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축구단 전북 현대 모터스

Talon 2020. 1. 17. 10:36

오늘 소개할 팀은 바로~

전주성 전북 현대 모터스입니다~!


모체라고 볼 수 있는 전북 버팔로가 1994 시즌에 K리그에 참가하였으나 재정 문제로 시즌 후 공식적으로 해체가 되었고, 이후 1994년 12월 현대자동차 지원 아래 독립법인체인 전북 다이노스 축구단이 창단되었습니다. 2000년부터 현재의 명칭으로 바꾸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으며, 공식적으로 한국프로축구연맹에 의하여 전북 버팔로와는 별개의 구단이라고 규정되어 역사와 기록을 승계하지 않고 있으며 클럽의 공식적인 연혁 또한 전북 다이노스의 창단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2000년대 이후로 K리그에서 가장 성공한 클럽 중 하나로 꼽히는 전북 현대 모터스는 2009, 2011, 2014, 2015, 2017, 2018, 2019 K리그1 우승, 2000년, 2003년, 2005년 FA컵 우승, 2004년 슈퍼컵 우승, 2011년 AFC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2002년 아시안 컵 위너스 컵 준우승, 2004년 AFC 챔피언스리그 4강, 2006년과 2016년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타이틀을 가지고 있습니다. 2006, 2016년 FIFA 클럽 월드컵에도 참가했습니다.


모체

지금의 전북 현대 모터스의 모체는 전북 버팔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1993년 1월 16일 전라스포츠클럽에 의해 창단되고, 스포츠 용품 업체 푸마에 의해 후원 약속을 받은 완산 푸마는 프로축구에서 지역연고에 기반을 두고 클럽제도 정착을 시도한 최초의 클럽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축구 클럽 제도에 회의적인 축구계 여론과 창단 전, 후 재정 문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같은 해 3월 선수등록에 실패하였고 스폰서가 제우정보로, 구단주가 문수기 보배 대표이사로 변경되어 팀명까지 제우 엑스터로 바뀌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와 같은 우여곡절을 겪은 후 1994년 2월 16일 팀명을 전북 버팔로로 변경한 후 K리그 1994 시즌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초대 감독으로는 김기복이 선임되었습니다. 1994 시즌 전북 버팔로는 점차 재정이 바닥나기 시작하면서 시즌 말 인수자가 나올 때까지 한국프로축구연맹에 의해 위탁 운영되는 상황까지 맞이하였습니다. 시즌이 끝날 때까지 인수 희망자는 나오지 않았고 결국 일화 천마와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와해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창단과 초창기
1994년 11월 (주)현양이 10억원을 기본 자본금으로 출자하고, 전라북도 완주군에 상용차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현대자동차가 20억원을 홍보 스폰서 형식으로 지원하여 독립 법인체인 전북 다이노스로 창단을 선언하였고, 초대 차경복 감독이 자진 사퇴하자 최만희 코치가 감독 대행으로 승격되었습니다. 1997년에는 "전북 현대 다이노스"로 구단 명칭을 변경하였습니다. 이후 1999년 5월에 현대자동차가 구단의 지분을 인수해 완전한 직영 체제로 전환하였습니다. 그 해에 최초로 FA컵 결승전에 올랐으나, 결승전에서 천안 일화 천마에게 패배하여 창단 후 첫 우승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전북 현대 모터스로의 변경
2000년 5월 31일, 팀명을 "전북 현대 모터스"로 개명하였습니다. 2000 시즌을 앞두고 빗셀 고베로 떠났던 김도훈이 K리그 최다 연봉을 받으며 전북 현대 모터스로 복귀했습니다. 김도훈은 초반 8경기까지 단 1골 만을 넣어 실망스런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6월 22일 대전 시티즌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여 논란을 잠재웠습니다. 김도훈의 활약으로 전북 현대 모터스는 창단 이래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였습니다. 또한 FA컵에서는 2년 연속 결승에 올랐는데, 상대 또한 작년과 같은 팀인 성남 일화 천마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경기에서 전북은 2-0으로 승리를 거두어 전 시즌의 복수와 함께 창단 이후 첫 우승을 달성하게 되었습니다.


전 시즌과의 성공과는 다르게 2001 시즌에는 중반까지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하였고, 결국 7월 18일 최만희 감독이 경질당하였습니다. 공백을 메꾸기 위해 남대식 기술 고문이 감독 대행으로 팀을 이끌었고, 이후 10월 4일 조윤환 감독이 새롭게 정식 감독으로 부임하였으나, 최종적으로 10개 팀 중 9위를 기록하는 부진을 이어갔습니다. 2002 시즌에도 7위를 기록하여 하위권을 탈출하지 못하였으나, 2000년 FA컵 우승 자격으로 출전한 2001-02 아시안 컵 위너스컵에서 결승전까지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결승전에서 연장전 끝에 알힐랄에게 1-2로 패배하면서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본격적으로 조윤환 감독이 이끄는 2003 시즌에는 5위를 기록하였습니다. 비록 1위 성남 일화 천마의 승점이 91점으로 압도적이었긴 했지만 2위 울산 현대 호랑이의 승점은 73점으로 69점을 얻은 전북으로서는 나쁘지 않은 한 해였습니다. 게다가 FA컵에서도 전남 드래곤즈를 승부차기 끝에 꺾고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2004 시즌 또한 전기 리그에서 2위를 기록하며 호조를 보였습니다. 반면 후기 리그에서는 꼴찌에서 2위라는 성적을 남기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하는 불행을 겪었습니다. FA컵 우승으로 진출한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는 4강까지 올라갔으나 알이티하드에게 패배하였습니다.


최강희 시대의 개막
2006 시즌 최강희 감독은 울산에서 최성국, 이천수 등에 밀려 벤치 신세였던 김형범과 카르로스를 데려오고, 호남대학교를 졸업한 염기훈도 영입하였습니다. 젊은 선수들로 선수단을 바꾼 그 해 전기리그에서 7위를 마크하였습니다.

 
FA컵 우승 자격으로 AFC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한 전북은 J리그 우승 팀 감바 오사카, 중국 슈퍼리그 우승 팀 다롄 스더, 베트남의 다낭과 E조에 배정 되었습니다. 감바 오사카와의 1차전에서는 1-2에서 후반 교체 투입된 김형범이 2골을 넣어 극적 역전승을 하였는데 이는 드라마의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조 1위만이 8강에 진출하기 때문에 꼭 이겨야 하는 다롄 스더와의 마지막 6차전에서도 실점하였다가 3골을 몰아넣어 승점 1점차로 진출하였습니다. 상하이 선화와의 8강 1차전에서는 주심의 석연찮은 판정으로 김형범과 보띠가 퇴장당하는 악재 속에 0-1로 패배하였습니다. 이어진 2차전에서 또 1실점을 하여 4강 진출을 위해서는 3골이 필요하게 되는 상황에서 거짓말처럼 제칼로의 멀티골, 염기훈, 정종관이 골을 몰아 넣으며 통합 4-3의 스코어로 4강에 진출하였습니다.

 
4강 1차전에서는 A3 챔피언스컵에서 감바 오사카를 6-0, 다롄 스더를 4-0으로 꺾은 바 있는 전년도 K리그 우승 팀 울산 현대 호랑이에게 2-3으로 패배하였지만 2차전에 또다시 4골을 몰아쳐 결승에 진출하게 됩니다. 연이어 극적인 승리를 거둔 전북은 ‘역전의 명수’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결승전에서는 쿠웨이트의 알카디시야를 물리치고 올라온 시리아의 알카라마와 대진하게 되었다.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1차전에서 염기훈과 보띠의 골로 2-0으로 승리하여 어렵지 않게 우승을 쟁취하는 듯했습니다. 홈스 칼레드 빈 알 왈리드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2차전에서는 시리아 대통령까지 경기장에 나왔고 4만여 관중의 열기에 눌려 2골을 내주며 경기를 어렵게 풀어갔습니다. 하지만 경기 종료 3분전, 제칼로가 헤딩으로 골을 성공시켜 전북에 우승을 안겨주게 됩니다. 챔피언스리그에서의 성공을 지켜 본 중국 기자들이 청나라 시대의 강희제의 한자어가 최강희의 이름과 같아 강희대제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AFC 챔피언스리그에 집중한 탓에 리그에서는 전, 후기리그 통합 11위에 그쳤습니다. FIFA 클럽 월드컵에서는 멕시코의 클럽 아메리카에 0-1로 지고 뉴질랜드의 오클랜드 시티에 3-0으로 승리하여 5위로 마감하였습니다.


전설로의 도전
2007 시즌에는 마케도니아 리그에서 3시즌 연속 득점왕을 한 최강희 감독은 직접 전북 홈페이지 게시판에 글을 올려 ‘믿어 달라’고 하며 팬들의 비판을 잠재웠습니다.


“ 저는 전북을 지키면 안되는겁니까? 저는 영원히 전북감독을 하면 안되는거지요? 팀은 안으로 정말 좋아졌어요 젊어지고 가능성이 있는팀 (중략) 저도 가끔 꿈을 꿉니다 가슴에 별을 달고 축구판을 호령하는 모습 우리팬들의 영원한 숙제 리그우승도 꿈꾸고 다시한번 아챔 도전을해서 역사를 다시한번 써보자 2006년을 재현해보자 그런 꿈을 꿉니다 ”


우승을 위하여 전북 구단 자체적으로 추진하고 있던 '2010 프로젝트'도 최강희 감독에게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시즌 후반 순위를 끌어올리며 11월 9일 경남 FC 와의 리그 최종전에서 3-1 역전승을 거두어 6강 플레이오프에 6위로 턱걸이 하였습니다. 성남을 2-1로 이기고 울산과 대진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울산으로 이적했던 염기훈이 준플레이오프에서 전북을 탈락시키는 골을 넣고 ‘친정팀에게 골을 넣어 더 기쁘다’라고 말하여 전북 팬들의 공분을 사게 되었습니다. 조재진은 시즌 종료 후 감바 오사카로 이적하며 15억이라는 이적료를 전북에 안겨줍니다.

 
최강희 감독은 잦은 부상과 주전 경쟁에서 밀린 김형범을 영입하여 핵심 멤버로 키웠습니다. 또한 포항에서 따바레즈와의 주전 경쟁에서 밀린 국가대표 출신 최태욱을 2대2 트레이드로 영입하여 재기할 수 있게 하였고 수원에서 방출 당했던 루이스도 다시 K리그에 불러들여 뛰어난 활약을 이끌었습니다. 부상과 부진에 빠진 선수를 영입하여 능력을 다시 끌어내고 재기시키는 방식을 써와 재활공장장이라는 칭호를 얻었습니다.


2009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미들즈브러에서 성남 일화 천마로 돌아왔지만 부진하던 이동국과 신태용 감독의 팀 개편 으로 사실상 방출 당한 김상식을 2대2 트레이드로 영입하였습니다. 조재진을 이적시키며 얻은 돈으로 대구에서 에이스 역할을 하던 진경선, 하대성, 에닝요를 모두 영입하여 공수 모든 부분에 걸쳐 보강하였습니다.12월 22일 K리그 대상 시상식장에서 베스트팀, 감독상, 도움왕을 수상하였습니다. 또한 베스트 11에 이동국, 김상식, 최태욱, 에닝요가 선정되었습니다. 이동국은 MVP, 득점왕, 베스트 11, 팬타스틱 플레이어를 휩쓸어 유례없는 4관왕의 영광을 누렸습니다.

 
2010 시즌 부산으로부터 강승조, 크로아티아 리그 득점왕 로브렉, 오미야 아르디자로부터 박원재, 대구 FC로부터 펑샤오팅을 영입하였습니다. 첫 우승의 기세를 앞세워 전북은 리그, FA컵, 리그 컵, 챔피언스리그에서 전관왕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수원과의 개막전에서는 에닝요가 2골을 넣으며 3-1로 승리하였습니다. 챔피언스리그에서는 가시마 앤틀러스, 페르시푸라 자야푸라, 창춘 야타이와 F조에 배정 되어 조 2위로 진출하였습니다. 16강에서 애들레이드 원정에서 3-2로 이겼으나 8강에서 만난 알 샤밥와의 경기는 파상공세를 펼쳤음에도 골 결정력 부족과 침대 축구에 0-2로 패했습니다. 결국 사우디 원정에서 1-0까지 밖에 따라잡지 못해 탈락의 눈물을 떨궜습니다.

 
포스코 컵에서는 비 주전 위주로도 결승 까지 올랐으나 FC 서울에 0-3으로 패하며 우승컵을 놓쳤습니다. FA컵에서는 4강에서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0-2 패배하였습니다. 리그 최종전에서 수원에 5-1로 대승하며 리그 3위로 마쳤습니다. 6강 플레이오프에서 경남에 2-1로 승리하고, 준 플레이오프에서 성남에 1-0으로 승리하였으나 제주와의 플레이오프에서 0-1로 패하며 시즌을 무관으로 마감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동국, 에닝요, 로브렉으로 이어지는 삼각 편대는 28경기에서 36골을 터뜨리며 전북을 리그 최고의 공격적인 팀으로 만들기에 충분하였습니다.


2011 시즌은 닥치고 공격의 파괴력이 절정에 달한 한 해였습니다. 이기고 있어도 공격, 한 명이 퇴장당했어도 공격을 외치던 전북의 팀 컬러는 상대팀에게 공포를 심어주었습니다. 이동국, 에닝요가 27골 20도움을 합작하고 경남 FC서 영입한 김동찬이 10골을 기록하였습니다. 부산 아이파크서 영입한 정성훈과 이승현, 베이징 궈안에서 영입한 황보원 등이 더블스쿼드를 구축하면서 정규리그 30경기에서 67득 32실의 성과로 리그를 제패하였습니다.

 
AFC 챔피언스리그 8강전에서 세레소 오사카를 6-1로 이겨 아시아 무대에서도 닥공의 위력을 발휘한 전북은 2004년에 이어 알이티하드와 다시 준결승에서 마주하여 이번에는 3-2, 2-1 로 꺾고 전주 월드컵 경기장에서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이기고 올라온 알사드와 결승전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에닝요가 프리킥 선제골을 작렬하였으나 심우연이 자책골을 기록하고, 압둘 카데르 케이타에 역전골을 내주고 87분 정성훈의 슈팅이 포스트바를 맞는 등 패색이 짙던 후반 추가시간에 이승현이 92분 극적인 동점골을 넣으면서 승부는 연장으로 이어졌습니다. 114분 에닝요의 코너킥이 알사드 수비수에 맞고 포스트바를 때리면서 불운은 이어졌고 승부차기에서 김동찬과 박원재가 연속으로 실축하면서 준우승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이어진 K리그 챔피언십 결승에서는 포항 스틸러스를 꺾고 올라온 울산 현대를 만나 11월 30일 울산에서 2-1로 승리하였습니다. 1차전을 이긴 상황에서도 12월 4일 2차전에 공격적인 선수교체를 단행하다 설기현에 선제골을 얻어맞아 위기에 빠지기도 했지만 결국 에닝요의 페널티킥과 루이스의 골이 터지면서 2-1로 승리하여 닥공의 결실을 맺었습니다.

우승과 함께 5월 21일 11R 강원전 1-0승리 이후 연속 무패행진을 22경기로 기록하며 성남이 2007년 기록한 역대 최다 무패행진 기록과 타이를 이루는 성과도 얻었습니다..


이흥실 감독 대행
조광래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2011년 12월 8일에 경질된 후, 대한축구협회는 전북을 황금기로 이끌던 최강희 감독에게 계속적인 추파를 던졌습니다. 최강희 감독은 그때마다 극구 거절했지만 끈질긴 설득 끝에 대표팀 감독직을 수락하였습니다. 이후 그는 2014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이 끝나는 2013년 6월까지만 대표팀을 이끌기로 약속하고 전북 현대 모터스를 떠났습니다. 전북을 떠나면서 최강희 감독은 대표팀 지휘를 끝낸 후 전북으로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하였습니다.


최강희 감독을 대신하여 그를 7년간 보좌해 왔던 이흥실 수석코치가 감독 대행으로 승격하였습니다.

전북은 그 해 FA 최대어인 김정우, 이강진을 영입하였습니다. 수원행을 희망하여 이적한 서정진[31] 을 대신해 칠레 대표팀 출신 드로겟도 영입하였습니다.

 
2012 시즌 초반 전북의 수비진 붕괴는 재앙수준이었습니다.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광저우 헝다와의 1차전에서 조성환과 임유환이 부상을 당했다. 이는 1-5 패배의 원인이 되었다.

심우연은 이어진 대전 시티즌과의 리그 2R에서 부상당했습니다. 가시와 레이솔과의 예선 2차전에서 김정우를 원톱으로 최철순, 김상식, 진경선을 스리백으로 내세우는 파격을 감행했다가 1-5 패배가 재현되었습니다. 리그 4R FC 서울전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남은 중앙 수비수인 이강진마저 부상을 당했습니다. 결국 김상식과 정성훈이 센터백을 보는 웃지 못할 해프닝을 겪었습니다. 결국, 이 경기에서 종료 직전 89분에 몰리나에게 결승골을 허용하며 지난 시즌부터 이어온 리그 최다 무패 기록이 25경기에서 종료되었습니다.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광저우 헝다와의 5차전에서는 경기 내내 일방적으로 밀리고 조성환이 퇴장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동국의 89분 역전골, 92분 쐐기골이 터지면서 3-1으로 승리하여 조 1위로 등극하였습니다.

하지만 가시와 레이솔 과의 마지막 6차전에서 0-2로 패배하면서 16강 진출에 실패하였습니다.
센터백의 연이은 부상사태로 인해 리그 초반 8위까지 떨어지는 부진을 겪었으나 17R를 기점으로 1위로 등극하였습니다. 그러나 29R 스플릿 직전 FC 서울에 역전을 허용하여 17점차로 리그 우승을 내주고 말았습니다. FA컵에서도 후에 우승하는 포항 스틸러스에 8강전에서 2-3으로 패배함으로써 시즌을 무관으로 마쳤습니다. 그로 인해 이흥실 감독대행이 경질되고 피지컬 코치로 있던 파비우가 감독대행직을 이어 받게 되었습니다.



돌아온 봉동 이장, 2년 만에 K리그 정상 탈환
2013 시즌 전북은 인천 유나이티드로부터 정인환, 정혁, 이규로를, 대전 시티즌으로부터 케빈 오리스를, 광주 FC로부터 이승기 등을 대대적으로 영입하였습니다. 그러나 감독 경험이 없는 피지컬 코치를 대행에 앉힌 전북은 리그에서 예전만큼의 파괴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4~6위권을 전전하였습니다.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작년에 이어 다시 같은 조가 된 광저우 헝다와 함께 우라와 레즈, 무앙통 유나이티드와 F조를 이뤘습니다. 우라와 레즈를 사이타마에서 3-1로 꺾어 2007년의 복수를 하는 동시에 득실차로 밀어내고 2위로 16강에 진출하였으나 또 다시 가시와 레이솔에게 홈 0-2, 원정 2-3로 연패하며 탈락하였습니다.

파비오 감독 대행은 6승 3무 4패를 기록하여 5위로 대행직을 마쳤습니다. 임시로 뒤를 이은 신홍기 감독 대행은 6월 26일 수원에 4-5로 패하여 8위까지 추락하였습니다.

 
6월 19일, 대표팀 감독직을 내려 놓은 최강희는 어느 정도 휴식기를 가지고 7월 중에 복귀하고자 했으나 수원전을 지켜보고 휴식을 취소하였습니다. 6월 28일, 1년 6개월 만에 최강희 감독이 전북에 복귀하였습니다.

복귀전인 경남전에서 4-0으로 승리하고 다음 경기에서 성남에 2-3으로 지며 주춤하였지만 10경기 연속 무패행진을 이끄며 3위까지 뛰어올랐습니다. 그 중 8월 26일 제주전에서는 3-0으로 이기며 케빈의 3번째 골로 기존 성남이 가지고 있던 기록를 앞당겨 692경기만에 최단경기 팀 1000골을 달성하였습니다. 9월 8일 리그 1위 포항을 이기면 선두에 오를 기회를 맞았으나 0-3 스코어로 패배하며 4위로 하락하였습니다. 부산과 FA컵 4강전, 리그 경기를 2연승으로 장식하며 다시 승점 52점으로 포항과 승점이 같고 득실차에 밀린 2위로 올라서나 이어진 선두 포항과 3위 울산의 경기가 0-0으로 끝나 3위로 밀리게 됩니다. 10월 9일 선두 울산에 1-0으로 승리하나 포항에 득실차로 밀려 선두 등극에 실패하게 됩니다. 세번이나 선두에 오를 기회가 있었지만 번번이 눈 앞에서 놓쳤습니다. FA컵 결승에서 포항과 맞서 공격을 주도했으나 승부차기에서 두 번의 선방을 선보인 신화용에 가로막혀 준우승에 그쳤습니다. 연승가도를 달리며 선두로 치고 나가던 울산에 0-2, 포항에 1-2, 서울에 1-4로 연이어 패하며 승점 11점차로 벌어져 사실상 우승 경쟁 레이스에서 탈락하였습니다. 3위 결정전이 된 서울과의 최종전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하며 3위로 시즌을 마칩니다.

 
2014 시즌을 앞두고, 2년 만의 K리그 정상을 탈환하기 위해 이적시장에서 한교원, 김남일, 이승렬, 김인성, 신형민, 최보경 등 영입과 이후 최철순이 4월 초에 전역해 팀에 합류하여 리그 1위를 차지하였고, 11월 8일에 열린 제주와의 원정 경기에서 3-0 대승을 거둬 남은 경기에 상관없이 팀 통산 3번째 리그 우승을 차지하였습니다.

 
2015 시즌에는 리그와 ACL 더블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 선수 영입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먼저 신형민, 정혁, 이승기가 군 복무를 위해 각각 경찰청과 상무에 입대하였습니다. 뒤이어 김인성은 인천으로 이적, 김남일은 J리그의 교토 상가 FC로 이적하였습니다. 그 대신 에닝요와 조성환을 재영입하였고, 에두, 이호, 유창현, 문상윤, 김형일 등 선수들을 모두 영입하여 더블 스쿼드를 운용할 수 있는 전력을 갖췄습니다. 리그에서는 지난 18년간 깨지지 않았던 22경기 연속 무패 기록을 달성하였습니다. 최강희 감독의 리그 통산 300승을 달성하는 등 독주체제를 갖춰나갔습니다. 하지만, 부진을 씻지 못한 에닝요가 7월 9일부로 갑작스럽게 팀을 떠났고, 이동국과 투톱을 맞췄던 에두도 중국 갑급 리그인 허베이 화샤 싱푸로 이적하게 되었지만 에미리트 클럽에서 뛰던 루이스를 재영입하였고, 레오나르두와 재계약을 맺어 한숨을 돌렸습니다. 스페인 출신 공격수 우르코 베라와 카타르에서 뛰던 이근호를 임대 영입해 에두의 공백을 메웠습니다. 11월 8일에 열린 제주와의 원정 경기에서 이재성의 결승골로 1-0 승리를 따내, 남은 경기에 상관없이 리그 2연패 달성과 동시에 팀 통산 4번째 리그 우승을 차지하였습니다.

 
시즌 후, 최보경과 이재명이 각각 경찰청과 상무에 입대를 하자 전남 드래곤즈에서 뛰던 이종호와 임종은을 영입한데 이어 지난 시즌에 포항에서 임대를 뛰었던 풀백 최재수를 영입하였습니다. 또한 마쓰모토 야마가에서 활약하던 김보경이 입단을 확정지었고, 지난 시즌 포항에서 활약하던 고무열을 영입한 데 이어 이후 우르코 베라가 CA 오사수나로 이적하자 제주에서 뛰던 히카르두 로페스를 영입하였습니다. 2016년 2월 1일 울산 현대에서 뛰던 김신욱이 영입되었습니다. 앨릭스 윌킨슨의 대체 용병으로 에릭 파르탈루를 영입하였고 이규로와 유창현은 각각 서울 이랜드 FC, 성남 FC로 이적하였으며 정훈, 김기희 역시 각각 타이 프리미어리그 수판부리 FC와 중국 슈퍼리그 상하이 선화로 이적하였습니다.

 
2016년 5월 부산지방검찰청은 전북 현대의 차종복 스카우트를 2013년 K리그 주심으로 활약하던 2명의 심판에게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였다고 밝혔습니다. 차종복 스카우트는 3차 공판 끝에 9월 29일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으며, 프로축구연맹은 9월 30일 징계위원회를 열어 전북에 대한 징계를 확정지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30일 소집된 징계위원회는 해당 사건에 대해 전북 구단에 벌금 1억 원을 부과했으며 2016 시즌 리그에서 승점 9점을 감점하는 징계 조치를 내렸습니다.

 
한편 시즌 초반부터 리그 무패 행진을 달리던 전북은 7월 30일 광주 FC를 잡으며 국내 프로스포츠 사상 최다 연속 무패 기록인 23경기 연속 무패를 기록했습니다. 이후에도 무패행진을 이어가던 전북은 32라운드 성남과의 홈경기에서 로페즈의 결승골로 1-0 승리를 거두며 리그에서 최소 2위를 확보, 8년 연속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확정지었으나 9월 30일 내려진 승점 삭감 징계로 인해 2위 서울과 승점차가 5점으로 좁혀지면서 다시 순위 경쟁을 해야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10월 15일엔 제주 유나이티드에 2-3로 패하며 무패 행진 기록을 마감하였고, 11월 6일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FC 서울에게 0-1로 패하면서, K리그 클래식 3연패 달성에 실패하였습니다. 리그 종료 후 열린 2016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 1차전에서 알아인을 상대로 1차전 2-1 승리를 거둔데 이어, 2차전에선 1-1 무승부를 기록하며 통합 스코어 3-2로 우승을 차지하였습니다. 2006년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한 뒤 10년 만의 우승입니다. 이후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자격으로 클럽 월드컵에 출전하여 5위를 기록하며 시즌을 마무리하였습니다.

 
2016년 12월 14일 이종호, 김창수, 최규백 등 3명을 울산으로 보내는 대신 울산에서 활약했던 수비수 이재성, 이용 2명을 영입하며 울산 현대와 3대2 트레이드를 단행했습니다. 2017년 1월 12일엔 호펜하임에서 뛰던 김진수를 영입하였습니다. 2017년 1월 28일에는 오랜 기간 팀의 골문을 지켜온 권순태가 가시마 앤틀러스로 이적하였습니다.

 
한편 2017년 1월 18일에는 지난 시즌에 있었던 구단 스카우트의 심판 로비 의혹 사건으로 인하여 AFC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박탈당했고, 그 자리에 지난 시즌 리그 3위를 기록했던 제주가 본선에 직행하고, 4위를 기록한 울산이 2월 7일로 예정된 플레이오프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전북은 출전 관리 기구의 최종 결정에 대해서 스포츠 중재 재판소에 항소하였습니다. 2월 3일 CAS는 전북의 2017 시즌 AFC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의 박탈이 정당하다며 전북의 항소를 기각하였습니다. 그후, 10년간 전북을 책임졌던 이철근 단장이 사임하였고, 그의 후임으로 '현대차 출신' 백승권 상무가 신임 단장으로 선임되었습니다.

 
그 후, 2017 시즌 동안 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유지하여 2017년 10월 29일 제주와의 홈 경기에서 3-0 대승을 거둬 남은 2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조기 우승을 확정, 리그 5번째 우승을 달성하였습니다. 시즌 종료 후, 고무열이 아산 무궁화로 입대하였습니다.

 
2018시즌을 앞두고, 전북은 U-20 출신 골키퍼인 송범근을 영입하였습니다. 이후 포항 스틸러스에서 뛰던 손준호를 4년 계약을 체결하여 영입하였습니다. 이후 장쑤 쑤닝에서 홍정호를 1년 임대로 데려왔습니다.

 
2018년 10월 22일 최강희 감독이 차기 시즌 중국 슈퍼리그 톈진 취안젠으로 취임함에 따라 2018시즌을 끝으로 지휘봉을 내려놓았습니다.


조제 모라이스 시대
2018년 12월 3일 구단은 14년간 팀을 이끌었던 최강희의 후임으로 포르투갈 출신이자 프리미어리그에서 줄곧 조제 모리뉴를 보좌해왔던 조제 모라이스를 제 5대 감독으로 선임하였습니다.

 
그 후, 모라이스 체제로 시즌을 시작한 전북은 울산과 리그 1위를 10 차례 경쟁 끝에 리그 최종전에서 포항에게 패한 울산을 따돌리고 역전 우승에 성공하여 2003년 성남 이후 리그 3연패를 달성하였습니다.

 
2019년 시즌 후, 문선민과 권경원이 상주 상무에 입대하고, 명준재, 임선영, 신형민과 결별하였습니다.


창단 초기 선수들은 숙소가 없어 전주종합경기장 옆의 여관에서 자기도 하였습니다. 숙소를 마련해 달라는 요청에 1996년부터 완주군 봉동읍 용암리에 있는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현대사원아파트 5, 6층을 숙소로 써왔으나 클럽하우스라고 볼 수는 없었고 환경도 열악했습니다. 훈련장은 봉동읍 율소리에 마련하여 훈련하였는데, 2009년 K리그 우승을 계기로 감독과 단장이 요청하자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부회장이 자금을 지원하여 기존 훈련장 옆에 짓기 시작하였습니다. 클럽 하우스를 짓기 전 건축 설계팀은 국내와 해외 유명 클럽의 클럽하우스를 직접 방문해 현황 조사를 하여 장단점을 파악하고 클럽하우스에 반영하였습니다.

 
2013년 10월 클럽하우스가 착공 3년 만에 완공하였습니다. 대지 8,078.36m2에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지어진 클럽하우스는 천연 잔디 2면과 실내 인조 잔디 1면, 총 3면의 운동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특히 가로 60m, 세로 36m, 높이 11m의 실내 연습구장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캐링턴 구장을 벤치마킹하여 선수들이 날씨에 관계 없이 훈련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삼성 트레이닝 센터에 이어 국내 두 번째로 수중 치료기를 도입하였고 축구화 피팅룸, 체력 단련장, 물리 치료실, 시청각 회의실, 비디오 분석실 등을 갖추고 있습니다.



국내 대회


리그
K리그1
● 우승 : 2009, 2011, 2014~2015, 2017~2019
● 준우승 : 2012, 2016
● 3위 : 2010, 2013



FA컵
● 우승 : 2000, 2003, 2005
● 준우승 : 1999, 2013
2010 리그컵 준우승
슈퍼컵
● 우승 : 2004
● 준우승 : 2001, 2006


국제 대회


아시아 대회
AFC 챔피언스리그
● 우승 : 2006, 2016
● 준우승 : 2011
2002 아시안 컵위너스컵

세계 대회
FIFA 클럽 월드컵
● 5위 : 2006, 2016

반응형

'소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프로 야구팀 키움 히어로즈  (0) 2020.01.20
농구감독 추승균  (0) 2020.01.18
프로게이머 박서용  (0) 2020.01.15
프로축구단 제주 유나이티드  (0) 2020.01.14
프로게이머 문기도  (0) 2020.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