진 선수가 숨진 날인 매년 6월 10일 경기일에 검은색 리본을 달고 경기에 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2008년 이후 비경기일인 월요일이었던 2013년을 제외하고 김상진 선수의 기일에 열린 경기에서 KIA 타이거즈는 2016년 6월 10일에 정동현이 연패를 끊을 때까지 계속 연패를 당했습니다.
광주서림초등학교 - 광주진흥중학교 - 광주진흥고등학교
이상 김상진 선수에 대한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소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트리트파이터 프로게이머 이충곤 (0) | 2021.11.06 |
---|---|
래퍼 T.O.P (0) | 2021.11.05 |
e스포츠 팀 퓨리아 e스포츠 (0) | 2021.11.02 |
e스포츠 코치 스즈키 카즈타 (0) | 2021.11.02 |
가수 엔플라잉 (0) | 2021.1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