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할 선수는 바로~
작은 들소 유명우 선수입니다~!
본관은 풍산입니다. 한국 프로복싱 주니어플라이급 체급 사상 최다 기록을 세운 선수이죠.
서울 한강중학교 재학 시절에 복싱에 입문했으며, 3학년 때 전국 학생 신인선수권대회에 처음 출전했습니다. 1982년 프로에 데뷔해, 1984년 동양 타이틀을 따고, 이듬해 조이 올리보를 판정승으로 누르고 WBA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1991년 이오카 히로키에게 패하여 타이틀을 빼앗겼으나, 이듬해 1992년에 다시 챔피언 자리에 올랐습니다. 이어 같은 해 은퇴하였고 이후에는 예식장, 설렁탕집, 오리고깃집 등을 경영하였으며 사업으로 생긴 수입으로 복싱계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복싱 선수 시절인 1988년 3억 8000만 원의 대전료를 받고 국내 프로복서 중 최고의 소득을 올렸습니다.
당시 연 2억원 이상의 소득이 있었던 유명우 선수였지만 그는 늘 대중교통을 이용했고 부친이 정년퇴직을 한 후에야 자가용을 구입했습니다. 세계챔피언이 된 유명우 선수는 성실함과 철저한 자기 관리를 바탕으로 17번의 방어전을 치르며 약 6년간 정상의 자리를 굳게 지켜냈습니다. 그러나 91년에 이뤄진 첫 해외 원정 방어전이었던 일본에서 이오카 히로키에게 석연찮은 판정으로 타이틀을 빼앗겼습니다. 현역 때 ‘무패 상태에서 명예롭게 은퇴하겠다’던 유명우 선수의 꿈이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대표가 세운 '17차 방어'는 이 체급 최다이자 한국 프로복싱 사상 최다 기록입니다. 한국 복싱에서 다시 나오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프로 36연승'의 기록도 세웠습니다.
서울삼성초등학교-한강중학교-인천체육고등학교
2013년, 장정구에 이어 한국인으로는 두번째로 국제복싱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되었습니다. 그는 강력한 체력과 디펜스를 기반으로 상대방에게 빈틈을 주지 않았고 강한 펀치는 아니지만 상대방에게 날리는 소나기 펀치는 팬들을 열광시켰습니다. 프로 데뷔 후 36연승과 17차 방어 기록은 한국 복싱사 최고의 기록입니다. 장정구와 라이벌 매치가 성사되지 않은 점을 두고 복싱 팬들은 아직까지도 가상대결을 통해 승부를 점치기도 합니다. 장정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량이 떨어지는 선수들이 많았다는 방어전을 두고 유명우 선수를 조금 낮게 측정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물론 장정구의 상대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기량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유명우 선수가 경기중에서 보여준 기량 자체는 장정구와 박빙으로 싸울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도 남습니다. 특히나 강력한 체력과 디펜스는 어느 누가 상대해도 쉽게 넘볼 수 있는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항상 겸손한 그이기에 본인은 자신이 질 것 같다고 말을 아낍니다. 은퇴 후 음식점 경영에 뛰어든 그는 꼼꼼하고 세심한 성격이 잘 발휘되어 사업에서도 큰 성공을 이루었습니다. 이후 버팔로 프로모션 등 침체된 복싱을 위해 여러 방면에서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여담으로 일본의 축구만화 “우리들의 필드” 에서 나오는 한국 국가대표팀의 주장 선수의 이름이 유명우인데, 그의 팀메이트의 이름이 장정구인 걸 보면 아무래도 작가가 복싱 팬인 데다 유명우 vs 이오카를 인상 깊게 본 듯합니다.
1991년경 롯데칠성음료에서 출시한 스포츠음료 마하쎄븐의 CF에 출연했는데 유명우 선수의 코치 역은 당시 개그맨으로 활동하던 임하룡이었습니다.
이상으로 유명우 선수에 대한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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