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할 선수는 바로~
쇼트트랙 GOAT 빅토르 안 선수입니다~!
현재 쇼트트랙 코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06년 동계 올림픽 3관왕, 2014년 동계 올림픽 3관왕,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 대회 6회 우승자이며, 쇼트트랙 역사상 유일하게 동계 올림픽 전종목을 석권한 선수입니다. 한국 국적일 당시 2006년 동계 올림픽에서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로 출전하여 금메달 3개, 동메달 1개를 획득하면서 쇼트트랙 선수 최초로 한 번의 올림픽에서 전종목 메달을 땄고,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 대회를 5연속 제패하였으며, 2003년 쇼트트랙 남자 1500m와 3000m에서 세계 신기록을 수립하였습니다. 2011년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러시아로 귀화하여 러시아 국가대표로 활동했고, 2014년 동계 올림픽에서 러시아 국가대표 선수로 출전하여 금메달 3개, 동메달 1개를 획득하면서 올림픽에서만 총 8개의 메달을 따며 미국의 아폴로 안톤 오노와 쇼트트랙 최다 메달 타이기록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이어 2014년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 대회에서 종합 우승을 하면서 남자 쇼트트랙 선수로는 최초로 세계선수권 6회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선수생활을 지속하다가 2020년 4월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쇼트트랙 최다 올림픽 금메달과 세계선수권 최다 우승이라는 기록으로 쇼트트랙 역대 최고의 선수라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명지초등학교 - 명지중학교 - 신목고등학교 - 한국체육대학교 체육학과 졸업
1985년 3월 19일 대한민국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명지초등학교 2학년 때 스케이트를 시작해 1996년 전국 남녀 학생 종별 대회에서 종합 우승하였고, 명지중학교 시절 동계체전 3연패를 하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신목고등학교 진학 후 그는 전국 고등부 1위를 차지했으며 2002년 1월 세계 주니어 선수권 대회에서 1000m와 1500m에서 1위를 하면서 종합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를 지켜본 전명규 감독의 특별 추천으로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했음에도 불구하고 2002년 동계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만 16세에 불과했지만 처음 출전한 세계 규모의 국제 대회에서 1000m에 결승까지 진출했으며, 결승 마지막 바퀴까지 아폴로 앤턴 오노, 리자쥔, 마티유 투르코트 등의 유명 선수들과 선두를 다투었으나, 이들과 엉겨 넘어지면서 4위로 결승선을 통과하여 메달을 놓쳤습니다. 곧이어 벌어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김동성의 뒤를 잇는 선수로 주목받았으며, 5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땄습니다.
2002년 동계 올림픽 대회 다음 시즌인 2002-2003 시즌부터 그는 한국과 세계의 각종 대회를 석권하기 시작했습니다. 2003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종합 우승하였으며, 이후 2007년까지 남자 선수로는 처음으로 5년 연속으로 세계 선수권을 제패하였고, 2003-2004 시즌과 2005-2006 시즌에는 월드컵 종합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특히 2006년 이탈리아 피에몬테주 토리노에서 열린 동계 올림픽 대회에서는 1000m·1500m 개인과 5000m 계주에서 금메달, 500m에서 동메달을 획득, 쇼트트랙 사상 처음으로 전종목에서 메달을 땄습니다. 또한 국내 스포츠 선수로는 올림픽 대회에서 한 번에 가장 많은 메달을 딴 선수로 기록되었습니다.
한편, 2002년 동계올림픽에서 안현수 선수의 특별 발탁을 두고 한체대와 비한체대 소속 간의 파벌 갈등이 일었고 한국체육대학교 소속이었던 안현수 선수는 여기에 연루되어 곤란을 겪었습니다. 이러한 심정을 현재 빙상연맹 이사로 있는 이진성의 미니홈피에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 2007년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 대회를 제패하면서 대한빙상연맹으로부터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습니다.
2007-08년 시즌 초반에도 안현수 선수는 월드컵 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하는 등 계속하여 좋은 성적을 냈으며, 2007년 말, 졸업을 앞두고 쇼트트랙 선수로는 역대 최고 계약금을 받아 성남시청에 입단했습니다. 그러나 2008년 1월 16일, 훈련 도중 심한 부상을 당해 남은 시즌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으며, 치료와 재활에 전념했습니다. 부상에서 어느 정도 회복되어 2008년 말부터 훈련을 재개하였으나, 2009년 4월에 열린 2009-10 시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종합 순위 7위로 대표팀에서 탈락하면서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 참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동계올림픽에 참가하지 못한 그는, 올림픽 기간 중에 열린 2010년 전국 동계체육대회에 출전, 1500m, 3000m 개인과 3000m 계주 부문에서 우승, 3관왕을 차지하였습니다.
2010년 동계 올림픽 후 대한빙상경기연맹의 파벌과 관련된 잡음으로 논란이 이어졌고, 부친은 러시아행을 권유하였습니다.
이미 러시아는 2009년부터 안현수 선수에게 관심을 가지고 영입 제안을 하고 있었습니다.
일단 안현수 선수는 2010년 4월에 치러질 국가대표 선발전을 준비하고 있었으나, 밴쿠버 동계올림픽 선발전 짬짜미 파문으로 인해 국가대표 선발전이 연기되면서 훈련 계획에 차질을 빚었습니다. 안현수 선수는 2010년 5월 기초 군사훈련을 이수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선발전 연기 결정이 안현수 선수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2010년 9월 타임레이스 방식으로 치러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하여 2010-11 시즌 국가대표로 선발되지 못했고, 대한 빙상경기연맹이 2011-12 시즌 국가대표 선발전은 다시 4월에 치를 것이라고 하자 이에 대한 대비를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소속팀인 성남시는 2010년 7월 12일 판교 특별회계에서 악화된 지방 재정으로 인해 모라토리엄을 선언하였고, 그것의 여파로 2010년 12월 30일 부로 소속 15개 체육팀 중 하키, 펜싱, 육상 3종목을 제외한 모든 팀을 해체하면서 빙상팀을 해체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안현수 선수는 새로 옮길 소속팀을 찾지 못한 채 소속팀 없이 훈련하는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2011년 4월에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5위를 하여, 4위까지 주어진 국가대표 자격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안현수 선수는 러시아행을 결심했습니다.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연속으로 탈락하고 소속팀까지 해체되는 어려운 처지에 빠진 안현수 선수는 새로운 여건에서 운동할 수 있는 러시아로 진출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는 2011년 6월 러시아로 이주하였고, 러시아 국적까지 취득하여 러시아 국가대표로 국제대회에 출전할 계획도 세웠습니다. 그리고 귀화에 앞서 2011년 7월,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자신의 남은 연금을 일시불로 수령하였습니다.
2011년 12월 28일 러시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안현수 선수의 러시아 국적 취득을 인정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함으로써 그는 정식으로 러시아 국적을 취득했습니다. 귀화와 동시에 러시아에서 명성을 떨친 우크라이나-고려인 혼혈 록 가수 빅토르 초이처럼 유명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빅토르 안으로 개명하였다고 합니다. 러시아 국적 취득으로 한국 국적법에 의해 그의 한국 국적은 자동 소멸되었습니다.
러시아에 귀화한 빅토르 안은 2011-2012 시즌 러시아 쇼트트랙 국가대표로 선발되었으며, 2012년 2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월드컵 대회 계주팀의 일원으로 참가하여 약 4년 만에 국제 대회에 복귀하였습니다. 이어 2012-2013 시즌 캘거리에서 열린 1차 월드컵에서 1000m 금메달을 따면서 부상 이후 약 5년만에 첫 국제대회 메달을 목에 걸게 되었으며, 2013년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여 500m와 5000m 계주에서 은메달을 획득하여 러시아 쇼트트랙 선수로는 처음으로 세계 선수권에서 메달을 획득했습니다.
2013-2014 시즌 종합 랭킹 2위, 500m 랭킹 1위로 월드컵을 마무리한 빅토르 안은 2014년 1월 드레스덴에서 열린 유럽선수권에서 4관왕에 오르며 올림픽 청신호를 보냈습니다. 러시아 소치에서 열린 2014년 동계 올림픽 개인 1500m에서 동메달을 획득하여 8년 만에 올림픽 메달을 땄고, 이어 10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그리고 22일 500m 경기, 5,000m 계주 경기에서도 금메달을 획득, 러시아에 금메달 3개, 동메달 1개를 안기며 2006년 동계 올림픽 이후로 다시 한번 3관왕의 기록과 전종목 메달 석권이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또한 쇼트트랙 사상 최초로 동계 올림픽 전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선수가 되었으며, 총 8개의 올림픽 메달로 미국의 아폴로 안톤 오노와 쇼트트랙 최다 메달 타이기록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2014년 2월 24일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으로부터 〈제4급 조국공헌 훈장〉을 받았고, 모스크바의 고급 아파트를 포상으로 받았습니다. 이어 2014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 대회에서 1000m 1위, 3000m 슈퍼 파이널 3위를 기록하고 500m, 1500m, 5000m 계주에서 4위를 기록해 6번째 종합우승이자 7년 만의 종합우승을 거머쥐면서 중국의 양양과 함께 세계선수권 최다 우승의 기록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빅토르 안은 올림픽 이후 한국인 우나리와 결혼식을 올렸으며, 결혼 2년차에 득녀하였습니다.
딸의 이름은 제인입니다. 소치 올림픽 이후로는 선수생활을 하면서 코칭을 겸하였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2015년 유럽선수권에서 500m 금메달을 거머쥐며 준우승을 하고, ISU 월드컵에서도 꾸준히 입상하면서 국제무대에서 선수 활동을 지속하였으나, 계속되는 무릎 통증으로 이후 기량은 떨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수술을 받으면 경력이 위태로워질 거라고 판단, 병원 치료와 재활을 위해 2015-16 시즌을 쉬었고, 이때 부인 우나리의 임신과 출산으로 한국에 입국하여 훈련하기 시작하면서 모교 한체대에서 훈련하는 모습이 언론을 통해 여러 차례 보도되었습니다. 특히 2016년에는 〈자랑스러운 한체대인 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2016-2017 시즌 복귀 이후 2017년 유럽선수권에서 500m 동메달, 2017년 세계선수권에서 3000m 슈퍼파이널 3위, 2018년 유럽 선수권에서 500m 은메달을 따는 등 쇼트트랙 선수로서는 상당히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제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나, 러시아 국가 차원의 도핑 스캔들에 휘말리면서 2018년 동계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하였습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었던 선수생활 막바지에 러시아 도핑 스캔들에 연루되었습니다. 원래 빅토르 안은 맥라렌 보고서에 포함되지 않았기에 개인 자격으로 출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2018년 1월 올림픽을 단 두 주 남겨둔 시점에서 출전불가 명단에 올라갔으며, 빅토르 안을 선두로 CAS 제소가 이루어졌으나 결백을 입증하기엔 시간은 부족했고, 올림픽 출전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빅토르 안은 금지약물 검사에 단 한 번도 적발되지 않은, '의심되는 대상'으로 올라간 맥라렌 보고서 기재자입니다. IOC는 이에 대해 빅토르 안이 어떤 경로로 어떤 이유에서 이름이 올라갔는지 함구하며 확실하게 결론을 내지 않고 종료하였습니다. IOC 의장인 발레리 푸르네이론은 "초청명단에 없다 해서 반드시 그 선수가 도핑을 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 처분이 그들의 성실성에 의문을 제기해서는 안 됩니다라는 입장을 냈습니다.
모국에서 열리는 2018년 동계 올림픽 출전이 무산된 것 외에 빅토르 안에 대한 대한 추가 징계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메달과 기록도 그대로 유지되었고, ISU 의 선수 자격 중지도 없었습니다. 1달뒤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2018년 세계선수권에 출전할 수도 있었으며, 2022년 베이징 올림픽 중국 국가대표 테크니컬 코치 겸 수석코치로 올림픽 참가도 허락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일은 도핑 의혹이라는 꼬리표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빅토르 안은 2022년 인터뷰에서 "내가 어떤 문제가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준다면 속이라도 시원할 텐데 IOC가 알려주지 않았다"면서, “만약 내게 도핑 문제가 있다면 그동안 쌓아온 국제대회 입상 기록이 무효화되고,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2018년 러시아 코치직과 고문 제안을 거절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다음, 진짜 사나이 300에 출연하고 MBC 연예대상에도 참석하면서 방송생활을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추측되었으나, 모교에서 지도자 생활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이 한 언론을 통해서 알려졌습니다.
2019년 2월에는 은퇴를 번복하고 2019-2020 시즌 선수로 복귀했습니다.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와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1차와 4차 월드컵에서 개인전 500m, 1000m에서 은메달 2개, 혼성계주와 남자 5000m 계주에서 금메달 3개와 은메달 1개를 획득하면서 러시아 팀을 이끌며 2022년 베이징 올림픽을 준비했으나, 고질적인 무릎 통증과 추가적인 부상으로 현역 생활을 더이상 유지할 수 없음을 밝히며 2020년 4월 26일 은퇴를 선언하고, 지도자의 길을 갈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2018년부터 중국은 왕멍의 주도하에 빅토르 안에게 집요하게 국가대표 코치직 러브콜을 보내왔었습니다. 2018년에 요청을 한 번 거절했던 빅토르 안은 2019-2020 시즌 종료 후 이를 수락했고,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종료된 2022년 2월까지 중국 국가대표 테크니컬 코치겸 수석 코치로 활동을 하였습니다. 빅토르 안의 코칭 방식은 직접 스케이트를 타면서 지도함으로써 선수들이 스텝 등을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중국 쇼트트랙 대표팀은 빅토르 안을 엄격하고 좋은 지도자라고 평가를 내렸습니다.
올림픽 쇼트트랙 혼성 2000m 계주 경기에서 중국 선수들이 실격을 받지 않고, 남자 1000m 준결승전에서 한국 선수들이 실격을 받은 것과 관련해 판정 논란이 거세지자, 많은 한국 네티즌들의 분노가 중국 코치를 맡고 있는 빅토르 안에게 향했습니다. 반대로 중국 매체들은 빅토르 안을 전설의 거성으로 표현하고 경쟁자에서 제자와 스승으로 다시 만난 우다징과 빅토르 안의 관계를 집중 보도하는 등, 빅토르 안은 베이징 올림픽 기간 중 한중 스포츠 갈등의 쟁점으로 떠올랐습니다.
2018년부터 코치직과 감독의 지도자 제안을 계속 거절당한 러시아에서는 빅토르 안에 대해 '선수 시절 대표팀에 매우 확실하고 유익한 도움을 줬다. 지금은 중국을 가르치고 있어 안타깝다.'라면서 2026년 밀라노 올림픽을 위해 다시금 지도자 영입을 제안할거라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올림픽 기간 동안 인터뷰를 모두 거절한 그는 3월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판정 논란에 대한 심경을 밝혔습니다. "힘든 상황을 내색하고 싶진 않았다. 무책임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 그는 "쇼트트랙 종목 특성상 판정 문제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라며 "기록 스포츠가 아니기 때문에 접촉이 일어날 수밖에 없고, 이에 심판 판정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고, "모든 선수는 판정 문제에 관해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하지만, 경기하다 보면 예상과 다른 상황이 발생하곤 한다"라고 덧붙였습니다. 특히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무분별한 비난이 이어진 것과 관련해, "불현듯 내가 쇼트트랙을 포기하면 이런 논란이 끝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라며 "그동안 내 열정과 경기를 보고 응원해주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예상치 못한 일들이 비난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가슴 아팠다"라고 말했습니다. 향후 계획에 대해서는 "한국은 내가 가장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하고 사랑받았던 곳"이라며 "만약 어떤 위치, 어떤 자리든 기회가 주어진다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것이며, 쇼트트랙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상으로 빅토르 안에 대한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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