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오브레전드

[박상진의 e스토리] '맥스' 정종빈, 서포터 그 이상을 바라보다

Talon 2017. 2. 24. 23:08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LCK, 이하 롤챔스)에 본격적으로 승강전이 도입되고 가장 먼저 승격의 기쁨을 누린 팀은 MVP와 ESC 에버(현 bbq 올리버스)다. 특히 MVP는 재창단 첫 시즌 바로 예선을 뚫고 챌린저스에 진출해 정규 시즌 1위를 차지했고, 바로 승강전을 돌파해 롤챔스에 안착했다.

MVP는 롤챔스 첫 시즌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며 시즌 초반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아쉽게도 경험과 뒷심 부족으로 분위기를 이어가지 못했다. 하지만 이는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다뿐이지, 승강전으로 다시 갈 성적까지는 보이지 않고 다음 시즌을 준비할 수 있었다.

권재환 감독과 '애드' 강건모-'비욘드' 김규석-'이안' 안준형-'마하' 오현식-'맥스' 정종빈 다섯 명과 함께 이종원 코치가 합류한 2017년 초반 MVP는 불안한 모습을 보였지만, 지금은 4연승을 포함 5승으로 리그 중상위권에 자리 잡았다.

MVP의 선전에는 정종빈의 활약이 있었다. 서포터라는 포지션에도 엄청난 공격을 퍼부으며 팀을 승리로 이끈 정종빈은 기존에는 생각할 수 없던 벨코즈나 브랜드같이 공격적인 챔피언을 선택해 우승 후보인 kt 롤스터까지 잡아내는 모습을 보였다.

IEM으로 롤챔스가 잠시 휴식기에 들어간 사이 '매드라이프' 홍민기, '마타' 조세형에 이어 'M가문' 서포터의 차세대 주자인 정종빈을 만나 서포터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었다.   정종빈은 인터뷰 내내 서포터, 그리고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번 시즌 서포터 같지 않은 서포터라는 평을 듣고 있다. 서포터를 선택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처음에는 미드 라이너로 시작했다. 시즌2 시절 서포터가 신발과 와드만 가지고 게임을 하는 걸 보고 애처로운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재미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서 그때부터 서포터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점점 티어가 올라갔고, 박정석 감독님이나 김정균 코치님에게도 친구 신청을 받았다. 당시만 해도 프로게이머에 대해 별 의식이 없어 크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니 점점 내가 프로게이머를 해도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들어간 팀이 CJ 엔투스였다.
 

CJ 엔투스에서 약 2년 정도 지냈는데, 팀 내 생활은 어땠나.

내게 지울 수 없는 추억이다. 같이 지냈던 형들과 동생들 모두가 지금도 생각난다. 특히 그때 같이 연습했던 '헬퍼' 권영재, '트릭' 김강윤, '비디디' 곽보성, '고스트' 장용준, 그리고 나까지 따로 채팅방을 만들어서 지금도 계속 소식을 주고받는다. 주전이었던 형들도 성격이 좋아서 다들 친하게 잘 지냈다.

같은 서포터였던 (홍)민기형과는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내가 민기형에게 물어보고 배운 게 많았다. 아무래도 민기형이 프로 경험도 많고, 그만큼 게임에 대한 지식도 많았다. 팀내 연습 경기를 마치면 민기형이 해준 조언을 메모장에 따로 적어서 기억했다.

15년 시즌이 끝나고 강현종 감독님과 손대영-정제승 코치님이 모두 팀을 떠나셨고, 선수들도 다들 각자의 길을 찾아가는 분위기였다. 나는 다른 팀에서 잘할 수 있을까 하는 확신이 없어서 남고 싶었지만 기회가 될 때 다른 곳도 경험해보고 싶어 해외로 나가는 선택을 했고, 그게 대만의 가쉬 베어즈였다.

대만 리그 승강전에 처음 출전했는데, 2승 3패를 하며 탈락했다. 그때 대만 리그는 토너먼트 방식이라 탈락하면 바로 경기가 없어 반년 넘게 쉬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팀에서 먼저 원한다면 계약을 종료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나도 다시 한국에 돌아오는 걸 선택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선택한 팀이 재창단 후 챌린저스에 갓 진출한 MVP였다.

대만에서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잠시 쉬며 다음에 뭘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게임 내에서 (김)규석이가 쪽지를 보내서 봤더니 '님님님님님! 프로게이머 해볼 생각 있으세요?'더라. 그래서 테스트를 봤는데, 나와 같이 테스트를 본 분은 마스터 상위권이었고 나는 하위권이어서 부담을 좀 느꼈다. 그래도 나는 경기에 나갔던 경험도 있고 팀에서 생활한 시기도 있으니 내가 아는 걸 자신 있게 해보자는 생각으로 테스트를 봤고, 결과가 좋아 MVP에 합류하게 됐다.

팀에 들어와서 나만 잘하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챌린저스 리그에서 한 시즌을 보냈다. 시즌 중반 이후부터 승강전에 대한 자신감도 붙었다. 스크림 승률도 나쁘지 않았고, 챌린저스 순위도 충분히 기대할만한 상황이었다. 승강전에서 콩두 몬스터와 붙게 됐는데, 감독님이 (안)준형이에게 아리를 준비하라고 했던 게 신의 한 수가 되었다.

승강전이 상암 경기장에서 첫 경기였는데, 정말 긴장됐다. 하지만 부스 내부에 있던 분들이 편하게 잘 챙겨주셔서 조금씩 긴장이 풀렸다. 상대에게 한 세트 내줬을 때에는 처음부터 다시 한다는 생각으로 하니까 마음이 안정됐다. 그런데 승격이 확정되니 머리가 텅 비어서 아무 생각이 안 났다. 그냥 좋았다.
 

2016 서머 시즌 승격 후 풀타임으로 한 시즌을 소화했는데, 많은 일이 있었다.

롤챔스 첫 경기인 kt 롤스터 전에서 정말 좋은 경험을 했다. 다 이긴 경기를 판단 실수로 내줬는데, 오히려 그게 약이 됐다. 이기는 상황에서 다들 자기 생각대로만 경기를 풀어나가려고 하다가 결국 운영이 중구난방으로 됐고, 결국 진 경기였다. 

시즌 중반에 연승하며 기세를 타기도 했지만, 상위권 팀들과 경기가 남아 있어서 어떨까 했는데 결국 뒷심 부족으로 6위라는 성적으로 첫 시즌을 마무리했다. 프로니까 더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는 욕심은 있었지만, 그래도 신인들과 함께 한 시즌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손목 상태가 좋지 않아 시즌 후반에 고생했다. 손목 아대가 없으면 마우스를 잡지 못할 상태까지 갔는데, 휴식기 동안 손목 스트레칭을 꾸준히 했더니 많이 괜찮아졌다. 그래서 이번 시즌은 조금 더 수월하게 일정을 치르고 있다.

첫 시즌이 끝난 후 오프 시즌은 어떻게 보냈나.

시즌이 끝나고 했던 일 중에 가장 큰 일이라면 규석이와 듀오 게임을 했던 거다. 나와 규석이가 의견 다툼이 많았는데, 같이 게임하면서 서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규석이는 자기가 팀을 캐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고, 나는 조금 시야 위주의 팀플레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둘이 계속 이야기하면서 서로 생각 차이를 많이 줄였다.

그리고 이종원 코치도 팀에 합류했다. 팀에서 경기를 피드백하고 쓴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어야 했는데, 이전까지 이 역할을 나와 (오)현식이 형 둘이 맡아서 했다. 우리 둘의 플레이를 피드백해줘야 할 사람도 있어야 했는데, 코치님이 그 역할을 잘 해주셨다. 
 

시즌 초에 불안한 모습을 보였는데, 아프리카전에서 승리하고 SK텔레콤전 패배 이후 연승을 달리고 있다. 이 사이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

처음에 이상한 플레이가 많았다. 경기가 끝나고 연습실에 돌아와 경기를 복기했을 때 아무리 봐도 왜 저랬는지 이해할 수 없는 플레이도 있었다. 그래서 팀원들과 따로 많이 이야기를 나누며 계속 시즌을 진행하다 보니 점점 경기력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아프리카전은 상대 정글이 탑으로 자주 갈 거로 예상하고 바텀을 공략해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그리고 SK텔레콤과의 경기에서는 우리 팀 선수들이 긴장을 너무 해서 경기력이 제대로 안 나왔었다.

그래도 SK텔레콤과 경기를 하면 그다음 경기부터는 자신감이 붙었다. 아무리 잘해도 저팀만큼 잘할까 하는 생각이었다. 덕분에 올해도 SK텔레콤과 경기 이후 연승을 시작했다. 그리고 kt 롤스터전까지 승리했다. 내가 1세트 탐 켄치로 좋은 모습을 보이면 상대가 탐 켄치를 뺏어갈 거로 예측하고, 카운터로 브랜드를 꺼내는 전략을 세웠는데 그대로 맞아떨어져 승리할 수 있었다.

브랜드나 벨코즈 같은 챔피언을 서포터로 꺼내기 쉽지 않을 텐데 팀 내 반응은 어땠나.

처음 내가 이야기했을 때는 다들 이상하다는 반응이었다. 농담으로 그럴 거면 팀 나가라고 하더라(웃음). 하지만 내가 연습에서 성과를 보이자 다들 믿어주기 시작했다. 감독님이나 코치님도 처음에는 의아해했지만, 몇 번 성과를 보이자 믿어주시기 시작했다.

벨코즈 서포터는 자이라 카운터로 준비했다. 자이라의 식물을 잘 지우고 멀리서 상대를 공격할 수 있는 챔피언이 자이라 카운터라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에는 벨코즈가 제일 적절한 선택이었다. 연습 경기에서 자이라를 가져간 상대가 미스 포춘을 픽하고 벨코즈는 놔두길래 픽해서 시험해봤는데 잘 통했다.

브랜드를 사용하려면 조건이 많았다. 상대가 카르마를 선택하도록 유도하고, 이를 탐 켄치로 받아쳐야 했다. 카르마는 주도적인 플레이가 아니니 근처에 상대 원딜러가 있다는 거고, 그걸 이용해서 맵을 넓게 사용해서 이길 수 있었다. 

카르마는 수동적인 서포터인데, 내가 카르마를 하면 팀원이 자기가 뭘 해야할 지 모르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주도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챔피언을 자주 하고, 그런 경기가 더 잘 풀리더라. 작년 규석이의 역할이 내게 온 거 같지만, 올해는 누구 한 명의 팀이 아니라 모두가 잘해줘서 지금까지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
 

최근 사용한 챔피언이 기존 서포터의 이미지와 많이 다르다.

한국 지역에서는 운영을 통한 안정적인 경기를 많이 하는데, 남들과 같이하면 우리는 앞서갈 수 없으니 우리만의 픽을 찾자고 말했다. 이게 승리로 가는 지름길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MVP의 서포터는 제6의 포지션이라고 불러도 될 거 같다.

팀 전체 플레이로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서포터 한정으로는 누구에게도 질 거 같지 않다. 밴 카드가 10개로 늘었는데, 그걸로는 내 챔피언 폭을 막지 못할 테니까. 그래서 올해는 정규 리그에서도 상위권에 오르고, 서포터로는 처음으로 MVP 1위에 오르고 싶다.

여태까지 서포터가 시즌 MVP 1위에 오른 적이 없었다. 그 자리에 내가 제일 먼저 오르고 싶다. 그래서 나중에 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 역사를 논하는 자리에서 내 이름이 좋은 의미로 오르내렸으면 좋겠다. 매드라이프-마타에 이어 자신만의 스타일로 불리는 서포터로 기억되는 게 목표다.

인터뷰를 마치며 팬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작년 처음 팀에 왔을 때는 얼마 알려지지 않았지만 찾아주시는 팬들이 있었고, 이제는 점점 경기를 보고 팬 미팅에 와주는 팬들이 늘었다. 언제부터 MVP를 좋아하셨든지 모두 감사한 분들이고, 팬들에게 재미있고 참신하게 이기는 모습을 보여드릴 테니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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