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맘때쯤이다. 2부 리그팀 감독이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우승을 목표로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을 때, 그의 말을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지금은 모두가 납득한다.
그리핀은 29일 서울 대치동 프릭업 스튜디오에서 열린 담원 게이밍과의 2018 리그 오브 레전드 KeSPA컵 2라운드 4강전을 세트스코어 3대0 완승으로 마쳤다. 이제 그리핀은 31일 서울 광진구 세종대 광개토홀에서 젠지와 우승컵 주인을 가린다.
대회 개막 전부터 유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던 그리핀이다. 괴수 군단은 세간의 기대에 부응했다. 무실세트로 결승에 도달했다. 첫 경기였던 27일 2라운드 8강 아프리카 프릭스전을 2대0 완승으로 끝냈다. 이날도 3세트 내내 담원을 압도했다.
1년 사이에 많은 것이 바뀌었다. 그리핀이 처음 이름을 알린 것도 지난해 KeSPA컵이었다. 당시에는 리그 오브 레전드 챌린저스 코리아(챌린저스)에 속해있었다.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LCK) 소속 아프리카를 잡았다. LCK는 이를 ‘이변’이라고 표현했다.
이변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해가 바뀌자 그리핀의 위상은 날이 다르게 상승했다. 스프링 시즌 챌린저스 역대 최고 승률을 갈아치웠다. 28승 2패, 93.3%의 승률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CJ 엔투스가 보유한 기록(92.9%)을 넘어섰다.
서머 시즌 LCK 승격 이후에는 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 역사를 새로 썼다. 1라운드를 1위 성적(8승 1패)으로 마쳤다. 포스트 시즌에는 아프리카를 꺾고 결승에 진출했다. 곧바로 준우승까지 도달했다.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강팀으로 거듭났다.
그리핀 ‘씨맥’ 김대호 감독의 지론은 명확하다. 강함은 상상력과 재미에서 비롯된다. 그리핀이 선두로 LCK 반환점을 돌았던 지난 7월, 그는 “가장 중요한 건 재미”라며 “우리는 상상력의 팀이다. 어떤 패치가 오든 알맞게 변화해 재미있는 경기를 보여드리겠다”고 말했다.
그리핀은 과감하게 챔피언을 고르고, 늘 자신감 넘치게 움직인다. 이번 KeSPA컵에서는 탈리야와 세주아니 정글을 다시 꺼냈다. 두 챔피언 모두 주류 메타에서 벗어났다는 평을 듣는다. 그러나 그리핀은 담원으로부터 밴 카드 활용까지 이끌어냈다.
그리핀은 또 하나 틀을 깨고자 한다. 김 감독은 27일 아프리카전 이후 “개인 퍼포먼스를 제한하지 않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지켜야 하는 규칙이 많은 플레이를 했다”며 “핵심만 지키며 리스크를 두려워하지 않는 플레이를 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리핀은 이날 담원전에서도 다이브와 대규모 교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들은 2세트 15분 바텀 4인 다이브를 감행했다. 순식간에 3킬을 가져갔다. 바텀 라인에 균열이 일어났고, 급격하게 스노우볼이 굴러갔다. 게임이 32분 만에 마무리됐다.
지난해 겨울, 김 감독은 자신의 KeSPA컵 우승 로드맵을 두고 ‘망상 노트’라고 불렀다. 1년 후 망상은 현실 직전에 다다랐다. 29일 담원전 후 김 감독은 “올해 시행착오란 시행착오는 다 겪어봤다”며 내년에 더 큰 선전을 자신했다. 이제 그 말을 허튼소리로 여기는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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