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할 선수는 바로~
윤희상 선수입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구리초등학교와 인창중학교를 거쳐 선린인터넷고등학교에 진학하개 됩니다. 선린인터넷고등학교 시절부터 안태영, 김용의와 서로 친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04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1순위로 SK 와이번스의 지명을 받습니다.
2004년 SK의 2차 1순위 지명을 받아 계약금 2억 원, 연봉 2천만 원의 조건으로 입단 계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입단 초기에는 동기였던 투수 정우람 등에 비해 어깨 부상 등으로 별 활약이 없이 2005년까지 3패만 기록하고 일찌감치 공익근무요원으로 병역을 마쳤습니다.
중간계투로 주로 등판하다가 2011년 SK의 선발진이 무너지면서 박희수와 더불어 1군에 모처럼 자주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그 해 몇 차례 임시로 선발 등판했고, 2011년 9월 7일 선발로 등판하여 데뷔 첫 승을 거두었습니다. 2011년에 거둔 3승은 모두 선발승입니다. 2011년 준 플레이오프 4차전에 선발로 등판하여 100구를 투구했으며, KIA 투수 윤석민을 물리치고 플레이오프로 진출하는 데 기여하여 그 해 한국시리즈에도 출전했습니다. 이듬해 선발로 완전히 전업하였고, 전 구단 상대 승리 투수가 되어 SK 선발진을 꾸준히 지키고 있습니다. 2012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 등판하여 데뷔 첫 완투를 기록했으나, 1회부터 이승엽에게 맞은 홈런의 여파를 이겨내지 못하였고, 팀 타선의 침묵과 맞물려 완투패를 당했습니다.
5차전에서도 7이닝 2실점으로 호투하였으나 역시 팀 타선의 침묵으로 패전투수가 되었고, 그 여파로 결국 6차전에서 대패하여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2013년 6월 20일 문학 삼성전에서 이승엽의 개인 통산 홈런 신기록의 희생자가 되었습니다 . 2014년 4월 25일 사직 롯데전에서 1회말 롯데 1번 타자 김문호와 상대하던 중 볼카운트 2-2에 투수 강습 땅볼타구로 급소를 맞아 고통을 호소하며 응급실에 실려갔습니다.이 해에 그는 손가락 골절상을 추가로 당해 선발 전환 이후 최악의 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리초등학교
인창중학교
선린인터넷고등학교
이상 윤희상 선수에 대한 소개를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