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김택용 은퇴, 찬란했던 프로토스 혁명가의 일대기

Talon 2013. 9. 9. 16:38

2005년 데뷔한 9년 차 프로게이머…팬들의 뜨거운 사랑 받았던 e스포츠 스타


혜성처럼 등장했던 프로토스 김택용.
'혁명가' 김택용이 은퇴했다.

올해로 25살, 데뷔 9년 차의 프로게이머인 김택용은 그 누구보다 화려한 등장과 빛나는 전성기를 보낸, e스포츠 역사에 길이 남을 '슈퍼스타' 중 한 명이었다. 국내 게임리그가 스타크래프트 브루드워에서 스타크래프트2로 넘어가면서 급격하게 내리막길을 걷긴 했지만 김택용의 은퇴는 분명 큰 아쉬움을 남긴다. 포모스에서는 김택용의 은퇴를 맞아 그의 프로게이머 일대기를 정리해 봤다.

2005년 고등학생 신분으로 e스포츠업계에 데뷔했던 김택용은 그야말로 혜성처럼 등장한 신예 선수였다. POS 시절부터 남다른 재능을 보인 그는 MBC게임의 간판급 선수였던 박지호의 스타일을 벤치마킹했고, 진일보한 멀티태스킹 능력을 더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했다.

서서히 실전 감각을 익힌 김택용은 머지 않아 사건을 터트린다. 첫 출전한 2007년 곰TV MSL 시즌1 4강에서 대선배인 '몽상가' 강민을 3:0으로 꺾고 결승 진출에 성공한 것. 게다가 상대는 '본좌'의 끝을 달리던 '프로토스의 재앙' 마재윤이었다. 당시 마재윤은 자신의 텃밭이었던 MSL에서 5연속 결승에 오른 상태였고, 모든 대회를 가리지 않고 우승을 거둘 때여서 프로토스였던 김택용이 그를 꺾고 우승할 확률은 고작 '2.69%'였다.

하지만 2007년 3월 3일, 김택용은 보면서도 믿기 힘든 신개념의 커세어-다크템플러 전략을 통해 역대 최강의 저그 마재윤을 3:0으로 압살했고, 팬들은 김택용의 우승을 '3.3 혁명'이라 이름 붙였다. 아직까지도 e스포츠 역사상 최대 이변으로 꼽히는 3.3 혁명은 김택용에게 '기적의 혁명가'라는 별명을 가져다 주었고, 고등학생 프로게이머 김택용은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물론 그의 곱상한 외모와 순수함이 결합된 '택치미'가 큰 화학작용을 일으켰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일약 스타덤에 오른 김택용은 SK텔레콤 T1으로 이적해 큰 화제가 됐다.
더블 넥서스를 기반으로 한 날카로운 견제가 일품인 '비수류' 운영으로 수많은 저그들을 무릎 꿇린 김택용은 곰TV MSL 시즌2 결승전에서 프로토스의 교과서 같은 플레이를 했던 '총사령관' 송병구와 맞붙어 MSL 2회 연속 우승에 성공한다. 프로토스 사상 첫 개인리그 2회 연속 우승자이자 개인리그 역사상 최연소 2회 우승자로 등극한 김택용은 2007년 9월 KeSPA 랭킹에서 마재윤의 장기집권을 종결짓고 역대 프로토스 사상 최초로 KeSPA 랭킹 1위를 기록해 정점을 찍었다.

이후 테란의 신성 박성균에게 패해 MSL 3회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김택용은 이후 SK텔레콤 T1으로 이적하면서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얻는다. 김택용의 이적은 사상 최고 액수의 현금 트레이드로 기록되며 화제가 됐고, 전통 강호 SK텔레콤 T1과의 시너지는 김택용이라는 스타 프로게이머의 팬덤을 확산시키는데 큰 기폭제가 되었다.

하지만 슬럼프도 있었다. 팬들의 관심이 집중된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중요한 고비마다 발목을 잡혔고, 손목 부상까지 겹쳐 프로리그에서도 한동안 벤치 신세를 져야만 했던 것. 그러나 김택용은 침체기를 딛고 2008년 인쿠르트 스타리그에서 송병구와 치열하게 싸우면서 감각을 되찾은 듯 같은 해 클럽데이 온라인 MSL 결승에 진출해 난적 허영무를 꺾고 3번째 MSL 우승에 성공, 금뱃지를 받는다.

개인리그에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김택용, 그의 재능은 프로리그에서도 빛을 발했다.
김택용의 활약은 프로리그에서도 이어졌다.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시즌을 시작으로 개인리그보다 프로리그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김택용은 위너스리그에서 두 번의 올킹과 더불어 팀내 최다승 기록까지 세운다. 팀의 정규시즌 1위와 프로리그 통산 여섯 번째 우승을 이끈 김택용은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 MVP로 선정되었다.

2009 대한민국 e스포츠 대상에서 올해의 프로토스로 뽑혔던 김택용은 2010년에 또 다시 내리막길을 걷는 듯 했으나 2011년 신한은행 위너스리그 10-11에서 STX 소울과 위메이드 폭스, 그리고 공군 에이스를 상대로 3경기 연속 올킬에 성공하며 건재함을 알렸다. 위너스리그 포스트시즌에서 이제동을 꺾고 팀을 결승으로 견인한 김택용은 KT 롤스터와의 위너스리그 결승전 마지막 세트에서 대장 이영호를 꺾고 SK텔레콤에게 위너스 우승 트로피를 선물했다.

안타깝게도 팬들이 그토록 바랐던 스타리그 우승은 결국 해내지 못했다.
10-11시즌에서 김택용은 63승(15패, 승률 80%)이라는 호성적으로 정규시즌 다승왕과 MVP를 모두 거머쥐는 영광을 누린다. 하지만 김택용의 우승 소식을 기다리던 팬들은 늘 개인리그에서의 활약을 기대했다. ABC마트 MSL 2011 32강에서 '최종병기' 이영호에게만 2패를 기록하며 16강 진출에 실패한 김택용은 당시 프로리그 승자 인터뷰에서 "경기에서 이겨도 기쁘지 않다"라고 말해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대다수의 팬들은 개인리그를 위한 연습시간을 보장해 주지 않는 SK텔레콤을 맹비난했고, 여러 커뮤니티에서 김택용에 관한 논쟁이 벌어져 그의 존재감을 입증하는 계기가 됐다.

사실상 김택용은 이후 개인리그와는 계속해서 멀어졌고, 2007년 이후 처음으로 개인리그 예선 탈락의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14회 연속 MSL 진출과 11회 연속 스타리그 본선 진출의 기록을 가진 김택용의 개인리그 역사는 서서히 그 끝을 향하기 시작했다.

재능형 선수로 알려졌지만 실은 팀 내에서도 가장 노력파에 속했던 김택용은 2012년까지도 팀의 에이스로서 프로리그 핵심 전력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스타크래프트2의 프로리그 강제 도입은 김택용 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스타2로 전환된 이후 좀처럼 적응하지 못했던 김택용.
2012년 5월 개막한 SK플래닛 프로리그는 스타1과 스타2를 병행하는 방식을 택했고, 김택용은 스타2에서 첫 승을 거두는데 택뱅리쌍 중 가장 힘든 과정을 거쳤을 만큼 스타2에 적응하지 못했다. 방황하는 모습이 여실히 보이던 김택용은 은퇴설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마음을 다잡고 본격적인 스타2 연습에 나선다.

임요환 감독 부임 이후 스타2 첫 확장팩인 군단의 심장에서 비밀병기로 활약하기 위해 두문불출 내공을 쌓기 시작한 것. 실제로 스타2로 완전히 전환된 프로리그에서 김택용은 내로라 하는 선수들을 잡아내며 저력을 과시했으나 이미 팀의 에이스로서는 빛을 잃은 상태였다. 2013년 6월, 송병구에 이어 프로토스 선수로는 2번째로 프로리그 200승을 달성했지만 김택용의 활약은 여기까지였다.

프로게이머 중에서는 여전히 높은 스타성을 가진 선수지만 스타2리그 자체가 국내에서 인기를 얻지 못하면서 김택용은 2013년 9월 9일, 프로게이머로서 공식 은퇴를 선언하게 된다.

비록 은퇴는 했지만 '혁명가' 김택용은 실력과 외모를 겸비한 프로게이머로서 e스포츠 역사에 길이 남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처럼 해외 활동이 활발하지 못했을 시절에도 'BiSu'라는 아이디는 해외 팬들에게 인정 받았고, 국내 팬들에게는 & #160; '택신'이라는 별명 외에도 경기력이 저하됐을 때 '용택이'라는 친근한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최근까지도 김택용은 'ㅇㅅㅌㅅ(역시택신)' 등 다양한 유행어를 만들어 낸 한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비록 '혁명가' 김택용은 은퇴를 선언했지만 그가 e스포츠를 상징하는 아이콘이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출처 : 포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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