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오브레전드

[박상진의 e스토리] e스포츠의 중심에 선 '페이커' 이상혁, 노력의 철학과 가치를 말하다

Talon 2019. 1. 19. 23:01

2018년 여름, 그 어느 여름보다 뜨거웠던 계절은 e스포츠 선수와 종사자들에게 특별한 시간이었다. 한국의 1990년대와 2000년대 한국의 젊은 문화를 대표하던 스타크래프트 시리즈에서 '황제'라고 불렸던 임요환이 그토록 바라던 꿈이 이뤄졌기에.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사상 처음으로 시범 종목으로 e스포츠가 진행되어 스타크래프트2에서는 조성주가 금메달을,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는 한국 대표팀이 은메달을 차지했다. 두 종목 모두 지상파 TV에도 소개되며 다시 한번 e스포츠를 사람들에게 알렸다.
e스포츠의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에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선수는 SK텔레콤 T1 미드라이너 '페이커' 이상혁이다. 이상혁은 '고전파'라는 소환사명으로 활동하던 아마추어 시절부터 주목받았고, 데뷔 이후 계속 SK텔레콤 프랜차이즈 스타로 활동하며 여섯 번의 롤챔스 우승과 세 번의 롤드컵 우승을 기록했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어디를 가도 리그 오브 레전드를 대표하는 선수라면 이상혁의 이름이 거론될 정도다. 
 

누구보다도 많이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이상혁이지만 그에게도 아쉬움이 남는 시기는 있었다. 공교롭게도 한국에서 롤드컵이 열리던 두 해에 이상혁은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2014년과 2018년의 일이다. 그리고 저 두 번의 시기에 소속팀인 SK텔레콤 역시 큰 변화를 겪었다. 2013년 '임팩트' 정언영-'벵기' 배성웅-'페이커' 이상혁-'피글렛' 채광진-'푸만두' 이정현으로 첫 롤드컵을 들어 올린 SK텔레콤은 2014 시즌이 끝난 후 '마린' 장경환-배성웅-이상혁-'뱅' 배준식-'울프' 이재완의 라인업으로 롤드컵을 두 번이나 차지했다. 그리고 2018 시즌이 끝나자 SK텔레콤은 국내외에서 내로라하는 선수들로 3기 체제를 완성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은 언제나 이상혁이었다. SK텔레콤 리그 오브 레전드팀과 함께한 이상혁은 그만큼 많은 주목과 관심, 기대, 그리고 비판과 비난의 중심에 서 있었다. 최고의 자리에 여러 번 올랐던 만큼 그만큼 수성을 해야 했고, 그 과정은 언제나 힘들었다. 2018 시즌 후에도 그랬다. 롤드컵에 진출하지 못해 몇 달 동안 쉬었다고 근황을 밝힌 이상혁은 새로운 동료들과 한 달 정도 연습을 이어오고 있었다. 서로 다른 곳에 있던 선수들이라 각자의 스타일이 있지만, 점점 하나의 스타일과 하나의 호흡으로 맞춰가고 있다는 것. 
 

"다른 팀에서 온 선수들이라 호흡을 맞추는 게 쉽진 않았죠. 하지만 점점 나아지고 있어요. 데뷔하고 7년이 지났고, 여러 선수와 호흡을 맞춰봤습니다. 과정이 쉽지는 않지만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게 좋습니다. SK텔레콤이 e스포츠 구단 중 최고의 명문이지만 프로게이머가 되고 항상 SK텔레콤에만 있었기에 저에게 SK텔레콤은 일상이죠. 그래서 다른 생각을 하기도 쉽지 않았고, 저에게도 좋은 조건을 제시해줘서 계속 SK텔레콤과 함께 가고 있습니다."
이상혁 본인은 그대로 있지만, 2019년 SK텔레콤은 작년과는 많이 다르다. 새로운 코치를 영입하고, 새로운 선수들로 팀을 꾸렸다. 킹존에 있던 '칸' 김동하, bbq에 있던 '크래이지' 김재희, LPL JD의 '클리드' 김태민, 젠지의 '하루' 강민승, 진에어 '테디' 박진성, 그리고 이상혁과 최고의 자리에서 수차례 대결했던 '마타' 조세형까지. 이상혁이 말하는 새로운 SK텔레콤의 특징은 '시끌벅적함'이었다. 팀이 이전보다 더 활발해졌다는 이야기다. 
 

"다들 다른 팀에서 왔으니까 각자에게 전 소속팀의 색이 묻어나서 재미있었어요. 덕분에 SK텔레콤에만 있던 저도 다른 팀의 분위기나 스타일에 대해 잘 알게 됐죠. 일시적으로 꾸려졌던 올스타와는 다른 느낌이죠. 이전의 SK텔레콤과 가장 큰 차이라면 '시끌벅적함'입니다. 숙소 분위기도 게임 스타일도 시끌벅적하죠. 다들 활발하고 말도 많아요. '칸' 김동하가 이전 팀에서 재미있는 모습을 많이 보여서 지금의 모습이 어떤지 물어보셨는데, 게임 안에서까지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에요. 일상생활에서는 재미있는 친구죠. 경기 내에서는 공격적인 모습이지만 나이도 경험도 많아서 상황에 따라 노련하게 유동적으로 잘 움직입니다."
SK텔레콤이 3기 체제로 전환한 것은 단일팀 체제로 전환한 2015년 2기 시절의 모습과 비슷하다. 그만큼 올해 롤챔스, 그리고 롤드컵 탈환에 대한 의자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는 것. 2018년의 아쉬움을 잊을 정도로 강력한 SK텔레콤을 재건하기 위한 과정에는 이상혁도 함께했다. 이상혁 역시 2018 시즌은 힘들고 아쉬웠던 해로 기억했다. 다만 아쉬움에 그친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도 많은 부분을 배웠다는 게 이상혁만의 특별함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2018년이라... 안 좋은 해. 결과도 안 좋았고, 과정조차도 힘든 부분이 많았죠. 하지만 힘든 부분에서도 제가 배울 게 있었어요. 배울 점이 정말 많았죠. 저는 e스포츠 선수로서 오랫동안 좋은 기량을 경기 내에서 보이고 싶거든요. 작년을 겪으면서 또 다른 노하우를 얻었습니다. 작년의 아쉬움을 발판으로 올해는 더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노력하려고 합니다."

이상혁하면 당장 떠오르는 것은 '하늘에서 내려준 리그 오브 레전드 재능'이다. 너무나 리그 오브 레전드에 재능을 준 나머지 다른 부분에서는 나사가 하나 정도 빠져 있다는 느낌을 줄 정도다. 하지만 그를 겪어본 사람의 대부분은 그의 노력을 이야기한다. 지금 배틀그라운드 다나와 DPG 팀 강도경 감독이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소양 교육 강사로 나섰을 때 가장 열심히 들었던 선수로 이상혁을 꼽을 정도로. 교육이 끝난 후 이상혁에게 깊은 인상을 받은 강도경 감독은 그에게 강의를 왜그리 열심히 들었냐고 물어봤고, 이상혁은 이렇게 답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노력을 다하려 합니다. 그래서 강의도 열심히 들었죠." 
 

다만 이상혁이 강의 내용이 좋았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지 않아 아쉬웠지만, 그래도 그의 노력에 대한 의지에 강도경 감독의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고. 이상혁 역시 그의 매사에 노력이라는 단어를 아끼지 않았다. 자기 자신에 대한 목표치를 어떻게 잡고 있냐는 질문에도 이상혁은 얼마나 노력했는지로 답했다. 그만큼 그는 노력에 대한 가치를 높게 잡고 있었다.
"두 번이나 한국에서 열린 롤드컵에 가지 못해 아쉬운 게 아닙니다. 제 스스로의 목표치를 이루지 못했다는 게 아쉽죠. 제가 어떤 성적을 냈느냐보다는 제가 얼마나 노력을 했는가로 저 자신을 평가합니다. 노력의 가치를 높게 잡고 있다고 말해주셨는데, 제가 할 수 있는 건 노력 하나거든요. 그래서 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최선을 다하려고 하고, 어떤 성적표를 받더라도 결과에 있어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주위 환경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는 있어도, 주변 환경으로 제가 바뀌는 건 없습니다. 저는 제 스스로에게 정말 많은 걸 바라는 편이니까요. 2017년 롤드컵에서도 제가 노력을 더 했으면 결과가 달랐을 거로 생각합니다. 제 노력에 아쉬운 부분이 많았어요." 
 

마치 자신의 단련을 위해 고행을 감내하는 이들의 모습까지 보일 정도로 이상혁은 자기 자신의 노력을 중요시했다. 하지만 아직 결과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의 노력에 만족한 점이 없다며 이상혁은 앞으로 어떤 결과를 받든 아쉬움이 없을 정도로 노력을 더 하겠다고 말했다.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할 거 같다는, 우승하지 못한 순간의 아쉬움을 더 이상 겪지 않기 위해 자신이 더 노력하겠다는 모습이었다.
이런 이상혁을 보며 하나의 걱정이 들었다. 어쩌면 기우일지도 모르는 걱정이다. 자기가 자신을 고무시키고 열정을 다하는 것은 프로 스포츠 선수에 있어 당연한 모습이다. 하지만 이렇게 자신을 계속 몰아붙이는 과정에서의 스트레스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장기간 쌓인 스트레스는 결국 문제를 일으키고,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 자기 관리가 필요하다. 자신에게 높은 기준을 세워 지칠 수 있는 이상혁은 독서에서 자기 관리 방법을 익혔다고 밝혔다. 자신을 너무 몰아붙이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않냐는 질문에 이상혁의 답변은 이렇다. 
 

"저에게 자극을 주되 스트레스는 주지 않으려 합니다. 그렇지만 스트레스는 제가 피한다고 다 피해지는 건 아니니까요. 말씀하신 대로 제가 주는 스트레스도 있지만 외부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있는데, 예전에는 제가 게임을 더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었어요. 요즘에는 일단 잠시 휴식을 취하고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 더 좋은 결과를 내려고 하죠. 스스로 자문자답을 하거나 독서를 하면서 자기 관리법을 스스로 익혔어요. 철학자 처럼 어떤 상황에 대해 어떤 것을 해야 할 것인가, 이런 습관이 들었기에 저도 저 스스로에게 어떤 선택이 더 좋은지 혼자 생각하죠. 저 홀로 생각할 때 독서가 정말 큰 도움이 됐어요. 책을 읽으면 생각이 깊어지고, 생각 과정에서 책의 도움을 받아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게 되고요. 독서 중에 스트레스가 풀리기도 합니다."
프로게이머와 책. 스포츠 선수와 독서. 연관 짓기 쉽지 않은 두 가지지만, 이상혁에게는 낯선 이미지가 아니다. 프로필 촬영이나 게임단 일정에서 책을 읽는 이상혁의 모습은 꽤나 많이 보였기에. 경기를 준비하다 보면 책과는 물리적-심리적 거리가 멀어지기 쉬운데, 이상혁만은 책과 가까운 이미지로 기억에 남았다. 
 

"아직 독서가 습관은 아니에요. 게임단 일정을 소화할 때 책을 들고 다니는데, 아직도 핸드폰을 보는 시간도 적잖이 있습니다. 그래도 최근 여가 시간 중 독서의 비중이 더 높아졌죠. 독서를 하는 거 자체가 저에게 좋다고 생각해서 습관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자기 관리 중 하나기도 하죠. 소설도 많이 읽고, 비소설 분야도 많이 봅니다. 철학자들이 책을 통해 다른 철학자의 이야기를 하고, 이전 세대의 철학자 이야기를 책을 통해 말하는 걸 보면 공감되는 부분도 많더라고요. 독서의 도움을 받긴 하지만, 아직까지 제 철학에 있어 뚜렷한 잣대는 없어요. 노력에 중점을 두는 게 아마 제 기준일 거 같네요."
독서를 통한 자기관리로 다시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이상혁. 작년 성적으로 적잖이 주위의 시달림을 받았지만, 이런 과정에서도 많은 배움이 있었다는 그는 2019 시즌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2018 시즌은 그에게 아쉬움과 함께 앞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을 얻은 한 해였다. 
 

"자신 있죠. 2018 시즌이 아쉽지만, 그래도 배우고 얻은 영감이 있거든요. 제가 경기나 실생활에서 얻은 것들. 특히 성적으로 많이 압박받았던 작년에는 제가 부담을 가진 상황에서 경기력에 얼마나 영향을 받는지 많이 생각하고 기록해뒀어요. 그게 큰 도움이 되더라고요. 경기 내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는 선에서 설명을 부탁하신다면...  데뷔 이후에도 종종 쉬는 날에 다른 게임을 해요. 시간이 나면 티비도 보고요. 그런데 다른 게임을 하거나 티비를 보면 경기와 연관된 무언가가 보이는 게 느껴져요. '아 이거 롤에서는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들. 쉬는 동안에 하는 일도 제 목표를 이룰 수 있게 도움이 되는 시간으로 만들고 싶거든요. 최근에는 독서를 하면서 어떻게 게임을 해야 하는지 많은 영감을 얻었어요."
한 달에 한 권밖에 못 읽어 독서량을 더 늘리려고 한다는 이상혁. 그의 노력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고전파 시절 이상혁의 목표는 돈이었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목표였던 고전파는 이제 다른 것에 더 가치를 두는 페이커로 성장했다. 물질적인 보상보다는 정신적인 것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있다는 것. 이상혁은 이제 정신적인 행복을 더 추구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신같이 무언가를 이루고 싶은 욕망이 있다면 힘들다고. 
 

"처음에는 돈을 많이 버는 게 목표였어요. 프로게이머 초창기 제 목표는 돈이었죠. 하지만 2014년부터 생각이 바뀌었어요. 금전적인 여유가 생기니 다른 가치의 우선순위가 점점 올라가더라고요. 이제 돈보다 명예를, 물질적인 거 보다 정신적인 것에 더 가치를 두고 있어요. 프로게이머로서의 명예, 그리고 스스로의 만족이나 정신적인 행복을 중요시 하고 있죠. 정신적인 행복은 저 스스로에게 얻을 수 있습니다. 마음을 비우고 자신의 욕구를 최대한 낮추면 행복을 얻기 쉬운데, 저처럼 무언가 목표가 있고 욕망이 있다면 정신적인 행복을 얻기는 힘든 거 같아요."
프로게이머의 명예. 작년 열렸던 아시안게임이나 리그 오브 레전드 이벤트에서 선수들에게도 인기 있는 선수이자, 많은 프로게이머와 지망생들이 목표로 삼는 이상혁이 말하는 프로게이머의 명예는 무엇일까. 이상혁이 말하는 프로게이머의 명예는 심오하거나 많은 생각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키기 쉬운 것은 아니었다. 
 

"게임을 할 때 욕을 하지 않고, 착하게 사는 게 프로게이머의 명예라고 생각합니다. 게임 중 감정이 격해지는 걸 막기는 쉽지 않지만, 스스로 마음먹기에 달린 거 같습니다. 직업적 명예에는 도덕적인 부분이나 윤리적인 부분이 포함되죠. 프로게이머가 착하게 산다는 건 역시 욕을 안 하는 거죠. 착한 걸 강조하는 이유는 최소한 저에게는 경기력보다 성격을 바꾸는 게 더 쉬워서에요."

롤챔스 스프링을 얼마 남기지 않은 시기에 진행된 이번 인터뷰를 통해 응원해주는 팬들에게 올해도 많이 노력해서 좋은 성적을 내겠다며, 이상혁은 응원해주는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노력. 이상혁은 리그 오브 레전드 무대에서 가장 큰 재능을 가진 선수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하지만 이상혁은 어느 순간에도 노력을 놓치지 않았다. 여섯 번의 롤챔스 우승과 세 번의 롤드컵 우승. 빛나는 순간도 있었고 굴곡의 시기도 있었다. 이상혁은 어느 순간 어느 위치에서도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물어보며 임요환에 이어 또 다른 e스포츠를 대표하는 한 명의 선수가 됐다. 이상혁은 결코 노력을 놓지 않았고, 최고의 자리에서도 그가 더 빛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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