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오브레전드

[박상진의 e스토리] 2023년, 젠지에서 다시 한 해를 맞이하는 '피넛' 한왕호

Talon 2022. 12. 13. 13:40

e스포츠, 특히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는 한 선수가 오래 한 팀에 남아있는 경우가 드물다. LCK 간판스타인 '페이커' 이상혁은 데뷔부터 지금까지 한 팀에서 계속 활약했지만, 그 외에는 시즌이 끝나면 더 좋은 대우를 받으며 동시에 더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새로운 팀을 찾아 가는 일이 많다.

그중에서도 '피넛' 한왕호는 2015년 데뷔 이후 매해 새로운 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데뷔 후 2016년 ROX로 옮긴 한왕호는 그해 서머 우승을 차지했고, 2017년 SK텔레콤 T1으로 이적해서는 스프링과 MSI 우승에 이어 서머 준우승과 월드 챔피언십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다음 해인 2018년 다시 스프링 우승에 이어 MSI 준우승을 기록하며 '우승 청부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비록 2019년부터 2021년까지는 잠시 주춤하던 시기도 있었지만 2022년 서머에서 한왕호는 다시 팀을 LCK 우승으로 이끌었다.

 

전체 커리어로 봤을 때 한왕호는 다른 선수들에 비해 빠지지 않는 성적을 자랑한다. 한 번 하기도 쉽지 않은 LCK 우승을 다회 차지했고, MSI 우승까지 차지했던 한왕호에게는 롤드컵 우승만이 남아있는 상태다. 그리고 한왕호는 이번 롤드컵 4강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본인 커리어 처음으로 2년 연속 같은 팀에서 시즌을 보내기 위해 준비하는 상황이다.

 

내년에도 젠지에서 한 시즌을 더 보내게 됐습니다. 처음으로 2년 연속 한 팀에서 활동하게 되었는데, 기분이 남다를 듯합니다
원래 1년 계약 후 팀 옵션으로 1년 연장이 결정되는 상황인데, 팀에서 옵션을 발동해 젠지에서 1년 더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젠지가 좋은 팀이라 저도 기쁘고, 다만 이번에 팀을 떠난 '룰러' 박재혁과 '리헨즈' 손시우가 없다는 점이 좀 아쉽습니다. 그래도 이번에 새로 합류한 신인 '페이즈' 김수환, 그리고 프레딧 브리온에서 온 '딜라이트' 유환중 둘 다 충분히 잘해줄 수 있을 거로 생각하고 저도 둘을 믿고 있습니다.

 

젠지에 있던 대다수의 선수가 젠지라는 팀에 대해 이야기할 때 좋은 팀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거든요. 한왕호 선수는 젠지의 어떤 점을 보고 좋은 팀이고 했는지 궁금합니다
2022년 한 해 정말 제가 게임에 집중하기 좋은 환경의 팀이었어요. 저 말고도 선수단 전체가 그렇게 느꼈고, 게임 내에서의 방향도 부담감을 느끼기보다 편안함을 느꼈을 거 같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런 점에서 젠지를 좋은 팀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실제로 한왕호 선수는 같은 팀에서 2년 이상 활동한 적이 없거든요. 이번 젠지가 처음으로 2년 연속으로 같은 팀에 있던 거고요. 매번 팀을 옮기는 과정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을 거 같은데, 본인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제 의지와 상관없이 기존의 팀 구조가 완전히 바뀌면서 팀을 옮기게 된 상황이 많았죠. 그래서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요. 그리고 제가 팀을 옮기고 싶었던 경우도 있었고, 남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도 있었죠. 그리고 새 팀에 들어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적응하는 과정도 저는 즐겁게 받아들였어요. 한 해 같이했던 선수들과 헤어지는 것은 아쉽지만, 그만큼 또 다른 선수들과 같이 시즌을 보내게 되니까. 그리고 짐 싸고 풀고 하는 거 여러 번 하니 크게 번거롭지는 않더라고요.
 


팀 이적 과정에서 중국 LPL의 LGD에서도 한 해를 보냈습니다. 시즌 인터뷰에서 LPL 시절이 본인에게 도움이 됐다고 제게 이야기한 것이 기억에 남는데, 어떤 부분에서 한왕호 선수에게 도움이 됐는지 이야기를 부탁합니다
2018년까지는 그래도 계속 성장했다고 생각하는데, 2019년에는 조금 제가 멈췄다는 생각을 했어요. 시즌이 끝나고 한국에 남을 수도 있었을 거 같지만, 그게 저한테 도움이 될 거 같지는 않았거든요. 그리고 LPL에 도전하면서 다시 제 실력이 올라가고 있다는 걸 느꼈어요. 막힌 게 뚫렸다고 해야 할까요. 제가 프로게이머를 시작했을 때 가졌던 여유로움을 LPL에 가서 다시 찾았죠. 그리고 제 플레이 스타일도 다양해졌어요. 경기에 들어갔을 때 가졌던 부담감을 다 털어낼 수 있었다는 점이 큰 수확이었죠.

돌아보면 한왕호 선수는 주전으로 활동했던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매해 LCK 우승을 차지했죠. 그래서 '우승 청부사'라고도 불렸지만 2019년에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처음으로 젠지에 합류했던 시기인데, 어떤 점이 잘 안 풀렸을까요 
단순하게 게임이 잘 안 풀린 거 같았어요. 따져보자면 제가 중심을 잡고 잘했어야 하는데, 말은 많이 했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에 정확한 콜을 못 했어요. 전체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많이 드러났었죠. 그리고 중국에 갔는데, 당시 LPL이 롤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서 LCK도 LPL처럼 공격적으로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었어요. 다들 그걸 알고는 있지만 리그에서 오래 활동한 선수들은 이미 스타일이 굳어져서 경기 방식을 바꾸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았어요. 지금까지 하던 거하고 정말 다르고, 새로운 걸 시도하다가 실패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었죠. 그런데 LPL은 새로운 걸 시도하고 실패해도 다음에 다시 성공하면 된다는 분위기였어요. 팀원들, 그리고 코칭스태프도 같은 생각이었죠. 선수들의 성격까지 좋고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는 환경이 되다 보니 저도 모르는 사이에 안에서 막혀있던 무언가가 뚫렸던 거 같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올해 한왕호 선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다양한 정글 루트로 상대를 압박하고, 정글 루트가 꼬였다고 하더라도 집요하게 다시 시도해서 성공시킨다는 평가가 있었죠
예전의 저도 비슷한 플레이 방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프로게이머 활동을 오래 하다 보면서 돌발 상황에 대한 대처법이 더 좋아졌고, 경기 내에서 생각이 좀 더 유연해지고 범위도 넓어져서 한 번의 실패에 주저앉지 않고 다음의 성공을 위해 다시 움직이는 게 제 습관이 된 거 같아요. 저도 처음에는 저 생각을 갖고 게임하기 쉽지 않았는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저 생각 자체가 저한테 맞아서 제 스타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2021년 LCK로 복귀해 농심 레드포스에서 한 해를 보냈죠. 초중반에는 나쁘지 않았는데, 마지막에 힘이 빠지면서 롤드컵 진출에 실패했었습니다. 그리고 '비디디' 곽보성 선수와 트레이드로 젠지에 복귀하게 되었죠
LPL에서는 팀 간 선수 트레이드가 있던 일이라 저도 자주 듣곤 했어요. 그리고 제가 트레이드가 됐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큰 감흥이 없었죠. 이번에는 가서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던 거 같습니다. 선수 생활을 하면 2019년도 한 해만 후회가 드는 시즌이었거든요. 당시에도 '우승 청부사'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젠지에 입단했는데, 그해는 우승을 못 했거든요. 하지만 올해 젠지에 이적해서 LCK 우승을 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시즌 젠지에는 '쵸비' 정지훈과 '리헨즈' 손시우 등 기량은 좋지만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던 선수들이 있었죠. 마지막 한고비만 넘기면 우승인데 그러지 못해 여러 번 아쉬움을 남겨야 했던 선수들과 함께 좋은 결과를 냈고, 그 과정도 좋았습니다
전체적으로 올해는 경기를 앞두고 준비를 잘했던 거 같아요. 다만 스프링에는 준비가 잘 되었음에도 당일 컨디션을 보고 경기의 승패를 점칠 수 있을 정도라고 본다면, 서머 스플릿은 준비 상황만 보고 상대가 누구든 우리가 이기겠다는 자신감을 가졌어요. 애매한 경기도 이기고 질 경기도 역전해서 이겼죠. 다들 경기력이 좋으니까, 그걸 바탕으로 전략 준비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게 커요. 스프링 결승을 치르면서 챔피언 폭을 넓혀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고, 서머 때는 그 부분을 중점으로 연습해서 서머 결승전 때 일방적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거 같아요.

 

롤드컵 역시 기세가 좋았고, 우승까지 바라볼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아쉽게도 4강에서 탈락했습니다. LCK와 MSI 우승까지 경험했기에 롤드컵 우승에 대한 욕심도 컸을텐데, 그러지 못해 아쉬움으로 남았을 듯하네요
롤드컵은 참가 전의 전력도 중요하지만, 그 대회 내에서 얼마나 성장하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이번 대회에서 8강을 기적적으로 이기고 나서 우리가 큰 고비를 넘겼으니 4강은 물론 그 이상까지 바라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4강 경기 준비가 롤드컵 내에서 제일 잘 안 되었어요. 단순 컨디션 문제일 수도 있었겠죠. 준비가 잘 되었다는 건 전략에서 사용할 챔피언 숙련도가 일정 이상이고 플레이 내에서 실수가 없어야 하는데, 나오면 안 되는 실수 한 번으로 이상한 곳에서 죽으면 연습 기회 한 번이 그냥 날아가거든요. 사소한 실수 없이 연습이 진행되면 필요한 전략을 준비할 수 있는데, 그 부분에서 문제가 있었어요. 그리고 준비한 전략을 언제 꺼낼까 하다가 결국 사용 못하고 경기가 끝나버리기도 했고요. 이기지 못한 모든 경기가 아쉽지만, 그 경기는 더 아쉬움으로 남았던 거 같습니다.

롤드컵 4강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이제 내년 시즌을 준비할 시간입니다. 한왕호 선수는 커리어 처음으로 2년 연속 같은 팀에서 활동하게 되었고, '도란' 최현준-'쵸비' 정지훈과 다시 한번 롤드컵 우승을 향하게 됐죠. 같은 선수와 두 시즌을 치르는 것은 어떤가요
2년 연속으로 같은 선수들과 호흡을 맞춘다는 것은 저에게 무시못할 좋은 일이라고 봐요. 현준이나 지훈이 모두 잘하고 저와 호흡도 맞죠. 그런데 올해 다른 팀들, 특히 상위권에 도전하는 팀들은 작년의 호흡을 그대로 가져가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니 같이하던 선수들과 손발을 잘 맞추고, 새로 합류한 팀원들은 잘 적응시켜서 좋은 성적을 내려 합니다.
 


예전부터 LCK를 보던 사람들은 여전히 한왕호 선수를 마냥 막내 같은 이미지로 느끼고 있지만, 데뷔한 지 7년도 넘은 데다가 이제 팀의 맏형이자 주장까지 맡았죠. 본인은 이 두 가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주장으로서 이야기하자면 팀의 주장은 크게 의미가 없다고 봐요. 제가 보는 주장은 팀을 대표에서 이야기해야 할 일이 있을 때 가야 하는 자리 정도거든요. 어차피 팀의 리더는 따로 있다고 보고요. 오히려 저는 팀의 맏형 자리가 더 의미나 무게가 있다고 생각해요. 팀의 맏형으로서 나머지 선수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야 나머지 선수들도 행동의 기준을 삼는다고 생각해요. 맏형인 제가 보이는 모습이 나머지 선수들에게 영향이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무작정 없다고 생각하고 행동하기보다는 누군가 한 명은 영향을 받을 수 있으니 더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이려고 하고, 그 부분에 있어서 항상 조심하고 노력합니다.

누군가 보고 배울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본인은 선수 생활을 하면서 누구의 영향을 많이 받은 거 같나요
저는 누구를 보고 배운다기보다는 항상 저를 돌이켜보면서 스스로 방향을 잡으려고 해요. 한 해를 마치면서 아쉬웠던 점이나 고쳐야 할 부분을 돌이켜보고 다음 해에는 고치려고 하죠. 물론 저도 누군가에게 모르는 사이에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어요. 그래도 마냥 따라 한다기보다는 제게 무엇이 필요한지 항상 고민하거든요.

 

그렇다면 지금까지 선수 생활을 하면서 가장 기억나는 동료가 있나요
제가 처음으로 주전 생활을 했던 2016년도 같은 팀이었던 (송)경호 형이 생각나요. 경호형이 주장은 아니었지만 그 역할을 굉장히 잘했다는 기억이 나거든요. 그렇게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닌데,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는 생각에 보통 나이순으로 정하거나 누군가 지정해주는 팀의 주장 역할을 자처하고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해왔거든요. 저는 그 모습이 인상 깊어서 기억에 남아요.

내년 시즌의 목표가 있다면
올해 같이한 '룰러' 박재혁과 '리헨즈' 손시우가 팀을 나가면서 내년에는 올해만큼의 성적을 내기는 쉽지 않을 거라고 봐요. 팬들도 비슷한 마음이 아닐까 싶어요. 하지만 작년보다 쉽지 않을 거라는 예상보다는 더 잘하고 싶어요. 예상 이상으로 잘하는 게 팬들에게 가장 좋은 선물일 거 같고, 선수단에도 중요한 일이죠. 목표를 잡고 그 이상으로 이루기 위해 최선을 잘하고, 혹시나 잘 안되더라도 다음에 더 잘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야죠. 그래도 한 해에서 뭔가 해냈다고 생각하려면 어떤 대회든 우승이 필요해요. 올해를 돌이켜봤을 때 LCK 서머 우승 하나로 뭔가 해낸 한 해로 기억할 수 있거든요. 준우승만 두 번 했더라면 좋지 않은 한 해로 기억했을 거예요.
 


그리고 2023년에는 한 해 미뤄졌던 아시안게임이 열립니다. 2018년 시범종목으로 열렸던 대회에 대표로 출전한 후 5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국가대표에 욕심이 있을까요
저는 항상 국가대표로 출전하고 싶다고 말해요. 2018년에도 그렇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내년에도 여전히 저는 잘할 수 있고, 오는 기회는 꼭 잡는 성격이니만큼 이번 기회도 꼭 잡으려고 해요. 이건 저 말고도 모든 선수가 마찬가지일 거예요. 이번 월드컵만 보더라도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선수들이 정말 멋지고 존경스럽거든요. 모든 국가의 대표선수들이 그렇게 보이고, 저도 e스포츠 팬들과 시청자들에게 그렇게 보이고 싶어요. 그래서인지 이번 아시안게임은 꼭 가고 싶어요.

어떤 방식으로 대표팀이 선발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결국 같은 포지션 선수들이 경쟁 상대가 될 거라고 봅니다. 본인이 보기에 LCK 내에서 까다로운 포지션 경쟁자가 있다면
LCK 정글은 다 잘해요. 그중에도 특히나 까다로운 사람들이 있는데 그 선수들이 결국 더 잘하더라고요. 저는 T1 '오너' 문현준이나 DK '캐니언' 김건부가 잘하는 정글이라고 봐요. 이전 두 해 동안 제일 정상 자리에 많이 도전하고 올랐던 선수들이기에 더 그렇다고 생각하고요.

 

이제 2023년에는 젠지 리그 오브 레전드 팀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게 되는데, 인터뷰를 마치면서 각오와 함께 팬들에게 메시지를 부탁합니다
젠지의 상징과 같았던 재혁이가 빠지면서 이제 젠지 2기가 시작되는데, 저는 걱정도 되지만 기대가 큽니다. 재혁이나 시우처럼 중요한 선수들과 같이할 수 없지만, 이미 일어난 일이고 새로 온 선수들도 잘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작년에 있었던 선수 세 명과 코칭스태프들도 여전히 버티고 있기에 새로운 선수들도 경기력이 오를 거라고 봅니다. 그리고 제가 더욱 많은 도움을 주려고 하고요. 그리고 함께해준 재혁이와 시우 모두 고맙다고 말하고 싶고, 올해 응원 보내주신 분들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응원은 생각보다 우리 팀에 더 큰 힘이 되니 내년에도 많은 응원 보내주시면서 같이 기대 이상의 결과를 만들고 싶습니다.

 

- 출처 : 포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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