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할 분은 바로~
트로트의 황제 태진아 님입니다~!
1953년[3] 충청북도 보은군 탄부면에서 4남 3녀 중 사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이후 진천군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어린 시절에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인해 국민학교만 졸업을 하고 중학교 진학을 못했습니다. 동생들의 학비를 위해 서울로 상경해 구두닦이, 중국집 배달원, 식당 종업원 등 안 한 일이 없다고 회고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1967년에 영화 《태권도 최후의 일격》의 단역으로 출연하였고 1970년에는 조방헌 본명으로 영화 《쌍태양》에 단역으로써 출연하였습니다.
태진아는 작곡가 서승일의 권유로 1972년에 〈내 마음 급행열차〉를 발표하며 가수로 데뷔하였지만 태진아의 데뷔 앨범도 완전히 판매하지 못했습니다. 1973년에는 〈추억의 푸른 언덕〉 을 발표하여 1974년에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인기가수상을 수상하며 인지도를 얻었습니다.
1974년에 공연중 현대그룹 계열사인 현대건설사장 부인과 눈이 맞아 간통을 저지르다 1975년 '나를 울렸다'를 발표했지만 실패로 끝나고 그의 남편이 형사를 데리고 여관으로 들이닥쳐 발각돼서 구속이 되었습니다. 출소 이후에 한국에서 가수로 재기하며 두장의 앨범을 냈습니다.
1976년 《못잊을건 정》, 1977년 《잊지는 못할 거야》 두 장의 앨범도 역시 실패로 끝났습니다. 결국 1980년에 '보내는 마음'이라는 앨범을 냈지만 돌연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습니다. 미국에 마땅한 직업이 없어 돈을 벌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나갔고 그해 남진의 소개로 이옥형과 결혼하였습니다.
1984년에 귀국하여 복직하여 낸 앨범'경아의 사랑' 앨범을 냈지만 실패로 끝나고 대중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1988년에 '당신도 나같은 사랑을 해봤나요', '이제는 떠날 시간' 두 장의 앨범도 역시 실패로 끝났습니다.
태진아는 1988년 서울 하계 올림픽 때 뉴욕 교포 격으로 서울에 나와 성화봉송 주자로 나섰습니다. 서울 서초동 한일은행 지점~역삼역까지 뛰는 모습이 생방송으로 전세계에 생중계되었습니다. 그 당시 한밭기획 사장 양승국 사장이 뛰는 모습을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다음 해인 1989년에 〈옥경이〉라는 곡을 발표하였습니다. 〈옥경이〉는 트로트 히트곡 메이커였던 임종수가 작곡하고 조운파가 작사한 곡으로 원래는 나훈아를 위해 만든 노래였습니다. 이 노래의 원래 제목은 〈고향여자〉였으나 태진아가 부르기 시작하면서 〈옥경이〉로 곡명이 바뀌었는데 원래 나훈아가 부를 뻔했으며 녹음까지 완료했지만 음반을 발매하지 않아 태진아에게 가기도 했습니다. 이 곡은 데뷔 16년 만에 처음 히트한 노래입니다. 옥경이가 인기를 얻게 되어 엄지춤을 옆으로 추는 행상춤 일명 옥경이 춤을 추면서 이 앨범은 최대앨범 판매량 150만장을 기록하며 그를 최고의 가수의 자리에 올려놓았습니다. 행사만 15곳을 다니기 시작하며 태진아가 대중에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옥경이〉는 그의 아내 이옥형의 이름을 건 곡이기도 하여 태진아 본인이 가장 아끼는 노래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옥경이' 노래로 KBS 가요대상 올해의 가수상을, 일간스포츠 제4회 골든 디스크상 본상을 처음 받았지만 MBC 10대 가수 가요제 10대 가수에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1990년에는 김동주 작사 김영광 작곡 엄지춤 돌풍을 열풍을 일으킨 〈거울도 안보는 여자〉를 발표하였습니다. 1990년대부터 가요계는 록과 발라드가 주류를 이루었지만 태진아의 〈거울도 안보는 여자〉는 KBS 가요 톱 10에서 순위에 올라갔다가 12월 2일 9일 16일 23일 4주 연속 1위를 차지하고 1991년 1월 6일까지 무려 5주 연속 1위에 올라 트로트 부문에서 골든컵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고 '거울도 안보는 여자' 이 노래로 KBS와 MBC 가요순위 프로그램에서 여성 댄서들과 함께 엄지춤을 췄고 스포츠 서울 제정 제1회 서울 가요대상 본상, KBS 가요대상 올해의 가수상, 일간 스포츠제정 제5회 골든 디스크상 2년 연속 본상,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무려 16년 만에 10대 가수상 자리에 올랐습니다.
1991년 후속곡 〈미안 미안해〉도 여성 댄서들과 함께 V자 춤을 추며 순위에 올랐다가 4월 28일~ 5월 12일까지 3주 연속 1위를 차지하였습니다. 그 당시 1위 후보자 가 1991년 5월 19일 22일 29일 6월 5일 12일까지 5주 연속 1위를 차지한 '미소속의 비친 그대 ' 로 데뷔한 전설의 발라드 황제 신승훈이었습니다. KBS 가요대상 본상 MBC 10대 가수 가요제 10대 가수상 2년 연속 수상했지만 일간 스포츠 제정 제6회 골든 디스크상 본상에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미안 미안해〉의 후속곡인 〈선희의 가방〉은 서울로 가기 싫어하는 선희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KBS 가요 톱 10 SBS 인기가요 MBC 여러분의 인기가요에서 순위에 올랐으나 1위를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KBS 가요대상 본상 스포츠 서울 제정 제2회 서울 가요대상 본상 과 최고 인기가수상 MBC 10대 가수 가요제 2년 연속 10대 가수상을 받았지만 일간 스포츠 제정 제7회 골든 디스크상 2년 연속 본상에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1992년 발표한 락 트로트 곡 〈사랑은 토요일 밤에〉와 흥겨운 삼바 리듬의 〈노란 손수건〉두 곡 역시 KBS 가요 톱 10 SBS 인기가요 MBC 결정 ! 최고 인기가요에서 순위에 올랐지만 1위에 올라가지 못했습니다. 또 일간 스포츠 제정 제8회 골든 디스크상 3년 연속 본상을 못받았으며 KBS 가요대상 MBC 10대 가수 가요제 스포츠 서울 제정 제3회 서울 가요대상 본상에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1983년' 촛불잔치'라는 노래로 단번에 10대 가수 반열에 올랐던 후배가수 이재성이 1993년 태진아에게 준 흥겨운 모데라토 디스코 리듬에 음악이 들어간 〈장미와 우산〉, 돌아가신 부모님을 그리는 노래 〈사모곡〉을 연이어 히트시키며 침체되어 가던 트로트를 부활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두 곡 중 〈사모곡〉은 KBS 가요 톱 10에서 1995년까지 오랫동안 순위에 올랐지만 1위에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KBS 가요대상 본상을 받았지만 일간 스포츠 제정 제8회 골든 디스크에서는 4년 연속으로 본상을 못 받았습니다. 또한 스포츠서울 제정 제4회 서울가요대상, MBC 10대 가수 가요제 두 가요 시상식에서 2년 연속으로 본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1993년에는 1988년부터 재기를 다져왔던 한밭기획에서 독립하였습니다. 음반사를 서울음반에서 지구레코드로 바꾸고, 개인 기획사 진아기획을 설립하여 프로듀서로 활동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태진아는 당시 성진우를 영입해 소속사 사장으로 활약하여 성진우는 태진아가 배출한 1호 가수가 되었습니다. KBS 가요대상 〈선희의 가방〉으로 본상을 받았지만 일간 스포츠 제정 제9회 골든 디스크상 5년연속 본상을 못받았으며 스포츠 서울 제정 제5회 서울 가요대상에서 3년 연속 본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1995년에는 〈가버린 사랑〉 을 발표하며 kbs 가요톱10 mbc 인기가요 best 50 두 가요순위 프로그램 순위에 올랐지만 1위는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kbs 가요대상 본상 1995년 일간 스포츠 제정 제10회 영상음반대상 골든디스크상 5년 만에 드디어 본상을 받았지만 스포츠 서울 제정 제6회 서울 가요대상에서 4년 연속 본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1996년에는 '애인' 을 발표하고 배우 김자옥을 스카우트하여 가수로 데뷔시켜 〈공주는 외로워〉를 제작하고 기획하였습니다. 1996년 제3회 연예예술상 가요상 KBS 가요대상 본상을 받았습니다.
1997년에는 KBS2에서 방송된 일일시트콤 《마주 보며 사랑하며》에 출연해서 배우로 데뷔했고 SBS 파워 FM 라디오 《태진아의 트로트 하이웨이》의 진행자로도 활동했습니다. 이후 진아기획은 진아엔터테인먼트로 개칭되었으며 이 시기에 보이그룹 에이알티를 결성시켰습니다. 1998년 데뷔 25주년 앨범 '당신의 눈물'로 KBS 가요대상 본상 일간스포츠 골든 디스크상 특별상을 받았습니다.
2000년에 발표한 〈사랑은 아무나 하나〉는 작곡가 안치행이 구전 가요를 직접 현대 음악으로 편곡시킨 후 작사가 이건우가 직접 작사하였습니다. 발표 당시 트로트 곡 사상 처음으로 뮤직비디오를 제작하여 화제가 되었습니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는 20만장의 앨범 판매량을 기록하고 제10회 서울가요대상에서 본상을 수상하였습니다. 2001년에는 데뷔 30주년 기념앨범을 발표하였는데 앨범 수록곡 〈잘났어 정말〉 도 히트하여 제11회 서울가요대상에서 본상과 전통 가요상을 골든 디스크상 트로트상을 수상하였습니다.
2004년에는 차남인 이루가 작사하고 태진아가 작곡한 〈동반자〉는 1980년에 발표한 그룹 이쁜이들 이 부른 〈당신은 새〉의 원곡으로 부자가 공동으로 작업한 작품이기도 하며 24년만에 태진아 가 다시 불러 장안에 화제를 일으켜서 엄지를 앞으로 내미는 춤을 추면서 《전국 톱 10 가요쇼》에서 무려 19주 동안 1위를 차지하였습니다.
2009년에 예전부터 알고 지내며 견미리를 스카우트하여 가수로 데뷔시켰으며 성진우를 가수로 복귀시켰습니다. 그 해 하반기에는 일본 데이치쿠 레코드와 계약을맺고 엔카 곡 〈すまない〉 로 일본에 진출하여 제42회 일본유선대상 유선협회 장려상을 수상하는 대성공을 거뒀습니다. 2010년에는 송대관의 후임으로 제3•4대 대한가수협회 회장에 취임하였습니다.
2012년에 태진아는 2년만에 정규 음반을 발표하고 〈사랑은 눈물이라 말하지〉 로 오랜만에 성인 가요 차트에서 1위를 하였습니다. 비와 함께 〈LA SONG〉 을 불러 '비진아'로 인기를 끌었고 태진아 버전으로도 공개되었습니다.
2011년 대한가수협회 회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과거 자신의 매니저를 했던 전력이 있어서 절친하게 지내던 사이였던 이호연의 회사인 DSP 미디어 소속의 걸그룹인 카라가 멤버들의 탈퇴로 인해 해체 위기에 몰리자 직접 DSP 미디어에 찾아가서 카라 멤버들을 일일이 만나서 설득한 끝에 카라의 해체를 막아냈습니다. 이로 인해 카라의 팬들은 태진아를 마음속 깊이 존경하게 되었으며 후문으로 카라의 팬들이 태진아의 음반을 구매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현재 태진아는 현철, 송대관, 설운도와 함께 트로트 4대 천왕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특히 이민 시절 동고동락했던 송대관과는 개인적으로 각별한 사이로 지내며 그와 함께 명콤비로 불리며 현재까지 매년마다《송대관 & 태진아 라이벌 콘서트》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태진아는 또한 자신이 작사하거나 작곡한 곡은 〈동반자〉, 〈잘 살 거야〉, 〈착한 여자〉, 〈아줌마〉, 〈사랑은 눈물이라 말하지〉 등이 있습니다. 2015년 7월에 〈진진자라〉를 발표하며 젊은 세대들에게도 많은 인기를 끌어 KBS2 추석 특집《아이돌 전국 노래자랑》의 심사위원으로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주요 노래로는 "옥경이", "사랑은 아무나 하나", "바보", "동반자", "진진자라" 등이 있습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에 이어서 30년 만에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성화봉송 주자로 많은 팬들에 관심을 받았고, 2016년 '픽미'와 '드림걸스', 그리고 'whatta man' 세곡을 연달아 히트한 주인공 걸 그룹 아이오아이를 데뷔시켰고 2017년 '나야 나'와 에너제틱 두 곡을 히트시킨 워너원을 데뷔시켰습니다. 태진아는 2017년 4월 k.2.1.2 디저트 카페를 오픈하였다. 1974년부터 지금까지 받은 트로피는 218개입니다.
2010년 8월 27일에 태진아의 차남인 이루가 작사가 최희진을 임신시켰고 태진아가 낙태를 종용했다는 논란에 휘말렸다. 그런 가운데 태진아의 과거 간통 사건이 세간에서 다시 화제가 되었고 이 과정에서 분노한 태진아는 이루와 함께 최희진을 상대로 법정 싸움에 들어갔으며, 결과는 허위 사실을 유포한 자해 공갈로 드러났으며 이루 이외에 최희진에게 피해를 입은 일반인의 진술을 확보해 놓았습니다.
이 사건으로 최희진은 허위 사실 유포 및 협박 혐의로 구속되었고, 1심과 2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1990년 - 대표곡 : 거울도 안보는 여자
12월 2, 9, 16, 23일 KBS 《가요톱텐》 1위
1991년
거울도 안보는 여자
1월 4, 11일 MBC 《여러분의 인기가요》 1위
1월 6일 KBS 《가요톱텐》 1위
미안 미안해
4월 28일, 5월 5, 12일 KBS 《가요톱텐》 1위
이상으로 태진아 님에 대한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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