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태 타이거즈 62

前 야구선수 최해식

오늘 소개할 선수는 바로~ 풀빵 최해식 선수입니다~! 고향팀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데뷔해 1990년대 중·후반 해태 타이거즈의 주전 포수로 활약했습니다. 선수 시절 등번호는 22번. 동글동글 한 외모 때문에 풀빵이란 별명으로 통했습니다. 군산상고와 건국대를 졸업한 후 연고 팀인 쌍방울 레이더스 창단 멤버로 프로에 입문했지만 전종화, 김충민, 박경완에 밀려 별 다른 활약은 없었습니다. 1994년 장채근과 트레이드되어 해태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었고, 부상으로 인해 경기에 제대로 나오지 못하던 정회열을 제치고 해태의 주전 포수 자리를 꿰차게 되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트레이드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었지만, 최해식 선수는 본래 해태 입단을 희망했기에 트레이드 소식을 듣고 굉장히 기뻐했다고 밝혔습니다. 사실 그전에 ..

소개 2023.01.20

前 야구선수 장채근

오늘 소개할 선수는 바로~ 장채근 선수입니다~! 1986년 성균관대학교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하고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했습니다. 당시 주전 안방마님이던 김무종의 존재감이 워낙 막강했던지라 백업 신세를 면치 못했습니다. 백업 포수로 출전했다 해도 타석에선 대타를 써버리자 견디지 못하고 어느 날엔 경기 후 술에 잔뜩 취해서는 숙소의 김응용 감독 방에 들어가서 "나에게도 한번 기회를 달라"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으나, 김응용에게 찍소리 못하고 제압당한 적도 있었습니다… 카더라에 의하면 당시 흉기를 들고 김응용 감독을 찾아갔다고 했지만 장채근 선수 본인이 "주전 기용 요청을 위해 김응용 감독을 찾아간 것은 사실이나 흉기를 소지하지는 않았다"라고 밝혔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오히려 김응용은 장채근 선수의 배짱을 높..

소개 2023.01.18

前 야구선수 방수원

오늘 소개할 선수는 바로~ 방수엘라 방수원 선수입니다~!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영남대학교를 중퇴한 뒤 해태 타이거즈에 원년 멤버로 입단하여, 원년 팀 개막전에 선발 투수로 등판하였습니다. 그러나 가장 많은 승리를 올렸던 해가 원년의 6승에 불과했고 이후 투수로서 별다른 활약을 보여 주지 못해, 중간계투 또는 패전처리로 주로 등판한 투수입니다. 1984년 5월 5일 당시 마땅히 선발로 올릴 투수가 없었던 김응용 감독이 광주 삼미 전에서 우연히 그에게 선발 등판을 지시해서, KBO 리그 사상 첫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게 되었고 그 경기가 그 해 그의 유일한 승리였습니다. 그러나 이후에도 별다른 활약을 못 하고, 1989년을 끝으로 마운드에서 물러났습니다. 이후 해태 타이거즈의 투수코치를 거쳐 현재는 골프..

소개 2023.01.12

前 야구선수 강태원

오늘 소개할 선수는 바로~ 쌀봉이 강태원 선수입니다~! 해태에서 보기 드문 왼손잡이로 주로 마당쇠로 전천후 등판하며 활약을 했습니다. 여담으로, 80년대~2000년대까지 타이거즈에서 팀을 한 번도 옮기지 않고 원클럽맨으로 뛴 유일한 선수입니다. 광주상고에 입학했으나 순천상고로 전학하여 졸업한 뒤 1989년에 입단한 후, 두각을 보이진 못했으나 꾸준히 실력을 키워 오다, 1994년부터 본격적으로 주축선수로서 활약했습니다. 최고 구속이 135km/h로 야구 선수로서는 다소 불리했으나, 타자와의 수싸움에 진가를 발휘하며 자리를 잡아갔던 것. 1995년부터는 선수 달력에서도 제법 크게 사진이 실리는 등 비중이 부쩍부쩍 늘어났습니다. 2001년 은퇴할 때까지 '왕조'의 최전성기 막바지에 데뷔하여 후기 왕조에 기여..

소개 2023.01.08

야구코치 곽현희

오늘 소개할 분은 바로~ 곽현희 코치님입니다~! 1996년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하였습니다. 당시 조계현, 이강철, 이대진, 김정수 등의 뛰어난 투수들이 많았던 해태인지라 상무에 입단하여 군 복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상무는 순수 아마야구단이었기에, 프로 입단 전에 미리 병역을 해결하려는 의도도 있었던 듯합니다. 상무로 가서도 실업야구 감투상을 수상하는 등 활약을 펼쳐 기대치를 한껏 올려놓은 곽현희 선수는, 전역 후 1998년 계약금 1억 원에 입단했습니다. 1억이라는 계약금도 계약금이지만, 직전 시즌 삼성으로 현금 트레이드됐던 프랜차이즈 스타 조계현의 등번호인 17번을 구단에서 곽현희 선수에게 줬으니, 해태가 그에게 거는 기대는 매우 컸습니다. 그러나 2년 전과 달리 곽현희 선수가 입단하던 시..

소개 2023.01.06

야구감독 김종국

오늘 소개할 분은 바로~ 한 남자 김종국 감독님입니다~! 고려대학교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하고 1996년에 입단하였습니다. 2루수와 유격수를 주로 맡으나 3루수를 맡은 적도 있습니다. 통산 2할대 중반의 타율로 타격은 좋은 편이 아니나, 리그 정상급의 빠른 발과 노련미 넘치는 견고한 수비가 인상적인 선수로 2006년 WBC 당시 팀의 고참 선수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냈습니다. 또한 2008년 6월 3일에 통산 네 자릿수 안타를 달성해 이종범과 함께 공로패를 받았습니다. 2009년에 팀의 우승 멤버 4인방인 그와 장성호, 이종범, 이재주 중 가장 먼저 은퇴했습니다. KIA 타이거즈의 2군 플레잉 코치를 하다가 1군으로 승격돼 작전 및 주루코치로 활동했습니다. 2021년 12월 5일 KIA 타이거즈 정식 감독에 ..

소개 2023.01.02

前 야구선수 문희수

오늘 소개할 선수는 바로~ 3차전의 사나이 문희수 선수입니다~! 프로에서의 성적은 입단 당시의 기대보다 좋지 못했습니다. 1984년 데뷔 시즌에 1승도 거두지 못했습니다. 10승 이상을 거둔 시즌은 1985년, 1992년 두 번에 불과했고, 1989년부터는 무릎 부상과 급속한 체중 증가로 인해 재활병동에서 반년을 보내다가 가을에 잠깐 얼굴을 보이는 악순환을 거듭했습니다. 1985년에는 선동열, 이상윤을 잇는 3선발로 144이닝을 던지면서 12승 8패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KBO 한국시리즈에서는 오직 그 순간을 위해 태어난 것처럼 두고두고 회자될만한 활약을 펼치며, 한국시리즈의 사나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가을 까치 김정수와 함께 필승의 히든카드로 활약하면서 1988년 한국시리즈 MVP를 거머쥐..

소개 2022.12.21

前 야구선수 이상윤

오늘 소개할 선수는 바로~ 원자탄 이상윤 선수입니다~! 우투우타로,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 준우승의 주역으로 베스트 10에 우완 투수로 뽑힌 해태 타이거즈 초창기의 최고 에이스였습니다. '원자탄'이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당시 시속 145km를 넘나드는 강속구에 제구력도 뛰어나 선동열이 입단하기 전까지 해태의 초대 에이스였으며 본인이 다닌 동신중학교 측에서 이 학교와 같은 재단인 동신고등학교 진학을 원했으나 광주일고 진학을 선택했고 이 과정에서 동신고가 강력하게 반발하여 동신고 야구부는 1975년 말 해체됐으며 중학교 때 포수, 고등학교 1학년 때 3루수로 활약했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 강한 어깨를 인정받아 투수로 전향했습니다. 1983년 해태 타이거즈 첫 우승 당시 20승을 거두고도, 장명부에게..

소개 2022.12.17

前 야구선수 송유석

오늘 소개할 선수는 바로~ 마당쇠 송유석 선수입니다~! 투창 선수 출신으로 투구 폼이 독특한 것으로도 유명했습니다. 1993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며 해태 타이거즈의 우승에 기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996년 2월 하와이 전지훈련에서 발생한 항명 사태 때문에 1996년 시즌 후 LG 트윈스로 트레이드되었습니다. 그 후 LG와 한화 이글스에서 선수 생활을 하다가 새로운 소속팀을 찾지 못하고 은퇴를 선언했으며 은퇴 이후 건설업체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광주 CMB의 야구 해설가도 맡고 있습니다. 프로 생활 17년 동안 통산 467경기 1159 2/3이닝 동안 62승 50패 36세이브 2홀드 방어율 3.84, 577개의 탈삼진을 기록했습니다. 그의 아들은 송현우로 야구선수였습니다. 대서남..

소개 2022.12.13

야구감독 김준환

오늘 소개할 분은 바로~ 김준환 감독님입니다~! 초창기 해태 타이거즈의 스타 중 한 명으로 주로 3-5번 타자를 맡으며 제1기 KKK포를 김성한, 김봉연과 함께 이끌었습니다. 타율이 크게 높거나 홈런을 많이 치지는 못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강한 유형의 타자였습니다. 해태의 통산 5차례의 우승에 기여하였으며, 1987년 한국시리즈 MVP에 올랐습니다. 1989년 은퇴 후 해태 타이거즈와 쌍방울 레이더스의 코치를 역임하였는데 김인식 쌍방울 초대 감독이 소위 '일본통'이었던 이용일 쌍방울 구단주 대행과 마찰을 빚어 1992년 시즌 후 물러난 뒤 단행된 코치진 개편에서 살아남은 쌍방울 원년멤버 코치 중 하나였으며 이의철 구단주가 본인을 쌍방울 4대 감독 물망에 올렸지만 이용일 구단주 대행이 "나중에는 연고지 ..

소개 2022.12.01
반응형