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할 선수는 바로~
늙은 곰 케빈 마틴 선수입니다~!
캐나다의 前 컬링 선수이며, 세계 컬링 명예의 전당 헌액자입니다.
지역 컬링 클럽의 부회장을 맡고 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6살 때부터 컬링을 시작했습니다. 1985년 캐나다 주니어선수권에서 우승해 이듬해 세계 주니어선수권에 출전해 전승으로 결승까지 진출하지만 결승에서 스코틀랜드에게 졌습니다.
1991년 3월 브라이어에 첫 출전해 우승했습니다. 같은 해 세계선수권에서는 결승에서 스코틀랜드에게 졌습니다. 한편 브라이어 우승으로 컬링이 시범종목으로 시행됐던 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는데 4위를 했습니다.
1992년 브라이어에서는 준결승에서 온타리오의 러스 하워드 팀에게 져 3위를 했습니다. 1993년과 1994년에는 지역선수권에서 우승하지 못해 브라이어에도 출전하지 못했지만, 1994년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는 우승했습니다. 팀원에 다소 변화를 준 후 1996년 브라이어에서는 결승까지 진출하지만 매니토바의 제프 스토튼 팀에게 졌습니다. 1997년 브라이어에서는 우승해 6년 만에 세계선수권에 출전하지만 준결승에서는 스웨덴의 페야 린드홀름 팀에게 지는 등 최종 4위를 했습니다. 컬링이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이 되면서 대표팀 선발전도 따로 치르게 됐는데, 결승에서 1점차로 졌습니다. 이후 1998년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는 통산 2번째 우승했습니다.
1999년에 마틴은 사적으로 문제가 있던 세컨드 루디 람차란 대신 지역 주니어선수권 우승팀 스킵인 카터 라이크로프트를 영입했습니다.
2001년 지역선수권 우승으로 통산 7번째 브라이어 출전권을 따냈는데, 마틴은 돌연 브라이어를 보이콧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당시 캐나다컬링협회가 브라이어를 통해 막대한 수입을 벌었지만 선수들에게 돌아가는 금전적 이익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마틴의 주도로 시작된 캐나다 남자 컬링팀들의 브라이어 보이콧은 이후 그랜드슬램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는데, 마틴의 브라이어 보이콧은 2005년까지 지속됐습니다. 한편 마틴의 브라이어 보이콧이 계속된 5년간 지역 라이벌인 랜디 퍼비 팀은 브라이어에 4차례 우승했고 세계선수권에서도 3번 우승했습니다.
마틴이 캐나다컬링협회 주관 대회를 아예 보이콧한 건 아니라서 2001년 12월에 있었던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대표팀 선발전에는 출전해 이번에는 우승했습니다. 올림픽 본 대회에서는 예선 1위로 결승까지 진출했으나 결승에서 노르웨이에게 졌습니다. 이후 2005년 12월에 있었던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대표팀 선발전에서는 결선에도 올라가지 못했습니다. 한편 오랜 기간 지속해오던 브라이어 보이콧을 풀고 6년 만에 브라이어에 출전하는데 최종 4위를 했습니다.
올림픽 대표팀 선발전에 이어 브라이어에서도 실망스런 결과로 2005-2006 시즌 후 마틴은 오랜 기간 같이 활동했던 선수들과 작별하고 세계 주니어선수권 2연패를 달성한 존 모리스 등을 비롯해 젊은 선수로 팀원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2007년 브라이어에서도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2006-2007 시즌의 캐내디언 오픈부터 2007-2008 시즌의 내셔널까지 5개 그랜드슬램에서 연속 우승했습니다. 이 기세로 2008년 브라이어에서는 전승으로 결승까지 진출해 오랜 기간 라이벌이자 전년도 우승팀인 글렌 하워드를 꺾고 우승했습니다. 마틴의 통산 3번째 브라이어 우승이자 11년 만의 우승이었습니다. 세계선수권에서도 10승 1패 예선 1위로 결승에 진출해 스코틀랜드를 꺾고 우승했습니다. 국가대표로서 마틴의 첫 금메달이었습니다. 2009년 브라이어에서도 우승하며 대회 2연패에 성공했지만, 세계선수권에서는 스코틀랜드에게 지는 바람에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2009년 12월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대표팀 선발전이 마침 마틴의 고향인 에드먼턴에서 열렸는데, 결승에서 글렌 하워드 팀을 꺾고 우승했습니다. 올림픽 본 대회에서는 9전 전승으로 예선 1위를 했습니다. 1924 샤모니 동계올림픽 당시 영국 팀 이후 첫 예선 전승이었는데, 샤모니 올림픽 당시에는 규칙이 달라서 실질적으로 첫 예선 전승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준결승에서는 스웨덴의 니클라스 에딘을, 결승에서는 노르웨이의 토마스 울스루를 꺾으면서 모국 캐나다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전승 우승으로 금메달을 차지했습니다.
2011년 브라이어에서는 결승 진출에 실패했고, 동메달 결정전에서 세컨드 마크 케네디가 아내의 출산 때문에 이탈하는 바람에 5대 10으로 대패했습니다. 2012년 지역선수권에서는 마틴 팀의 연승 기록이 케빈 쿠이 팀에 깨지는 등 이변이 나오면서 결국 탈락해 브라이어에 출전하지 못했습니다. 2013년 지역 선수권에서 우승해 통산 12번째 우승과 함께 브라이어에 출전하게 됐지만 5위로 결선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2012-2013 시즌 후 7시즌간 서드를 맡았던 존 모리스는 독립하겠다며 마틴의 팀을 떠났습니다. 마틴은 과거 지역 라이벌인 랜디 퍼비 팀에서 활동했던 데이비드 네도인을 대신 영입했습니다.
2013-2014 시즌을 마지막으로 마틴은 은퇴하기로 했습니다. 2013년 12월 2014 소치 동계올림픽 대표팀 선발전에서는 6승 1패로 결선에 진출하지만 준결승에서 과거 팀 동료였던 존 모리스 팀에게 지고 말았습니다. 지역선수권에서는 케빈 쿠이 팀에게 지면서 브라이어에는 출전하지 못했지만, 2013-2014 시즌 마지막 투어 대회인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는 대회 통산 8번째 우승으로 통산 18번째 그랜드슬램 우승을 달성하며 길었던 선수 생활의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이상 케빈 마틴 선수에 대한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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